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장택동]좋은 판사, 나쁜 판사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1월 29일 23시 19분


법정에서 판사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유죄와 무죄, 승소와 패소가 달려 있으니 소송 당사자와 변호인들은 판사 앞에서 몸을 낮출 수밖에 없다. 하지만 “판사는 재판할 때 재판을 받는다”는 말이 있다. 법정 내 모두가 판사의 발언과 태도, 실력을 꼼꼼히 지켜보고 기억하게 된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27일 내놓은 법관평가 결과에는 때론 당사자와 변호인을 경악하게 만드는 판사들의 실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명의 판사가 ‘하위법관’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는데,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막말’이었다. 서울의 한 법원에서 근무하는 A 판사는 조정 권유를 거부하는 피고에게 “예전 같았으면 곤장을 칠 일”이라고 했다. 조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땐 재판을 진행하면 될 뿐 ‘곤장’ 운운할 일은 아니지 않나. 이 판사는 다른 재판에서 변호인에게 “욕 나오게 하지 말라”고 하는 등 수차례 모욕적인 발언을 한 전력도 있다고 한다. A 판사뿐 아니라 피고인에게 “아이 씨”라고 하거나 “꼴도 보기 싫다”며 질책하고, 변호인에게 “쓸데없는 소리 말라”고 면박을 준 판사들의 언행은 도를 넘었다.

▷“눈 속에 비친 ‘눈가 이슬’이 진심을 말해준다”며 가해자를 편드는 듯한 태도를 보이거나 재판 중 감정적 발언을 하면서 눈물을 흘린 판사 역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판결의 공정성에 의심을 불러온다는 이유에서다. 독단적인 재판 진행으로 도마에 오른 판사들도 있다. “할 말이 있다”는 당사자를 법정에서 끌어낸 사례, 변호인이 재판 진행에 이의를 제기하자 돌연 피고인을 구속한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판사에게 주어진 소송지휘권을 지나치게 휘두르면 모자란 것만 못한 법이다. 이런 판사들의 행태가 사법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퍼뜨리는 주범 중 하나일 것이다.

▷재판에 직접적인 이해가 걸려 있는 변호사가 판사를 평가하는 건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있다. 변호사들의 증언 가운데 부정확한 내용이 들어 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서울변회는 적어도 10명 이상의 변호사로부터 평가를 받은 법관 중에서만 ‘하위법관’을 정하기 때문에 특정 사건에서 패소한 변호사의 일방적 비난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매년 실시하는 평가에서 반복적으로 문제가 지적되는 판사들에 대해선 사법부도 면밀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반면 ‘우수법관’으로 선정된 72명의 판사는 ‘피고인의 주장 경청’, ‘친절한 태도와 차분한 말투’, ‘소송관계인을 존중하는 태도’, ‘납득할 수 있는 설명 제시’ 등의 이유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기본에 충실했다는 얘기다. 이런 판사들과는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기 때문에 패소해도 수긍할 수 있었다고 변호사들은 입을 모았다. 사법부와 판사가 신뢰를 쌓을 방법이 그렇게 어렵거나 멀리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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