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을지로 ‘이남장’ 본점의 설렁탕. 보통은 1만4000원, 특은 2만2000원이다.
김도언 소설가 제공
김도언 소설가서울 중구 을지로에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은 집들이 있다. 간판이나 외관은 낡았지만 그 안에 차곡차곡 쌓인 세월에서는 그 어떤 미식 트렌드보다 단단한 기품이 흐른다. 이남장 을지로본점 역시 그런 집이다. ‘48시간의 정성, 50년 전통’이란 간판 문구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붉은색 옛날 타일로 마감한 외벽은 고색창연하다.
설렁탕 한 그릇으로 반세기를 건너온 이 집의 역사는 1970년대 초반 을지로3가의 작은 골목에서 시작됐다. 창업자 신영주 씨는 가족을 위해 자주 설렁탕을 끓였는데, 그 깊은 맛에 반한 식구들의 적극적인 권유로 식당을 열게 됐다. 처음엔 가마솥 세 개가 전부였단다. 창업자는 유별난 조리법 대신 국내산 재료를 써서 진하게 내는 국물과 넉넉하게 베푸는 마음을 장사의 기조로 삼았다. 그 선택은 지금 이남장을 서울 설렁탕을 대표하는 명소로 만들었다.
뽀얀 색이 탐스럽기까지 한 이남장 설렁탕 국물은 처음엔 담백하지만, 목 안으로 몇 숟갈을 더 넘기면 기어이 깊이를 드러낸다. 사골과 양지를 불을 조절해 가며 오래오래 고아내고서야 얻을 수 있는 맛이다. 재료 자체의 힘으로 나온 국물은 자연과 시간이 주는 선물이다. 손님들은 여기에 각자의 입맛대로 대파를 곁들이고 소금과 후추를 더해 한 그릇의 설렁탕을 완성한다.
대표 메뉴인 설렁탕(보통 1만4000원, 특 2만2000원)은 이 집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일단 고기의 양이 다른 집 설렁탕보다 확실히 많은데 부드럽기가 상상 이상이다. 튼실한 살코기 한 점과 쌀밥을 진한 국물을 곁들여 한술 뜨면 한겨울 추위도 능히 잊을 만하다.
설렁탕, 내장탕, 도가니탕 등 단품 메뉴로 훌륭하지만, 이남장의 또 다른 매력은 ‘수육류’로 분류해 놓은 명품 보양 메뉴에 있다. 수육, 족수육, 족반수반, 모듬수육 등이 그것인데 소의 다양한 부위를 사용해 손님들에게 든든한 특식 요리를 제공한다. 씹는 맛까지 고려해서 적당하게 삶아낸 사태 부위와 콜라겐과 젤라틴이 풍부한 도가니, 스지 등을 골고루 한 접시에 담아 식객의 미감을 만족시킨다. 이 집에서 설렁탕과 수육을 먹고 있는 손님들을 가만 보면 다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실 식객의 표정만큼 세상에 정직한 게 또 있을까. 말하는 혀는 안 그럴지 몰라도 맛보는 혀에는 거짓이 없다.
이남장 을지로본점의 매력은 맛에만 있지 않다. 이 집에는 ‘변하지 않음’이라는 미덕이 있다. 급변하는 외식시장 속에서도 메뉴 구성과 조리 방식, 식객을 대하는 태도를 처음처럼 지켜왔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50년 넘게 발길이 끊이지 않는 단골들이다. 첫 맛에 반해 이 집의 문턱을 넘었던 중학생은 어느새 초로에 접어들었고, 이남장 을지로본점은 서울 구도심의 속도와 리듬에 맞춰 매일 묵묵히 국물을 고아내고 고기를 삶으며 손님을 맞는다.
설렁탕이야말로 그런 음식이지 않던가. 그 자체로는 화려하지 않지만 국물에 고인 시간과 노동, 그리고 그걸 먹은 이들의 소소한 기억이 쌓여서 어느새 풍성한 서사를 품게 된 우리네 음식. 이남장 가마솥에서 국물이 끓을 때 그것은 단순한 식당 주방 풍경을 넘어 역사의 한 챕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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