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도서관이 보이는 경상대 정문. 학문적 성취 및 행태 패턴(Behavior Pattern)과 높은 곳을 지향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비상’을 뜻한다. 경상대 제공
“우리 학교는 ‘개척(開拓·Pioneer)’이란 단어를 자주 써요. 여러 교육 프로그램에 이 단어가 빠지지 않습니다.” 12일 오후 경남 진주시 진주대로 국립 경상대 도서관 앞. 느티나무 가지 사이로 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캠퍼스에서 만난 이승호 씨(26·항공우주시스템공학4)가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학교를 소개해 달라”는 기자 요청에 ‘개척’이란 말을 먼저 꺼냈다. 취업 준비 중인 그는 “이 단어를 들을 때마다 ‘도전’의 이미지가 떠오르고 힘이 솟는다”고 했다.
이날 부산 울산 경남에서 가장 넓은 경상대 캠퍼스에는 책을 들거나 배낭을 멘 학생들이 활기차게 오갔다. 대학 입구와 구내도로 옆에는 국제학술 세미나, 학회, 체육대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촘촘히 걸려 있었다. 경상대는 학생들을 ‘개척인’이라 부른다. 대학 발전을 위한 비전 역시 ‘예(禮)·지(智)·학(學)을 겸비한 창의적 개척인재 양성’이다. 경상대가 강조하는 개척 정신은 뛰어난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공적인 대학 특성화 모델
대학 슬로건은 ‘경남에서 세계와 당당히 경쟁하는 ACTIVE GNU’다. 명실상부하게 경남을 대표하는 대학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경북대 전남대 등 다른 지역 거점 국립대는 도(道) 명칭을 교명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경상대는 상황이 다르다. 도청소재지(창원)가 아닌 진주에 있다. 교명은 경상남도, 경상도를 상징하는 ‘경상’을 쓴다. 하지만 경남의 거점 국립대인 경상대가 개척정신으로 일군 탁월한 학문적 성과는 압도적이다. 한마디로 지역 내 공사립 대학들이 넘보기 어려울 정도다.
경상대는 △생명과학 △항공기계시스템 △나노·신소재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들 분야를 중심으로 BK21, WCU, BK21플러스 등 각종 재정지원사업에 선정돼 안정적인 연구기반을 마련했다. 뛰어난 연구 성과에 청와대와 교육부도 2005년 경상대를 대학특성화 성공 사례로 공식 인정했다.
생명과학 분야는 이미 국제무대에서 큰 영향력을 확보했다. 미국 퍼듀대와 미주리대, 덴마크 코펜하겐대와 식물생명과학 분야 복수 박사학위제를 운영하는 것도 그 이유다. 경상대 이상열 교수팀은 2010년 농촌진흥청으로부터 ‘차세대 바이오 그린21 사업’에 선정돼 10년간 무려 1000억 원을 지원받았다.
윤대진 교수팀은 최근 ‘건조한 환경을 견디게 하는 식물 단백질’을 세계 최초로 규명해 국내외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윤경미 박사는 지난해 퍼듀대 식물학 및 식물병리학과(Botany and Plant Pathology) 교수로 임용돼 화제를 모았다.
항공기계시스템 분야도 뛰어나다. 경상대는 올 7월 경남 사천시의 국내 유일 항공기 체계종합 전문기업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페루의 국가과학기술위원회(CONCYTEC)와 항공우주 분야 교육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KAI가 페루에 초음속항공기를 수출하는 대신 페루에선 국가 장학생을 한국에 파견한다. 이들을 항공우주 인력으로 양성하는 교육을 경상대가 맡는다. 이우기 홍보실장은 “앞으로 이라크 태국 등 KAI가 수출하는 여러 나라의 장학생을 유치해 이른바 ‘친한(親韓) 글로벌 엘리트’를 육성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나노·신소재 분야의 성과도 눈부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8월 국내 연구팀이 “물을 활용한 친환경 반도체 제조 신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바로 경상대 화학과 김윤희 교수팀이 이룬 성과다. 학계에서는 이 연구가 유기태양전지의 상용화를 크게 앞당길 것으로 보고 있다. 김 교수는 23일 ‘제12회 경남 과학기술대상’을 받는다.
