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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일, 기자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탄핵 반대’ 시위 현장을 취재했다. 지금보다는 탄핵 찬반 여론이 상대적으로 덜 격화됐지만 그래도 현장의 공기는 숨 막혔다. 이른 아침부터 모인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그나마 ‘탄핵이 기각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으로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질서는 오전 11시 21분 탄핵 선고로 깨졌다. 시위대는 경찰을 향해 소화기 분말을 뿌리고, 돌을 던지며 분노했다. 경찰 차벽에 머리를 찧으며 자해했고 가스총까지 꺼내 들었다. 급기야 시위대는 경찰 버스를 빼앗아 몰다 경찰 소음측정차량을 들이박았다. 그 탓에 차량 위에 있던 스피커가 떨어지며 밑에 있던 70대 한 명이 깔려 숨졌다. 그날 이렇게 허망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이 총 4명이었다. 정치가 목숨을 앗아갔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여론은 그때보다 더 극단적으로 갈려 있다.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 사이에서도 의견이 달라 말다툼이 벌어지는 것은 예삿일이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서울서부지법 사태처럼 사법부를 향해서도 분풀이를 했다. 지지자 한 명이 윤 대통령 체포 당일 극단 선택을 하는 일도 있었다. 탄핵 찬성 측도 다르지 않다. 경찰 무전기를 빼앗아 던져 애꿎은 경찰이 피를 봤다.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박 전 대통령 당시보다 더 큰 불상사가 벌어지리라는 불길한 예감을 떨치기 어렵다. 경찰도 대비책을 세우고는 있다. 13만 명에 이르는 전국 경찰 100%를 동원할 수 있는 ‘갑호 비상’이 선고 당일 발령된다. 박현수 서울경찰청장 직무대리는 “헌재 반경 100m를 진공상태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인근 주유소와 대기업, 상점들도 흥분한 시위대에 휩쓸릴 것을 우려해 휴업 수순에 들어가고 있다. 주변 학교도 쉰다. 그럼에도 경찰이 극한으로 치달은 시민들의 감정까지 미리 막을 순 없는 노릇이다. 정치권이 탄핵 선고 전에 진심 어린 승복 메시지를 내야 하는 이유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심판 최후진술에서 “앞으로 어떠한 상황이 오든 갈라진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 지금의 혼란을 조속히 극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나가겠다”고 했다. 통합을 위한 역할을 하겠다는 메시지를 냈지만 승복 언급은 사전에 없었다. 물론 여야 지도부 모두 승복하겠다는 메시지를 이미 내긴 했다. 하지만 그 메시지보다 더 많이 눈에 띄는 건, 선고가 임박해지자 줄줄이 광장으로 나오는 여야 인사들의 모습이다. 단식과 삭발 등 극단적인 방법으로 주장을 되풀이한다. 광장에 선동의 목소리만 들리는데, 시민들이 “승복하겠다”는 여야 지도부의 일회성 메시지를 기억할지 의문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윤 대통령이 직접 내는 입장이다. 변호인이 “결과에 대통령이 당연히 승복할 것”이라 했지만 윤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는 승복 발언을 들은 기억은 없다. 윤 대통령은 8일 석방 후 “저의 구속에 항의하며 목숨을 끊으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면서 “진심으로 명복을 빈다”고 했다. 그 안타까움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윤 대통령 자신이 직접 입을 열어야 한다.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내가 있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요….” 지난달 20일 서울의 한 장례식장에서 본보 기자와 만난 김모 씨의 말이다. 사람이 드문드문 앉아 있는 빈소의 주인은 그의 딸인 10대 김모 양. 김 씨는 이틀 전 은평구 녹번동에 있는 자신의 집(다세대주택)에서 밤새 벌어진 화재로 딸을 잃었다. 아내와 아들은 화마에 중상을 입었다. 김 씨는 “와이프가 다친 걸 보니 애를 구하려고 한 거같이 손과 얼굴에 다 화상을 입었다”고 했다. 불이 나던 밤 김 씨가 집에 없었던 건 가난 때문이었다. 이들 가정은 차상위계층이었고, 딸은 자폐 스펙트럼을 앓고 있었다. 자폐 스펙트럼을 앓는 아이는 부모 중 한 명이 하루종일 옆에서 돌봐줘야 한다. 김 씨의 아내가 일을 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네 식구의 생계를 짊어진 김 씨는 야간 근무를 하는 직장에 다녔다. 주간 근무보다 돈을 더 많이 줘서다. 그날 김 씨는 야간 근무를 하기 위해 집을 비운 상태였다. 국가가 이 가족을 외면했던 것은 아니다. 중증장애인이었던 김 양 앞으로 매달 17만 원의 돈이 나왔다. 또 구청에서 쌀과 같은 생필품을 지원해줬다고 한다. 하루 13시간의 밤샘 노동을 하는 김 씨가 기억하는 국가가 그들에게 보여준 관심은 거기까지였다. 기초생활수급자면 매달 최대 195만 원의 생계급여가 나오지만 차상위계층인 이들에겐 생계급여는 나오지 않았다. 월 최대 50만 원인 주거급여 역시 해당되지 않았다. 이들이 녹번동에 자가주택이 있다는 이유였다. 녹번동 일대에서 김 씨 소유 자가주택과 비슷한 평수의 빌라 매매 가격은 2억 원 안팎이다. 딸의 목숨을 앗아간 그 집은 딸의 장애 때문에 정착을 해야 돼 빚을 내 무리해서 산 것이었다. 자폐 스펙트럼 같은 발달장애 가정의 빈곤 문제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내놓은 ‘2023년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이 있는 가정의 월평균 소득은 275만1000원이었다. 같은 해 통계청 기준으로 한국의 가구당 월평균 소득 502만4000원의 약 54%에 불과하다. 맞벌이가 평균인 요즘 부모 한쪽이 일을 못 하는 현실이 통계에 적나라하게 반영됐다. 이런 빈곤의 늪은 발달장애인 가정 40.1%를 기초수급대상자로 만들었다. 물론 김 씨 가족 같은 이들에게 무작정 큰 금액을 지원을 하자는 건 아니다. 김 씨 가족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지만 복지제도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매달 50만 원을, 농민이라는 이름으로는 60만 원을 주는 나라에서 이들 가족에게 줬던 돈이 매달 17만 원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과연 지금의 복지 제도가 정의롭다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행히 본보 보도(2025년 2월 22일자 A8면 참조)를 접한 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실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일부개정법률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선정을 위한 소득과 재산을 따질 때 중증장애인이 있는 저소득 가정은 자가주택이 있더라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이다. 많이 늦었지만 정치권의 더 큰 관심을 기대한다.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12·3 비상계엄으로 구속 기소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에 ‘언론 쪽 100∼200(명)’ ‘여의도 30∼50명 수거’ ‘500여 명 수집’ 등의 단어가 기재된 것으로 파악됐다. 강원 화천과 양구 등 구금 장소로 추정할 수 있는 지역명도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14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경찰이 노 전 사령관의 경기 안산시 주거지를 압수수색할 당시 확보한 수첩에 이러한 단어들이 기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첩은 약 70쪽 분량으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수첩에는 알파벳으로 ‘A’라는 단어에 ‘이재명’ ‘문재인’ ‘조국’ ‘윤미향’ ‘권순일’ ‘좌파 판사 전원’ ‘김명수’ 등의 메모가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선 노 전 사령관이 문재인 전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 등을 우선 체포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명단은 A에서 D까지 그룹별로 나뉘어 있었다고 한다. 