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늙어가는 현장 치안… 지구대-파출소 경찰 10명중 4명 50代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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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역 ‘범죄와의 전쟁 최일선’ 고령화 심각

“범인은 도망가는데 엉거주춤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울화통이 터져서….”

지난해 서울 강남의 한 경찰서 지구대에 근무했던 A 팀장(경감)은 출동 현장에서 수차례 느꼈던 답답함을 뒤늦게 털어놨다.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50대 경찰관 가운데 일부가 도주하는 범인을 쫓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서 있기 일쑤였던 것. “예전에 범인을 쫓다가 다친 경험이 있어 무리하고 싶지 않다”며 수수방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A 팀장은 “심지어 젊은 경찰관이 쫓아가 범인을 잡아 왔더니 ‘너 그러다가 다치면 누가 책임지느냐’며 핀잔을 주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치안 현장이 늙어 가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2월 말 기준 서울지역 지구대와 파출소에 근무하는 경찰관의 40.1%가 50대였다. 전체 경찰공무원 10만여 명 가운데 50대가 23%인 것을 감안할 때 서울지역 경찰의 ‘고령화’가 훨씬 심한 셈이다. 서울은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충북 광주 대전에 이어 네 번째다.

서울 지구대·파출소 가운데 50대 경찰관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강서경찰서 등촌2파출소로 73.9%였다. 경찰서별로는 방배서 관할 지구대와 파출소의 50대 경찰관이 56.6%로 가장 많았다.

치안의 최일선인 지구대와 파출소의 고령화는 범죄 대응 미숙 등 여러 문제를 낳고 있다. 50대 경찰관이 60% 이상인 서울의 한 파출소 소장은 “나이 든 경찰이 많다 보니 범인을 놓치고 한참 뒤에 다시 붙잡은 경우도 있었다”며 “젊은 경찰과 나이 든 경찰 2인 1조로 순찰을 하는 등 파출소 나름대로 해결책을 만들어 시행 중”이라고 말했다.

최신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한 행정 업무에 서툰 것도 문제다. 3월 말 서울 강서구의 한 지구대. 전산시스템에 시간대별 출동 상황을 기록해야 하지만 모두 손을 놓고 있었다. 순찰 인원을 제외하고 지구대에 있던 경찰관 4명은 관련 업무를 하지 못했다. 30여 분 뒤 40대 중반의 경찰관이 순찰에서 복귀해서야 업무가 진행됐다.

○ 고령화보다 더 큰 원인은 인사

지구대·파출소의 고령화는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의 고령화 영향이 크다. 하지만 경찰 인사 탓도 크다. 나이 든 경찰관은 인사 때 사건 사고가 적은 지역을 희망하는 경우가 많다. 경찰도 사건 사고가 많은 지역에는 가급적 젊은 경찰관을 배치한다. ‘대한민국 사건 1번지’로 불리는 강남서의 경우 50대 경찰관이 13.2%에 불과하다. 서울에서 가장 낮다. 서울의 한 경찰서장은 “다른 곳에 비해 강남은 일이 몇 배나 많다 보니 나이 든 경찰관들은 체력적으로 힘들어 기피한다”고 귀띔했다.

물론 나이 든 경찰관이 대민 업무에 더 익숙하다는 반론도 있다. 주취자 등 악성 민원인이 많은 지구대·파출소의 특성상 젊은 경찰관은 욱하는 성질 때문에 일을 키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반면 가정 폭력 등 민감한 문제를 다룰 때 나이 든 경찰관들의 ‘경륜’이 해결의 실마리가 되곤 한다.

체력은 근본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다. 2010년 처음으로 실시된 경찰 체력검정 중에는 1200m 달리기 종목이 포함됐었다. 그러나 이듬해 1000m로 줄더니 지난해 하반기에는 100m로 바뀌었다. 2010∼2013년 달리기를 하던 경찰관 3명이 심근경색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의 나이였다. 55∼59세 경찰관은 아예 체력검정 응시 여부를 본인이 선택한다. 경찰 관계자는 “체력은 필수조건 가운데 하나인데 나이 든 경찰관들은 이마저도 힘들다고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 경찰도 고령화 대책 필요

해결책은 없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당시 경찰 2만 명 증원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에 따라 지난해 신임 경찰관 6542명이 임용됐다. 올해는 7626명이 새로 임용될 예정이다. 경찰은 신규 임용 경찰관을 지구대와 파출소에 우선 배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지금도 어느 정도 나이를 감안해 인사를 하고 있지만 인력이 한정돼 있고 기존 인사 관행을 고치기가 쉽지 않다.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워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염건령 중앙경찰학교 교수는 “지금처럼 인력을 한꺼번에 늘리는 것보다 인원을 정해 놓고 장기적으로 꾸준히 선발해야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외국은 개인의 신체적 능력을 꼼꼼하게 따져 인력을 운용한다”며 “지구대나 파출소 근무 경찰관의 연령 상한선을 두는 방안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황성호 hsh0330@donga.com·조아라 기자
#치안#범죄#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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