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규장관 또 "입 때문에"…잇단 '말실수' 혼란 부추겨

  • 입력 2000년 10월 26일 23시 36분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의 ‘말실수’가 잦다.

그는 26일 세종대 세종연구원 주최 조찬강연에서 “제3차 장관급회담(제주)에서 북측이 인력부족 등을 이유로 내년 봄까지 일정을 늦춰줄 것을 통사정해 남북 학생교류, 경―평 축구부활 등을 추후 정례화하겠다는 이면 양해각서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장관은 불과 1시간도 안돼 통일부 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3차 장관급 회담에서 방문단 교환 등을 추진해 나가기로 원칙적으로 협의했으나 그 구체적 시기를 내년으로 하는 것을 양해했을 뿐 양해각서는 없다”고 말을 바꿨다.

어떤 사안이든 간에 ‘남북간에 이면 양해각서가 있었다’는 것은 중대한 얘기다. 그것은 남북관계의 급진전 속에서 다른 사안에서도 이와 유사한 이면 각서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을 수 있고 나아가 남북간 합의 전반에 대해 신뢰감을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미묘한 발언이 다른 사람도 아닌 대북정책의 실무 사령탑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은 심각한 ‘주의 의무의 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박장관은 더욱이 한번 뱉은 말을 1시간도 안돼 번복하기까지 했다.

박장관은 이날 강연을 시작하면서 그간 겪었던 몇 차례의 ‘말 사고’를 의식한 듯 “아내가 공식석상에서 이야기할 때 조심하라고 했다”며 “말이 잘못 전해지면 남측, 북측에서 모두 다 욕을 먹을 수 있으니 이 자리에선 각별히 조심하겠다”고 스스로 거듭 주의를 환기시키기까지 했다.

박장관은 6월20일 국회에서 “법적으로 국군포로는 없다”는 발언을 해 국방부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또 6월29일의 ‘새천년 포럼 간담회’와 7월4일 ‘21세기 동북아 포럼’ 토론회에서 “이산가족 문제와 관련, 장기적으로는 자유의사에 따라 남쪽에 있는 가족이 북에 살거나 북한에 있는 가족이 남쪽에 합류해 원하는 지역에 정착하도록 합의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 역시 설화에 시달렸다. 남북이 면회소 설치에 원칙적 합의만 한 상태에서 박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너무 나간 것이었다.

박장관은 이날 세종연구원 강연을 통해 ‘북―미 관계의 급진전에 밀려 남북관계가 소원해지는 것 아니냐’는 일반의 우려와 인식을 불식시키고자 했으나 결과적으로 불신만 가중시킨 꼴이 되고 말았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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