명단과 별개로 ‘좌파 방송사 주요 간부들’ ‘김남국’ ‘촛불집회 주모자들’이라는 단어도 기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이 체포된 인사들을 구금할 장소로 구상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도 수첩에 기재돼 있었다고 한다. ‘그룹별로 묶지 말고 섞어서 수집소에 보낸다’는 문장이 수첩에 적혀 있고, 이른바 ‘수집소’로 ‘오음리, 현리, 인제, 강원도 화천, 양구, 울릉도, 마라도, 전방 민통선 쪽’ 등 주로 북한 접경지대를 언급한 대목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사령관을 지난달 10일 내란중요임무종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긴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공소 사실에 수첩 내용을 담지 않았다. 검찰은 수첩에 기재된 내용이 노 전 사령관의 평소 생각을 담은 것인지, 실제 비상계엄을 준비하기 위한 것인지 신빙성을 따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수첩에 등장하는 낱말들이 파편적으로 쓰여 있어 해석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할 여지가 있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사령관 측은 수첩 내용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점을 재판에서 입증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노 전 사령관 측은 6일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혐의를 부인했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최원영 기자 o0@donga.com}
12·3 불법 비상계엄 사건의 여파로 별달리 조명받지 못한 사건이 하나 있다. 지난달 초 송치된 ‘중국인 국가정보원 촬영 사건’이다. 중국인 A 씨는 지난해 11월 9일 서울 서초구 국정원 건물을 드론으로 촬영한 혐의로 현행범 체포됐다. 국정원 바로 옆에 사적 제194호 헌인릉이 있는데, A 씨는 헌인릉을 촬영하다 국정원 건물까지 ‘우연히’ 찍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저 관광객이라는 것이다. A 씨의 주장처럼 경찰이 확보한 그의 휴대전화에는 해외 여행 사진만 들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튿날 A 씨를 풀어줬다. 하지만 그의 행적에는 수상한 점이 적지 않다. 경복궁 등 주요 문화재를 찾는 통상적인 관광객과 달리 해외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사적인 헌인릉을 찾았다는 점이 우선 그랬다. 중국판 위키피디아인 ‘바이두 백과’에는 ‘獻仁陵(헌인릉)’이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 심지어 A 씨는 한국 입국 직후 렌터카를 빌려 타고 바로 헌인릉으로 향했다. 경찰 내부에선 A 씨에게 적용할 혐의를 두고 고민이 깊었다고 한다. 미심쩍은 행적이 많아 수사 강도를 높여야 하는데, 적용할 마땅한 법이 없다는 이유였다. 결과적으로 A 씨가 검찰에 송치될 때 적용된 혐의는 군사기지법 및 문화유산법 위반이었다. 문화유산법까지 적용한 건 촬영을 할 때 문화유산 훼손의 가능성이 있으니 정부 허가를 받도록 한 법 규정까지 샅샅이 찾아낸 결과다. 두 법의 최고 처벌 수위는 징역 2∼3년 형에 그친다. A 씨는 출국금지된 상태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반면 중국은 2023년 11월 한국인 사업가 B 씨를 반(反)간첩법 위반 혐의로 붙잡아 여전히 구속 중이다. B 씨는 중국 최대 메모리반도체 회사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에서 일하던 당시 기술을 유출했다고 의심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말 열린 재판에서 중국 검찰은 B 씨에 대해 징역 최저 11년에서 최대 15년의 구형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중국 수사 당국은 열 달간 가족 면회도 가로막으며 수사했다. 2023년 7월 시행된 중국의 반간첩법을 뜯어보면 앞으로 B 씨와 같은 사례들이 많을 것 같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최고형이 무기징역이나 사형인 반간첩법은 중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사항을 포괄적으로 처벌한다. 이 때문에 주중 한국대사관은 “중국 국가안보 및 이익에 관한 자료를 검색하는 행위도 유의해 달라”는 공지를 교민들에게 했을 정도다. 한국과 중국의 사례를 든 것은, 한국도 중국처럼 인권을 무시한 수사를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핵심 기술과 안보가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법적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이야기다. 간첩법 적용 대상을 ‘적국(북한)’에서 외국으로 넓히는 논의는 야권의 반대로 지지부진하다. 한국 기밀을 빼돌리려는 나라가 북한뿐은 아닐 텐데, 그 외의 국가에 대해 적절한 법적 대응 수단이 없는 게 현실이다. 최근 야권 주최로 열린 국회 토론회에 참가한 전문가조차 “중국은 우리 국민을 간첩죄로 처벌하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하는 불균형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도둑질을 해도 되는 허술한 국가’라는 인식이 퍼지지 않을지 우려된다. 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20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이후 벌어진 서부지법 폭력 난입 사태는 비현실적이었다. 깨진 유리창과 부서진 법원 내부의 모습은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장면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도 사회적 혼란이 극심했지만 이 정도 사건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2025년 한국 사회의 밑바닥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10년도 채 안 된 시간에 한국 사회의 수준이 더 낮아졌다는 자조가 나오는 까닭이다. 수사기관은 물론 사법부 역시 향후 폭동을 일으킨 이들에게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45년 만의 비상계엄이 한국 사회에 불러온 충격파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추가적인 소요를 막기 위해서라도 엄벌은 불가피하다. 실제 법원은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들에게 대다수 영장을 발부하며 강경한 처벌 의지를 드러냈다. 이러한 방향은 정치권에서도 여야 모두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공기를 접하는 일선 경찰들의 마음은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집회 시위에서 경찰관을 다치게 한 이들에게 엄벌을 내려야 한다는 정치권의 합의를 본 기억은 드물다는 것이다. 집회에서 피 흘리고, 다치는 경찰관들은 외면당해 왔다는 정서가 일선 경찰관들에게 적지 않다. 서부지법 사태가 벌어지기 불과 16일 전의 사건도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날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소속 집회 참가자가 경찰 무전기를 빼앗아 경찰관의 머리를 향해 던지는 일이 있었다. 무전기를 맞은 경찰관은 머리가 3cm가량 찢어졌다. 정치권에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민노총은 오히려 강경하게 나갔다. 민노총은 경찰 익명 게시판에 해당 경찰관이 ‘혼수상태’라는 글이 올라왔다며 글 작성자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동료가 다친 경찰관들에게 사과 대신 고소를 한 것이다. 이런 일은 경찰관들의 일상이다. 집회 시위를 막다 다친 경찰관은 지난해 100명을 훌쩍 넘어섰다. 지난해 11월 ‘윤석열 정권 퇴진 1차 총궐기’ 집회에서 발생한 부상자가 105명이나 됐다. 부상자 가운데는 골절, 인대파열 등 큰 부상을 입은 경찰관도 있었다. 연간 집회 및 시위 도중 부상을 입는 경찰관이 100명을 넘어선 것은 2017년 이후 7년 만의 일이다. 당시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1차 총궐기 시위 참가자 4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정치권에선 당시 ‘경찰 규탄론’까지 비등했다. 경찰의 관련자 전원 구속 방침에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크게 반발한 것이다. 한 야당 의원이 집회에 참가했다가 다친 것이 경찰 때문이라는 것이 근거였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폭력적인 경찰의 모습으로 대한민국이 얼마나 퇴행하는지 증명돼 가는 것 같다”고까지 했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다친 105명의 경찰관 얘기는 사라졌다. 서부지법의 유리창과 판사실, 그리고 국회의원의 건강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같은 무게로 경찰관들이 흘린 피도 다뤄져야 한다. ‘제2의 서부지법 사태’가 없으려면 말이다.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한국 검찰, ‘윤석열 대통령과 연관된’ 무속인(Shaman) 체포.” 