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형 브리핑제’ 허실]‘문’닫은 정부… 알권리 위축

  • 입력 2005년 1월 11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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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청사 사무실 취재금지108개 칸막이서 '백팔번뇌'
과천청사 사무실 취재금지
108개 칸막이서 '백팔번뇌'
#사례1 9일 오후 8시. ‘한국인 2명의 이라크 내 납치설’이 불거졌다. 중요한 사항인 만큼 모든 언론사가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들은 회의 등을 이유로 확인 전화를 일절 받지 않아 기자들은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결국 오후 11시가 넘어 시작된 외교통상부 이규형(李揆亨) 대변인의 브리핑 때까지 3시간 가까이 ‘한국인 납치설’은 오리무중 상태에 있었다.

#사례2 매주 금요일 정부과천청사 브리핑실에서 이뤄지는 이헌재(李憲宰)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정례브리핑은 지난해 11월 19일 이후 6주째 ‘공전’ 중이다. 이유는 국회 일정 등이 겹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례브리핑 취소에 따른 ‘대체브리핑’은 아직까지 한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국민들은 경제수장에 의한 경제브리핑을 놓치고 있는 셈이다.

▽취재시스템 개편 ‘이후’=정부는 부처별 기자실을 통합하고 기자들의 사무실 직접 취재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의 취재시스템 개편을 시행했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는 2003년 9월, 정부과천청사의 경우 경제부처는 2003년 12월, 사회부처는 지난해 5월에 개편했다.

장관 '입'만 바라볼 뿐
부실 정보-홍보성 많아

그러나 개편 ‘이후’ 국민의 알권리가 그만큼 개선됐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부실한 브리핑=정부는 취재시스템을 바꾸면서 브리핑을 활성화하겠다고 다짐했다. 과장이나 국장들도 가능한 한 자주 브리핑을 하도록 했다.

문제는 보도자료를 내놓을 때를 제외하고는 자발적인 브리핑이 거의 없다는 점. 이 때문에 재경부 기자들은 정례브리핑에서 이 부총리의 ‘입’만 바라보고 정책의 흐름을 잡아야 할 정도가 됐다. 차관이나 다른 실국장의 경우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브리핑실에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다.

외교부가 가장 자랑하는 ‘대(對)언론 서비스’인 반기문(潘基文) 장관의 주례 내외신 브리핑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내용이 부실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반 장관은 지난해 12월 22일 주례브리핑에서 차기 유엔 사무총장 후보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변할 위치에 있지 않고, 답변하기가 적절치 않다”고만 말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 KTV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사무총장 후보 기준 등에 대해 비교적 구체적인 얘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우려되는 국민의 알권리 위축=최근 경제부처를 다시 출입하는 기자들은 달라진 분위기에 깜짝 놀란다. 공무원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자들의 사무실 직접 취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접견실 활성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종합브리핑실 옆에 별도의 접견실도 설치했다.

그러나 접견실 이용 사례는 거의 없다. 공무원과 약속 잡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공무원과 기자 모두가 면담 같은 ‘딱딱한 취재’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국장은 브리핑실에 몇 달이 지나도 모습을 내비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닭장에 갇힌 닭’이라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정부과천청사 1동에 자리 잡은 합동브리핑실의 경우 108개의 칸막이가 있는 점을 들어 ‘백팔번뇌’라고 하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전화 취재’가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공무원 사회의 전반적인 ‘기자 기피증’ 때문에 취재 환경은 나빠지고 있다.

문제는 기자들의 고립이 결국 국민의 알권리 위축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새로운 취재시스템을 도입했으나 아직 정보 공개 등 내실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종식 기자 kong@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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