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停戰 50돌]<中>도전받는 정전협정

  • 입력 2003년 7월 24일 1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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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7월 27일 유엔군사령부와 북한이 체결한 정전협정은 그 후 반세기 동안 한반도의 ‘불안한 평화’를 지탱해 오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북한의 군사적 모험주의와 이에 대한 한국 미국의 맞대응으로 인해 정전협정은 숱한 도전에 직면해야 했다. 일각에선 남북한이 정전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무력화된 협정 때문이 아니라 ‘힘의 균형’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외교안보연구원 윤덕민(尹德敏) 교수는 평화유지를 위해 “그래도 믿을 만한 것은 정전협정뿐”이라고 말한다. 정전협정이 걸어온 길을 살펴본다.》

▽협정의 4대 축=정전협정은 서언(序言)과 5조 63항으로 구성돼 있다. 핵심은 △전쟁 중단 및 지상의 군사분계선(MDL)과 해상의 북방한계선(NLL) 획정 △포로교환 △포로교환 및 휴전선 감독을 위한 중립국감시위원회(중감위) 구성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한 협정 위반 사안 처리 등 네 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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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上>우리사회에 끼친 영향

그러나 국방연구원 백승주 박사는 “5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MDL을 제외한 협정의 나머지 핵심 사안은 이제 유명무실해졌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포로교환은 정전협정 서명 9일 뒤인 8월 5일에 시작돼 1개월 만에 마무리됐다. 당시 송환을 희망하는 한국군 및 유엔군 포로 1만2773명과 북한 및 중공군 포로 7만5823명이 판문점을 통해 교환됐고, 76명은 결국 인도 등 제3국행을 택했다.

스위스 스웨덴 체코 폴란드 인도 등 5개국이 맡았던 중감위의 역할도 포로교환과 함께 상당 부분 마무리됐다. 북한은 92년 체코 폴란드 대표를 일방적으로 철수시키면서 중감위를 무력화시켰다.

군사정전위원회도 92년 이후 제대로 열리지 않고 있다. 남측은 92년 말부터 열린 장성급 회담으로 군정위를 대체한 것으로 간주하지만, 북측의 생각은 다르다.

▽꽃게와 햇볕에 도전받는 MDL과 NLL=99년과 지난해 꽃게잡이철(6월)에 두 차례 발생한 연평해전과 서해교전은 위기에 처한 NLL의 실상을 극명히 보여준다.

또 햇볕정책의 결과로 금강산 육로관광길이 열리고, 경의선·동해선 철도의 연결공사가 시작되면서 반세기 동안 금단의 지역이었던 MDL을 넘나드는 민간인의 수가 대폭 늘어났다. 개성공단이 들어서면 휴전선을 넘나드는 화물차량의 행렬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될 전망이다. 백 박사는 “접근이 엄격하게 제한되던 MDL에 민간인이 왕래하는 사실 자체가 달라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유엔군사령부가 현대아산의 ‘평양 정주영체육관’ 준공식 행사에 남측의 민간인 참관단 1000명이 휴전선을 통해 방북하는 것을 거부한 것은 MDL의 열린 틈이 아직은 극히 좁기만 한 현실을 상기시킨다. 유엔사의 조치는 민간인의 대거 왕래가 북한의 ‘휴전협정 무력화’ 시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북한, “정전협정을 바꾸자”=북한은 73년 이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할 것을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북한이 지난해 10월 25일 핵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북-미 불가침협정을 맺자고 주장한 것도 사실상 표현만 바꿨을 뿐이다. 북한은 이 같은 대체 협정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 서울대 백진현(白珍鉉) 교수의 분석이다.

북한은 미군 사령관과 북한-중국군 장성이 정전협정을 체결한 만큼 이를 대체할 평화협정도 한국을 배제하고 북-미간에 체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윤 교수는 “일본 패망 후 히로히토 일왕이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게 항복문서를 건넸지만 이는 연합군사령관에게 건넨 것이므로 당시 항복 조약이 미일간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며 정전협정도 미국이 유엔사 대표 자격으로 서명한 만큼 북측의 주장은 비논리적이라고 지적했다.

▽정전협정의 운명은=6·25전쟁을 실질적으로 끝내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선 언젠가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북한이 평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진보진영에선 미국의 적대적인 대북정책이 위기를 고조시킨다며 북-미 불가침협정과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기도 한다.

