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김종철/‘천성산 보존’ 메아리 안들리나

  • 입력 2003년 10월 3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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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천성산 내원사의 비구니 지율 스님을 찾아뵈러 간 것은 지난겨울에서 봄 사이 부산시청 앞에서 38일간이나 계속되었던 스님의 단식이 끝난 며칠 뒤였다. 별로 나들이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꼭 스님을 한번 뵙고자 했던 것은 그다지 잘 알려지지도 않은 산 하나를 살리는 데 목숨을 걸 수 있는 분이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게 너무도 신기했고 그래서 그분이 과연 어떤 분인지 몹시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작 만나 뵈니 스님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작고 가냘픈 몸매를 가진 분이었다. 나는 대체 이분의 어디에서 그토록 강인한 기운이 나왔는지 궁금했다. 스님은 웃으실 뿐 말이 없었지만 스님이 기거하고 계신 방안을 한번 둘러보는 것으로써 내 궁금증은 쉽게 해소될 수 있었다.

방의 한쪽 벽면은 생태학에 관한 기초적 텍스트부터 천성산에 서식하는 다양한 생물들에 관한 정보, 고속철도에 관련된 기사들의 스크랩, 그리고 환경 관련 법령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와 책자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이 모든 자료를 스님은 지난 몇 년간 거의 혼자 힘으로 수집 분류 분석 학습하면서 천성산에 관한 한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확실하고 완벽한 지식을 얻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방의 한쪽 편에는 스티로폼을 이용해 놀랄 만큼 정교하게 만든 천성산의 모형이 놓여 있었다. 스님은 그것을 만드는 데 꼬박 열흘이 걸렸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스님이 산에 대해 말할 수 없이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특히 스님이 산과 계곡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깃들어 사는 것들, 나비 소쩍새 도롱뇽 및 풀 나무 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 그 얼굴이 형언할 수 없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을 보면 이제 스님과 천성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이 돼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얼굴은 고속철도 공사를 빌미로 천성산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터널을 뚫겠다고 태연하게 결정을 내리는 이 세상의 ‘힘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와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던 것이다.

나는 한때 건강이 몹시 좋지 않았을 때, 몸이 허약해지는 것과 함께 감각이 예민해지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때 산길이나 들길로 산책을 나섰다가도 어떤 순간 내 발걸음 밑에서 저 풀과 벌레가 밟혀 죽을 수 있고 신음소리를 낼 수 있다는 강렬한 느낌이 올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율 스님을 처음 뵌 자리에서 예전에 혹시 몹시 앓은 적이 있는지 여쭈어보았다.

그러나 스님의 산에 대한 애정은 그런 경험보다는 근원적인 모성에서 오는 게 분명했다. 스님은 지난 몇 해 동안 수없이 산을 오르내리면서 생태학적으로도 드문 보고라고 할 수 있는 천성산의 밑바닥으로 터널이 뚫리고 그리하여 지하수맥이 교란되면서 끝내 이 아름다운 산이 황량한 불모지로 변하게 될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홀로 산길에 주저앉아서 빈번히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지방의 작은 산 하나가 깨지는 일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 언론과 대학을 포함한 이 사회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은 고속철도 천성산 관통 문제에 대해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지율 스님은 여름 내내 부산시청 앞 노천에서 매일 삼천배를 올렸고 9월 26일부터는 비구니, 원불교 교무, 가톨릭 수녀님들 40명과 함께 부산역에서 천성산까지 삼보일배를 단행하였다. 10월 3일 천성산 화엄벌에서 삼보일배가 끝나면 지율 스님은 다시 무기한 단식에 돌입할 예정이다.

당초 고속철 노선 변경을 약속했던 정부가 스스로의 언약을 방기하고 기존 계획대로 공사를 강행할 것임을 선언함으로써 다시 한번 ‘참여정부’는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한다는 논리, 그리하여 인간다운 삶의 윤리적 생태적 토대를 서슴없이 파괴하는 군사 개발독재 시대와 본질적으로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자멸적 개발논리의 포로가 되어 있음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김종철 영남대 교수·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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