지난해 12월 18일(현지 시간) 영국 인디펜던트지가 ‘건진법사’로 알려진 전성배 씨(64) 체포 소식을 전한 기사의 제목이다. 헤드라인부터 전 씨가 무속인이라고 썼다. 윤 대통령 부부와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전 씨는 2022년 초 윤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활동했다는 의혹으로 ‘무속 논란’이 일자 공개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최근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12·3 비상계엄 이후 불거진 각종 사건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무속신앙과 연관돼 있다 보니 외신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인디펜던트지는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무속신앙(Shamanism)은 정치와의 연관성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무속인이 연루된 한국의 정치 논란이 하루이틀이 아니라는 취지다. 어느새 한국을 ‘무속의 나라’라고 보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전 씨뿐만이 아니다. ‘계엄 비선’으로 지목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존재도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수석 입학 후 군에서 승진 가도를 달리던 그는 성추문으로 군복을 벗었다. 이후 ‘아기보살’이라는 팻말이 달린 경기 안산시의 한 점집에서 거주했다고 한다. 그는 전북 군산시의 한 점집을 찾아 ‘계엄 보고라인’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자신을 배신할 것인지 물어보기도 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업 무속인이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무속신앙에 심취해 있었다는 건 맞아 보인다. 그가 경기 안산시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계엄을 모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버거보살’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일상생활에서 서민의 궁금증과 답답함을 풀어주는 보통의 무속인들까지 싸잡아 욕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 같은 권력자들이 비논리적, 비과학적인 무속에 몰입하고 이런 사람들에게 곁을 내준다면 심각한 문제다. 아무리 정치인에게 한 표가 중요하다지만 절대 곁을 내주지 않아야 할 부류도 있는 법이다. 국가 주요 정책이나 정부 인사들의 판단에 무속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온다. 이런 사태는 윤 대통령 본인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윤 대통령은 2022년 초 전 씨와 관련한 무속 논란이 불거졌을 때 “우리 당 관계자에게 (전 씨를) 소개받아 인사한 적 있다”며 관계를 일정 부분 인정했다. 그러면서 “(전 씨가 무속인이 아니라) 스님으로 알고 있고 법사라고 들었다”며 그가 최소 범상치 않은 세계에 몸담은 인물이라는 점은 알았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 역시 윤 대통령이 계엄을 사전에 상의했다고 유일하게 인정한 최측근인 김 전 장관과 막역한 사이였다. 이쯤 되자 국민들은 대선 경선 당시 손바닥에 ‘왕(王)’ 자를 적고 TV 토론에 나왔던 윤 대통령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한국은 글로벌 경제 10위권의 경제 대국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까지 배출한 문화 강국이다. 기자가 2021년 카이로 특파원 당시 만난 제3세계 사람들은 한국을 롤모델로 삼아야만 하는 국가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이집트인은 첨단 기술을 다룬 영화를 볼 때면 한국이 연상된다고 했다. 그가 지금 “한국은 도대체 어떤 나라냐”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쉽지 않을 듯하다.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12·3 불법 비상계엄 선포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11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첫 강제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대통령실 압수수색을 통해 일부 자료를 확보했다.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에는 윤 대통령이 내란 혐의 피의자로 적시됐다. 같은 날 검찰은 육군 특수전사령부를 압수수색했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대통령에 대한 긴급 체포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단장 우종수)은 오전 11시 36분경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서대문구 경찰청,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영등포구 국회경비대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대상에는 대통령경호처도 포함됐다. 계엄 국무회의 회의록과 당시 회의 참석자, 출입기록 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다. 특수단은 대통령실 안내실에 들어와 “내란 혐의와 국회 의사진행 방해 등의 혐의로 영장을 발부받았다”고 밝혔지만, 대통령경호처는 사전에 관련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며 내부 진입을 제지했다. 양측은 압수수색 마감 시한인 일몰 시간(오후 5시 14분)까지도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 하지만 경호처는 오후 7시 이후 일부 자료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특수단에 전달했다. 과거 청와대 압수수색 당시에도 같은 방식으로 자료를 넘긴 관례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특수단은 계엄 당일 경찰병력을 국회로 보내 출입을 통제한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을 내란 혐의 등으로 긴급체포했다. 경찰이 현직 수뇌부를 긴급체포된 것은 사상 처음이다. 같은 날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경기 이천시 특전사령부, 곽종근 특전사령관 자택을 압수수색해 휴대전화와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확보했다. 현재 구속 중인 계엄 핵심 인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추가 조사도 진행했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출석해서 “상황이 되면 윤 대통령에 대한 긴급 체포를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윤 대통령을 체포할 의지가 있느냐”고 묻자 “충분한 의지를 갖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구민기 기자 koo@donga.com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11일 대통령실 압수수색에 나선 경찰은 대통령경호처의 반발 탓에 본청 내부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임의제출 형식으로 일부 자료를 넘겨받았다. 압수수색 종료 후 경찰은 “극히 일부만 제출받아 유감”이라고 했지만 추가 압수수색은 없다고 밝혔다. 경찰은 해당 자료를 분석해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는 입장이다. 계엄 핵심 관련자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인적 물적 증거 확보에 경쟁적으로 나선 만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출석 요구 등 직접 수사가 임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 경호처 제지로 압색 무산… 일부 자료만 받아 이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단장 우종수) 소속 경찰관 18명은 오전 11시 45분경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안내실에 도착해 낮 12시쯤 대통령경호처 관계자에게 영장을 제시했다. 특수단은 “비상계엄 선포 관련 국무회의 개최 당시 출입했던 사람들을 확인하기 위해 영장을 발부받았고, 국무회의록 등 관련 자료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돼 있다”고 밝히며 자료 제출 등을 요구했다. 이날 압수수색 대상에는 대통령 집무실, 국무회의실, 부속실, 경호처 등 대통령실 본청 4곳 등이 포함돼 있었다. 영장에는 윤 대통령이 ‘내란 혐의 피의자’로 적시됐고, 합동참모본부 내 계엄사령부가 사용했던 시설 및 장비도 특정됐다. 