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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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장택동 논설위원입니다.

will71@donga.com

취재분야

2024-06-13~2024-07-13
칼럼100%
  • [횡설수설/장택동]‘VIP는 해병대 사령관’이라더니 이번엔 “김 여사, 하지만 허풍”

    “내가 VIP한테 얘기할 테니까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사표 내지 마라(고 했다)”는 블랙펄인베스트먼트 전 대표 이모 씨의 녹음파일이 공개된 이후 세간의 관심은 ‘VIP의 정체’에 집중돼 있다. ‘구명 로비설’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누가 로비를 받았는지에 따라 사건의 파장과 성격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이를 의식해서였는지 이 씨는 당초 “VIP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라고 했다가 “말이 되냐”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그는 “VIP는 김 여사를 뜻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이 씨와 김건희 여사의 관계를 알려면 먼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살펴봐야 한다. 약 3년간 진행된 주가조작은 1, 2차 시기로 나뉜다. 1심 법원은 2010년 10월 시작된 2차 시기에서 이 씨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고, 이 씨 또는 블랙펄인베스트의 이사가 김 여사의 계좌를 운용하면서 시세 조종에 이용했다고 판단했다. 이 씨는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에게서 김 여사를 소개받았다고 한다. 두 사람이 10여 년 전부터 아는 사이였다는 얘기다. ▷이 씨는 VIP를 언급한 것은 “허풍 과시였을 뿐”이라고 했다. 변호사 A 씨가 이 씨와의 통화를 녹음한 것은 이미 이 씨가 김 여사의 계좌를 관리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인 지난해 5월부터 올해 6월 사이였다. 김 여사와의 관계를 알 만한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섞어 일종의 호가호위를 했다는 게 이 씨의 주장인 셈이다. 공개된 녹음 내용 중에는 모 경무관을 언급하며 “별 2개(치안감) 달아줄 것 같아”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건 허언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흘려듣기 어려운 대목도 적지 않다. ▷그는 지난해 7월 통화에서 “아마 내년쯤에 발표할 거거든. 해병대 별 4개 만들 거거든”이라고 했다. 해병대를 독립시켜 ‘4군 체제’를 만들고 해병대 사령관을 대장으로 격상한다는 취지다. 이 씨는 “신문 기사를 보고 한 얘기”라고 했지만 별도의 채널로 정보를 얻었을 가능성도 있다. 법조계 일각에선 임 전 사단장이 지난해 8월 두 번째 사의를 표명했을 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게 로비와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 씨가 국방부 장관 인사에 개입한 듯한 발언을 했다는 의혹 역시 확인이 필요하다. ▷이 씨와 임 전 사단장은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올해 3월 이 씨의 녹음파일에는 A 씨에게 “너는 성근이를, 임 사단장을 안 만났구나”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자신은 임 전 사단장을 만난 적이 있다는 전제가 깔린 발언으로 들린다. 김 여사가 결혼(2012년 3월)한 이후 연락한 적이 없다면서 지난해 김 여사를 갑자기 ‘VIP’라고 언급했다는 이 씨의 주장도 수상하다. 이런 의혹들 하나하나가 말끔하게 규명돼야 한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3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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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장택동]이재명 판결 앞두고 법원으로 전선 넓힌 민주당

