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정원]北 ‘폭정의 거점’오명 벗으려면…

  • 입력 2005년 1월 21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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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자유는 다른 지역의 자유의 성공에 한층 더 의존하고 있다. 평화에 대한 최선의 희망은 모든 세계의 자유의 팽창이다. (…) 세계의 폭정을 종식시킨다는 궁극적인 목표와 함께 모든 나라와 문화에서 민주주의 운동과 제도의 성장을 추구하고 지지하는 것이 바로 미국의 정책이다.”

‘자유’라는 단어가 무려 43번이나 들어가 있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 부시 대통령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이래로 강조되어 온 자유와 평등의 개념을 미국 영토가 아닌 전 세계 차원으로 확대하는 자신의 통치철학과 향후 미국 대외정책의 뼈대를 그렇게 설명했다.

부시 대통령은 집권 1기에 핵과 대량살상무기에 초점을 맞춰 ‘악의 축’으로 북한을 지목한 바 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 캠페인 기간에도 북한 핵을 수차례 언급함으로써 집권 2기의 북한 핵 해법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부시 2기의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국무장관에 내정된 콘돌리자 라이스는 인준 청문회 과정에서 ‘폭정의 거점’ 6개국을 거론하면서 북한을 또다시 포함시켰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실천한 마틴 루서 킹 목사 등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계보를 이었다는 라이스 내정자가 ‘폭정의 거점’인 북한에 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자유와 민주를 현실화할 것인지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2기 부시 北核입장 불변▼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내정자의 북한 관련 발언에는 북한 정권에 대한 불신이 드러나고 있지만, 일각의 우려처럼 ‘급진적’인 해법보다는 점진적이면서 다자적인 구도까지만 공개하고 있다. 첫째, ‘악의 축’의 개념은 아직도 유효하다. 북-미 관계의 최우선 과제는 북한의 핵 포기다. 미국은 궁극적으로 북한이 핵을 스스로 포기하는 리비아식 모델을 누차 강조하고 있다. 9·11테러 이전까지만 해도 북한 핵은 한반도를 둘러싼 지역의 문제였다. 그러나 9·11 이후 북한 핵이나 대량살상무기가 테러집단에 흘러들어갈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제기되면서 반테러전의 핵심사안으로 북한 핵이 부상하게 됐으며 이러한 평가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둘째, 당장의 열쇠는 6자회담이다. 북-미 관계를 푸는 1차적인 방법론이 6자회담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와 같은 북한의 인접 국가들이 북한 핵과 직접 관련되어 있으므로 이들 국가가 미국과 함께 당사자가 되어 북한을 압박한다는 방침을 바꾸지 않았다. 라이스 내정자가 현 단계에서 ‘대북 군사적 행동을 취하지 않겠다’고 잘라 말한 것은 6자회담에 대한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6자회담이 성공해 북한이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방법으로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면, 6자회담은 미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안전보장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북핵 저지에 실패할 경우 6자회담의 틀을 ‘위험한 (북한)정권’을 관리하는 새로운 장치로 확대할 가능성도 열어 두고 있다.

셋째,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한다는 것이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개념을 북한 주민들에게 적용해 김정일의 폭정 하에서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 정권에 대한 경제 제재 등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수단의 경우처럼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美, 6자회담 적극활용 할듯▼

미국의 대북정책이 반테러와 함께 ‘자유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개념으로 확대되면서 북한 핵을 넘어 북한 인권 개선, 민주화와 같은 보다 구조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한국 일본 호주를 아시아의 핵심적인 동맹이라고 대내외적으로 천명한 것은 크고 작은 한미관계의 불협화음을 불식시키고 한미동맹의 건재함을 확인시켜준 신호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북한 핵은 무엇이며, 김정일은 어떤 존재인가. 미국의 ‘자유의 행진’은 우리에게 더욱 냉철한 사고와 현명한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

김정원 세종대 석좌교수·전 외교부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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