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우편함에 자동차세 고지서가 들어 있었다. 보자마자 한숨이 나왔다. ‘이번엔 또 얼마나 나왔으려나.’ 곧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차를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자동차는 오래전부터 애물단지가 된 상태였다. 타고 다니는 시간보다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부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다니느라 꼭 필요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세금과 유지비는 계속 나가는데 고작해야 한 달에 몇 번 시동을 거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자동차를 쉽사리 정리하지 못했다. 오히려 새 차를 사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10년이 다 된 차는 한눈에도 성한 데가 별로 없었다. 여기저기 흠집이 많았고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다. 그래서인지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면 차부터 신경 쓰였다. 차가 내 이미지를 깎아내릴까 봐 멀찌감치 세워 두고 한참을 걸어간 날도 있었다.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자동차세 몇십만 원은 부담스럽게 여기면서도 정작 새 차를 알아보는 일은 멈추지 못했다. 내 마음 한쪽에서는 퇴직했으니 아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래도 차는 웬만한 것은 타야 하지 않겠냐고 속삭였다. 기준이 없으니 결정은 미뤄졌고 스트레스만 쌓여 갔다.
그러다 문득 김 선생님이 생각났다. 선생님은 몇 달 전부터 내가 새로 나가는 모임의 멤버였다. 60대 중반으로 대기업 재무 업무를 하다 퇴직하고, 지금은 집 근처에서 작은 부동산을 운영하고 계셨다. 김 선생님이 특별하게 느껴진 건 두 번째 만남 때였다. 그날 회원들이 모두 모이자 선생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커피 주문 받겠습니다.” 순간 다들 놀라는 표정이었다. 솔직히 나도 커피가 마시고 싶었지만 혼자 먹기 눈치 보여 망설이고 있던 참이었다. 서로 잘 모르는 사이였기에 선뜻 나서기도 쉽지 않았다. 선생님께서도 다르지 않으셨을 텐데 주저하지 않고 손을 드셨다.
선생님이 계산하신 커피 한 잔은 적잖은 역할을 했다. 어색했던 분위기가 금세 풀렸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이후로는 돌아가며 간식을 준비하는 문화도 생겼다. 누군가는 집에서 쿠키를 만들어 왔고, 또 다른 이는 손수 커피를 내려 왔다. 선생님의 작은 배려 하나가 모임 전체를 편안한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그런 걸 보면 사람 사이의 거리는 대단한 무언가로 좁혀지는 게 아니었다.
한참 뒤 김 선생님께 우스갯소리로 여쭸다. “사업 잘되시나 봐요.” 선생님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저으셨다. “그거랑은 전혀 상관없어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다. 퇴직 후 가장 먼저 줄어드는 건 돈이 아니라 사람이더라고. 그래서 사람과 관련된 일에는 돈을 무조건 아끼지만은 않게 됐다고. “저는 술값은 못 냅니다. 커피값만 낼 수 있어요.” 농담처럼 던지신 말이었지만 그냥 흘려들을 수 없었다.
김 선생님을 떠올려 보니 내가 갈피를 잡지 못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선생님은 돈 씀씀이에 대한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계셨다. 불필요한 지출은 한 푼도 아까워하셨지만, 써야 할 곳에는 망설임이 없으셨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분야를 배우고, 삶의 반경을 넓히는 일들이 그랬다. 선생님에게 돈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지켜가는 수단처럼 느껴졌다.
반면 나는 달랐다. 나는 스스로를 포장하기 위해 돈을 쓰는 경향이 있었다. 자동차가 대표적이었다. 차는 이미 내 생활에서 비중이 줄었는데도 나는 차를 통해 퇴직 후 달라진 현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멋진 차를 원하는 게 아니라 멋지게 보이는 나를 꿈꿨다고나 할까.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당당한 척 계산대로 향하는 행동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그러는 내게 김 선생님의 모습은 확실한 이정표가 됐다. 타인의 이목에 얽매여 껍데기를 유지하려던 나와는 달리, 선생님의 시선은 온전히 자신의 삶을 향해 있었다. 남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고민하지 않으니 돈 앞에서도 위축되거나 흔들릴 필요가 없었다. 선생님이 유독 인상 깊었던 이유는 형편이 좋아 보여서가 아니라 삶의 중심이 단단해 보였기 때문이다.
퇴직한 많은 이들이 얇아지는 지갑을 걱정한다. 하지만 정작 두려워해야 할 점은 ‘무엇을 위해 돈을 쓸 것인가’에 대한 나만의 기준이 없다는 사실이 아닐까. 명확한 잣대 없이 돈을 사용하면 체면과 주변의 평가에 끌려다니기 쉽다. 그렇게 쓰는 돈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끊임없는 갈증만 불러올 뿐, 결코 불안감을 잠재울 수 없다.
어쩌면 김 선생님은 아셨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퇴직이란 직장을 떠나는 것만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나를 움직여 왔던 타인의 시선과도 결별해야 하는 것임을. 퇴직 후 삶의 행복과 여유는 확고한 나의 기준을 세우는 데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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