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지옥이 있다. 누군가는 직장 문제로, 누군가는 가족 문제로, 또 누군가는 경제적인 문제로 밤을 지새운다. 타인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할 나만의 비밀을 품고 학교에 가고, 출근을 하고, 밥을 짓는다.
때로는 깊은 슬픔에 잠겨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서는 일조차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세상일이 내 맘 같지 않고, 불행이 파도처럼 덮쳐 오는 것 같다고 느낄 때 나는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자”는 영화 속 제인의 말을 떠올린다. 제인은 행복을 약속하는 대신 살아남기를 권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행하더라도 오래오래 살아 보자는 말이 “행복하게 살자”는 말보다 더 큰 위로로 다가온다.
불행을 견디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예외적인 사건으로 여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배우 박신양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다는 러시아 유학 시절 “선생님, 저는 왜 이렇게 힘든가요?”라고 묻자 그의 스승이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답을 건네줬다는 일화가 있다. 언제부터 우리는 불행을 행복의 반댓말이라고 정의하게 됐을까.
생각해 보면 누구나 행복을 꿈꾸지만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견디며 살아간다. 어쩌면 불행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손님인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행복해지겠다는 다짐 대신 내게 당도한 불행과 손잡고 오래오래 살아 보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맞이하고, 또 하루를 살아내는 일.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지난한 삶을 견디어 냈을 때 드문드문 찾아오는 행복의 귀함도 온전히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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