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탈북자 인권 회견’ 저지 외교문제 비화 조짐

  • 입력 2005년 1월 13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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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국이 한나라당 의원들의 탈북자 인권 관련 기자회견을 실력 저지한 사건이 한중 간 외교 문제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의 강력 반발=13일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주재한 상임운영위원회의는 중국 측의 태도가 외교적 결례임을 지적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박진(朴振) 국제위원장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기자회견을 중국 공안당국이 원천봉쇄한 것은 한국 입법기관에 대한 모독이며 국가 주권 침해”라며 “정부는 중국 정부에 강력 항의하고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강두(李康斗) 최고위원도 “중국 정부의 무례한 사안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며 “탈북자 문제는 세계적 인권 문제로 떠올랐는데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외교 당국의 노력과 조치가 미흡했기 때문”이라고 정부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한나라당이 이번 사태의 정치쟁점화를 노린 배경엔 탈북자와 북한 인권 문제에 조심스러운 정부의 대북노선을 정면으로 문제 삼으려는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가 이날 오후 서울 노원구 공릉사회종합복지관에서 탈북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진 것도 이 같은 기류와 무관하지 않다.

▽끊이지 않는 중국의 외교적 무례=중국은 그동안 ‘하나의 중국’ 원칙 같은 자신들의 국익과 직결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외교적 무례를 서슴지 않는 행태를 보여 왔다.

2002년 1월 재외동포법 개정 준비를 위해 중국의 동북3성 지역을 방문하려던 당시 민주당 최용규(崔龍圭) 의원, 한나라당 황우여(黃祐呂) 이주영(李柱榮) 서상섭(徐相燮) 의원 등 4명의 중국 비자가 끝내 발급되지 않은 것이 대표적 예.

지난해 8월에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현장을 방문하려는 한나라당 의원 8명의 비자 발급이 특별한 이유 없이 지연돼 논란이 됐다.

중국 측은 이런 외교적 무례와 파문이 ‘한국 정치인들에게 중국의 특수성을 이해시키는 교육적 효과가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해 5월 주한 중국대사관이 한국 여야 의원에게 대만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취임식에 불참해 줄 것을 요청해 논란이 됐을 때도 주한 중국대사관 관계자는 “한국 정치인이 중국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곤혹스러운 한국 정부=외교통상부는 이날 리빈(李濱) 대사를 불러 해명과 재발 방지를 요청하는 다소 강경한 태도를 보였지만 속사정은 복잡하다. 외교부가 이날 리 대사를 부르고도 이 사실을 당초 언론에 쉬쉬했던 것도 이런 맥락이다.

관광비자로 중국에 입국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입국 목적과 다른 활동을 하려 한 데다 중국 당국의 사전 경고를 무시한 것이 이번 사태를 초래한 중요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도 학생비자로 입국한 외국인이 취업활동을 하면 법률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느냐”며 “중국이 보편적 상식과 가치에 벗어나게 기자회견을 물리력으로 저지한 것은 문제지만 한나라당 의원들도 무리한 측면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정부, 中대사 불러 재발방지 요청

정부는 중국 당국이 탈북자 인권 문제에 관한 한나라당 의원 4명의 기자회견을 저지한 데 대해 13일 리빈(李濱) 주한 중국대사를 외교통상부로 불러 유감을 표명하고 해명과 재발 방지를 요청했다.

이규형(李揆亨)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최영진(崔英鎭) 차관이 리 대사에게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며 “리 대사는 ‘한국 측 입장을 중국 본부에 보고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리 대사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중국 국내법을 존중하지 않아 이런 사태가 발생하게 됐다”며 “이번 사태가 미래 지향의 한중 양국 관계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고 이 대변인은 전했다.

한나라당도 이번 사태에 대해 중국 측의 해명과 사과를 거듭 강하게 요구했다.

한편 중국 정부는 이날 이번 사태의 책임을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돌렸다. 쿵취안(孔泉)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의 기자회견은 중국 내 탈북자들의 불법 활동을 더욱 조장할 우려가 있었고 방문 목적에도 맞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쿵 대변인은 “한나라당 의원 중 1명은 대사관 초청으로, 3명은 관광 비자로 중국에 왔다”면서 “중국은 한국 의원들의 방중을 환영하지만 중국의 법규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황유성 특파원yshwang@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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