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감염 하루에 1.4명 꼴” 보건원 전담직원 고작 2명

  • 입력 2003년 10월 23일 18시 38분


코멘트
여고생 K양(17)은 올해 초 미팅에서 만난 고교생 L군(18)과 5개월 정도 사귀다 성관계를 가졌다. K양은 단체헌혈을 하면서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알았다.

K양은 “절대 아무 일도 없었다”며 성관계 사실을 부인했으나 보건당국이 설득해 추적하니 L군이 있었다. L군도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처럼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되고도 그 사실을 모른 채 지내는 ‘미확인 감염자’가 주변에 많이 있다.

또 에이즈에 감염된 부모가 자녀를 낳았고 그 자녀도 에이즈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지는 등 에이즈 공포가 엄습하고 있지만 보건당국의 대책은 여전히 제자리다.

▽실태=국내에서 에이즈 감염자는 하루 평균 1.4명꼴로 늘고 있다. 1985년 이후 올 9월 말까지 2405명이 새로 에이즈에 감염됐다. 연도별로는 2000년 219명, 2001년 328명, 2002년 399명으로 매년 늘고 있다. 올해는 9월 말까지 398명이 새로 감염됐다.

김홍신(金洪信·한나라당) 의원은 “100명의 신규 감염자가 발생하는 데 1980년대에는 5년이 걸렸으나 지금은 4개월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감염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전체 감염자의 89.3%는 남성이다. 감염 요인으로는 절대 다수인 97.5%가 성(性)접촉에 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1.3%는 수혈로 인해 감염됐다.

▽방치된 에이즈 관리=에이즈에 감염돼도 3, 4주가 지나지 않으면 바이러스 항체가 형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시기엔 검사를 해도 양성판정이 나오지 않아 초기 대응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에이즈 검사방법을 지금의 효소면역검사법에서 첨단 기법인 핵산증폭검사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확인 감염자의 방치도 문제다.

한국에이즈퇴치연맹 권관우(權寬祐) 사무총장은 “자신도 모르게 에이즈에 감염됨으로써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감염자가 수두룩하다”며 “에이즈 관리는 미확인 감염자에 대한 대책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확인 감염자는 통계에 잡힌 감염자의 10배 이상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산한다. 전국적으로 2만여명이 자신도 모르게 에이즈에 감염돼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정부 부처에 에이즈를 전담하는 부서가 없는 데다 전문 인력도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현재 국립보건원에는 에이즈와 성병, 결핵 업무까지 묶어 처리하는 직원이 2명뿐이다.

반면 미국 홍콩 싱가포르 등은 정부에 에이즈 전담부서를 두고 치료와 예방을 하고 있다. 특히 홍콩은 에이즈기금관리위원회까지 가동하면서 에이즈 퇴치에 재정적인 뒷받침을 하고 있다.

한국의 에이즈 예방사업 예산은 올해 35억원이지만 미국은 1조6680억원, 캐나다 5066억원, 일본 1783억원에 이른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 이상은 팀장은 “당장 에이즈 환자들이 갈 곳이 없다”며 “에이즈 전문병원이 한 곳도 없는 것은 사실상 방치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36곳의 종합병원급 진료기관을 에이즈전문 진료기관으로 지정하고 있으나 이 가운데 7곳은 지금까지 단 1건의 에이즈 진료실적도 없는 등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