    “사법부는 칼에도, 지갑에도 영향력이 없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이자 법률가였던 알렉산더 해밀턴이 1788년에 쓴 글이다. 정책을 집행할 힘이 있는 행정부, 예산을 좌지우지하는 의회에 비해 사법부는 힘이 없다는 취지다. 그는 “(입법부, 행정부에 비해) 사법부는 본질적으로 취약해 그들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직 삼권분립의 개념이 뿌리내리지 않았던 시절의 얘기다. 지금도 해밀턴을 인용해 ‘칼도 지갑도 없는 사법부’라고 말하는 판사들이 있지만, 이제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원의 위상은 탄탄하다. “어느 칼이며, 어느 지갑도 사법부에 복종하지 않는 데가 있나”라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말처럼 법치주의 사회에서 판결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정당이나 정부는 내심 못마땅한 판결이 나오더라도 겉으로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말하는 게 정석처럼 돼 있다. 판사 비판에 입법권까지 동원한 파상공세 하지만 요즘 더불어민주당의 분위기는 다르다. 지난달 7일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사건 1심 재판부가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에게 유죄를 선고한 이후 법원을 향해 파상공세를 펴고 있다. 이재명 전 대표는 “북한에 가겠다고 돈을 수십억 원씩 대신 내달라고 하면 중대범죄인데 이 전 부지사가 그걸 요구했다는 것인가. 이 전 부지사가 바보냐”고 했다. 이 전 부지사가 쌍방울 측에 이 전 대표의 방북 비용을 대납하게 했다고 판시한 법원을 겨냥한 발언으로 들린다. 민주당 의원들은 더 노골적이다. 비판을 넘어 인신공격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정치검찰 사건조작 특별대책단’은 “편파적 판결” “자의적 증거 판단”이라며 재판부를 공격했고, 민형배 의원은 “정치 검찰과 정치적 판결이 악의 고리로 연결된 느낌”이라고 날을 세웠다. 김승원 의원은 소셜미디어에 “판결문은 판사의 선입견, 독선과 오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적었다.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 전 부지사 담당 재판장에 대한 탄핵까지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사법부 통제를 강화하는 법을 만들자는 움직임도 있다. 대표적인 게 ‘법 왜곡죄’다. 판사나 검사가 법을 왜곡해 적용하면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이 법이 도입되면 판결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고소·고발을 쏟아내 법관들을 위축시킬 것이다. 최근 민주당 의원들이 대법원을 대구로 이전하자는 법안을 낸 배경도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명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박찬대 원내대표가 이 전 부지사 판결을 비판하며 “심판도 선출돼야”라는 글을 올린 것도 심상치 않다. 법원의 시간… 현실로 다가오는 ‘사법 리스크’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단순히 하나의 판결에 대한 불만 표출 차원을 넘어 민주당이 검찰에 이어 법원으로 전선(戰線)을 확대했음을 보여준다. 검찰이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해 이 전 대표를 기소하면서 이 전 대표에 대한 주요 수사는 일단락됐고, 이제 법원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당장 이 전 대표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10월경 1심 선고가 이뤄질 전망이다. 위증교사 사건도 1심 공판 절차가 마무리 단계다. 정면승부는 지금부터다. 그동안 민주당은 이 전 대표에 대한 잇따른 기소를 ‘정치검찰의 조작’이라고 비난해왔다. 그 주장대로라면 법원의 판결은 이 전 대표의 무고함을 증명하고 검찰에 일격을 가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사자는 조용히 판결을 기다리는 게 인지상정일 텐데 민주당은 오히려 법원을 몰아붙이고 있다. 힘으로 누를 수 있다는 자신감인가. 권력분립 원칙에 어긋난다는 여론의 비판도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이는 이 전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민주당에 얼마나 현실적이고 위협적인 문제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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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가족이라고 무조건 절도·사기죄 안 묻는 건 헌법불합치’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법률 용어였던 ‘친족상도례’가 널리 알려진 것은 방송인 박수홍 씨 사건 때문이었다. 박 씨의 형이 박 씨 돈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을 때, 갑자기 박 씨의 아버지가 ‘박수홍의 돈은 형이 아니라 내가 썼다’며 주장하고 나서면서다. 부모는 자녀의 동의 없이 돈을 빼내도 처벌받지 않는 ‘친족상도례’ 조항을 이용해 큰아들의 처벌을 면해 주려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무성했던 것. 헌법재판소가 어제 ‘친족상도례’ 조항의 적용을 중지하고 내년 말까지 법을 개정하라며 헌법불합치를 결정했다. ▷친족상도례의 대상은 두 부류다. 