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법 부칙조항 헌법 불합치"… "남녀 평등권 위배"

  • 입력 2000년 8월 31일 18시 35분


97년 12월 개정된 국적법은 ‘부모 양계 혈통주의’를 채택해 출생 당시 아버지가 외국국적자라도 어머니가 한국국적자이면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 법은 부칙에서 시행일인 98년 6월14일로부터 10년 전인 88년 6월13일 이전 한국국적의 어머니와 외국국적의 아버지 사이에서 출생한 사람은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이영모·李永模재판관)는 31일 지난 55년 중국국적 아버지와 한국국적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김광호씨의 신청을 받아들여 서울고법이 낸 위헌제청신청사건에서 “부칙은 헌법상 남녀 평등권에 위배된다”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국적법 부칙은 당장 효력을 잃지는 않지만 법무부는 부칙이 규정한 국적 허용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부칙을 개정하거나 폐지해야 한다.

같은 경우 일본은 법 시행 전 20년 이내 출생자를, 독일은 기본법 제정 후 4년 뒤인 53년 이후 출생자를 기준으로 국적을 부여하고 있다.

재판부는 “부모 양계 혈통주의는 구 국적법이 출생 당시 아버지가 한국국적자여야만 자녀에게도 한국 국적을 부여해 양성(兩性)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며 “그러나 부칙이 구법의 위헌적 차별로 불이익을 받은 사람을 구제하는 기준으로 법 시행 당시의 연령이 10세 이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것은 또 다른 평등권 위배”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헌재가 부칙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릴 경우 곧바로 효력이 정지돼 그나마 부칙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88년 6월14일 이후 출생자들에게 법적 공백이 생기게 되는 점을 고려해 헌법 불합치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55년 평북에서 태어나 57년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이주해 살다가 95년 전남 무안군 해변을 통해 밀입국했다.

김씨는 강제퇴거명령을 받자 ‘나는 한국인’이라며 서울고법에 강제퇴거명령 무효확인 소송과 함께 구 국적법 조항에 대해 위헌제청을 신청했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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