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님 대신 할매로 불러줘 기뻐… 한센인 친구로 기억됐으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11년만에 소록도 찾은 스퇴거 수녀… 1962년 27세때 첫 인연
43년간 봉사하다 2005년 고국으로… “한센인, 가족품 안길때 가장 행복”

26일 전남 고흥군 국립소록도병원에서 마리안 스퇴거 수녀(82·맨위쪽 사진 왼쪽)가 11년 만에 소록도로 돌아온 소감을 밝히고 있다. 아래 사진은 1970년 스퇴거 수녀(뒷줄 왼쪽)가 소록도병원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소록도(고흥)=임현석 기자 lhs@donga.com
26일 전남 고흥군 국립소록도병원에서 마리안 스퇴거 수녀(82·맨위쪽 사진 왼쪽)가 11년 만에 소록도로 돌아온 소감을 밝히고 있다. 아래 사진은 1970년 스퇴거 수녀(뒷줄 왼쪽)가 소록도병원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소록도(고흥)=임현석 기자 lhs@donga.com
“제가 소록도를 처음 찾았을 때 이곳 병원에 한센병 환자들이 10∼12명씩 한 방에서 잤어요. 지금은 병원이 참 깨끗하고 (시설도) 좋아졌군요.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애써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푸른 눈의 수녀는 회한에 잠긴 표정으로 국립소록도병원 복도를 천천히 거닐었다. 1962년 스물일곱의 나이에 한 가난한 나라의 섬을 찾아 43년간 한센병 환자를 돌본 마리안 스퇴거 수녀(82)였다. 그가 기억하는 소록도병원은 1930년대 지어진 낡은 병동이었다. 11년 만에 소록도에 돌아온 소감을 묻는 질문에 스퇴거 수녀는 전라도 억양이 섞인 한국말로 “이렇게 아름다운 섬으로 돌아올 수 있어 정말 기쁘다”며 웃었다.

스퇴거 수녀와 동료 마르그레트 피사레크 수녀(81)가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 있는 간호대학을 졸업한 뒤 한센인들을 돌보기 위해 소록도에 온 것은 1962년. 간호인력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한국 정부와 전남 고흥군은 올해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을 맞아 헌신을 보여준 이들 두 수녀를 소록도에 초청했다. 그러나 피사레크 수녀는 현재 치매를 앓고 있어 스퇴거 수녀만 한국을 찾았다.

한센인에 대한 편견 때문에 의사마저 접촉을 꺼리던 1960년대 두 수녀는 맨손으로 한센인의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고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하면서 한센인들을 돌봤다.

‘할매’로 불리며 한센인들과 인고의 세월을 보낸 두 수녀는 2005년 건강이 악화돼 고향인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그해 소록도를 떠날 때 편지 한 장만 남겼다. 편지에는 “환자들을 돌볼 수 없어 부담만 주는 것이 미안하다”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스퇴거 수녀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소록도를 떠나는 결정이 얼마나 어려웠다고요. 몸이 아파 환자들을 돌볼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이 아파서 며칠씩 울었어요. 갑자기 떠난 뒤에도 소록도 친구들에게 계속 편지를 보내 안부를 전했습니다”고 말했다.

소록도로 돌아온 스퇴거 수녀를 지금도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소록도성당에서 미사를 본 14일, 한센인과 의료진이 스퇴거 수녀를 알아보고 “할매”라고 부르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주민들은 과일을 주려고 다가오거나 손을 꼭 잡기도 했다.

“간호사님이라는 말에서 ‘님’이라는 말이 부끄러웠죠. 친근하게 대해주는 ‘할매’라는 말이 좋아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한센인과 주민들도 저를 좋은 친구로 생각해줬으면 해요.”

스퇴거 수녀는 언론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별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내가 한 일보다 더 높게 평가받는 것이 더 힘들고요. 어려운 사람들 속에서 예수님을 보고 부름을 따랐을 뿐예요.”

“그러면서 이곳에서 치료를 잘 받고 나간 사람들이 가족 품에 안기는 것을 볼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스퇴거 수녀가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어 보인 뒤 한 말이다.

소록도(고흥)=임현석 기자 lhs@donga.com
#소록도#스퇴거 수녀#한센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