먼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등은 절도 사기 횡령 등의 재산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형(刑)이 저절로 면제된다. 사이가 좋든 나쁘든, 범죄 액수가 많든 적든 예외가 없다. 다음으로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친족은 피해자가 고소를 하는 경우 수사와 기소를 할 수 있다. 이른바 ‘친고죄’다. 이 중 헌재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부분은 ‘형 면제’ 부분이다.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할 경우 피해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킬 우려가 있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친족상도례는 “법은 가정의 문턱을 넘지 않는다”는 로마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에서는 1953년 형법 제정 당시부터 이 조항이 있었다. 대가족 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농경사회에선 친족상도례 조항이 필요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71년이 흐르는 동안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크게 바뀌었다. 호주제는 폐지된 지 오래고, 1인 가구의 비중이 전체의 3분의 1을 넘는다. ▷더구나 돈의 유혹이 커지면서 부모 자식과 형제자매의 재산을 노리는 ‘불량 가족’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번에 헌법소원 사건에도 지적장애인 조카의 돈을 빼돌린 삼촌, 노모의 예금을 횡령한 자녀와 그 배우자의 사례가 문제가 됐다. 이들은 피해자 측으로부터 고소를 당했지만 친족상도례가 적용돼 모두 불기소 처분됐다. 일반인들의 법 감정이나 상식으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악행이 법 조항 때문에 면죄부를 받았던 셈이다. 정부와 국회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법 개정은 번번이 무산됐다. ▷정부는 1992년 친족 사이의 범죄를 기본적으로 친고죄로 규정해 처벌 가능성을 열어두는 형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서도 친족상도례를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법안이 여러 건 발의됐지만 흐지부지됐다. 가족 문제에 국가의 과도한 개입을 막는다는 친족상도례의 취지는 살려야 한다는 의견까지 감안해서 정부와 국회가 부작용을 줄일 방법을 진작 찾았어야 했다. 이제라도 법 개정을 서둘러,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두 손 놓고 보고만 있어야 하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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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장택동]직권남용죄 ‘합헌’ 결정… 그래도 남발은 안 된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으로 구속 기소하고…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을 직권남용죄 등으로 구속 기소하며 ….” 2017년 3월 6일 ‘국정농단’ 특검의 수사 결과 발표에서는 ‘직권남용’이라는 용어가 여러 차례 반복됐다. 이후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 등을 기소할 때도 직권남용 혐의가 포함됐다. 이어진 ‘사법농단’ 수사에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고위 판사 14명이 직권남용 등 혐의로 줄줄이 기소됐다. 법조계에서는 사문화되다시피 했던 직권남용죄가 이를 계기로 공무원 범죄의 대표 격으로 떠올랐다고 평가한다.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접수된 인원이 2016년에는 4000명대였다가 2017년 9000명을 넘어섰고, 2000년대 초반까지 연 10명 안팎이던 기소 인원 역시 2018년 53명으로 늘었다. 직권남용죄가 종이호랑이가 아니라는 점이 널리 알려지면서 고소·고발이 폭증했고, 검찰도 적극 적용한 결과로 보인다. 우병우가 낸 헌법소원 기각한 헌재 이는 ‘직권남용죄의 남용’이라는 논란을 불러왔다. 직권남용죄를 구성하는 ‘직권’, ‘남용’, ‘의무 없는 일’ 같은 요소들의 의미가 추상적이어서 검찰이 직권남용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 수 있고 위헌 소지도 있다는 게 비판의 뼈대다. 실제로 직권남용 혐의가 대거 적용됐던 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쏟아진 경우가 종종 있다. 사법농단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11명이 무죄가 확정됐거나 1·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국정농단에서도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된 사건 중 약 30%는 무죄 선고가 나왔다는 분석이 있다. 