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기적의 도서관 짓기' 네티즌 반발로 무산위기

  • 입력 2003년 9월 4일 16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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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 도와주었는데도 감사할 줄 모르는 그런 곳에 도서관까지 지어 준다는 건 정말 돈 아까운 일입니다. 그 돈으로 남한에 도서관 하나 더 지어 주세요”

50, 60대 기성세대의 의견이 아니다.

공익성 오락프로그램 MBC ‘!느낌표’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평양도서관 건립’사업이 주시청층인 ‘10, 20대’ 네티즌의 거센 반대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느낌표’는 ‘책, 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에서 이달의 도서를 선정하고 출판사로부터 판매수익금을 기증받아 도서 시설이 부족한 지방자치단체에 어린이 도서관을 지어주고 있다.

대부분 지방자치단체의 신청을 받아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투표, 전화설문, 엽서등을 통해 60%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건립이 확정되는데, 지금까지 12곳이 혜택을 받았다.

지난달 23일 방송에선 ‘민족 동질성 회복 및 화합’ 차원에서 방송국측이 스스로 평양을 13번째 후보지로 선정하고 지난달 30, 31일 이틀 동안 ‘!느낌표’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 투표를 받았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네티즌들의 반응이 싸늘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 특히 ‘!느낌표’시청자 게시판에는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아이디를 MICHI10으로 쓰는 한 네티즌은 “김정일은 돈이 많은 인간이에요. 핵을 만들어 돈 뜯고, 마약장사해서 돈 벌고, 미사일도 팔아 돈을 벌죠. 차라리 연변같은 곳에 도서관을 지어 주었음 해요. 조선족 동포들을 위해서요”라고 말했다.

'고민지'라는 네티즌은 "북한에선 인권탄압과, 개인의 우상화 등 국제사회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느낌표’에서 하는 일은 북한의 추한 현실 개선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김정일 정권의 선전전술에만 이용될 것이라고 봅니다”고 주장한다.

네티즌들은 특히 이 프로를 담당하고 있는 김영희 PD가 반대의견을 분석하면서 "우리나라부터 하자는 '이기적'인 발상과 먹고살기 힘든 북한에 도서관이 필요하겠느냐는 무용론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더욱 격렬하게 ‘!느낌표’를 성토했다.

최은정씨는“실현가능성이 희박하기에 반대했는데 20대들이 이기적이라서 그렇다고 비하하고 매도했습니다. 정말 좋아하던 프로였는데 지금은 ‘!느낌표’도 역시 시선끌기용 상업방송이구나 싶어 많이 실망했습니다”고 말했다.

반면 초등학생 이혜은양을 비롯한 일부의 네티즌들은 “평양에 도서관을 지어 북한 어린이들도 재미난 동화책을 많이 읽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해 도서관 건립에 찬성했다.

김영희 PD는 2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확한 투표결과는 말할 수 없지만 건립 추진 기준인 찬성 60%를 못 넘었다”며 “31일 저녁 7시쯤 잠정 집계했을 때만 해도 찬성 의견이 53%여서 희망을 가졌는데 자정 무렵 투표를 마감하고 최종 집계했더니 거의 50대 50 백중세였다”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현재 진행중인 전화조사와 엽서조사도 제작진의 기대만큼 찬성이 많지 않아 전망은 다소 어두운 상태. 최종결과는 27일 발표될 예정이다. 제작진측은 “현재 부정적인 의견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남은 시간동안 충분히 결과가 뒤집어질 수도 있다”며 희망을 잃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386세대와 달리 10, 20대가 대구 U대회 당시 발생한 북한 기자단과 보수단체의 충돌, 북녀 응원단의 ‘장군님 사진’ 소동 이후 북한에 대한 거부감을 심하게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반대 의견을 보인 젊은이들은 북한을 ‘남의 나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지적됐다. 이들은 민족 화해나 동질성 회복 보다는 직접적인 ‘실리’를 추구해 분단 고착화가 더욱 심해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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