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자금 정치권유입 파장]야당탄압 시비우려

  • 입력 2000년 10월 4일 05시 04분


‘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사건’은 98년의 이른바 세풍(稅風) 사건과는 차원이 다르다.

세풍사건은 여당의 부탁을 받은 국체청 차장 ‘개인’이 국세청의 위세를 이용해 선거자금을 모금한 사건인 반면 이번 사건은 국가 정보기관이 직접 정치자금 조성과 조달창구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 자금 규모도 세풍사건은 160여억원대인 반면 이 사건은 두 배가 훨씬 넘는 규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은 5월 경부고속철도 차량선정 로비의혹 사건을 수사하면서 중요한 단서를 잡았다. 로비의 주역인 최만석씨가 93년 이후 당시 여당의 실세로 국회 국방위원장인 황명수(黃明秀)전의원을 상대로 집중 로비를 했다고 호기춘(扈基瑃·여·구속중)씨가 진술한 것이다.

검찰은 이에 따라 황 전의원의 자금을 추적하다 그의 비밀계좌를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계좌에는 최씨가 황 전의원에게 건넨 거액의 돈 이외에 출처가 불분명한 또 다른 거액이 함께 들어 있었다.

검찰은 법원의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이 ‘물줄기’를 따라 올라갔다. 이 돈은 수차례의 정교한 돈세탁 과정을 거쳐 안기부라는 거대한 ‘저수지’로 통했다. 일단 ‘저수지’에 도달한 검찰은 이 ‘저수지’에 고여있던 수백억원이 다시 몇 개 금융기관에서 돈세탁 과정을 거쳐 작은 ‘물줄기’를 이루며 96년 제15대 총선 직전 신한국당 후보자들에게 흘러간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현재 계좌추적은 거의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즉 관련자 소환 조사만 남은 상태다. 검찰은 곧 안기부 관련자들과 자금세탁에 동원된 금융계 관계자들을 소환해 자금 조성 및 전달 경위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문제는 정치권에 대한 전면 수사에 들어가느냐의 여부. 정치자금 조성 또는 수수의 불법성 여부를 가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매우 신중한 입장이다. 당시 돈을 전달받은 후보자중 상당수가 현재 야당인 한나라당의 현역의원 신분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도 당시 신한국당 선거대책위 의장이었다. 따라서 정치권에 대한 검찰 수사는 ‘야당탄압’ ‘편파 보복수사’ 시비를 일으킬 수도 있다. 또 여야 영수회담이 추진중인 상태여서 검찰의 입장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사실관계’도 불투명한 대목이 있다. 당시 신한국당 후보자들이 안기부 자금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돈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또 이총재는 당시 당의 ‘살림’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검찰 수사는 아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수형·신석호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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