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늄 농축-ICBM 조립 이어 탄두 공장… 평양 인근 ‘핵벨트’ 구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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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연구소, 핵탄두 제작 의심시설 공개

미국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가 8일(현지 시간) 민간 위성사진을 토대로 평양 인근 원로리에서 핵탄두 제작 공장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핵 시설의 존재를 공개하면서 그 실체를 둘러싼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 평양 주변에 ‘핵 벨트’ 구축하려 한 듯
지난 2년여간 북-미 비핵화 협상 중에도 북한이 핵무력 증강에 몰두했다는 핵심 증거일 수 있다는 점에서 한미 당국도 관련 동향을 주시 중인 걸로 알려졌다. 원로리 시설은 평양 중심부에서 불과 10여 km 거리에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 북한 수뇌부가 방문하기 용이한 장소에 자리 잡은 셈이다.

2015년부터 원로리 일대의 위성사진을 추적 분석한 제프리 루이스 미들베리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센터 소장은 핵시설임을 뒷받침하는 특징을 두루 갖췄다고 주장했다. 삼엄한 보안 시스템과 지하시설, 지도자 방문 기념물, 부지 내 사택 등 기존 핵·미사일 관련 시설과 유사점이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시설 곳곳에서 화물 컨테이너와 트럭 등 차량의 활발한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포착되는 등 핵개발 관련 활동이 유력하고, 핵탄두 제작 시설로 추정된다는 것이 연구소의 결론이다.

원로리 시설의 위치도 의미심장하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약 14km 떨어진 평양 순안비행장 인근 신리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조립 관련 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앞서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북한 전문 사이트 ‘분단을 넘어서(Beyond Parallel)’는 5월에 신리 시설을 ‘탄도미사일 지원 시설’로 지목한 바 있다. 시설 규모로 볼 때 최대 4기의 ICBM 동시 조립이 가능한 걸로 추정됐다.

군 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원로리에 핵탄두 제조 설비가 있다면 완성·비축한 핵탄두를 신리로 조속히 옮겨서 ICBM에 장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로리와 신리를 지하로 연결해 외부 노출을 피해 핵탄두를 이송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을 개연성도 제기된다.

또 원로리 시설에서 남쪽으로 10km 떨어진 강선 지역에 우라늄 농축 시설이 포진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강선 농축 시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북-미 하노이 회담에서 김 위원장에게 ‘영변 플러스알파(+α)’로 폐기를 요구한 핵시설 중 한 곳. 당시 김 위원장이 이를 거부하면서 ‘하노이 담판’은 결렬로 무산됐다.

두 시설의 위치로 보면 강선에서 만든 핵물질(HEU·고농축우라늄)을 원로리로 가져와 핵탄두를 일사불란하게 제작하는 데 용이한 동선이다. 군 소식통은 “평양의 김 위원장 집무실에서 11∼19km 구역 내에 우라늄 농축(강선)과 핵탄두 제작(원로리) 및 ICBM 조립 시설(신리)로 추정되는 핵 의심 시설들이 집중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핵무력의 산실’인 핵·ICBM 시설을 지척에 두고 수시로 실태 점검과 독려를 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핵·ICBM의 통제력을 확고히 하는 차원에서 평양 인근에 주요 핵시설을 포진시키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 원로리에서 핵탄두 소형화와 대기권 재진입 기술 고도화 작업 진행했을 수도

북한의 새로운 핵 의심 시설이 공개되면서 핵 능력이 양적 질적으로 더 고도화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미 정보 당국은 수년 전부터 2020년경 북한이 최대 100여 개의 핵탄두를 제작 보유할 걸로 추정한 바 있다. 북-미 비핵화 협상 기간 북한이 비밀 핵시설에서 핵물질 생산 및 핵탄두 제조에 박차를 가해 그 수준을 달성했을 거란 관측이 적지 않다. 또 다른 군 소식통은 “2017년에 미 본토를 사정권에 둔 화성급 ICBM의 잇단 발사 성공 이후 핵탄두 소형화는 물론 대기권 재진입 기술도 상당 수준에 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로리 시설의 존재가 공개된 시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3차 북-미 정상회담 의향을 밝힌 지 불과 하루 만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북한과의 ‘스몰딜’을 경계하는 워싱턴 조야의 대북 강경파가 과거 신고되지 않았던 북한 핵시설의 존재를 노출시켜 북한 핵활동의 문제점을 상기시키려고 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신규진 기자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핵벨트#북한#원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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