특수단은 포렌식 장비가 담긴 파란 상자 등도 가지고 들어갔다. 하지만 대통령실과 경호처는 사전에 연락을 받지 못했다며 압수수색을 제지했다. 특수단과 대통령실 측은 오후 5시가 넘을 때까지 협의를 이어갔고, 중간에 특수단 관계자가 “1시간째 아무런 답이 없다. 책임자를 불러달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을 압수수색하기 위해서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관리 책임자인 검찰 출신 윤재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양측은 영장 집행 마감 시한인 일몰 시간(오후 5시 14분)을 지나서도 접점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오후 7시 이후 자료 일부를 특수단에 임의 제출했고, 이후 특수단은 철수했다. 대통령실이 자료 일부를 임의 제출한 것은 과거 청와대 사례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에선 총 5번의 청와대 압수수색이 있었는데, 그중 한 번을 제외하곤 모두 임의제출 형식으로 자료가 제출됐다. 자료 확보에 실패한 압수수색 당시 검찰총장이 바로 윤 대통령이었다. ● 檢, 특전사령부 압색-김용현 추가 조사 이날 검찰과 공수처는 윤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당일 “이번 기회에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하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국회에서 증언한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을 조사했다. 공수처는 서울 모처에서 홍 전 차장을 방문 조사했고,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홍 전 차장을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정성우 국군방첩사령부 1처장도 불러 조사했다. 정 처장은 10일 국회에 나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 복사 등을 누가 지시했느냐는 질의에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구두로 지시했다”고 답한 바 있다. 아울러 검찰은 육군 특전사령부와 곽종근 특전사령관의 자택 등도 압수수색을 했다. 국군방첩사령부에서도 이틀째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압수수색 영장은 특수본에 파견된 군검찰이 군사법원으로부터 발부받아 집행했다. 특전사령부와 방첩사령부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을 저지하기 위해 병력과 체포조를 투입하는 등 핵심 역할을 수행한 부대다. 검찰은 구속 수감 중인 ‘계엄 2인자’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구속 후 처음으로 이날 불러 조사했다. 전날 법원은 내란중요임무종사 및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 김 전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검찰청법에 의해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에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사는 경찰관이 저지른 범죄 및 이와 관련성이 있는 범죄에 대해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 계엄 사태에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고위직이 연루된 만큼 검사가 내란죄에 대한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나와 “수사를 열심히 하고 있고 (윤 대통령) 체포와 관련해서도 검토하겠다”며 “충분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발언했다. 다만 공수처는 윤 대통령에 대한 출국금지 이후 눈에 띄는 수사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안규영 기자 kyu0@donga.com}
“이번 계엄 사건을 다룬 영화가 나온다면 장르는 블랙코미디가 아닐까요.” 한 수사기관 관계자는 12·3 비상계엄 사건을 가리켜 촌평했다.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납득하기 힘든 근거를 들며 선포한 45년 만의 계엄은 6시간여 만에 끝났다. 야당에 대한 ‘경고’였다는 황당한 이유, 속전속결로 통과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헬기까지 타고 국회에 진입했지만 기다렸다는 듯 철수한 계엄군. 그날의 상황은 단막극처럼 끝나 버렸다. 블랙코미디의 전반전이 2024년 12월 3, 4일의 상황이라면, 후반전은 지금 진행 중인 검찰,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 광경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세 기관은 수사 주도권을 놓고 경주하듯 다툼을 벌였다. 계엄의 2인자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그는 계엄 이후 공관에서 칩거하다 5일 뒤인 8일 오전 1시 반경 예고 없이 검찰에 출석했다. 그러자 몇 시간 뒤 경찰은 김 전 장관의 공관, 집무실,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김 전 장관의 신병은 검찰이, 김 전 장관의 물품 등 증거는 경찰이 가져간 기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뒤늦게 공수처도 가세했다. 자신들이 수사하겠다며 ‘이첩요구권’을 발동해 사건을 넘겨 달라고 검경에 요구했다. 세 기관이 기싸움을 벌이는 사이 계엄의 핵심 피의자들은 증거를 인멸하고 입을 맞추고 방어 논리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커졌다. 실제 법원은 경찰이 박안수 육군참모총장(계엄사령관) 등을 상대로 신청한 통신영장을 기각하면서 “수사기관끼리 내용 중복이 있어 수사 주체를 확정하기 위한 협의가 필요하다”며 교통 정리를 요구했다. 이 혼란의 시초는 문재인 정부에서 이뤄진 검경 수사권 조정이다. 그 전까지는 검찰이 검찰청법에 따라 내란을 비롯한 모든 범죄를 폭넓게 수사할 수 있었다. 문 정부는 검찰의 권한을 제한하기 위해 수사 범위 축소를 추진했고 검찰청법상으로 내란죄 수사를 할 수 있는지 모호해졌다. 그 결과 “내란 수사를 누가 해야 하느냐”는 논란이 벌어졌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9일 국회에서 “검찰이 수사권을 갖는지 많은 논란이 있다.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틀 뒤 영장판사는 검찰의 손도 들어줬다. 현행 검찰청법에 따르면 경찰의 범죄는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데 이번 내란에 조지호 경찰청장 등이 연루됐으니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사 혼선이 나중에 재판에서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검찰, 경찰, 공수처는 협의체 구성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11일 발표된 공조수사본부에는 검찰만 빠졌다. 경찰이 낸 보도자료에는 검찰이 빠진 이유가 적혀 있지 않았다. 국회에서 통과된 상설특검 등을 감안하면 결국 계엄 수사는 최종적으로 특검으로 모아질 가능성이 높다. 그때까지도 각 기관이 ‘마이웨이’만 외친다면 그때 가서 특검은 누더기가 된 증거물과 이미 요리조리 빠져나간 피의자들만 넘겨받게 될지 모른다. 어쩐지 이번 블랙코미디의 상영 시간이 꽤 길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든다.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불법 비상계엄 선포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에 윤석열 대통령과 내란을 공모했다고 적시했다. 검찰이 윤 대통령을 사실상 내란의 우두머리(수괴)로 판단하면서 윤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와 직권남용 혐의로 이날 구속 수감된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에서 윤 대통령이 김 전 장관과 내란을 공모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윤 대통령을 내란의 우두머리로 적시하진 않았지만, 김 전 장관의 상급자가 윤 대통령이 유일한 만큼 사실상 수괴로 판단하고 수사 중이다. 김 전 장관은 영장실질심사를 포기했고, 서울중앙지법 남천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증거 인멸 염려” 등을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비상계엄 사태의 위법성을 인정한 법원의 첫 판단이다. 경찰은 한덕수 국무총리 등 3일 밤 국무회의에 참여한 11명에게 출석을 통보했고, 1명을 조사했다. 조지호 경찰청장도 피의자로 불러 조사했다. 현직 경찰청장이 출석 조사를 받은 것은 경찰 창설 이래 처음이다. 