이를 놓고 ‘직권남용죄가 전 정부의 고위공직자나 정책적 판단을 처벌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던 권성 전 헌법재판관의 의견이 회자되기도 했다. 하지만 우병우 전 수석이 ‘직권남용죄는 죄형법정주의상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 낸 헌법소원에서 헌재는 최근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법 조항의 의미가 다소 광범위하다는 이유만으로 명확성 원칙을 어겼다고 볼 수는 없고, 입법 취지와 판례 등을 통해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으면 된다는 취지다. 2006년에도 헌재는 비슷한 이유로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자의적 해석 최소화할 방안은 필요 우 전 수석은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비위를 알고도 감찰을 소홀히 한 혐의, 공무원 인사에 부당 개입한 혐의, 국가정보원을 동원해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등을 사찰했다는 혐의 등 18개 혐의로 기소됐다. 우 전 수석은 재판 과정에서 다른 혐의들은 모두 피해 갔지만 직권을 남용해 이 전 특별감찰관을 사찰한 혐의만은 인정돼 징역형이 선고됐다. 직권남용죄가 필요한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일 것이다. 법리 측면에서도 헌재가 거듭 합헌으로 결정한 만큼 직권남용죄 존치를 둘러싼 논란은 일단락됐다고 봐야 한다. 남은 과제는 자의적 해석의 여지를 최소화해 남발을 막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직권남용죄의 요건을 보다 세분화하고, 직권남용과 혼용되기 쉬운 ‘지위 남용’을 별도로 규정함으로써 혼선을 줄이는 방안 등을 제시한다. 이와 별개로 검찰은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직권남용 혐의로 적용하고, 법원은 보다 일관성 있는 판결을 통해 처벌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는 직권남용 우려 때문에 ‘적극 행정’이 위축되는 것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 국가의 형벌권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행사돼야 한다는 형사사법의 기본 원칙은 직권남용죄에도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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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장택동]검사 파면, 유독 어려워야 할 이유 있나

    직무 태만, 소극 행정, 지시 사항 불이행, 친절·공정의 의무 위반…. 일반 공무원들은 정도가 심하고 고의성이 있다고 인정되면 이런 다양한 사유로 파면될 수 있다. 기소 여부나 재판 결과와 상관 없이 징계위원회에서 심의해서 결정하게 된다. 검사는 다르다. 징계위원회에서 정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징계는 해임이다. 파면은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에만 할 수 있도록 검찰청법에 규정돼 있다. 파면과 해임 모두 공무원을 강제로 퇴직시킨다는 점에선 비슷하지만 퇴직급여 감액, 공무원 재임용 결격 기간 등 불이익의 정도에서 차이가 크다. 검사에게 더욱 민감한 부분은 변호사 활동 제한 기간인데 파면이 해임보다 2년 더 길다. 한 검사 출신 국회의원은 “검사장 출신 전관은 착수금을 5000만 원에서 1억 원 정도 받는다”고 했다. 재직 당시 직급이나 직무에 따라 금액에 차이는 있겠지만, 퇴직한 검사에게 변호사로서의 2년이 얼마나 천금 같은 시간인지 짐작할 수 있다.‘위법 기소’ 인정된 검사 파면 못 해 이런 ‘특별대우’를 받는 공무원은 판사와 검사뿐이다. 판사에 대해선 헌법에 관련 조항이 명시돼 있다. 반면 검사에 대해선 헌법이 아닌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다. 행정부 소속 공무원 중에선 유독 검사만 판사 수준으로 신분을 보장하도록 법을 만든 것이다. 그 이유는 “법원과 함께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는 기본권 보장 기관으로서의 지위를 갖기”(이효원 서울대 교수) 때문일 것이다. 그러려면 적어도 검사가 국민을 무리하게 재판정에 세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런데 ‘보복 기소’를 했다는 이유로 검사로선 처음으로 탄핵소추된 안동완 검사의 경우 대법원이 자의적 기소라는 점을 인정했고, 헌법재판관 중 3분의 2가 위법한 기소라는 점을 인정했는데도 탄핵은 기각됐다. 파면을 정당화할 만큼 중대한 법률 위반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인데, 본분을 저버린 검사의 직을 유지하도록 한 것이 타당했는지 의문이다. 