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시 美CRS 연구원 "김정일 당초엔 10억달러 요구"

입력 2003-06-26 06:49수정 2009-09-28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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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북한에 대한 비밀 송금 가능성을 제기했을 때 현대나 한국 정부는 내게 직접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부인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 주장이 대부분 사실로 확인돼 전문가로서의 신뢰를 회복하게 된 셈입니다.”

대북 송금 사건 특별검사가 수사 결과를 발표한 24일 미 워싱턴 의회도서관 내 자신의 사무실에서 본보 기자와 만난 래리 닉시 미 의회조사국(CRS) 선임연구원(사진)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사건에 관한 속 깊은 말들을 털어놓았다.

그는 지난해 3월 최초로 공개한 ‘한미 관계 보고서’에서 현대가 4억달러의 공식 지원금(금강산 관광 사업 대가) 이외에 4억달러를 비밀리에 북한에 제공했고 이 돈이 군사비로 전용됐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던 주인공.

―최초 보고서에서는 비밀 송금 액수가 4억달러였다가 나중에는 액수가 삭제됐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다양한 정보원들로부터 비밀 송금 액수에 관한 보고가 있었다. 실제로는 대부분의 정보원들이 매우 신중한 입장이어서 액수에 차이가 있었다. 현재는 5억달러로 확인되고 있지만 당시 소스들은 4억달러 이하로도 파악하는 등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5억달러 이외에 추가 송금은 없었나.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은 당초 10억달러를 한국측에 요구한 것으로 안다. 협상을 통해 5억달러로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이후 나머지 5억달러를 포기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갖고 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2차 정상회담을 간절히 원했으며 여러 차례 정상회담을 재촉했다. 김 위원장이 현대에 추가로 돈을 요구했을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비밀 송금액 5억달러와 현대의 금강산 관광 사업 대가가 북한의 군사비로 전용됐을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근거가 있는가.

“북한은 마약 수출과 미사일 판매 등으로도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관광사업 대가로 상당한 액수의 달러가 제공되고 정상회담 직전에 4억5000만달러가 비밀 송금된 1999년부터 2001년 사이에 북한은 상당량의 재래식 무기를 수입하고, 파키스탄에서 7000만달러를 주고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들여오는 등 무력을 증강시켰다. 현대가 제공한 달러는 북한의 주요한 외화 조달원이었으며 달러가 유입된 시기와 무기를 다량으로 구입한 시기가 일치하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당시 한국 정부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들여온 것은 몰랐을지 모른다. 그러나 북한이 카자흐스탄에서 전투기를 구입하고 미사일 부품을 들여오고 러시아에서 레이더 시스템을 들여온 것 등은 언론에도 보도된 만큼 한국 정부도 알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대가 제공한 돈이 북한이 조달한 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되는가.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북한이 조달한 외화가 얼마인지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지만 북한이 조달한 외화의 30∼45%는 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한국의 비밀 송금 명세를 알고 있었나. 알았다면 어떤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나.

“한국의 국가정보원은 현대의 비밀 송금 과정에서 미 정보기관들이 알 수 없도록 했다. 현대가 송금한 마카오 은행 계좌는 김 위원장이 직접 관리하는 공산당 39국의 비밀계좌였다. 따라서 미 정보기관들이 당시 송금 내용을 몰랐을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은 북한 군 고위 간부들과 정치 엘리트들의 지지와 충성심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매년 1억달러 이상의 돈을 해외에서 고급 승용차와 각종 사치품을 구입하는 데 쓰고 있다.”

―대북 송금 사건 특별검사는 현대가 현금으로 준 4억5000만달러 이외에 5000만달러가 평양의 체육관 건설 등에 들어갔다고 밝혔는데….

“평양체육관 건설에 관해 남북간에 합의서가 있다면 비밀 송금 액수에 포함시키기 어렵다고 본다.”

―최초의 대북 비밀 송금에 관한 보고서를 공개했을 때 현대나 한국 정부로부터 이의 제기나 항의는 없었나.

“나한테 직접 항의하거나 이의를 제기한 적은 없다. 그러나 현대가 비밀 송금을 부인했다는 것은 한국 언론을 통해 알고 있었다. 한국 정부는 당시 김대중 정부를 적극 지지하는 언론에 나의 신뢰를 떨어뜨리기 위해 엉터리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안다. 그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한국 전문가로서 내가 말하고 보고서로 작성한 내용에 대해 상당히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북한 핵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해결될 것으로 보는가.

“북한은 4월 중국 베이징(北京) 3자회담에서 미국을 협박했다. 핵물질을 다른 나라나 테러 조직에 확산시키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넘어서는 안 될 선이었다. 미국은 이후 북한에 대해 강제적인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은 베이징에서 했던 협박을 취소해야 한다.”

닉시 연구원은 1966년부터 37년 동안 CRS에서 연구원으로 일해 온 한반도 전문가다. 그는 1979년부터 지금까지 25차례나 한국을 방문했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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