경찰은 한 총리 등이 출석을 거부할 경우 피의자 전환 및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신속히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檢, ‘尹, 내란 수괴’ 판단… 이르면 주중 강제수사 나설수도[탄핵 표결 무산 후폭풍]현직 대통령 향해 치닫는 ‘내란 수사’영장에 “김용현은 중요임무종사자”… 상급자인 尹, 사실상 수괴로 지목법원, 유죄 인정땐 최소 무기금고… “尹, 참모진과 변호사 선임 논의”검찰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 사건 수사가 윤석열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하며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에 윤 대통령과의 공모가 적시된 만큼, 검찰이 윤 대통령을 사실상 ‘내란 우두머리(수괴)’로 정조준하고 신속히 긴급체포 등 강제수사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내란 수괴는 혐의가 입증될 경우 사형이나 무기징역, 무기금고 3개 중 1개로 처벌받는 중대범죄다. 검찰이 긴급체포나 체포영장 발부 등을 통해 윤 대통령의 신병을 먼저 확보할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이유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조직의 명운을 건다는 생각으로 가용 가능한 인력과 수단을 총동원해 하루빨리 강제수사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도 확산되고 있다.● 檢, 尹 사실상 ‘내란 수괴’로 판단10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내란중요임무종사 및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윤 대통령과 공모해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혐의가 있다”는 취지로 적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계엄 2인자’였던 김 전 장관의 유일한 상급자가 윤 대통령인 것을 감안하면 윤 대통령을 내란 수괴로 보고 수사 중인 것으로 분석된다. 검찰은 이날 구속된 김 전 장관을 계속 불러 조사해 사실관계를 더 구체화한 뒤 이르면 이번 주중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 나설 방침이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는 헌정 사상 한 번도 없었다.형법 87조는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행위’를 내란죄로 규정한다. 내란죄는 △우두머리(수괴) △모의에 참여, 지휘하거나 그 밖의 중요한 임무에 종사한 자는 물론이고 △부화수행(附和隨行·줏대 없이 다른 사람을 따라 행동함)하거나 단순히 폭동에만 관여한 자까지 모두 처벌한다. 검찰이 김 전 장관에게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적용했다는 것은 그의 상관인 윤 대통령을 사실상 ‘내란 수괴’로 보고 수사 중이라는 의미인 것이다.내란 수괴 혐의는 법정형이 사형과 무기징역, 무기금고뿐이다. 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되면 최소 무기금고에 처해지는 것이다. 검찰이 윤 대통령을 겨냥한 강제수사에 곧바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지배적인 이유다. 통상 검찰 수사는 하급자부터 시작해 중간관리자와 책임자 순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김 전 장관의 신병을 이미 확보한 만큼 윤 대통령을 정조준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갖춰졌다고 법조계는 보고 있다.● 법조계, “영장 있어야 尹 조사 가능할 것”윤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나 대면조사는 법원의 영장이 있어야 가능할 거란 게 법조계 중론이다. 검찰이 영장 없이 윤 대통령을 긴급체포할 수도 있지만, 현직인 만큼 대통령실 경호 인력과 충돌할 수 있다. 현직 대통령을 영장 없이 체포하는 것 역시 수사기관으로선 부담이다. 검찰이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더라도 현직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한 전례가 없어 이 역시 경호처와의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윤 대통령을 조사하지 않고 사전구속영장을 먼저 청구하는 방법도 있지만, 검찰이 피의자 조사 없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사유를 법원에 충분하게 소명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통상의 수사처럼 검찰이 윤 대통령에게 검찰청사로 출석해 피의자로 조사받을 것을 먼저 요구하는 방식도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 측이 경호 문제를 이유로 불응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디올백 수수 의혹 등과 관련해 김건희 여사에게 출석을 요구하자 김 여사 측은 경호 문제를 이유로 제3의 장소를 제안했고, 결국 서울 종로구 대통령경호처 부속청사에서 조사가 진행돼 논란이 됐다. 윤 대통령이 내란 혐의를 받는 중대범죄 피의자임을 감안하면 검찰이 제3의 장소 조사를 수용할 가능성 역시 낮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강제수사 방식을 서둘러 결정한 뒤 수사를 신속히 진행할 방침으로 알려졌다.윤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시급한 상황에서 현재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경찰이 경쟁을 벌이며 얽혀 있는 수사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합동수사본부를 꾸리는 등 원만한 협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윤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가 차질을 빚거나 수사의 법적 정당성이 훼손될 수도 있다”고 했다.현재 윤 대통령은 극소수 참모진을 중심으로 강제수사에 대비해 변호사 선임과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변호인단은 검찰 출신으로 윤 대통령과 가까운 김홍일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중심으로 고검장 출신 변호사 등이 거론되고 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최미송 기자 cms@donga.com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불법 비상계엄 선포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에 윤석열 대통령과 내란을 공모했다고 적시했다. 검찰이 윤 대통령을 사실상 내란의 우두머리(수괴)로 판단하면서 윤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10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와 직권남용 혐의로 이날 구속수감된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에서 윤 대통령이 김 전 장관과 내란을 공모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윤 대통령을 내란의 우두머리로 적시하진 않았지만, 김 전 장관의 상급자가 윤 대통령이 유일한 만큼 사실상 수괴로 판단하고 수사 중이다. 김 전 장관은 영장실질심사를 포기했고, 서울중앙지법 남천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증거를 인멸할 염려”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비상계엄 사태의 위법성을 인정한 법원의 첫 판단이다.경찰은 한덕수 국무총리 등 3일 밤 국무회의에 참여한 11명에 대해 출석을 통보했고, 1명을 조사했다. 조지호 경찰청장도 피의자로 불러 조사했다. 현직 경찰청장이 출석 조사를 받은 것은 경찰 창설 이래 처음이다. 경찰은 한 총리 등이 출석을 거부할 경우 피의자 전환 및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신속히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부부 공천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 씨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 실질심사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판결을 목전에 둔 이달 12, 13일. 향후 정국을 요동치게 만들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기 직전이었지만 한국인의 관심을 이들보다 더 끈 사람이 있다. 12일 신상공개가 된 ‘북한강 토막 살인사건’의 피의자 양광준 씨다. 검색어 관심도를 보여주는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이달 13일의 경우 양 씨에 대한 검색 총량을 100이라고 했을 때, 명 씨(검색 총량 29)와 이 대표(25)는 그에 현저하게 미치지 못했다. 비슷한 서비스인 ‘구글 트렌드’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강력범죄자 신상공개 한 건의 사회적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파급력이 크다 보니 신상공개 제도의 잣대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경찰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엘리트 장교 출신으로 잔혹하게 내연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양 씨의 신상공개가 잘못됐다는 얘기가 아니다. 