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초대석]“광물 개발 본격 나선 가나, 韓 아프리카 중점 협력국 되길 기대”

  • 동아일보

주한 가나대사 된 가나 이민 1.5세 최고조 대사
“韓 경제·기술·ODA, 가나서 높게 평가… 대통령 공식 의전차도 한국산
가나, 광물 자원 강국으로 성장하려 노력
韓과 가나 모두 ‘어머니’ 같은 존재… 韓 젊은 층, 아프리카 관심 갖길”

가나 이민 1.5세로 올해 10월 한국에 부임한 최고조 주한 가나대사는 12일 서울 용산구 주한 가나대사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은 태어나게 해준 어머니, 가나는 멋지게 성장하게 해준 어머니”라고 강조했다. 아프리카 국가에서 한국계 대사가 나온 건 처음이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가나 이민 1.5세로 올해 10월 한국에 부임한 최고조 주한 가나대사는 12일 서울 용산구 주한 가나대사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은 태어나게 해준 어머니, 가나는 멋지게 성장하게 해준 어머니”라고 강조했다. 아프리카 국가에서 한국계 대사가 나온 건 처음이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아프리카 사람이 아니시네요?”

최근 부임한 최고조(Kojo Choi·한국명 최승업·48) 주한 가나대사가 자주 듣는 말이다.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아프리카 국가의 대사가 돼 33년 만에 ‘자신이 태어난 나라’로 돌아왔다. 이처럼 독특한 이력 덕분에 각종 행사에서 ‘화제의 인물’이 된다. 성 김 전 주한 미국대사와 제임스 최 전 주한 호주대사처럼 한국인들이 과거 이민을 많이 갔던 나라의 한국계 주한 대사와도 인생 여정이 사뭇 다르다.

1992년 1월 중학교 2학년을 마친 직후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가나로 이민 간 최 대사는 현지에서 중고교와 대학(가나국립대 경영학부)을 졸업했다. 청소년 시절부터 현지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고, 정서적으로도 깊은 교감을 나눴다. 그는 평소 “나에겐 두 어머니가 있다. 한국은 나를 태어나게 해준 어머니, 가나는 내가 멋지게 성장하게 해준 어머니다”라고 말한다.》

현지에서는 핀테크 기업과 통신 기업을 설립한 사업가로 큰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이 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친분이 있고, ‘한국 배우기’에 진심인 존 드라마니 마하마 가나 대통령으로부터 ‘가나가 한국을 제대로 벤치마킹할 수 있게, 두 나라가 깊은 협력 관계를 맺을 수 있게 교두보 역할을 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주한 가나대사가 되기로 했다. 마하마 대통령은 평소에도 자주 한국을 언급하고, 자신의 의전차로도 제네시스를 사용하고 있다.

11일 대통령실에서 열린 주한 대사 신임장 제정식을 마치고 주한 가나대사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최 대사를 다음 날 오전 9시 반 서울 용산구 주한 가나대사관에서 만났다. 주한 가나대사로서 가진 언론과의 첫 인터뷰였다. 다음은 최 대사와의 일문일답.

―부임하자마자 서울 외교가에서 유명 인사가 됐다.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또 감사한 일이다. 사실 아프리카 나라 대사가 부임하자마자 한국에서 유명 인사 혹은 화제의 인물이 되기는 쉽지 않다(웃음). 그런데 나는 독특한 배경 덕택에 자연스럽게, 또 긍정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게 된 것 아닌가. 가나를 널리 알리고, 가나-한국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가나나 다른 아프리카 나라에서 이민자 출신 대사가 나온 적은 없나.

“가나에선 내가 처음이다. 또 이른바 ‘블랙 아프리카’로 꼽히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에서도 외국에서 이민 온 사람이 대사로 임명된 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만큼 처음에는 내가 대사로 임명된 것에 너무 파격적이란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가나를 ‘모국’으로 생각한다는 점, 가나 사람들과 아주 밀착한 삶을 살아온 점이 알려지면서 우려는 사라졌다. 마하마 대통령이 나를 한국 대사로 보낸 파격적인 결정을 한 건 그만큼 한국을 특별한 나라로 생각하고, 내가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는 대사로 나를 임명할 때 ‘모든 눈이 당신을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하마 대통령이 특별히 한국에 관심이 많은 이유가 있나.