검사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 보장을 위해 파면 요건을 엄격하게 정했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정치권이 검찰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검사 탄핵을 남발하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 그렇지만 안 검사의 사례처럼 애초에 탄핵의 명분이 될 만한 부당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우선이다. ‘정치적 중립 보장’ 취지에도 어긋나 오히려 까다로운 파면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은 검사를 보호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우려도 있다. 공무상 비밀 누설 등 혐의로 기소된 ‘고발 사주’ 의혹의 손준성 검사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정치적 중립을 정면으로 위반해 사안이 엄중하고 죄책이 무겁다”며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손 검사 탄핵소추안도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탄핵심판은 멈춘 상태다. 탄핵이 청구된 것과 같은 사유로 형사재판이 진행되고 있을 경우 탄핵 절차를 정지할 수 있도록 한 헌법재판소법 규정 때문이다. 결국 대법원 판결이 나와야 손 검사 파면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이미 기소된 지 2년 이상 지났고 언제 재판이 끝날지 모르는데 그동안 손 검사는 아무 제약 없이 재직할 수 있다. 다른 공무원들과의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야당이 검사들에 대한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검찰은 “권력을 남용한 보복”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손 검사는 유죄 판결을 받았고, 헌법재판관 다수가 안 검사의 위법 행위를 인정했다. 그럼에도 검찰에서는 자성의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여론은 싸늘해지고, 검사 파면 요건을 완화하도록 법을 고치자는 요구는 커지게 될 것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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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장택동]법조인 과잉 국회가 걱정스러운 이유

    22대 총선이 끝난 바로 다음 날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를 비롯한 당선인들이 처음 찾은 곳은 대검찰청이었다. 이들은 “마지막 경고”라며 김건희 여사 소환을 촉구했다. 1주일 뒤 이번엔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과 당선인들이 대거 대검과 수원지검을 방문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주장한 이른바 ‘검찰청 내 술판 회유’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서다. 향후 야당과 검찰의 공방이 더욱 거칠어질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야권이 다음으로 주목할 곳은 법원이 될 듯하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과 위증교사 사건에 대한 1심 선고, 조 대표의 입시 비리 사건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이르면 올해 안에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재판 결과에 따라서는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올 수 있는 사건들이다. 사법부에 대해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한 민주당 소속 당선인의 발언은 앞으로 법원에 유무형의 압력이 가해질 것임을 알리는 예고편으로 들렸다. 헌법재판소 역시 무풍지대는 아니다. 1988년 이후 헌재에 접수된 7건의 탄핵 심판 사건 가운데 5건이 여소야대인 21대 국회에서 통과됐다. 야당이 압도적 다수인 22대 국회에서도 탄핵소추가 잇따르고, 법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간 이견으로 헌법소원이나 권한쟁의 심판이 쏟아질 수 있다. ‘정치의 사법화’로 법조인 수요 늘어이처럼 수사와 재판이 정치의 한복판에 서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근래에 점점 심화되고 있다. 검찰과 공수처 수사의 중립성, 특검 도입 여부, 주요 정치인 관련 재판의 공정성 등을 놓고 여야는 하루가 멀다하고 공방을 주고받고 있다. 이는 22대 국회에 법조계 출신이 대거 입성하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번 총선에서는 총 61명의 법조인이 당선돼 20대 49명, 21대 46명에 비해 대폭 늘었다. 전체 국민의 0.1%도 안 되는 법조인이 당선인의 20.3%를 차지한 것은 과대 대표가 아닐 수 없다. 