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조릿대, 한라산 점령… 토종식물 20종 멸종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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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조릿대가 한라산국립공원 저지대에서 고지대까지 영역을 확장하면서 희귀 특산식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등 종 다양성에 심각한 위기가 닥치고 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제주조릿대가 한라산국립공원 저지대에서 고지대까지 영역을 확장하면서 희귀 특산식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등 종 다양성에 심각한 위기가 닥치고 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4일 한라산 정상 바로 밑인 백록담 서북벽 해발 1900m 지점. 한라산에서만 자라는 연녹색 제주조릿대가 암벽을 따라 정상으로 향하는 모습이 확연히 들어왔다. 한라산 저지대에서 고지대까지 점령한 제주조릿대가 영역을 더욱 확장하면서 백록담 분화구로 거침없이 진격하고 있는 것이다. 한라산 특산식물인 시로미, 눈향나무는 제주조릿대를 피해 바위로 피신했으나 몇 년을 버티지 못할 운명이다. 제주조릿대 영역에서 비켜 선 한라구절초는 바위틈새에서 순백의 꽃을 피웠지만 위태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제주조릿대는 세계적인 최대 군락지인 구상나무 숲마저 위협하고 있다. 구상나무 하층부에 빽빽이 들어서 씨앗이 발아되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제주조릿대
제주조릿대
○ 제주조릿대 한라산 점령

제주조릿대는 30여 년 전 해발 600∼1400m에 드문드문 분포했지만 지금은 계곡과 암석지대를 제외한 한라산국립공원 전역으로 퍼졌다. 제주도가 추정하는 분포면적은 244.6km²에 이른다. 볏과에 속하는 제주조릿대는 잎 가장자리에 흰색 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으로 줄기뿌리가 땅을 단단히 움켜쥐면서 자생지를 넓힌다. 한라산연구원 등의 조사 결과 제주조릿대 침입 이전 시로미와 섬바위장대, 한라고들빼기, 백리향 등 20종 이상의 식물이 자랐지만 제주조릿대가 들어온 이후에는 제주조릿대 1종만이 서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조릿대가 빠르게 번식하면서 어리목코스 사제비동산(해발 1423m)에서 윗세오름(해발 1700m) 일대 시로미, 눈향나무는 대부분 사라지는 등 심각한 피해를 줬다. 주로 백록담 분화구 주변에서만 자라는 고산 희귀식물인 암매, 한라장구채, 제주달구지풀, 깔끔좁쌀풀, 섬잔대, 구름떡쑥 등은 머지않아 멸종될 위기에 처했다. 제주조릿대는 지표면을 단단히 고정시키는 특징 때문에 토양 붕괴와 침식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종의 다양성 확보와 희귀식물 보호를 위해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 “말 방목 부활해 번성 억제해야”

제주조릿대 번성은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높아진 데다 제주조릿대를 먹어치우던 소와 말의 방목이 1980년대 중반부터 금지됐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김찬수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장은 “제주조릿대 잎이 연중 무성하고, 뿌리가 사방팔방으로 뻗어 있어서 새로운 식물이 쉽게 뿌리내릴 수 없다. 한라산의 귀중한 자원보전을 위해 일정 지역에 대해 제주조릿대를 제거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제주조릿대 번성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말 방목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제주도가 국립공원 외곽 제주조릿대 자생지에서 시험적으로 말을 방목한 결과 제주조릿대 밀도가 절반가량 줄어들면서 다른 식물이 자랐다. 어미 말 1마리를 1개월 동안 방목하는 데 필요한 제주조릿대 면적은 1만 m²가량으로 조사됐다. 한라산국립공원 강만생 자문위원장은 “제주조릿대를 당뇨, 고혈압, 관절염 개선을 위한 건강기능성식품 등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처리량은 미미하다”며 “공론화를 거쳐 제주조릿대에 대한 대책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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