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쓸 수 없는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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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마트 주차요원 등 “안좋은 인상 준다” 미세먼지에 무방비 노출
건설인력도 “준공 맞추기 급한데…”
조업 단축-중단은 꿈도 못꿔… 폐질환-만성천식 위험속 근로

#1. 25일 오전 11시경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후문. 보안요원 오모 씨(46)는 “지난 주말 맡긴 아이의 킥보드가 사라졌다”는 시민의 요청에 경비실 주변을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당시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m³당 97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 국내 기준으로 일반인의 장시간 실외 활동을 제한하는 ‘나쁨’ 등급이었지만 오 씨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그는 “미세먼지가 최악이라던 23일에도 마스크 없이 일했다”고 말했다.

#2. 같은 시각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 있던 근로자 황모 씨(45)도 마찬가지였다. 덤프트럭 등 중장비가 모래먼지를 내뿜고 있었지만 마스크 없이 일하고 있었다. 그는 “10년간 공사장에서 일했지만 미세먼지나 황사 때문에 작업을 단축하거나 중단하지는 않았다. 먼지가 많이 날리는 공사현장에서 미세먼지는 별것 아니다”라는 반응이었다.

미세먼지가 연일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야외 근로자들이 무방비 상태에 놓였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건설노동자를 포함해 서울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을 비롯한 각종 위락시설에서 시민을 위해 열리는 프로그램의 진행자들은 미세먼지를 그대로 마시며 일하고 있다. 특히 경비와 주차요원처럼 야외에서 고객과 직접 대면해야 하는 이들은 마스크라도 착용할 수 있지만 고객에게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일한다.

고농도 미세먼지는 장시간 노출될 경우 인체에 악영향을 미친다. 미세먼지는 입자 지름이 10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 이하로 코, 구강에서 걸러지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3년 10월 미세먼지를 석면과 같은 1급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야외 근로자들을 미세먼지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법적 강제조항이 미비하고 사업주의 무관심 탓에 마스크와 같은 기초 방재수단조차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국내법상 사업주가 근로자를 미세먼지로부터 보호해야 할 의무는 없다.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이 지난해 12월 배포한 ‘실외작업자 건강장해 예방 요령’에는 근로자의 마스크, 모자, 보호안경 등에 대한 착용 권고만 들어 있다. 서울시의 미세먼지 예보 및 경보에 관한 조례도 조업시간을 단축하거나 중단해야 한다는 권고뿐이다. 최용석 서울시 대기개선팀 주무관은 “상위법에서 대기질에 따른 조치를 강제할 근거가 없다. 자치구를 통한 주의사항 및 행동수칙 권고만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근로자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명준표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야외 근로자는 호흡기계 유해물질에 노출될 우려가 크지만 관련법은 대부분 작업장을 실내로 봐 야외에 대한 대책이 미비하다”고 말했다. 노무법인 신영 김광훈 노무사는 “그동안 미세먼지, 황사가 야외 근로자의 건강에 큰 문제가 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을 보호하는 관련법이나 규정이 부족했다. 이제라도 대기환경이 좋지 않을 경우 야외 근로자의 노동을 제한하거나 최소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등 관련법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형석 skytree08@donga.com·박창규 기자·김남준 채널A 기자
#마스크#미세먼지#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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