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권 출범 2년]섣부른 개혁 드라이브…民生만 치였다

  • 입력 2005년 2월 22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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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출범 이후 경제 분야에서도 ‘성장과 분배’ 논란이 본격 제기되고 재벌개혁 방안이 추진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 같은 ‘개혁 드라이브’는 시스템 개혁이라는 목표를 내걸었지만 내수침체 등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검찰 등 권력기관에 불어 닥친 개혁바람도 권력분산 등의 긍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이 과정에서 조직의 동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구겨진 경제성적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연 7% 성장, 매년 50만 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 빈부격차 축소 등을 내걸었지만 집권 2년의 ‘경제 성적표’는 좋지 않았다.

집권 첫해인 2003년 경제성장률은 3.1%였고 지난해에도 4.7% 안팎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당초 공약인 7% 성장은 물론 잠재성장률인 5%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낙제점’에 가깝다.

일자리는 지난해에는 42만 개가 새로 생겼지만 2003년에는 3만 개가 감소했다. 2년간 새로 생긴 일자리는 39만 개로 목표치 100만 개에 크게 미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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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가 276억1000만 달러에 이를 정도로 수출이 호조를 보였지만 내수침체가 계속됐기 때문. 내수침체는 지난 정권이 넘긴 신용카드 부실과 가계부채 증가의 후유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집권 초기에 이른바 ‘개혁코드’가 힘을 얻으면서 경제 분야에서도 반(反)기업 정서와 부자에 대한 반감이 고조돼 경제주체들의 투자 및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

2004년 2월 이헌재(李憲宰)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경제정책의 기조가 성장 중시로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졌으나 역설적으로 이때부터 정부 내에서는 분배론자와 성장론자 간의 갈등이 커졌다. 이 부총리와 386세대의 갈등이 대표적 사례.

이 와중에 극심한 내수침체가 계속되면서 생계기반을 잃는 자영업자들이 급증했으며 서민층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보통 경기가 어려워지면 서민층이 가장 큰 타격을 본다.

실제로 지난해 3분기(7∼9월) 기준으로 도시근로자 상위 20% 가구 소득은 하위 20% 가구 소득의 5.35배로 2002년(5.12배)보다 크게 높아졌다. 그만큼 소득불균형이 커진 셈.

결국 ‘경제낙관론’을 고집해 오던 현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들어서 재정 확대, 금리 인하, 종합투자계획 마련 등 ‘경제 다걸기(올인)’에 나섰다.

홍익대 경영학과 선우석호(鮮于奭晧) 교수는 “지난 2년간의 경험은 이념의 잣대로 경제에 접근하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소중한 교훈을 남겼다”며 “혹시 경제가 조금 나아진다고 해서 과거의 잘못된 기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공종식 기자 kong@donga.com

▼경제개혁 후유증▼


노무현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집값 안정, ‘재벌’ 개혁, 조세형평성 등의 목표를 내걸고 경제시스템의 개혁에 나섰다.

하지만 ‘섣부른’ 개혁조치들은 충분한 공감대도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돼 일부 명분을 갖춘 정책까지도 많은 논란과 후유증을 낳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중에서도 부동산시장 억제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집값은 반드시 잡겠다’는 현 정부는 2003년 10월 세제 금융 주택공급 등을 총망라한 ‘10·29 부동산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 정책으로 2001년을 전후로 가파르게 오르던 집값을 안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실수요자들의 부동산거래마저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해 아파트 거래건수는 총 76만8838건으로 전년의 108만6167건에 비해 29.2% 감소했다.

조세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1가구3주택 양도소득세 중과 제도는 지난해 말 시행을 한 달 앞두고 ‘연기론’을 펴는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시행 강행’을 주장하는 이정우(李廷雨)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이 정면대결을 벌이면서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모든 부동산거래의 실제 거래가격을 시군구에 신고하도록 한 부동산중개업법은 지난해 국회에 제출됐지만 부동산시장을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는 논란 속에 지금까지 국회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보유세를 무겁게 물리는 종합부동산세는 작년 말 국회 통과로 도입이 확정됐지만 지나치게 높아진 세 부담 때문에 앞으로 부동산 부자들의 조세저항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金鉉我) 책임연구원은 “보유세를 높이고 거래세를 낮추는 정부의 조세개편 방향은 옳다”면서도 “단기간에 효과를 보겠다는 생각에서 너무 급격하게 보유세 부담을 높인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대기업을 개혁의 대상으로 선언한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 등 대기업정책도 큰 부작용을 낳았다.

지난해 말 △출자총액제한 유지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 강화 △계좌추적권 부활 등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재계와 야당의 반발이 컸다.

특히 논란이 많았던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경우 이달 중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확정되는 과정에서 자산기준이 5조 원에서 6조 원으로 일부 완화됐다.

이 밖에 접대비실명제와 성매매특별법은 가뜩이나 침체된 소비에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兪炳圭) 상무는 “경제 선진화를 위해 개혁 조치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며 “이 같은 개혁이 성공하려면 공감대를 쌓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달라진 권력기관▼

노무현 정부의 지난 2년간은 검찰, 국가정보원 등 이른바 권력기관엔 격랑의 시기였다.

한편으로는 ‘제자리 찾아주기’ 작업을 통해 어느 정도 권력분산과 정치적 중립을 이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거센 변화=권력기관의 제자리 찾아주기 작업은 파격적인 인사로 시작됐다. 법무부 장관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인 40대 여성 변호사 강금실(康錦實) 씨가 발탁되면서 서열을 중시하던 검찰의 인사 관행은 일순간에 무너졌다.

청와대에 파견됐던 검사가 철수하고 청와대와 검찰 간의 공식적인 채널도 끊겼다. 검찰은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현직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을 줄줄이 구속할 정도로 독립성이 주어졌다.

국정원도 민변 출신의 고영구(高泳耉) 변호사와 진보성향의 서동만(徐東晩) 외교안보연구원 교수가 각각 원장과 기조실장에 기용되면서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다. 국내정보 수집을 맡아온 대공정책실이 폐지되는 등 4차례의 조직 개편이 단행됐고 국내정치 개입 사례는 거의 찾기 힘들어졌다.

검찰총장과 국정원장의 대통령 독대 보고도 공식적으로는 자취를 감췄다.

국세청 역시 노 대통령이 취임 초 표현한 대로 ‘고달프기만 하고 별 볼일 없는 자리’가 돼 가고 있다. 세무조사권을 정치적으로 남용하던 일은 찾기 힘들어졌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경찰은 역으로 ‘권력 분산’ 작업의 수혜를 보고 있다. 지지부진하던 수사권 독립 논의도 청와대의 확고한 의지 덕분에 한층 탄력을 받고 있어 잔뜩 고무된 모습이다. 정치적 중립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다.

▽과제=이른바 ‘개혁’의 주 타깃이 된 검찰과 국정원에서는 냉소와 무력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개혁지상주의에 대한 불만도 묻어난다.

재경 지검의 한 중견 검사는 “중간도 못하던 사람들이 느닷없이 앞서 나가고 과거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개혁 대상으로 매도되는 현실에 많은 회의를 느낀다”고 말했다.

파격 인사,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 대검 중앙수사부 축소 등 일련의 ‘검찰 개혁 작업에 이어 최근 검찰 수사에 있어 ‘인권’이 강조되면서 이런 기류는 더 심해지는 듯하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가 검찰뿐 아니라 다른 기관에도 퍼져 있다는 것. 이런 무기력증이 한꺼번에 힘이 빠져 나가면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금단현상인지, 아니면 고질병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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