양 씨와 비슷한 유형의 범죄를 저질렀지만 신상이 공개되지 않은 사례들을 따져봐야 한다는 의미다. ‘파타야 토막 살인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파타야 토막 살인사건의 범인 3명은 강도살인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상태다. 양 씨와 이들 모두는 사람을 죽인 뒤 시신을 훼손했을 정도로 잔혹한 수법을 쓴 혐의를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양 씨는 범행을 인정한 반면 파타야 범인 3명은 이를 부인하면서 신상공개 여부가 달라졌다. 현행 신상공개 제도는 혐의를 부인할 경우 혐의를 입증할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무죄추정 원칙이 우리나라 형사사법체계의 기본 뼈대인 만큼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문제는 파타야 사건처럼 여러 명이 범행을 저질렀을 경우다. 파타야 사건을 수사한 경남경찰청 관계자는 “살인이 해외에서 발생해 이를 입증할 증거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피의자들의 진술이 엇갈렸다”고 했다. 이들은 법정에서도 여전히 살인 혐의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자신의 범행은 축소하고 남의 범행은 키워서 진술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양 씨처럼 혼자 범행을 저질렀을 경우와 견줘 공동범행은 수사의 난도가 대폭 올라간다. 신상공개가 된 강력사범 가운데 공동범행인 사건이 드문 이유다. 지난해 초 서울 강남에서 40대 여성을 납치한 뒤 살해한 사건의 범인들 신상이 공개된 사례 정도밖에 없다. 우리 형법은 여러 명이 함께 범죄를 저지를 경우 더 강하게 처벌한다. 그런데 신상공개는 오히려 집단 범행의 경우 적용이 더 어렵다. 모순이다. 지난달 말 파타야 사건 피해자의 가족들은 국회 국민동의 청원 게시판에 범인들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꿔 달라고 청원했다. 5만 명의 동의를 얻어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로 회부되는데, 이 글은 226명의 동의로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가족들은 또다시 좌절했을 것이다. 신상공개의 근거가 되는 법률에는 필요성에 대해 “범죄를 예방하여 안전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라고 적시하고 있다.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공동범행이 예외일 순 없을 것이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까닭이다.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1931년생으로 올해 93세인 일본인 다키시마 미카(瀧島未香) 할머니의 현재 직업은 ‘헬스 트레이너’다. 결혼 후 전업주부로 산 그가 운동을 시작한 건 환갑이 넘은 나이였다. 한국에도 출판된 그의 책 ‘92세 할머니 기적의 근력운동’에 소개된 계기는 이렇다. 65세의 어느 날 집에서 과자를 먹던 그를 보고 딸이 “엄마, 요즘 살이 좀 찐 거 아냐?” 물었다. 이를 들은 남편이 다키시마 할머니를 끌고 스포츠센터에 데려갔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운동이지만 87세엔 헬스 트레이너가 됐고 책까지 냈다. 다키시마 할머니가 한국인이었다면 어땠을까. 헬스장을 잘못 골랐다면 입구서부터 문전박대를 당했을 수도 있다. 최근 이른바 ‘노실버존(No Silver Zone)’ 헬스장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층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서울 강동구, 영등포구와 대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까지 나서서 ‘스포츠시설의 65세 이상 회원 가입 제한은 차별’이라며 시정하라고 권고했다. 노인의 가입을 거절하는 헬스장들은 “노인들이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을 노골적으로 본다” “다른 젊은 회원들에게 말을 거는 경우가 많아서 불만 민원이 잦다” 등의 이유를 밝혔다. 헬스장이 회원을 늘리려면 젊은 회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져야 하고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홍보가 돼야 하는데, 노인 회원들이 늘면 젊은이들이 기피하니 결국 헬스장이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한국의 인구구조를 고려하면 앞으로 이런 헬스장들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통계청은 65세 이상 인구가 내년에 처음으로 한국 인구의 20%를 넘어선다고 전망했다. 노인을 받지 않겠다는 스포츠 시설들은 엄연히 개인의 재산권이 보장되는 사업장이다. 인권위 차원의 권고를 넘어 국가가 출입을 허용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국가가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 스포츠 시설들이 노인을 환영하는 풍토를 만들 수도 있다. 한국보다 앞서 초고령사회를 맞은 일본의 건강증진법이 좋은 사례다. 이 법은 질병 치료 및 예방을 위한 적절한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시설에 대해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 이러한 지원은 비단 노년층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은 2028년이면 25조 원 규모의 적립금이 모두 고갈될 것으로 분석된다. 2032년엔 적자가 20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노인 인구가 많아지며 병원비가 가파르게 늘어나는 탓이다. 건강한 노인이 많아지는 것이 근본적으로 젊은 세대의 주머니를 지키는 방법인 셈이다. 일본에선 다키시마 할머니를 보고 감명을 받아 운동을 하는 중장년층도 적지 않다. 일본 주요 매체도 그에 대해 보도하며 운동법 등을 기사로 다룬다. 47세의 사토 미치코 씨는 다키시마 할머니의 책에서 “언제나 해바라기 같은 다키시마 씨의 미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직 할 수 있어!’ ‘도전해 보자!’ 하는 긍정적인 파워가 샘솟는다”고 했다. 헬스장이 노인들을 거부하면 이런 이들도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노인의 건강은 모두를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노실버존 헬스장’으로 대변되는 세대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도록 관계 기관의 고민이 필요하다. 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정부에서 운영하는 ‘대한민국 전자관보’ 홈페이지엔 국가가 국민에게 알려야만 하는 다양한 정보가 있다. 법과 시행령의 변화는 물론이고 고위공직자의 재산 변동과 국유재산의 처분 내용 등이 그것이다. 그중에는 ‘압수물 환부공고’라는 것도 있다. 21일 한 지방 검찰청 지청장의 명의로 발행된 압수물 환부공고는 절도 사건에서 압수된 카드 한 장을 찾아가라는 내용이다. 관보를 살펴보면 그런 소액 물품 공고들이 적지 않다. 카드 한 장이 대수일까 싶지만 국가가 국민의 재산권을 함부로 침해하면 안 된다는 건 헌법 정신이다. 그 때문에 카드 한 장의 행방조차 일일이 관보를 발행해 알리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일부 경찰관들의 윤리 의식을 의심케 하는 사건이 잇달아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서울 종로경찰서 소속 모 경위는 자신의 계좌로 공금 1억 원가량을 여러 차례 이체했다가 대기발령됐다. 이달 서울 강남경찰서와 용산경찰서에서는 압수물인 현금을 빼돌린 경찰관들이 발각됐다. 두 사건의 횡령액은 수억 원에 달했다. 어떤 돈은 피해자의 주머니에서 나왔을 것이고, 또 다른 돈은 국민의 세금이었을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이들의 계급은 하위 직급인 경장에서부터 간부로 분류되는 경위까지 다양하다. 급기야 경찰은 경찰청 차원에서 압수물 관리 실태를 전수 조사하겠다는 조치를 내놨다. 전수 조사 결과가 나오면 물밑에 감춰져 있던 경찰관의 범죄가 더 밝혀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경찰관이 압수물을 횡령하는 범죄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90년 서울에선 일선 파출소 순경이 220만 원을 횡령했다가 구속됐고, 2009년엔 경북에서 압수품인 석유를 빼다 2500만 원을 받고 판 경찰이 적발됐다. 제주에서는 약초술 4병을 빼돌린 경찰관이 2015년 검거됐다. 하지만 수억 원대의 압수품을 빼돌릴 정도로 간 큰 이들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일선 경찰관들이 이번 사건들을 보며 일부 동료의 직업의식에 황당함을 넘어 참담함을 느끼는 이유다. 