최근의 북핵 위기가 다자회담을 통해 평화적 해결책을 찾을 경우 중장기적으로 정전협정 대체 문제도 거론될 개연성이 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신세대 대학생들이 보는 분단… 통일… 미군…▼

차태서, 서영민, 김유나씨(왼쪽부터) 등 신세대 대학생 3명이 23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 앞에서 정전협정 체결 50주년을 맞은 오늘의 남북관계와 통일, 분단 문제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병기기자

《정전 50년. 강산이 다섯 차례나 바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전쟁과 분단, 통일 문제 등에 관한 젊은이들의 인식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23일 본보 14층 회의실에서 차태서(車兌西·21·서울대 외교학과 4학년) 김유나(金裕娜·23·이화여대 의류직물학과 4학년) 서영민(徐榮敏·21·서울여대 경영학과 3학년)씨 등 신세대 대학생 3명과의 대담을 통해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을 들어 보았다. 차씨는 평소 친구들과 정치문제에 관한 토론을 즐기는 편으로 내년에 학사장교로 군대에 갔다온 뒤 국제정치학도가 되는 것이 꿈이다. 장차 패션회사에서 디자이너나 상품기획자로 일하길 희망하는 김씨는 정치문제엔 큰 관심이 없다. 서씨는 평소 신문을 꼼꼼히 읽는 습관이 있으며, 졸업 후엔 미국 유학을 계획하고 있다. 》

―먼저 통일 문제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요.

▽김=이기적일 수 있지만, 당장 통일돼야 한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통일이 된다고 평화가 이뤄지는 건 아니잖아요. 평화가 더 필요하죠. 다만, 현재의 불안한 정세는 빨리 안정됐으면 합니다.

▽서=언젠간 통일이 오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라고 봐요. 역사적으로 분단국이 통일된 뒤 종교 체제의 차이로 상황이 악화된 경우가 많았어요. 50년간 이질화된 남북한 체제를 극복하려면 오랜 준비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차=분단 때문에 생기는 비용을 생각하면 통일은 절실합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화의 장애물은 정부가 강요한 ‘레드 콤플렉스’였어요.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고가 제한됐던 거죠. 집회에 참석하고 싶어도, ‘저 그룹이 빨갱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움츠러들기도 합니다. 통일 자체에 얽매이기보다는, 한 차원 높은 민주화를 통해 분단체제가 안겨준 제약을 극복하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하겠죠.

―전쟁과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선….

▽서=휴전상태인 6·25전쟁은 우리에겐 늘 안보위기 의식을 안겨줍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미군의 주둔은 필요해요. 언론보도를 보면 수치상으론 북한의 군사력이 미군의 존재를 제외한 한국군 전력보다 앞서잖아요. 미 2사단을 한강 이남으로 재배치한다는 뉴스에 깜짝 놀랐어요.

▽김=미군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촛불 시위 때는 솔직히 반미감정을 억누르기 힘들었어요. 과거엔 잘 모르던 주한미군 관련 사고 소식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강대국인 미국에 대해선 부러움과 시기가 섞인 생각을 갖고 있어요. 미국을 보는 시각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것 같고, 미국도 한국을 있는 그대로 봐 줬으면 좋겠어요.

▽차=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건 미국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94년 북한 핵위기 때도 미국은 전쟁 도상연습까지 했잖아요. 북한이 미치지 않았다면, 한국을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저 역시 미군 재배치 소식엔 ‘허걱’ 하고 놀랐습니다. 물론 북한이 핵개발을 통해 공갈, 협박하는 것은 불량국가다운 행동이지요.

―분단 현실은 어떻게 바라보나요.

▽김=6·25전쟁이 남침이란 점에는 이론이 없지만, 돌이켜보면 학교에서 주입시킨 반공주의는 사람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뭔가에 불안하게 만드는 기능을 한 것 같아요. 이젠 초중고교생도 인터넷을 통해서 학교교육 이외의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차=북한은 남한에 비해서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면서 정통성을 잃고 비판받아야 할 정권으로 변질했어요. 하지만 미국의 정책과 북한정권을 모두 양비론적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양쪽 다 위험한 도박을 하니까요. 현재의 판을 바꾸는 변화를 갈구하지만 너무 짓눌려서 새로운 생각을 꺼내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북한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은 뒤 ‘넌 보수’, ‘넌 한총련’이라고 규정짓는데 중간해법이 필요한 것 아닐까요.

▽서=북한의 경제 및 외교정책을 보면, 과연 이 나라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어요. 북한 지도자를 만날 수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간다고 보는지, 또 무엇을 위해 국가체제를 그렇게 운용하는지를 꼭 묻고 싶어요. 그렇지만 북핵 문제를 너무 강경기조로 풀어가는 것에는 반대해요. 성난 아이를 압박하면 반항하잖아요. 달래야죠. 우리가 너무 북한에 휘둘리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도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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