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경찰청장님께 올리는 글

  • 입력 2003년 10월 30일 14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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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국립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봉직하고 있는 송수권 시인(교수)입니다. 저의 아내는 몇 개 월째 백혈병으로 입원하여 AB형 피를 수혈하며 살고 있습니다.

동대문 경찰서 방범 순찰대 (의경) 중대장님께 감사합니다.

종암경찰서 중대장님 감사합니다.

성북경찰서 중대장님 감사합니다.

저의 아내는 몇 개월 째 서울대병원을 거쳐 지금은 여의도 성모병원 1205호실 1번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백혈병으로 AB형 피를 받아먹으며 지금껏 연명하고 있습니다. AB형 피를 수혈해주신 동대문 경찰서 손승홍, 임춘추, 양상렬, 최원석, 김은광, 권경민 의경님께 백골난망, 이렇게 엎드려 큰절 올립니다. 종암경찰서 김민수, 문종민 이강산, 최의규, 김희동, 전인성 의경님들께 큰절 올립니다. 성북 경찰서 의경 선현철, 김준석, 김두영, 최진영, 이진욱, 양승욱 의경님께도 삼가 큰절 올립니다.

지난 추석연휴절엔 저의 아내는 AB형 혈소판의 피를 수혈하지 못해 내출혈로 온몸에 피멍울 반점으로 얼룩져 누워 있었습니다. 저도 아내도 주기도문을 외우며 위기를 넘겼습니다.

저의 아내 이름은 김연엽(金蓮葉)-어여쁜 연잎새 같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침상의 시트 밖으로 흘러나온 아내의 맨발바닥을 빨며 다음과 같은 통곡을 했습니다.

그녀의 피 순결하던 열 몇 살 때 있었다

한 이불 속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때 있었다

연(蓮) 잎새 같은 발바닥에 간지럼 먹이며

철없이 놀던 때 있었다

그녀 발바닥을 핥고 싶어 먼저 간지럼 먹이면

간지럼 타는 나무처럼 깔깔거려

끝내 발바닥은 핥지 못하고 간지럼만 타던

때 있었다.

이제 그 짓도 그만두자하여 그만두고

나이 쉰 셋

정정한 자작나무, 백혈병을 몸을 부리고

여의도 성모병원 1205호실

1번 침대에 누워

그녀는 깊이 잠들었다

혈소판이 깨지고 면역체계가 무너져 몇 개월 째

마스크를 쓴 채, 남의 피로 연명하며 살아간다

나는 어느 날 밤

그녀의 발이 침상 밖으로 흘러나온 것을 보았다

그때처럼 놀라 간지럼을 먹였던 것인데

발바닥은 움쩍도 않는다.

발아 발아 까치마늘 같던 발아!

蓮잎새 맑은 이슬에 씻긴 발아

지금은 진흙밭 삭은 잎새 다 된 발아!

말굽쇠 같은 발, 무쇠솥 같은 발아

잠든 네 발바닥을 핥으며 이 밤은

캄캄한 뻘밭을 내가 헤매며 운다.

그 蓮잎새 속에서 숨은 민달팽이처럼

너의 피를 먹고 자란 詩人, 더는 늙어서

피 한 방울 줄 수도 없는 빈 껍데기 언어로

부질없는 詩를 쓰는 구나

오, 하느님

이 덧없는 말의 교예

짐승의 피!

거두어 가소서.