한 경찰관은 “경찰이 민간인의 돈을 뜯어내고 마약 사건에 연루됐다는 필리핀 뉴스를 듣고 한심하다고 느꼈는데, 이번 사건들을 보니 우리 경찰의 수준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자조했다. 또 다른 경찰관은 “앞으로 경찰에서 어떤 새로운 유형의 비위가 터질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급증한 경찰 인력에서 이런 사건의 근본 원인을 찾는 시각도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5년 9만2000명이던 경찰관의 수는 2011년 처음 1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해엔 13만1700명으로 늘었다. 전투경찰(전경)과 의무경찰(의경) 제도 폐지 등에 따른 삭감 인력을 정규 경찰관으로 순차적 보충을 했기 때문이다. 2020년 52명이었던 비위로 퇴직한 경찰공무원은 지난해 65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사람이 많아지면 그 속에서 일탈을 저지르는 이들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경찰 인력 증가 역시 예정된 대로 진행된 정책이고, 그 부작용으로 경찰관들의 비위, 비리, 범죄 사례가 늘어나리란 것도 예측 가능했다. 그런데 경찰은 이에 대해 대책을 내놨던 적이 있는가. 경찰이 국민의 신뢰를 얻고 싶다면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20여 년 전 우리 때 문제 수준을 생각하고 접근하면 안 된다.” 경북의 한 남자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A 씨는 요즘 청소년 도박의 심각성에 대해 기자에게 토로했다. 20여 년 전에도 도박을 하던 청소년들은 있었다. 당시엔 동전을 이용한 도박인 ‘판치기’ 같은 것들이 교내에서 성행했다. 판돈은 기껏해야 몇 백 원 수준이었다. 당시엔 청소년 도박의 문제점을 거론하는 언론 보도도 드물었다. 청소년 도박을 문제라는 차원으로 한국 사회가 접근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한 사회 인식이 아이들의 변화에 무신경했기 때문일까. 20여 년이 흐른 지금, 교실은 완전히 바뀌었다. 동아일보 ‘온라인 도박, 교문을 넘다’ 기획보도(7월 26일자 A2면 참조)처럼 서울의 한 고교에선 당장 수능을 앞둔 3학년 학생의 10분의 1이 도박으로 적발된 사례도 있다. 이들 중엔 도박 자금으로 3600만 원까지 쓴 학생도 있었다. 등교한 뒤 휴대전화를 학교에 제출하더라도 ‘세컨드폰(두 번째 휴대전화)’으로 쉬는 시간에 도박을 하는 아이들도 흔하다고 한다. 10대들은 도박을 하는 수준을 넘어 조직적인 도박 사이트의 ‘총책’까지 맡았다. 2022년 12월 도박 사이트를 만든 B 군의 사례가 그렇다. 경남 함양군에 사는 B 군은 주변 친구들이 아니라 경남 창원시와 경기 고양시, 대구 등 전국 각지에 흩어진 이들과 도박 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했다. B 군은 공범을 모아 사이트 운영과 환전 등 체계적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이후 월급까지 줘 가며 도박 사이트를 운영했다. 이 도박 사이트는 주로 같은 미성년자들이 고객이었다. B 군 일당이 약 7개월 동안 현금을 도박용 게임머니로 바꿔준 금액만 1억5000만 원이 넘는다. 이런 도박 사이트를 만드는 데 3시간이면 된다고 한다. ‘10대 도박왕’이 이제는 흔한 사례다. 전문가들은 10대 도박 청소년들을 처벌하더라도 도박 확산을 막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소년원 같은 감옥이 교화를 위한 곳이라지만, 그 안에는 무수한 재범자들이 존재한다. 특히나 일선 학교에선 도박하는 학생을 발견하더라도 판돈이 크지 않으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의 장래 때문이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등 다양한 치료 상담 시스템이 존재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정작 학교 일선에선 “상담을 받게 하기가 쉽지 않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치료 상담을 거부할 경우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고교에선 “치료 상담을 받는 곳이 집에서 멀다”는 이유로 학부모가 거부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한 일선 교사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도박으로 적발되는 경우는 상당수가 다른 아이들에게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해 다툼이 일어날 때”라고 전했다. 노름빚을 낼 정도로 중독돼야 학교에서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청소년 도박 범정부 대응팀을 출범시키며 이 문제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하지만 당시 발표된 대책엔 상담 의무화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학교 현장의 의견을 조금 더 들어봤으면 어땠을까 한다.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김선구 전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 별세·전경숙 씨 남편상·형찬 클리어브룩 전무·정한 CJ ENM 전략지원담당 부사장 부친상, 우수아씨 시부상=20일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22일 오전 6시 02-3410-3153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이제는 껌보다 마약을 구하기 쉽다는 말까지 나온다.” 최근 한 수사기관 관계자는 기자를 만나 말했다. 통상 국제사회에선 인구 10만 명당 마약사범이 20명 이하일 때 이른바 ‘마약 청정국’이라고 표현한다. 한국은 2015년부터 이 기준을 넘어섰다. 그해 우리나라 마약사범은 1만1916명. 10만 명당 23명이었다. 지난해엔 2만7611명, 10만 명당 54명까지 치솟았다. 마약사범 중 상당수는 이른바 ‘드로퍼(Dropper·마약류 운반책)’라고 불리는 말단들이다. 마약 조직의 가장 아래에 있는 드로퍼들은 자신에게 마약을 배급해주는 윗선이 누군지도 제대로 모른 채 시키는 대로 마약을 배달한다. 동아일보 보도(8월 28일자 A1·12면 참조)처럼 텔레그램 메시지 몇 번이면 드로퍼가 될 수 있다. 지난해 검거된 마약사범은 2022년보다 50% 늘었다. 같은 기간 드로퍼 같은 말단 공급사범은 87% 늘었다. 드로퍼 중 대다수는 마약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이다. 이들에 대한 판결문을 보면 전과가 없는 경우도 많다. 주로 젊은이들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드로퍼가 된다. 드로퍼를 모집하는 ‘간부 드로퍼’들은 “하루에 100만 원을 벌 수 있다”는 식으로 사람들을 현혹한다. 실제로는 건당 3만∼5만 원 정도 받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다 경찰에 잡히면 징역 5∼7년의 중형이 선고된다. 드로퍼가 된 젊은이들 중 많은 수는 ‘더 큰 돈’을 좇아 본격적인 마약 유통에 뛰어든다. A 씨는 지난해 5월 인터넷에서 ‘고수익 아르바이트’를 찾다가 드로퍼가 됐다. 그는 이틀간 57회에 걸쳐 마약을 유통시킨 뒤 추가 범행을 저질렀다. A 씨는 자신에게 마약을 공급한 간부 드로퍼와 연락이 끊기자 스스로 필로폰을 팔기로 결심했다. 그러곤 지속적으로 마약 조직에 연락했다. A 씨는 같은 해 수사기관에 붙잡혔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젊은이들이 이렇게 하루에 수십 명씩 마약사범이 되고 있다. 개원 넉 달 차에 접어든 22대 국회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발의된 마약 관련 법안만 총 9개인데 본회의 통과된 것은 아직 한 건도 없다. 검찰은 마약조직 내부고발자에게 형벌을 감면해주는 ‘리니언시 제도’를 4월에 제안했지만 국회에서는 아직 별다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내 마약 문제가 얼마나 더 심각해져야 과연 국회가 움직일지 의문이다. 2년 전 모 국회의원은 국내 마약 적발 실태에 대해 “5년 새 불과 5배 늘어난 수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할 수준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지 묻고 싶다. 멕시코 마약왕 ‘엘 차포’ 호아킨 구스만은 10대 시절 동네에서 마리화나를 파는 일개 잡범에 불과했다. 그러나 국가의 방치와 무능 속에 구스만은 마약으로 부(富)를 쌓았고, 수차례 감옥을 탈옥하며 멕시코 정부를 농락했다. 자꾸 늘어가는 드로퍼의 숫자는 단순히 우리나라의 마약 공급망이 커졌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말단 드로퍼가 간부 드로퍼가 되고, 결국에는 마약 총책이 된다. 마약 카르텔 앞에 정부가 힘을 못 쓰는 사태가 꼭 남의 나라 일이라는 보장은 없다.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16일 찾은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 어린이집 인근 인도(人道)에는 다른 ‘자동차 진입억제용 말뚝(볼라드)’과 달리 새롭게 만들어진 볼라드 하나가 있었다. 