법률 전문가인 법조인이 입법을 주 기능으로 하는 의원으로서 장점이 많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기존의 연구 결과들을 보면 법조인이 다른 직군보다 입법 활동에서 나은 성과를 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정당들은 다수의 율사들을 우세 지역에 공천하고 비례대표의 앞 순번에 배치해 국회로 불러들였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사법 전쟁’에서 핵심 역할을 해주길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법조계 출신 초선 당선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정당들의 의중을 엿볼 수 있다. 정치 극단화되고 사법기관 흔들릴 것 민주당에서는 고검장 출신인 박균택 양부남 당선인을 비롯해 대장동 의혹 관련 사건에서 이 대표와 측근들을 변호한 ‘대장동 5인방’이 눈에 띈다. 검찰 재직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 대통령과 대척점에 섰던 이성윤 전 고검장도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이들은 당선 직후 민주당의 ‘술판 회유’ 관련 특별대책단에 이름을 올리며 활동을 시작했다. 조국혁신당에선 법무부 감찰담당관 재직 당시 ‘윤석열 찍어내기 감찰’ 의혹으로 해임 처분을 받은 박은정 당선인이 당의 검찰독재조기종식특별위원장을 맡았다. 반면 국민의힘에서는 대통령 법률비서관 출신인 주진우 당선인의 역할이 관심사다. 검사 시절부터 윤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면서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여야가 사법을 정치에 끌어들이는 궁극적 이유는 수사와 재판을 통해 상대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다. 이런 풍토에서는 정치의 본질인 타협과 양보가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사법기관들의 독립성과 중립성은 흔들리게 될 수밖에 없다. 이런 폐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판사, 검사, 변호사 출신 의원들이 정치의 사법화에 선봉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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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위안부 동원 강제성 없었다’ 거꾸로 가는 日 교과서

    “‘위험한 교과서’ 검정 통과를 즉각 취소하라.” 일본 문부과학성이 19일 레이와서적의 중등 역사 교과서 2권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일본의 한 시민단체가 발표한 성명이다. 일본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만큼 이 교과서에는 일본군 위안부, 한일합병 등 한일 간의 과거사를 왜곡하는 내용들이 들어 있다.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항의하는 등 후폭풍이 거세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서술이다. 이 교과서는 “일본군이 조선 여성을 강제 연행했다는 사실은 없으며 그들은 보수를 받고 일했다”고 적었다. 돈을 벌려고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됐다는 취지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1993년 발표한 ‘고노 담화’에는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위안부 모집은) 대체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행해졌다”고 돼 있다. 일본 정부도 인정한 내용을 학생들은 반대로 배우게 됐다. ▷이 교과서는 일제의 식민 지배는 미화하고 정당화했다. “안전 보장을 위해 일본이 주도해 조선의 근대화를 진행”한 것이고, 을사늑약 당시 고종이 “만족”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종은 늑약 체결 직전까지 이토 히로부미에게 사람을 보내 ‘대신들이 반대한다’며 유예를 요청했을 만큼 부정적이었고(최덕수 ‘근대 조선과 세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대표단을 보내기도 했다. 일본이 조선을 보호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합병한 게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교과서 몇 줄로 뒤집을 수 없는 역사다. ▷더 큰 문제는 일본 우익 사관을 반영해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들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3월 검정을 통과한 이쿠호샤 중등 역사 교과서는 강제징용과 관련한 서술을 “혹독한 노동을 강요받았다”에서 “혹독한 환경에서 일한 사람들도 있었다”로 바꿔 징용의 강제성을 흐리게 했고, 야마카와출판의 교과서는 ‘종군위안부’ 표현을 삭제했다. 