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섬지역에 커지는 ‘멧돼지 공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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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흑염소 등 닥치는대로 습격… 마을 사료창고 침입 등 피해 속출
주민들 “추가 사냥 허가해야”

전남 여수시 남면 연도 주민들은 큰 멧돼지들이 묘를 수없이 파헤쳐 주변에 벽돌을 쌓거나 그물을 쳐놓고 있다. 멧돼지 해결책을 찾지 못한 주민들은 섬에 있는 묘를 이장해 육지 봉안당에 모시고 있다고 호소했다. 연도 주민 제공
전남 여수시 남면 연도 주민들은 큰 멧돼지들이 묘를 수없이 파헤쳐 주변에 벽돌을 쌓거나 그물을 쳐놓고 있다. 멧돼지 해결책을 찾지 못한 주민들은 섬에 있는 묘를 이장해 육지 봉안당에 모시고 있다고 호소했다. 연도 주민 제공
7일 남해안 끝자락 전남 여수시 남면 연도의 야산에 벽돌을 쌓은 묘가 있다. 봉분은 회색 블록으로 둘러쳐졌고 제단은 시멘트로 덮었다. 김본준 이장(72)은 “멧돼지가 봉분을 수없이 갈아엎어 어쩔 수 없이 벽돌을 쌓았다”고 말했다. 다른 묘는 둘레에 그물을 이중으로 설치했다. 김 이장은 “이중으로 그물을 설치해도 멧돼지가 뚫고 들어온다. 해마다 묘 4, 5기를 이장해 육지 봉안당에 모시는 주민들이 있다”고 했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연도는 여수항에서 뱃길로 1시간 반 거리다. 주민 약 400명이 사는 작은 섬(면적 7.0km²)이다. 솔개가 나는 지형이라고 해서 일명 ‘소리도’라고 불린다. 어업과 풍(뇌중풍)을 예방한다는 방풍나물 재배가 주 소득원이다.

이처럼 소박하고 아늑한 연도가 멧돼지 공포에 떨고 있다.

주민들은 2011년 멧돼지가 바다를 헤엄쳐 섬에 왔다고 말한다. 2014년부터 방풍나물을 제외한 모든 농작물을 먹어치우더니 2015년이 되자 닭, 오리 같은 가축마저 죽어나갔다. 멧돼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멧돼지가 꼬리를 잡힌 것은 2017년 5월. 주민 손순남 씨(75)는 “2017년 5월 어느 날 오전 6시경 야산 나무에 매어놓은 흑염소를 보러갔는데 소만한 멧돼지 두 마리가 흑염소를 뜯어먹고 있었다”고 말했다. 손 씨는 멧돼지에 흑염소 8마리를 잃고 20여 년간 생업이던 흑염소농장을 접었다. 손 씨는 “고사리 수확 철이지만 멧돼지가 무서워 산에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소 50마리를 키우는 김남종 씨(63)는 지난해 8월 멧돼지 습격으로 송아지 3마리를 잃었다. 김 씨는 “멧돼지 떼가 송아지를 공격하자 어미 소가 새끼를 지키려다 다쳤다”고 했다. 김 씨 농장도 쑥대밭이 됐다. 멧돼지는 지렁이 등을 잡아먹으려고 수도관을 파헤쳤고 창고에 침입해 사료까지 먹어치웠다. 설치해놓은 포획 틀을 엎어버리기 일쑤였다. 조영석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사(45)는 “섬에 사는 멧돼지는 굶주려도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길 수 없어 가축을 잡아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4년간 주민들은 멧돼지에 당한 송아지 3마리, 흑염소 50마리, 닭과 오리 30마리에 대한 피해신고를 하지 않았다. 보상도 받지 못할 텐데 하는 생각에서다.

피해가 커지자 여수시는 지난달 13일, 15∼17일 기동포획단을 연도에 투입해 멧돼지 11마리를 잡았다. 무게가 156kg인 멧돼지도 있었다. 일부는 소 만한 정도인 180kg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수시는 연도에 멧돼지 약 40마리가 사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더 사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민들도 멧돼지에게 잡아먹힌 흑염소, 송아지 사진을 공개하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측은 “연도를 비롯해 여수지역 7개 섬에서 추가 사냥 요청을 했지만 피해신고가 정확히 이뤄진 것이 없고 봄철 탐방객이 늘어 피해가 우려돼 포획 틀만 허가했다”고 밝혔다.

멧돼지는 전국 유해조수(有害鳥獸) 피해 신고액의 40∼70%를 차지한다. 유·무인도 400여 개로 이뤄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은 겨울철(11∼3월)에만 사냥을 허가하고 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멧돼지 습격#여수 섬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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