새하얀 시멘트 위에 고정된 새 볼라드를 힘껏 밀어봤지만 미동도 없었다. 이 볼라드가 들어선 건 이달 5일 벌어진 사고 때문. 그날 가해 차량은 횡단보도와 인도 경계에 설치된 볼라드를 부순 뒤 인도를 따라 60여 m를 질주했다. 그 차량에 치여 인도를 걷던 1명이 다쳤고, 1명이 숨졌다. 지난달 1일 9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총 16명의 사상자를 낸 ‘시청역 참사’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이었다. 두 사건 모두 인도와 도로를 분리하는 최소한의 장애물이 있었지만 생명을 지키기에는 부족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용산 사건 때는 볼라드가, 시청역 참사 당시에는 가드레일(방호울타리)이 차량의 인도 진입을 막아내지 못했다. 인도와 도로를 구분 짓는 공간에 설치하는 장애물은 통상 횡단보도 앞에는 볼라드, 횡단보도가 없는 곳엔 가드레일이다. 그런데 돌진하는 차량에 모두 허망하게 뚫렸다. 도로를 걷는 것도 아니고, 인도를 걷는데도 불안하다는 사람들이 요즘 부쩍 늘어난 이유일 것이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인도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사상자 수만 1만2256명에 달한다는 경찰 통계도 불안감을 뒷받침한다. 비단 통계뿐만 아니다. 구조적 문제도 있었다. 두 장애물 모두 인도에 설치돼 있었지만 시민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용도는 아니었다. 볼라드의 경우 현행 보행안전법에 ‘속도가 낮은 자동차 충격에 견딜 수 있는 구조로 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허용이 되는 구체적 속도도 제시가 안 돼 있다. 시청역 참사 당시 사고 차량을 막아내지 못한 가드레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 가드레일은 보행자 보호용이 아니라 보행자가 무단횡단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만일 차량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그 가드레일이 만들어졌다면 시청역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건 가해자가 갑자기 속도를 낸 차량을 멈추려 가드레일을 박았다고 진술한 걸 그의 책임 회피용으로만 생각해서 될 일은 아니다. 물론 이렇게 설치된 것에도 이유는 있다. 볼라드의 경우 강한 재질로 만들면 시각 장애인들이 부딪혔을 때 다칠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로 적지 않은 시각 장애인들이 볼라드에 부딪혀 다친다고 한다. 가드레일의 경우 고속도로처럼 강도가 높은 것을 쓰게 되면 지나치게 커 도시 미관을 해치는 등의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그나마 가드레일의 경우 시청역 참사가 안긴 사회적 충격 때문인지 서울시가 나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볼라드의 경우 광화문광장에 강도 높은 볼라드를 만든다는 것 외엔 아직 별다른 대책이 나오지 않았다. 장애인 단체들의 우려 때문이라면 시각 장애인들을 위해 볼라드 주변에 점자판으로 볼라드의 존재를 알려주는 보완책이 이미 있다. 용산 사고가 벌어지고 열흘 뒤인 15일 서울 성북구에서도 차량이 인도로 걸어가던 행인을 쳐 2명이 다치는 아찔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날도 볼라드는 돌진하는 차를 막아서지 못했다. 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지난달 24일 총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화성시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은 난관에 직면했다. 희생자들은 불길에 휩싸인 공장 건물 2층에 몰려 있었다.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외벽이 무너져 내부 진입이 불가능했다. 수색은 2시간 41분간 중단됐다. 리튬을 먹고 타오르는 불은 물로 끄기 어려웠다. 불길은 장시간 잡히지 않았다. 사고 발생으로부터 12시간 가까이 지난 당일 오후 9시 55분에서야 비상 대응 단계는 2단계에서 1단계로 내려갔다. 그때도 여전히 마지막 실종자를 못 찾은 상태였다. 사고 당일 현장에는 정치인들이 줄이어 찾아왔다. 시작은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로 출마한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었다. 그는 화재 발생 시간(오전 10시 31분)으로부터 약 7시간 20분 지난 오후 5시 50분경 찾아와 “희생자가 많을 수 있다고 해서 아무 정보 없이 일단 달려왔다”고 했다. 1시간 반 뒤인 오후 8시 50분경에는 국민의힘 지도부가, 다시 30분 뒤에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찾아왔다. 오후 10시 40분에는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인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찾아와 약 30분 동안 현장에 머물렀다. 정치인들은 카메라 앞에서 소방 당국으로부터 상황을 보고받았고, 그 장면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런 풍경이 반복됐다. 이들은 정치가 상처받은 국민의 곁에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누군가는 위로를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는 여전히 마지막 실종자를 못 찾은 시점이었다. 정치인들이 재난 현장에 오면 안내, 의전, 브리핑, 그리고 그들이 돌아가는 길에 해야 하는 배웅까지 현장 인력이 동원된다. 소방관의 본업은 사람을 살리고 화재를 진압하는 것이지 의전과 보고가 아니다. 물론 이를 해야 할 상황도 있지만, 최소한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그 순간에는 아니다. 실시간 화상 회의, 영상 통화까지 가능한 요즘에 정치인들이 현장에 나타나 보고를 받는 게 정말 필요했을까. 조금만 더 신중했다면 최소한 현장 수습이 끝난 뒤에, 소방관들이 숨이라도 돌릴 수 있었을 때 찾아왔어야 했다. 그래야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 방안도 논의할 수 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정치권에서는 “정치인들이 직접 산소통 메고 들어가 구조 활동 할 계획이 아니라면 현장 방문은 자제해야 한다”는 자성론이 나왔다. 대형 재난 때마다 반복되는 정치인들의 현장 방문 이벤트는 인명 구조와 사고 수습에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 소방 당국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나온다. 2021년 경기 이천시 쿠팡물류센터 화재 때 1명이 숨졌다. 당시 소방 당국 익명 게시판에는 “정치인이 방문하면 의전과 사진 촬영 등으로 수습 활동에 방해가 된다”고 직격하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방문을 최소화해 주시고 소방 공무원이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도 호소했다. 그나마 몇몇 고위 인사들은 이런 사례들을 기억했는지 이번에는 사고 당일을 피해 방문했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소방관들은 본업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의 방문이 뜸해진 사고 하루 뒤(지난달 25일) 오전 11시 52분, 소방관들은 마지막 실종자 시신을 수습했다. 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수사기관에 보장된 강제수사 수단인 ‘압수수색’은 대다수의 시민에겐 드라마나 언론 기사에서나 등장하는 단어다. 하지만 수사받는 사람의 입장에선 언제 현실이 될지 모를 일이다. 전직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검사들이 최근 내놓은 책은 그러한 상황에 놓였을 때 행사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어 눈여겨 볼 만하다. 허윤 전 공수처 검사(48·변호사시험 1회) 등이 10일 출간한 ‘쫄지마! 압수수색’(좋은땅)에는 압수수색을 받는 당사자의 권리와 의무를 상황별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이 책은 대통령실과 국회, 선관위, 검찰, 정부기관, 교육청, 선거사무소, 기업 본사 등 일반인은 출입조차 어려운 주요 시설을 모두 압수수색 해 본 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현장에서 겪은 상황을 토대로 쓴 압수수색 해설서다. △압수수색이 들어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영장은 어떻게 보는지 △카카오톡 메시지는 복원이 되는지 △압수된 서류를 돌려받을 수 있는지 △휴대전화 압수수색은 무엇을 하는 것이고 비밀번호를 알려줘야 하는지 △디지털 포렌식은 어떤 것이고 선별절차는 무엇인지 등이 담겨 있다. 다만 이 책은 압수수색을 피하는 요령을 알려 주는 게 아니다. 수사기관이 적법한 방법으로 강제력을 동원해 수사하는 것을 피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