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작가·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유난히 지친 날이었다. 여름 냄새가 눅진한 퇴근길, 오랜만에 만난 후배와 생맥주 한 잔씩을 앞에 두고 앉았다. 이런저런 하소연을 늘어놓자 그는 사뭇 비장한 표정으로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말로만 듣던 ‘말랑이’였다. 귀여운 감자빵 모양이 얼핏 보면 진짜 빵인 줄 헷갈릴 정도였다. “한번 만져 보실래요?” 속는 셈치고 손에 쥐어 보았다. 부드럽고 쫀득쫀득한 그 감촉이 이상하게 좋았다. “뭐야, 이거 왜 재밌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후배가 웃으며 말했다. “다들 그래요.”
말랑이를 어렴풋이 이해할 때 즈음, 또 다른 이름이 들려왔다. 일명 ‘왁뿌볼(왁스 뿌수기 볼)’. 점토 겉면을 왁스로 코팅한 볼인데, 양손 가득 쥐면 ‘바삭’ 하는 소리와 함께 껍데기가 갈라지면서 말랑한 슬라임이 흘러나온다. 말랑이가 눌렀다가 다시 돌아오는 회복의 감각이라면, 왁뿌볼은 단단한 껍데기를 깨뜨리는 해방의 감각에 가깝다. 그 찰나의 경험을 위해 적게는 2000, 3000원부터 많게는 1만 원까지도 지불하는 것이다.
촉감 완구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소셜미디어는 리뷰 영상으로 도배돼 있다. 그저 만지고 터뜨릴 뿐인 영상들이 몇백만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한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완구거리는 말랑이와 왁뿌볼의 성지로 자리 잡아서 ‘다 큰 어른들’이 지폐 몇 장을 들고 쇼핑에 나선다. 실패 없는 쇼핑을 위한 완구 매장 추천부터 주차 꿀팁까지, 고작 장난감 하나를 사기 위한 어른들의 진심이 의아할 정도다. 혹자는 퇴행이라며 혀를 찰지도 모를 일이다. 대부분 일회성으로 소비되고 폐기되기에 환경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단지 철없는 유행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어딘지 애잔한 지점이 있다.
우리는 종일 화면을 본다. 쇼츠를 넘기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손은 쉼 없이 움직이지만 정작 손끝으로 세상을 느낄 일은 많지 않다. 애써도 손에 잡히는 것 하나 없는 날들의 연속에서 감각은 점점 무디어진다. 어쩌면 그에 대한 본능적인 반작용으로 오히려 가장 원초적인 감각을 찾는 것은 아닐까.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거대한 답보다 작은 감각을 믿는다. 거창한 위로보다 손끝에서 확인되는 작지만 확실한 감각 하나가 더 절실한 것이다. ‘만지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후기들이 보여주듯이, 실제로 부드러운 무언가를 반복적으로 만지는 행동은 스트레스와 불안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세상은 분명 유연해졌다. 평생직장은 사라졌고, 관계는 느슨해졌으며, 정답 없는 선택들은 늘어간다. 하지만 그 안을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은 어쩐지 더 굳어만 가는 듯하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자리에는 매번 새로 증명해야 하는 불안이 들어섰고, 느슨해진 관계는 편리한 만큼 쉽게 끊어졌으며, 선택지가 많아졌다는 것은 곧 실패의 책임도 온전히 혼자 짊어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래서 오늘도 손안의 말랑한 것들을 찾아 나서는 것인지도. 세상에 맞서 너무 단단해진 마음을 조금은 말랑하게 되돌리기 위해서. 그런 의미에서, 말랑이 함부로 비웃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위로가 되는 사람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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