“식민지 지배와 전쟁의 아픔을 이겨내고 단기간에 세계적인 경제 강국, 과학기술 강국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나라를 착취하거나 전쟁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가나는 물론이고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에도 한국이 특별할 수 있는 이유다. 나를 포함해 한국에 대해 잘 아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레이트 코리아(Great Korea)’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마하마 대통령은 한국이 자동차, 조선, 전자, 철강, 의학 등 사실상 모든 주요 산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이를 벤치마킹하고 싶어 한다. 그는 야당 대표 시절인 2023년 ‘한-아프리카 비즈니스 서밋’(외교부와 한-아프리카 재단 개최) 당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대기업 연구소를 개인적으로 견학했다. 한국 기업과 기술에 매료돼 그때부터 제네시스를 자신의 공식 의전차로 사용했다. 대통령 취임 뒤에도 계속 제네시스를 메인 의전차로 사용하고 있다. 다른 아프리카 나라에서는 통상 독일산 자동차를 의전차로 사용한다. 아프리카 국가 정상 중 마하마 대통령만큼 한국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대통령이 아닌 일반 공직자들도 한국에 관심이 많나.

“물론이다. 특히 공직자들 사이에선 한국이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추진할 때 보여준 투명성에 좋은 인상을 받았고, 더욱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까다로운 타당성 검토(Feasibility Study), 예산 검증, 인력의 전문성, 절차와 결과에 대한 체계적인 평가 등에 모두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일부 나라는 아프리카 나라에서 ODA를 진행할 때 처음에는 별다른 요구 없이 파격적으로 예산이나 인력을 지원한다. 그러다 나중에 이른바 ‘히든 어젠다(Hidden Agenda·감춰진 의도)’를 꺼내면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런 게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너무 까다롭다’는 불만이 나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의 ODA는 신뢰할 수 있다’란 평가가 나온다. 한국 정부나 공공기관과 ODA 업무를 함께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법치주의와 근면성을 강조하는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많다.”

―가나는 한국과의 어떤 협력에 관심이 많나. 대사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나에 한국 기업과 정부의 투자를 유치하는 것, 또 양국의 교역을 늘리는 것 같은 이른바 숫자가 나타나는 협력과 성과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가나와 한국 사이에서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이다. 특히 가나 입장에서는 한국의 축적된 경제산업 발전 노하우를 배우는 데 관심이 크다. 가나의 인력들이 한국의 산업 현장에서 일하고 여기서 체득한 노하우를 가나에 이식시키길 바란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주어진 핵심 과제 중 하나는 가나가 한국 정부의 고용허가제(EPS) 대상 국가가 되게 하는 것이다. 더욱 많은 가나의 기술 인력이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현재 고용허가제는 대부분 동남아 등 아시아권 국가들을 대상으로 시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 중 고용허가제 대상인 나라는 아직 없다.”

―가나가 한국에 특별할 수 있는, 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어떤 것일까.

“사람들이 아프리카 나라라고 하면 늘 분쟁이 있고, 정세가 불안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가나의 경우 내전 혹은 이웃 국가와의 분쟁이 없다. 당연히 정치나 사회도 매우 안정된 편이다. 공용어도 영어다. 경제는 아직 더 개발돼야 하지만 서아프리카의 거점 국가 중 하나로 꼽히며 발전 가능성은 상당하다. 무엇보다 금을 중심으로 광물 매장량이 세계적인 수준이다. 이미 금 생산은 아프리카에서 1위이며 전 세계적으로도 최상위권이다. 또 최근 가나 정부는 금 생산 및 관리의 전문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금 관리 위원회도 설립했다. 또 희토류 매장량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인공지능(AI), 첨단 반도체, 양자 컴퓨팅 등의 기술이 발전할수록 주요 광물 확보 경쟁은 더욱 거세질 전망 아닌가. 가나와의 협력은 광물 공급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또 1200만 ha(헥타르) 규모의 양질의 농경지가 있는데, 이 중 현재 사용 중인 건 겨우 400만 ha에 불과하다. 농업 자원 확보 측면에서도 가나는 매력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

