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따뜻한 사람들]박상옥/『금이 얼마나 있지?』

  • 입력 1998년 1월 8일 09시 44분


새해 들어 첫 일요일이던 4일 저녁시간. 일찌감치 식사를 마치고 온 가족이 텔레비전 앞에 함께 모여 앉아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인 딸아이가 “엄마, 쟤들은 아이엠에프(국제통화기금·IMF) 시대도 모르나 봐요” 하며 아연한 표정으로 한마디 던지는 게 아닌가. 텔레비전에서는 사치와 낭비를 일삼는 부유층 청소년들의 향락생활 현장이 적나라하게 방영되고 있었다. 넋을 잃고 보던 나는 딸아이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만감이 교차했다. 매달 5천원의 용돈을 용돈기입장에 꼬박꼬박 정리해가는 고사리 같은 딸아이의 손끝에서는 IMF시대 극복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다. 또 이런 자세는 서민층 모두에게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그래, 철딱서니 없는 너희들은 이 어려운 시대에서 비켜나 있어도 좋다. 우리 서민층이 기어코 극복하고 말 것이다” 혼자말로 중얼거리면서 며칠전의 일을 다시 떠올렸다. 16년째 서울시청에서 공무원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갑자기 “우리집에 금이 모두 몇돈이나 있지”하고 말했다. “한 열돈쯤 되겠죠.” “그럼 모두 가져와 봐요.” 영문을 모르는 나로서는 그 이유를 다그쳐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그다지 말이 없던 남편이었지만 이날만은 달랐다. 이 어려운 시대에 우리가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리고는 내어놓은 금붙이를 주섬주섬 주머니에 집어넣는 것이 아닌가. 결국 나는 두 아이의 백일이나 돌잔치 때 받았던 반지며 팔찌를 모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환율상승에 따른 달러 차익을 챙기기 위해 10만달러 아니 1백만달러의 돈가방을 들고 다니는 얄팍한 일부 부유층보다 남편이 훨씬 소중하고 귀중하게 느껴졌다. 시도 때도 없이 보도되는 ‘공무원 임금동결’ ‘공무원 상여금 삭감예정’ 등 어려운 시기마다 항상 도마에 올려지는 것이 공무원 타령이다. 하지만 박봉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시대에 말없이 허리띠를 졸라매리라 각오를 더욱 다져본다. 이 시대의 진정한 애국자는 과연 누구인지 가슴깊이 새겨볼 일이다. 무한경쟁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무기는 ‘내가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적 의식전환이라고 생각한다. 박상옥(서울 강남구 수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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