[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올해의 사자성어 ‘공명지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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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가 박준수의 ‘공명지조’
동양화가 박준수의 ‘공명지조’
어느 날 여우가 두루미를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여우는 자신이 먹기 좋게 납작한 접시에 수프를 담아 대접했죠. 부리가 긴 두루미는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두루미는 여우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입이 긴 병에 음식을 담아 내밀었습니다. 부리가 없는 여우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이 내용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먹기 편한 그릇만 고집함으로써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상황을 꼬집은 거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 교훈을 줍니다. 나아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일깨워줍니다.

‘견강부회(牽强附會)’라는 옛말도 있습니다. 가당치도 않은 말을 억지로 끼워 맞춰 자기주장을 합리화한다는 뜻입니다. 지나치게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면서 다른 사람의 견해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을 비유하는 표현입니다.

15일 ‘교수신문’은 전국의 대학교수 10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선정했습니다. 공명지조는 아미타경 등 여러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새로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졌다고 합니다. 이 새의 한 머리는 낮에 일어나고 다른 머리는 밤에 일어납니다. 한 머리는 몸을 위해 항상 좋은 열매를 챙겨 먹었는데, 이에 질투심을 느낀 다른 머리가 화가 난 나머지 어느 날 독이 든 열매를 몰래 먹어버렸습니다. 결국 이 새는 죽게 됐습니다.

공명지조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는 “서로를 이기려고 하고 자기만 살려고 하지만 어느 한쪽이 사라지면 자기도 죽게 되는 것을 모르는 현재 한국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어 선정하게 됐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공명지조는 정치권이 자기의 이익을 따라 편을 가르고 싸우는 것을 넘어 국민들까지 이 싸움에 동조해 분열하고 있는 현실도 함축하고 있습니다. 대화와 타협을 모르고 극한 대립을 하고 있는 국회는 이미 그 정치적 기능이 마비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피로감뿐 아니라 혐오감까지 느끼는 지경입니다. 계층 갈등, 노사 갈등, 남녀 갈등, 지역 갈등, 세대 간 갈등 등이 중첩돼 현실은 더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접점을 찾지 못하고 긴장이 높아지는 미국과 북한 사이의 핵 협상, 무역 갈등과 과거사 문제로 얽혀 있는 한일 간의 경색 국면도 공명지조와 같은 운명일지 모릅니다. 자기중심적 주장만을 되뇌고 상대방의 처지를 배려하지 않는다면 공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지난해 선정됐던 사자성어는 ‘짐은 무겁고 가야 할 길은 멀다’는 뜻의 ‘임중도원(任重道遠)’이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에는 ‘사악한 것을 부수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의 ‘파사현정(破邪顯正)’이 선정됐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세월은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파사현정이 이루어졌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임중도원의 현실은 여전합니다.

여우와 두루미 사례와 같은 갈등이 봉합되지 않은 채 지속되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나와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상대가 공명지조와 같은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배려하는 성숙한 정치 문화를 기대해 봅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공명지조#올해의 사자성어#여우와 두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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