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찬식 칼럼]학교 정보가 궁금한 이유

  • 입력 2005년 2월 18일 17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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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제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것은 학교가 베일에 가려 있는 탓이 크다. 한국의 학부모는 학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다.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는 내 아이가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모른 채 학교에 보내고 있다. 성적표가 폐지됐기 때문이다. 이런 교육은 흔히 ‘인성(人性)교육’이라는 표현으로 치장되기도 하지만 이 말처럼 모호한 단어도 없다. 학교가 공부를 소홀히 가르친다 해도 인성교육이라고 우기면 그만이다.

학부모가 원하는 학교정보는 다양할 것이다. 집단따돌림이나 학교폭력을 우려하는 학부모는 소속 학교의 학교폭력 현황 같은 정보를 알고 싶어 한다. 교사의 자질이 궁금한 학부모는 교사의 수, 평균 연령, 경력 같은 정보가 필요하다. 내 아이를 맡고 있는 교사가 전교조 소속인지, 교총 소속인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한국 학교는 안개 속의 城▼

가장 알고 싶은 정보는 학업성취도에 대한 정보일 것이다. 서울 강남 8학군 안에서도 학력 격차가 있다는데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전국에서 어떤 수준에 올라 있는지, 대학진학 실적은 구체적으로 어떤지 알아야 자녀의 장래를 도와줄 수 있다. 학부모들은 동네 소문을 통해 대충 짐작하고 있을 정도이지 자세한 내용은 파악할 길이 없다. 교육당국이나 학교가 정보를 제공해주지도 않고 그럴 의사도 없는 탓이다.

교육당국은 학력격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 평준화정책이 깨진다고 여기고 있다. 학력격차의 인정은 곧 평준화에 대한 부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학교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보를 내놓을 리 없다. 정보를 차단당한 학부모들에게 학교는 안개에 둘러싸인 견고한 성(城) 같은 존재다.

이런 공급자 지배 체제의 폐해는 심각하다. 학교는 오랜 나태에 빠져 있다. 평준화지역에서 각 학교의 학업성취도 평가와 대학진학 실적이 공개되면 부진한 학교의 학부모들은 불만을 터뜨리고 대책을 촉구하게 될 것이다. 학교는 긴장하게 되고 학생들을 잘 가르치려고 흉내라도 내지 않을 수 없다.

답안지조작 사건 같은 ‘내신 사기(詐欺)’는 학교가 ‘그들만의 성’에 안주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 일이다. 2008년도 대학입시부터 내신 위주로 전형이 이뤄진다는데 앞으로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겁이 난다.

정보 공개는 평등교육을 위해 더 절실하다. 서울 안에서도 학력격차는 크다. 지방도시보다도 떨어지는 구(區)가 상당수라고 한다. 서울대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간 강남구는 고교 졸업생 1000명당 평균 27명을 서울대에 입학시켰으나 서울의 어떤 구는 3명을 입학시키는 데 그쳤다. 대개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이런 지역에는 유능한 교사를 우선 배치하고 교육예산을 늘리는 특단의 방법을 써야 한다.

하지만 교육당국은 학력격차 실태를 대단한 국가기밀인양 끌어안고 공개를 거부하고 있으니 스스로 문제해결을 막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정보의 공개가 비교육적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정보 없이는 개선도 없다▼

읽고 쓰고 셈하기조차 못하는 학력미달 학생은 저소득층과 이혼 가정에 많다. 이들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더 뒤처지기 전에 보살펴 주는 게 국가와 학교가 할 일이다. 일부 교육단체는 기초적인 학력평가조차 반대하고 있으니 ‘빈곤의 세습’을 그대로 내버려두자는 건지 납득하기 어렵다.

학교 정보는 납세자인 학부모의 알 권리 차원에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개되고 있다. 엘리트교육을 위해서도, 평등교육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대로 정보가 봉쇄되는 한 교육상황은 개선될 수 없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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