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사정 어떻게 될까?]『물증 나오면 본격수사』

  • 입력 1998년 7월 31일 19시 13분


경성그룹 특혜대출 비리와 청구비리 사건은 정 관계 유력인사의 청탁과 ‘주인 없는’ 금융기관의 특혜대출 및 방만한 경영을 한 부실기업의 비리가 얽힌 정경유착 비리의 전형이다.

그 피해는 금융기관과 아파트 분양사업에 투자한 서민, 회사 직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됐지만 검찰은 정치권이 연루된 이들 사건에 대해 소극적이다.

▼경성그룹 특혜대출▼

경성그룹은 84년 이재길(李載吉·구속)회장이 경성건설을 대전에 설립한 이후 ㈜경성과 중앙상호신용금고 등 13개 기업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 과정에서 중앙신용금고에서 1천1백억원의 고객돈을 끌어썼다.

경성은 이 돈을 갚기 위해 정치권 로비를 통해 정부재투자기관인 한국부동산신탁(한부신)에서 특혜지원을 받아냈는데 이것이 경성그룹 비리의 핵심.

경성은96년1월경기고양과기흥등의 아파트와 상가 건축사업을 위해 한부신과 신탁계약을 하고 2년동안 2천8백28억원을 지원받았다. 이 중 9백59억원은 담보도 없이 이뤄진 불법 대출이었다.

경성비리는 3월 국민회의 국창근의원이 한부신이 ㈜경성 등에 1천억여원을 운영자금으로 편법 지원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표면화했다.

한부신이 5월 이재국(李載國)전사장 등 3명을 업무상 배임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은 한달보름 동안의 수사를 통해 한부신의 특혜지원 배경에 이전사장과 정관계 인사 15명의 친분 및 청탁이 작용한 사실을 밝혀냈다.검찰은 수사발표 때 이들의 명단을 밝히지 않았으며 기소 후 법원에 넘긴 수사기록을 통해 정치권 인사들의 연루사실이 공개됐다.

검찰은 이들이 경성그룹에서 직접 또는 제삼자를 통해 대출청탁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뿐이며 국민회의 정대철(鄭大哲)부총재를 제외하고는 돈을 받은 사실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 축소 및 은폐의혹이 제기되자 31일 휴가중이던 박순용(朴舜用)서울지검장이 출근해 직접 “축소은폐는 전혀 없으며 한점 부끄럼 없는 정정당당한 수사”라고 밝혔다.

수사팀도 “무능해서 밝혀내지 못했다는 비판은 수용하겠지만 정치권의 압력이나 눈치 때문에 축소은폐했다는 지적은 수긍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신 이 사건 재판과정 등에서 관련자들의 새로운 진술이나 물증이 나오면 언제든지 재수사하겠다는 것.

그러나 관련자들이 법정에서 새로운 진술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정치인들에 대한 재수사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청구비리사건▼

청구그룹 장수홍(張壽弘)회장의 개인비리 수사는 수사착수 20여일만인 6월16일 이미 끝났다. 현재는 이른바 ‘장수홍 리스트’라고 불리는 장회장의 정치권 로비부분에 대한 수사만 남은 상태.

청구그룹에 대한 수사는 현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산다’는 잘못된 기업관행에 철퇴를 가한다는 차원에서 시작됐다.

수사 결과 장회장은 회사자금 1천4백72억원을 유용하고 이 중 3백억원을 수익증권이나 양도성예금증서 등의 형태로 빼돌린 사실이 밝혀졌다.검찰은 장회장이 빼돌린 재산 가운데 동생 명의로 숨긴 개인재산 1백9억원을 찾아냈다.

그러나 검찰은 사용처가 드러나지 않은 2백15억원이 비자금으로 조성돼 정치권에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보고 계좌추적을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여야 중진 전현직 의원들에게 청구 돈이 흘러들어간 사실을 확인했다. 김태정(金泰政)검찰총장은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청구에서 돈이 건네진 정치인의 이름이 청구 관계자의 진술에서 나오고 있다”며 ‘장수홍 리스트’의 존재를 인정했다.

현재 단순한 진술이 아니라 계좌추적을 통해 장회장에게서 수천만원 이상의 돈을 받은 정치인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관계자는 “계좌추적에서 정치인 명단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달 중순 이전에 수사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청구에서 돈을 받은 정치인을 수사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정치인 비리를 수사하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대통령선거를 전후해 쓴 정치자금 등 논란과 소란이 제기될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치풍토를 쇄신해야 한다는 여론을 의식해 명단은 공개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형·조원표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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