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8일 중앙언론사 정치부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대연정(大聯政)’의 당위성을 거듭 강조했다.
점심식사를 겸해 2시간 반가량 진행된 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은 1시간가량 대연정 제안 배경을 상세히 소개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등 야당은 ‘또 연정 타령이냐’는 식의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대연정 포기하지 않겠다=노 대통령은 “야당에 정치협상을 정식으로 제안하겠다”고 말했다. 내각제 수준의 권력 이양과 지역 구도를 해소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고치는 것을 묶어서 제안했던 기존의 방안에서 한발 더 나아간 복안을 갖고 있음을 내비친 것.
하지만 한나라당 강재섭(姜在涉) 원내대표는 즉각 “대연정은 헌법체계에 맞지 않고, 무엇보다 노 대통령이 이끄는 정권에서 정부 운영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받지 않겠다는데 왜 자꾸 치근덕거리느냐”고 일축했다. 전여옥(田麗玉) 대변인도 “아무리 힘없고 고단한 야당이지만 펑크 난 자동차에 ‘카풀’을 할 수는 없다”고 쏘아붙였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은 연정 파트너로 한나라당을 꼽고 있는 점을 문제 삼았다.
민노당 홍승하(洪丞河) 대변인은 “한나라당은 대연정뿐만 아니라 선거제도 개혁 자체에 의지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는데도 왜 자꾸 연정을 하자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민주당 유종필(柳鍾珌) 대변인은 “영남 주류와 비주류가 결합하는 지역 정권은 다른 지역의 소외와 반발만 불러올 것”이라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렇지만 노 대통령은 “한국의 정치시스템을 바로잡아 보겠다는 필생의 정치적 소망이다. 설사 성공하지 못해서 대통령 체면이 깎이는 한이 있더라도 제기해야 한다”며 당분간 연정 제안을 접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물밑 대화 방식으로는 추진 안 한다=‘야당과의 물밑 접촉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노 대통령은 “물밑 대화 말 한마디 하면 그날로 나만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돼 버리니까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철저하게 공개적인 방식을 통해 야당을 압박하는 방식을 택하겠다는 뜻이다.
또 노 대통령은 많은 국민이 연정 제안에 시큰둥한 데 대해선 “국민이 찬성하지 않는 이유는 정치권을 무시하는 것이다. ‘당신들은 싸움하는 것이 전문인데, 되지도 않을 소리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야유를 보내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폈다.
▽위기의식의 괴리?=노 대통령은 ‘위기감’을 화두로 꺼내면서 대연정을 고집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내가 보기에 진짜 심각한 문제이고, 이대로 두면 장차 위기로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문제들에 대해 내가 문제 제기를 하면 언론과 국민은 냉담한 것 같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갈등 요소들만 부각돼 내가 싸움을 건 것 비슷하게 비쳐 힘들 때가 많다”고 했다. 이어 “지금 우리는 대화 자체가 안 되는, 정상적인 민주주의의 운영 자체가 잘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역 구도 때문에 이 위기는 더욱 더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국민연금 문제를 예로 들면서 국가의 중요 정책 현안이 대결적 정치구조 때문에 풀리지 않고 있고, 결국은 사회 전체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자신의 문제 제기는 생뚱맞은 게 아니라 미래를 내다 본 주장이라는 것.
그러나 강원택(康元澤) 숭실대 교수는 “대통령이 어느 날 갑자기 큰 의제(어젠다)를 툭 던져 놓고 상대방의 공감을 바라는 것은 문제”라며 “국민이나 정치권과의 소통방식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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