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조명록 방미 결산]한반도 평화 '커지는 물줄기'

  • 입력 2000년 10월 12일 19시 20분


북한과 미국 간에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리고 있다

북-미 양국이 조명록(趙明祿)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미국방문을 통해 양국간 적대관계를 청산키로 합의한 것은 남북관계의 진전에 이어 한반도 냉전구도의 남은 한 축에도 드디어 커다란 변화가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남북이 6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간의 정상회담을 통해 화해와 협력을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반세기동안 적대 상태에 있었던 북-미관계가 국교정상화의 급물살을 타게 됨에 따라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는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따라서 북한의 고위당국자로는 최초로 워싱턴을 방문해 빌 클린턴 대통령,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등과 북-미 관계 개선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 낸 조 부위원장의 활동은 양국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중차대한 영향을 미치게 됐다.

조 부위원장이 이번에 거둔 성과는 당초 예상을 넘어선 것이다.그의 방문 자체에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했던 워싱턴 외교가는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곧 평양을 방문키로 하고, 클린턴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관계개선을 위해 함께 일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사실이 전해지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USA투데이의 보도대로 클린턴 대통령의 연내 북한방문까지 실현된다면 북-미 관계 정상화는 그야말로 시간문제가 될 것이다.

올브라이트 장관도 11일 조 부위원장이 초청한 만찬석상에서 "귀하가 여기 있는 짧은 기간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 지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부위원장의 방미는 북한측 제안에 따른 것이므로 이는 북한의 치밀한 대미 외교가 결실을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인민군 차수인 조 부위원장이 10일 군복차림으로 백악관에 들어가 클린턴 대통령을 면담한 것은 다목적 포석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대외적으론 북한 군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끄는 변화와 개방을 지지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한편 대내적으론 군부가 대미 관계에서 역사적 돌파구를 만들었음을 인식케 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의 변화에 미온적인 군부를 다독거리는 효과도 염두에 둔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올브라이트 장관이 북한을 방문하게 되면 그동안 김계관(金桂寬) 외무 부상과 찰스 카트먼 한반도 평화회담 특사 간에 진행돼왔던 북-미 회담은 보다 고위 채널로 격상될 것이 확실시된다.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지난해 9월 윌리엄 페리 전대북정책조정관이 제시했던 대북정책 권고안(페리 프로세스)이 바야흐로 본궤도에 오르게 됨을 뜻한다. 페리 전 조정관은 당시 초미의 현안이었던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를 유예하는 대신, 한국 미국 일본이 대북관계를 개선할 것을 권고했었다.

한편 조 부위원장이 이번 방미가 남북정상회담의 결과임을 분명히 밝혔고, 미국도 남북대화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 것은 북-미 관계 개선이 북한의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을 부추길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이다.

북-미 양국이 이번에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와 미사일 문제 등 주요 현안을 다 해결하지 못한 것은 양국이 풀어야 할 현안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두 나라는 이제 관계개선을 향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다음달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상관 없이 이같은 대세가 계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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