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劉 국방차관 5·18때 행적 조사”

  • 입력 2005년 2월 21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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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27일 유효일 국방차관임명당시 본보 보도 내용
2004년 8월 27일 유효일 국방차관
임명당시 본보 보도 내용
청와대가 21일 유효일(劉孝一) 국방부 차관의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진압군 대대장’ 전력에 대한 조사에 나서기로 한 것은 인사시스템의 난맥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 중 하나다. 특히 시민단체의 문제 제기에 청와대가 ‘뒷북’을 치듯 조사에 나선 데 대해 뒷말이 많다.

김완기(金完基)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난해 8월 차관 인선 때 인사추천회의에서 (이 사실을) 모르고 넘어갔다”고 밝혔다. 유 차관의 경력 카드에 20사단 62연대 3대대장이라고 기재돼 있지만, 이게 박준병(朴俊炳) 20사단장 휘하의 진압부대였는지는 몰랐다는 해명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해명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차관 임명 당시 본보를 비롯한 상당수 언론에서 유 차관 프로필에 ‘5·18 당시 진압부대장’을 지냈다는 사실을 보도한 바 있고, 한 주간지에서는 아예 유 차관의 전력을 문제 삼은 기획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또 군내에서도 유 차관의 전력을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고 복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국회 광주 5·18진상규명특별위원회에 공식 제출된 ‘20사단 충정작전 보고’에도 유 차관이 3대대장으로 광주 진압작전에 나섰다고 기록돼 있다.

밖에서는 대부분 알고 있던 기본적인 사실을 대통령 인사수석실과 민정수석실만 몰랐다는 얘기인 셈이다.

설사 청와대가 인선 과정에서는 몰랐다 치더라도 언론 등을 통해 유 차관의 전력이 공개됐을 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뒤늦게 ‘재조사’에 착수하겠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대목이다.

5·18 당시 상황은 국회 광주청문회와 검찰 수사과정을 통해 진상이 상당부분 드러나 있다. 작전 상황을 비롯해 어느 부대가 어떤 임무를 맡았는지도 알려져 있다. 특히 유 차관은 검찰 수사 때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아 무혐의 처리된 바 있다.

따라서 청와대 내 일부 ‘코드 중시’ 세력이 시민단체와 일부 인터넷 매체와 함께 ‘유 차관 몰아내기’ 작전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터무니없는 억측”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한편 유 차관은 “5·18 당시 진압군 대대장으로 광주지역의 외곽도로 봉쇄작전에 투입됐으며 당시 작전과정에서 민간인과 충돌하거나 인명이 살상되는 사태는 없었다”고 밝혔다고 신현돈(申鉉惇) 국방부 공보관이 전했다.

유 차관은 또 “당시 작전을 포함해 5·18 경력으로 훈포장도 받지 않았다. 당시 무자비한 진압작전을 펼쳐 인명을 해쳤다는 일부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유효일 차관 관련 일지
1980년 5월5·18민주화운동 당시 20사단 62연대 3대대장으로 광주진압작전 참여
1981∼1983년대통령교육담당비서관
1988년 12월신동아 12월호, 20사단의 충정 작전에 관한 국방부 보고 원문 게재. “20사단 62연대 3대대장으로 광주진압작전 지휘 맡아”
1991년 보병 25사단장
1994년국방부 동원국장
1997년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분과 위원
1999∼2000년비상기획위원회 사무처장
2004년 8월국방부 차관으로 임명됨. 본보는 그의 프로필에서 5·18 당시 진압군 대대장을 지냈다고 보도
2005년 2월 17일MBC 뉴스데스크, 유 차관이 5·18 당시 진압부대 대대장이었던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고 보도
2월 18일참여연대, “부실인사검증도 이런 부실이 없다”고 비판
2월 21일청와대, “유 차관의 5·18 당시 행적을 조사하고 관련단체의 의견을 들어본 뒤 조치하겠다”고 밝힘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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