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반병희/盧, 후진타오를 이기려면

  • 입력 2003년 7월 6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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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는 얼마 전 외신기자용 보도자료 하나를 냈다. 6월 말 현재 베이징 24개, 상하이 40개, 홍콩 940개 등 1000개가 넘는 다국적 기업이 중국에 아시아본부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한국에는 1개뿐이다).

세계적 기업들이 중국행 급행열차를 앞 다퉈 타고 있는 데 대해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호에서 명쾌한 해설을 게재했다.

“문화혁명과 대약진운동의 실패를 바탕으로 새 지도부가 중국을 세계경제의 중심지로 만들고 있다.” 그러면서 한 줄 덧붙였다. “지도력의 안정으로 중국은 올해 7%대의 경제성장을 이룰 것이다.”

그 중심에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있다.

7일부터 중국을 방문하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이 후 주석을 만난다.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많다.

가난한 찻집 주인의 아들로 태어나 어렵게 공부한 끝에 명문 칭화(靑華)대를 졸업하고 인내와 성실로 10억인구의 지도자가 된 후진타오. 빈농의 아들로 독학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단기필마로 대통령이 된 노 대통령.

내세울 만한 ‘빽’이 없었다는 점, 국가 수반에 오른 지 4개월 안팎의 ‘젊은’ 지도자인 데다 취임한 뒤 후 주석이 사스로, 노 대통령은 노사문제 등으로 지도력을 시험받고 있는 것도 그렇다.

차이도 있다.

후 주석이 중국에서 가장 빈곤한 구이저우(貴州)성과 티베트자치구 등의 책임자로 수많은 위기를 넘기며 철저하게 지도력을 ‘검증’받았다면, 노 대통령은 1년이 채 안되는 해양수산부 장관직 이외는 공조직생활 경험이 별로 없는 ‘자유인’에 가깝다.

후 주석이 온화한 미소로 말하고 싶은 바를 대신하는 ‘절제’의 미학을 가졌다면, 노 대통령은 국민과의 직접 대화를 선호하는 대중 정치가적 성향을 갖고 있다.

노 대통령은 방중(訪中)을 앞두고 후 주석과 관련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따라서 직접 만난 뒤 후 주석에 대한 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하다.

다만, 이번 만남이 의례적인 행사가 되지 않기 위해 노 대통령은 미소 속에 가려진 후 주석의 또 다른 세계를 읽기를 바란다. 이런 맥락에서 후 주석의 7월 1일 공산당 창건 82주년 기념 연설은 노 대통령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후는 “당정(黨政)은 인민의 이익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해 봉사해야 하며 목표는 샤오캉(小康·의식주가 해결된 중류 생활) 사회 건설”이라고 강조했을 뿐,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정치 경제개혁은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기념식 뒤 간부들을 대상으로 이어지는 그의 설명. “개혁은 당(黨)이 아닌 인민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실천적 모범으로 인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노 대통령이 후 주석을 이기려면, 적어도 중국의 경제적 부상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으려면, 이처럼 후 주석의 가슴에 흐르고 있는 ‘겸손과 여유’, ‘엄격과 포용’, ‘단절과 승계’의 조화라는 후 주석 리더십의 본질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이럴 때에만 노 대통령은 노련한 후 주석으로부터 휘둘림을 당하지 않고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결실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반병희 경제부 차장 bbhe4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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