-연엽(蓮葉)에게

저의 아내 연잎새 같은 이 여자는, 똥장군을 져서 저를 시인 만들고 교수를 만들어낸 여인입니다. 수박구덩이에 똥장군을 지고 날라서 저는 수박밭을 지키고 아내는 여름 해수욕장이 있는 30리 길을 걸어서 그 수박을 이고 날라 그 수박 팔아 시인을 만들었습니다. 그런가 했더니 보험회사 28년을 빌붙어 하늘에 별 따기 보다 어렵다는 교수까지 만들어 냈습니다. 박사학위는커녕 석사학위도 없이 전문학교 (서라벌 예술대학 문창과)만 나온 저를 오로지 詩만 쓰게 하여 교수 만들고 자기는 쓰러졌습니다. 첫 월급을 받아놓고 <.......시 쓰면 돈이 나와요, 밥이 나와요, 라고 평생 타박했더니 시도 밥 먹여 줄 때가 있군요!>라고 울었습니다. 특별전형을 거쳐 발령통지서를 받고 <여보! 학위 없는 시인으로 국립 대학교 교수가 된 사람은 저밖에 없다는군요. 해방 후 시 써서 국립대학교 교수가 된 1호 시인이라고 남들이 그러는군요!>라고 감격해 하더니, <그게, 어찌 나의 공이예요, 당신 노력 때문이지.......총장님께 인사나 잘해요.>라고 말했습니다. (허상만 총장님, 농림부 장관으로 가셨는데, 축하전보도 못 드려 죄송합니다. 불초소생 용서하십시오.)

그러고는 자기는 이렇게 할 일 다 했다는 듯이 쓰러졌습니다. 친구나 친척들에게서 '골수 이식'을 받아야 한다고 말해도 <.......2년 후면 송시인도 정년퇴직인데, 송시인 거러지 되는 꼴 어떻게 봐요, 그게 1억이 넘는다는데.......>라고 생떼를 씁니다.

지난 주 금요일이었습니다. 병간호를 하고 있는 시집간 딸 은경이의 친구가 2003년 9월 고등학교 1학년 학력평가 문제지 (수능 대비 전국 모의고사)를 들고 왔습니다. 언어영역 문제지에는 저의 詩《山門에 기대어》가 출제되어 있었습니다. 은경이의 친구가 자랑처럼 말하자 아내는 <너는 이제 알았니? 은경이 아빠의 詩, '지리산 뻐꾹새'와 '여승'도 진작 수능시험에 출제되어 나갔어야!>라고 설명해 주고는 눈물을 보였습니다. <난 이제 죽어도 한은 없단다> 라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것을 자기의 공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혜가 큰 것이라고 모든 공을 주님께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몹쓸 '짐승의 피'를 타고난 저는 저의 아내가 어떻게 살아온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압니다. 청장님께 말씀드리지만 저의 아내가 죽으면 저는 다시는 시를 쓰지 않겠습니다. 시란 피 한방울보다 값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AB형! 그 의경들이 달려와서 주고 간 피! 그것이 언어로 하는 말장난보다 '진실'이라는 것-그 진실이란 언어 이상이라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강의가 끝나고 내일 다시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저의 집필실 마당; 감나무에 올라가 가을볕에 물든 단감을 따고 있습니다. 햇과일이 나오면 그렇게도 아내가 좋아했던 단감입니다. 아내와 함께 다음에 집을 한 채 사면 감나무부터 심자했는데, 이렇게 비록 남의 집 감나무이긴 하지만 감이 익었기 때문입니다.

이 단감처럼 붉은 피가 아내의 혈소판에서 생성되어 AB형 피를 앞으로는 빌어먹지 말았으면 싶습니다. 골수이식까지는 아직도 피가 필요한데 하느님도 정말 무심하십니다. 이 짐승스러운 시인의 피를 저당잡고 죽게 할 일이지, 왜 하필 아내입니까? 저에겐 죄가 많지만 순결한 아내의 피가 왜 필요하답니까?

저를 살려두고 만일에 아내가 죽는다면 저는 다시는 부질없는 詩를 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때도 시를 쓴다면 저는 도끼로 저의 손가락을 찍어버리겠다고 아내의 병상 밑에서 이를 악뭅니다.

청장님, 귀 산하의 동대문 경찰서장님, 종암 경찰서장님, 성북 경찰서장님 그리고 소속 중대장님, AB형 피를 주신 18명의 의경님께 진심으로 은혜의 감사를 드리면서 이 글을 올립니다. 내내 평안과 함께 건투를 빕니다.

2003년 10월 2일

국립순천대학교 교수 송수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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