최 대사는 인터뷰 내내 가나를 ‘우리나라’로 표현했다. 또 한국어가 유창했다. 그의 사무실 테이블에는 ‘가나초콜릿’이 잔뜩 놓여 있었다. 그는 “가나산 원료가 들어갔고, 한국에서 워낙 친근한 제품이라 가나를 알리기에 좋은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또 최 대사는 공식 행사에 참석할 때 가나 전통 천인 켄테로 만든 의상을 걸친다. 양복을 입을 땐 역시 켄테로 만든 나비 넥타이를 맨다. 자신이 가나와 한국의 관계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나비효과’를 내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의미에서다. 가나의 유명 인사가 됐고, 가나에서 많은 성과를 냈지만 처음부터 가나 생활이 편안했던 건 아니다.

―처음부터 현지 학교를 다닌 이유가 있었나.

“선교사 가정이었다. 화목했지만, 재정적인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비용이 거의 안 드는 현지 중학교를 갔다. 처음에는 영어도 못 했고, 외모도 달라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하지만 공부도,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친구들과 가까워졌다. 또 다행히 공부를 잘해 현지의 명문 국제고등학교를 장학생으로 다녔다. 사실 대학도 장학생으로 미국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미국에서 수많은 한국인 중 하나가 되기보다 가나에서 유일하고 특별한 한국인이 되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내가 대를 이어 가나에서 특별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거였다. 그래서 아버지 말씀을 따랐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다.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아버지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선교사 자녀들은 어떤 환경에서든 ‘순종하는 것’에 익숙하다(웃음). 나에게 특별한 소명이 있을 것이란, 가나와 한국을 잇는 역할을 어떻게든 하게 될 것이란 생각은 항상 했다. 그래서 대학에 진학해 가나 국적도 취득했다. 또 가나국립대에 진학해 열심히 공부를 했고, 이 과정에서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왔던 아내도 만났다. 아내와 6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가나에 남은 게 인생에서 정말 큰 변화를 불러왔던 것이다(웃음).”

―대사가 되기 전에는 어떻게 가나와 한국을 잇는 역할을 했나.

“마하마 대통령뿐만 아니라 이전 가나 대통령들이 한국 정부와 기업 관계자들을 만날 때 통역, 자문 역할을 여러 번 담당했다. 반대로 한국 정부나 기업 관계자들이 가나를 찾을 때도 통역이나 자문을 한 적도 많다. 가나에서 기업을 설립했고, 현지 명문 고교와 대학을 다녔다 보니 가나 지도층에도 지인이 많다. 이들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자연스럽게 가나와 한국이 왜 더 가까워져야 하는지도 설명해 왔다.”

―해외 진출에 관심이 많은 한국 젊은 세대에게 아프리카에 대한 조언을 한다면….

“해외에서 아프리카는 이미 중국, 인도 못지않게 주목받아 온 지역이다.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는 지역인 게 분명하다. 한국의 젊은 세대가 더욱 적극적으로 아프리카에 진출해 사업을 하고 시장을 개척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아프리카의 문화와 가치 등을 제대로 이해한 후 사업에 도전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아프리카는 빠른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 대신 관계, 신뢰,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점을 기억하고 아프리카에 도전하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최고조 주한 가나대사 프로필

△1977년 강원 춘천 출생
△1992년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가나로 이주
△2002년 가나국립대 경영학부 졸업
△2005년 통신기업 나나텔 설립
△2015년 핀테크 기업 페이스위치 설립
△2025년 10월 주한 가나대사 부임

#주한 가나대사#최승업#가나-한국 관계#아프리카 이민자#마하마 대통령#한-아프리카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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