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대법관 제청배경]"보다 젊게" "지역별로 골고루"

  • 입력 2000년 6월 24일 00시 05분


최종영(崔鍾泳)대법원장의 신임 대법관 6명 인선의 특징은 ‘기수파괴를 통한 대법관 조직의 연경화’와 ‘철저한 지역 안배’라고 요약할 수 있다.

사시 9회인 손지열(孫智烈)법원행정처 차장과 박재윤(朴在允)서울지법 민사수석부장판사가 6회와 8회 선배들을 제치고 제청됨으로써 대법관 14명 중 최대법원장과 송진훈(宋鎭勳)대법관을 제외한 12명이 사시 1∼9회 출신으로 폭넓은 분포를 보이게 됐다.

법조계에서는 사시 8회 출신이 다수 포진한 법원 인력구조상 9회에서 대법관이 2명이나 지명된 데 대해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대법원은 인선 배경을 설명하면서 “지역 안배를 통해 법관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한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호남과 영남출신이 각각 2명씩이고 충청 1명, 서울 1명으로 배분했다. 기존 대법관들을 포함하면 영남 5명, 서울 경기 4명, 호남 3명, 충청 1명.

법조인들은 “지명된 사람 대부분이 합리적 성향으로 특별히 흠잡을 것은 없다”며 인사청문회에서 큰 문제는 없으리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법조인들은 임명 제청된 6명보다도 6회와 8회의 유력한 후보자들이 탈락한 배경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법원 내에서 좋은 평판을 얻어온 사시 6회 권광중(權光重)사법연수원장과 강봉수(康鳳洙)서울지법원장, 사시 8회 권성(權誠)서울행정법원장, 신명균(申明均)서울가정법원장 등이 모두 탈락한 데 대해 놀라움을 표시했다.

한 원로 변호사는 “이들에게 흠이 있어서가 아니라 안배 차원에서 6명을 선발하다 보니 자리가 모자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인선이 법관 조직의 동요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추월당한 고위직 가운데 ‘법관인사의 숨통’을 의식해 용퇴하는 법관이 다수 나올 수 있고 이 경우 ‘법관의 임기보장’이 퇴색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현재 법원에는 사시 9회 출신에게 대법관 승진을 추월당한 고위직이 사시 6회 이상이 10명, 지법원장급에 두텁게 포진한 8회만 11명이다. 이번 인선 역시 과거처럼 공론화 과정 없이 이루어졌다는 점이 부담으로 남을 것 같다.

▼배기원 제청자▼

사시 5회에 수석합격했으나 영남지역에서만 향판(鄕判)으로 19년간 근무하다 88년 변호사 개업. 인선과정에서 전혀 하마평에 오르지 않은 인물인데다 대한변협이 추천한 변호사 3명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인선 배경에 관심.

97년 대구변호사회 회장 시절 결식아동돕기와 장애인보호 입법운동 등 사회활동을 활발히 해 후배 법조인들의 신망이 두텁다. 천주교 신자로 서민적이면서 소탈한 성격.

▼이규홍 제청자▼

민사법과 법정관리 화의 등 기업정리제도의 이론과 실무에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97년 서울지법 민사수석부장 시절 IMF 경제난 이후의 수백개 기업 법정관리 및 화의사건을 처리.

‘회사정리와 화의절차 처리상의 문제점’ 등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제주지법원장으로 근무하면서 피고인에 대해 수갑 포승사용 금지 원칙을 철저히 지키라는 엄명을 내려 화제가 되기도. 이규성 전 재경부장관이 친형.

▼이강국 제청자▼

온화하고 소탈한 성품이어서 선후배들의 신망이 두터운 편. 과거정권 시절 호남 출신이면서도 서울민사 및 형사지법 부장판사와 법원행정처 조사국장 등 요직을 거쳤다. 현 대법원장과는 서울고법에서 그의 배석판사를 한 인연이 있다.

‘헌법합치적 법률해석’이란 논문으로 헌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부친이 전주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지냈고 장남은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군법무관으로 복무 중.

▼박재윤 제청자▼

서울대 3학년 재학중 사시 9회에 최연소 합격한 수재형으로 법원장을 거치지 않고 고법 부장판사에서 대법관으로 직행하게 된 경우. 사법연수원 교수와 대법원 수석재판 연구관으로 장기간 재직하며 법률이론과 판례 연구에 기여했다는 평가.

최근 뮤지컬 ‘캐츠’ 저작권 관리업체인 영국의 ‘더 리얼리 유스풀 그룹’이 국내극단 ‘대중’을 상대로 낸 공연금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는 등 엄격한 판결로 유명.

▼손지열 제청자▼

‘행정 법관’과 ‘재판 법관’ 두 방면에서 모두 실력을 인정받은 꼼꼼한 관리형 판사. 93년부터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으로 재직하며 사법개혁 실무작업을 진두지휘했고 99년부터는 법원행정처 차장으로서 21세기 사법발전계획을 수립.

97년에는 김현철비리사건 1심 재판장으로 김씨에게 조세포탈죄를 인정,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받기도. 63년부터 9년간 재임한 고 손동욱(孫東頊)대법관의 장남.

▼강신욱 제청자▼

호리호리하고 날카로운 외모에 과묵한 성품. 5,6공 당시 대검중수부 과장과 서울지검 특수부장 등 수사요직을 거쳤으나 정치사건 수사와 관련해 구설수에 오른 적이 거의 없었다.

91년 서울지검 강력부장 시절의 ‘강기훈씨 사건’과 98년 대구지검장 시절의 청구비리사건 수사가 청문회에서 다소 부담이 될 가능성도. 전주지검장 시절에는 관내 조직폭력배를 일거에 소탕하는 뚝심을 보였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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