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4는 필수?…해마다 재수생 강세

  • 입력 2003년 12월 2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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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서울 경복고의 텅빈 교실에서 자신의 성적통지표를 보며 휴대전화로 총점을 계산하는 한 수험생의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박영대기자
2일 서울 경복고의 텅빈 교실에서 자신의 성적통지표를 보며 휴대전화로 총점을 계산하는 한 수험생의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박영대기자
《200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발표된 2일 전국의 고3 교실은 당혹감에 휩싸였다. 일선 고교 진학담당 교사들은 재수생들의 강세로 원점수의 전체 평균이 지난해보다 올랐으나 고교 3학년 학생들이 체감하는 성적은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낮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진학담당 교사들 역시 상위권이 줄고 중위권이 더욱 두꺼워져 어느 때보다 눈치작전이 심해질 것이라며 막막해 했다. 일부 교사와 재학생들은 이번에도 ‘재학생 퇴조, 재수생 강세’ 현상이 뚜렷하다는 발표에 “정부가 수능을 재수생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 ‘고4학년’을 조장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수하겠다=서울 이화여고 3학년 이모양(18)은 “이미 재수를 결심했는데 성적표를 받고 나니 더 마음이 확고해졌다”고 말했다.

서울 배화여고 3학년 김모양(18)도 “수능 다음날 재수생들이 뉴스에서 쉬웠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이미 재수를 결심한 상태”라며 “주변에 벌써 재수학원에 등록해 다니는 친구들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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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복고 3학년 담임 박송(朴松) 교사는 “학생들이 재수생과 함께 모의고사를 치른 적이 2번밖에 없기 때문에 체감으로 느끼는 변환점수 하락폭이 클 것”이라며 “반 학생들 중 3분의 1 정도가 재수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어고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 수험생들도 침울한 분위기였다.

서울 한영외고 3학년 김모양(18)은 “모의고사 때보다 20점이나 떨어졌다”며 “나처럼 모의고사보다 수능을 못 본 친구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중복 정답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언어영역 17번 문제에 대한 불만도 이어졌다.

배화여고 3학년 권모양(18)은 “언어영역 17번에서 3번으로 써서 맞았는데 5번도 맞게 해 줘서 딴 애들이 다 올라갔다”며 “중위권에서는 1, 2점 차가 중요한데 이 때문에 지원한 대학에서 떨어지면 무조건 항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수생들 반응=이날 성적표를 받으러 모교를 찾은 재수생들은 상대적으로 표정이 밝았다.

올해 초 서울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재수한 김모양(19)은 “성적이 200점 후반대로 지난해보다 20점 정도 올랐다”며 “재수를 선택한 게 적중했다”고 기뻐했다.

재수생 현모군(19)은 “과학탐구와 언어영역이 어려워 모의고사보다는 약간 떨어졌지만 작년보다 40점 올라 1등급이 나왔다”며 “목표 학과를 여러 개 세워두고 학원에서 구체적인 진학상담을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입학원들은 재수생 강세라는 분석에 다소 의아해 했다.

대성학원 이영덕(李永德) 평가실장은 “재수생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평균 점수는 상승했으나 과학탐구 영역이 어려워 상위 그룹에서 고득점자는 오히려 줄었다”고 말했다.

정일학원 신영(申榮) 평가이사는 “재수생들은 지난해 40, 50점씩 상승했는데 올해는 20, 30점 오른 수준”이라며 “내년에는 입시제도가 바뀌어 재수생들이 많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막막해진 진학 지도=일선 고교들은 중위권 수험생이 많아져 진학 지도에 고심하고 있다.

서울 배화여고 이철희(李哲熙) 진학지도부장은 “250점대 안팎의 중위권이 반별로 10% 이상 늘어났다”며 “학생들에게 입시요강과 내신성적 등을 꼼꼼히 따져 진로를 결정하도록 지도하고 있으나 비슷한 점수대에 많은 학생들이 몰려 있다”고 말했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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