화학과 이심성 교수는 올해 2개의 ‘깜짝 연구’를 발표했다. 빛을 이용한 교대배열 유기고분자를 세계 최초로 제조(5월)한 데 이어 차세대 나노소재 폴리로탁센의 획기적 합성법을 개발(8월)해 학계를 놀라게 했다.
이 밖에 공대 기계공학전공 전만수 교수가 대표로 있는 ㈜MFRC는 지난달 세계 3대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사인 알테어(ALTAIR)와 소성가공 성형 해석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인 에프덱스(AFDEX)를 공급하기로 계약하는 개가를 올렸다. 에프덱스는 1998년 국내 최초로 상용화한 공학해석 소프트웨어로 경상대에서 개발해 MFRC에 기술 이전한 것이다.
경상대는 기초 학문 육성에도 힘쓰고 있다. 특히 경남의 학문적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남명 조식 선생의 정신이 깃든 남명학(南冥學)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 남명학 연구의 중심지로 거듭나기 위해 남명학 고문헌시스템(nmh.gnu.ac.kr)이란 사이트를 구축했고 경남 유일의 ‘고문헌 도서관’도 건립 중이다.
경남 진주시 진주대로 경상대 가좌캠퍼스 전경. 가좌벌에 자리한 경상대 캠퍼스는 100만 ㎡ 규모로 지역 대학 중 손꼽힐 정도로 넓다. 경상대 제공
세계 기관 대학평가에서 2년 연속 ‘우수’
경상대 경쟁력은 해외 기관의 평가에서 잘 드러난다. 네덜란드의 레이던대가 5월 발표한 ‘2015 레이던 랭킹’에서 경상대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국내 국립대 중 1위’를 차지했다. 레이던대 과학기술연구소는 2010∼2013년 국제논문을 1000건 이상 발표한 세계 750개 대학을 대상으로 학술정보서비스기업인 톰슨로이터의 데이터베이스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상위 10% 논문 비율을 조사했다.
이 조사는 종합순위 사회과학 자연과학 의학 수학·컴퓨터공학 생명·지구과학 등 6개 부문을 나눠 진행됐다. 이 평가에서 경상대는 6개 부문 전체 논문실적인 종합순위에서 국립대 중 1위(서울대는 국립대 법인으로 제외), 국내 전체 대학 중 13위를 차지했다. 또한 수학·컴퓨터공학 부문에선 국내 전체 대학 중 2위, 생명·지구과학 부문은 4위에 올랐다. 실로 놀랄 만한 업적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상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세계대학랭킹센터(CWUR·Center for World University Rankings)가 7월 발표한 ‘세계대학평가’에서 부산 울산 경남지역 대학 중 1위, 국내 대학 중 15위로 평가됐다. CWUR는 설문조사나 대학이 제출하는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각 대학 교수진의 명성과 연구 실적 및 교육의 질 등을 다각도로 평가한다. 흔히들 쓰는 표현처럼 ‘한강이남’ 최고 대학으로 손색이 없는 셈이다.
2016학년도 수시모집 경쟁률 ‘역대 최고’
경상대는 지난달 마감한 2016학년도 신입생 수시모집 원서접수 결과 평균 8.65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개교 이래 최고 경쟁률이다. 많은 대학의 경쟁률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극히 이례적이다. 학과별로는 학생부교과전형 체육교육과 56 대 1, 역사교육과 34 대 1, 해양경찰시스템학과 32 대 1 등으로 경쟁률을 기록했다. 학생부종합전형의 개척인재전형에서는 유아교육과 48 대 1, 의예과 35 대 1, 간호학과 32 대 1, 역사교육과 27 대 1, 영어교육과 27 대 1 등 의학 계열과 사범 계열에서 특히 높은 경쟁률을 나타냈다. 빈선옥 홍보전문관은 “대학특성화 성공, 산학협력 성과, 전국 규모의 대학진학박람회 개최 등이 수시 경쟁률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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