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교전 3주년]“영웅들이여, 이렇게 늦게 와 미안하다”

  • 입력 2005년 6월 25일 03시 02분


코멘트
2002년 서해교전 당시 전사한 해군 장병 6명을 위한 첫 해상위령제가 24일 오후 인천 옹진군 연평도 서남방 20마일 해상의 을지문덕함에서 열렸다. 한 유족이 국화를 바다에 던지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을지문덕함=변영욱 기자
2002년 서해교전 당시 전사한 해군 장병 6명을 위한 첫 해상위령제가 24일 오후 인천 옹진군 연평도 서남방 20마일 해상의 을지문덕함에서 열렸다. 한 유족이 국화를 바다에 던지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을지문덕함=변영욱 기자
29일은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에 맞서 싸우다 꽃다운 나이의 우리 해군 장병 6명이 서해에서 산화한 지 3년이 되는 날이다.

해군은 당시 교전 중 장렬히 전사한 여섯 용사를 추모하기 위한 해상위령제를 6·25전쟁 55주년 하루 전날인 24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처음 열어 고인들의 넋을 달랬다. 위령제는 서해교전이 벌어진 날의 음력 기일(5월 18일)에 맞춘 것으로 장례 절차 중 탈상(脫喪)의 의미를 갖는다.

“당신들의 고귀한 희생은 우리 가슴에 영원히 아로새겨져 있을 것입니다.”

이날 오후 2시경 연평도에서 서남쪽으로 20마일 떨어진 해상에서 3000t 급 해군 구축함인 을지문덕함이 멈춰 섰다. 이 해역은 서해교전 당시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진 윤영하(尹永夏·해사 50기) 소령 등 6명의 장병이 타고 있던 고속정 ‘참수리 357호’가 북한 함정과 교전한 곳.

해군 제2전투단장인 임한규(51·해사 31기) 준장이 위령 제문을 읽어내려 가는 동안 깊은 한숨을 내쉬던 윤 소령의 아버지 윤두호(63·해사 18기) 씨 등 유족 14명은 묵념에 이어 해상 헌화가 시작되자 모두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전사자 6명의 어머니들은 바다에 국화를 흩뿌린 뒤 “아들아, 이 어미는 어떻게 살라고 먼저 갔느냐”며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유족들은 이날 국가를 위해 싸우다 숨진 장병들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과 냉대에 대해 그동안 참았던 서운함을 토로했다.

고 한상국 중사의 아버지 한진복(62) 씨는 “오죽하면 며느리가 한국이 싫다며 미국으로 떠났겠느냐”며 “3년이 지나서야 장병들이 숨진 바다에서 위령제를 여는 이 나라가 도대체 제대로 된 나라인지 의심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전 때의 부상으로 오른쪽 다리를 잃은 이희완(李凞玩·29·해사 54기) 대위는 “나라를 지키다 의롭게 숨진 6명의 영웅들이 국민의 기억에서 너무 쉽게 잊혀지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이 대위는 지난해 10월 결혼한 뒤 현재 서울대 심리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위탁교육 중이다.

유족들은 위령제에 앞서 전사자 6명의 위패가 봉안된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 영내 법당에서 천도(薦度)법회를 올렸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나 정치인은 단 1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서해교전

한일월드컵축구대회가 열리던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 25분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에서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의 선제공격으로 일어났다. 25분간의 교전에서 윤영하 소령, 한상국 조천형 황도현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6명이 전사했다.

을지문덕함(연평도 해상)=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그때 아저씨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편히 살아요”

‘6·25전쟁은 이야기만 들어도 끔찍한데 직접 겪으신 여러분은 얼마나 끔찍했나요. 여러분 덕분에 저희가 이렇게 편히 살 수 있어요. 저희가 열심히 기도 드릴게요.’(신현초교 6년 우미나)

‘기념관에 와 보니 우리나라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여러분의 참뜻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중에 전쟁이 나면 그때 아저씨들처럼 전쟁에 참가해 열심히 싸울게요.’(당산중 1년 이동훈)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6·25전쟁 55주년을 맞아 ‘국내외 참전용사와 군인들에게 편지쓰기’ 행사가 열렸다.

21세기평화재단과 ‘사단법인 H2O 청소년사랑 품앗이 봉사단’ 주최로 열린 ‘제2회 평화사랑 품앗이 한마당, 생큐 브러더스’ 행사에는 전국 초중고교생 등 2만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학생들은 전쟁기념관을 둘러보고 ‘평화’ ‘6·25전쟁’ ‘통일’ ‘참전용사’의 4개 주제 중 하나를 골라 색종이로 표현하는 행사도 벌였다.

‘통일’을 주제로 골랐다는 안소정(11·서울대사범대부설초교 5년) 양은 “전쟁할 때 나누어졌던 남북이 태극무늬처럼 합쳐졌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태극기를 꾸몄다”고 말했다.

또 이 행사에는 6·25전쟁에 참전했던 21개국 250여 명의 용사가 참가해 자리를 빛냈다. 1950년 인천상륙작전에 해병대원으로 참전했다는 찰스 버진(80·미국) 씨는 “전쟁 당시 허허벌판에 가난했던 한국이 지금 높게 솟은 빌딩과 많은 차들로 활기찬 모습을 보니 정말 기쁘다”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편지쓰기 행사는 9월까지 계속된다. 수상자 22명은 1년 동안 참전국 22개 나라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게 되며 편지는 10월 각국에 전달할 예정이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