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용 칼럼니스트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앞날이 불안해 보이는 문화산업계에서 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나는 운이 좋아 어릴 때부터 흥미를 느껴온 잡지 에디터 일과 그와 관련된 일을 계속하고 있다. 요즘처럼 젊은 세대의 사회 진입이 어려운 시기에 좋아하는 일에 무조건 매진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만류만 하는 것도 퉁명스러운 일이라, 나름의 단계별 설명을 떠올려 봤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때 겪는 3단계의 마음 변화다.
첫 번째는 ‘진입 단계’, 좋아서 시작하는 시기다. 내가 속한 업계를 포함한 문화산업계 전반의 공통점은 진입 경로가 불분명하고 보상이 미약하다는 점이다. 지인을 만들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하든, 학원을 다니든, 그 과정에서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일이 찾아온다. 그게 별일이 아니어도 당시에는 큰 기회로 느껴진다. 좋아하던 일을 시작하는 거니까. 그때까지는 내부인이 아닌 외부인, 생산자보다 소비자에 가깝다. 괜찮다. 누구나 그렇게 시작하니까. 그렇게 어떤 업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다 보면 두 번째 단계가 온다. 바로 좋아서 참는 시기, ‘인내 단계’다. 진입 경로가 모호하고 보상이 미약한 업계의 특성은 이 단계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경험과 연차는 쌓이고 생계도 꾸려가지만, 이 상황이 앞으로 얼마나 발전적으로 변할지는 알 수 없다. 진입 단계와 인내 단계에서 일을 시작한 동료들은 슬슬 떠나간다. 다른 직군으로, 다른 지역으로, 혹은 결혼 등 삶의 다른 국면으로, 아니면 아무에게도 행선지를 알리지 않는 식으로 말이다. 이 시기에는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시간도 빨리 간다.
시간이 더 지나면 어느새 세 번째 단계인 ‘응고 단계’에 들어선다. 좋게 말하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아니면 다른 길을 가기에는 이 길로 너무 멀리 와버렸거나. 자리를 잡은 듯 보이지만 안정적인 무언가나 확실한 성취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해온 것을 버리자니 아깝고, 앞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여유도 없다. 좋은 일들 덕분에 ‘내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으면서도 스스로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기에도 모호하다. 실은 지금 내가 그 단계에 있다.
경험상 각 단계를 지날 때마다 고비가 찾아왔다. 잡지 에디터인 내 경우를 돌아보면 진입 단계부터 ‘이때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얄궂게도 재미있는 일들이 생겼다. 모든 것이 업무 경험이 됐다. 개인적으로는 점점 더 고되어졌고, 업계도 변해갔다. 진지하게 ‘더 늦기 전에 이 일에서 빠져나와야 하나’라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동시에 그것을 견뎌낼 만큼 좋은 일들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내 모습이 됐다.
이런 단계들 사이에서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좋아하는 마음은 좋지 않은 마음을 지워주는 것 같다. 좋아하는 마음이 시작하던 시기의 불안과 견디는 시기의 고통을 상쇄해 준다. ‘그래, 그래서 내가 이 일을 좋아했지’ 혹은 ‘그래, 내가 이런 걸 하고 싶었지’라고 느끼는 기분이 무엇보다 큰 기쁨이 된다. 다만 그 기쁨이 삶에서 정말 중요한지 혹은 스스로를 속이는 달콤한 주문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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