지난해에는 조선인이 ‘징병됐다’는 표현을 뺀 초등학생용 사회 교과서들이 승인됐다. 프랑스와 공동으로 제작한 역사 교과서로 객관적 시각에서 나치의 책임과 과오를 가르치는 독일과 대비된다. ▷현 정부 들어 한일 관계는 개선되는 흐름이지만 과거사 문제는 제자리다. 한국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안을 내놓는 등 노력을 기울인 반면 일본은 달라진 게 없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최근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봉납했고, 외교청서에는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주장을 거듭 적었다. 여기에 역사 교과서까지 퇴행하고 있다. 정확하고 균형 잡힌 역사를 배워야 미래 세대에서라도 과거사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 있을 텐데, 일본 정부가 그 기회마저 빼앗고 있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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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목련은 지는데”… 與 서울 편입 추진 지역구 전패한 까닭

    더불어민주당 18석 대 국민의힘 0석. 김포를 비롯해 고양 과천 광명 구리 남양주 부천 하남 등 여당이 서울 편입 대상으로 꼽았던 지역들의 4·10총선 성적표다. ‘메가시티론’을 앞세워 서울 주변 지역 주민들의 표심을 얻고, 총선 승리의 발판으로 삼으려 했던 여당의 바람은 수포가 됐다. ▷여당이 김포의 서울 편입을 추진하겠다고 처음 밝힌 것은 지난해 10월 30일이다. 같은 달 11일 치러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예상 밖의 대승을 거두면서 여권에 위기감이 커지던 때였다. 총선에서 수도권 민심을 잡기 위해 여당이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서울 편입론을 주도했던 김기현 전 대표가 12월 물러났고, 촉박한 일정 때문에 총선 전 주민투표도 무산되면서 메가시티 구상은 흐지부지되는 듯 보였다. ▷그러다 올 2월 초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목련이 피는 봄이 오면 김포는 서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서울 편입론이 다시 부상했다. 그는 22대 국회에서 1호 법안으로 김포 등의 서울 편입과 경기도 분도를 한꺼번에 추진하는 ‘원샷법’을 발의하겠다고도 했다. 서울시와 해당 지자체들은 공동연구반을 꾸렸고 이 지역 여당 후보들은 너나없이 ‘서울 편입’을 외쳤다. 하지만 여당은 총선에서 참패했고, 이미 목련이 지고 있는데도 메가시티와 관련된 움직임은 전혀 없다. 별다른 계기가 없다면 이대로 묻힐 공산이 크다. ▷서울 편입은 주민들의 이해가 복잡하게 뒤엉킨 이슈였다. ‘서울 프리미엄’으로 부동산값 인상을 기대하는 집주인들은 환영하는 쪽이지만 세입자 입장에선 전월세 인상을 걱정해야 한다. 교육 측면에선 서울의 자사고 입학이 가능해지는 장점이 있는 반면 대입 농어촌 특례입학에서 제외되는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복잡한 서울 편입보다 지하철 노선 연장 등 당장 도움이 되는 정책을 요구하는 주민도 있다. 전문가들은 ‘메가 서울’에 인구가 더 몰릴 경우 지방도시 소멸을 부추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런데도 사전 연구, 여론 수렴 등은 생략한 채 정치공학적 차원에서 불쑥 민감한 이슈를 던져 주민들만 혼란스럽게 했다. ▷이는 여당이 큰 그림을 보지 못한 채 ‘유권자들은 눈앞의 이익에 따라 투표할 것’이라는 구시대적 사고에 머물렀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김포에 출마했던 한 여당 후보는 “‘내가 서울로 안 가도 상관없고 정권 심판이 먼저다’라는 여론이었다”고 전했다. 나라를 걱정하는 주민들 앞에서 실현 여부도 불투명한 지역 공약만 외쳤다는 얘기다. 여당이 유권자들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앞으로 선거에서 외면받는 일이 반복되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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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장택동]檢 ‘휴대전화 자료 통째 보관’, 그냥 놔둘 일인가

    ‘자백은 증거의 왕’이던 시절은 지나간 지 오래다. 법정 진술을 중시하는 공판중심주의가 강화되면서 지금은 피고인이 검찰, 경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공판에서 부인하면 증거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만큼 물증의 중요성은 커졌고, 수사기관들은 압수수색에 사활을 걸다시피 한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압수수색영장 발부 건수는 2013년에 비해 2.5배가량 늘었다. 특히 수사기관은 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휴대전화와 PC 등 전자정보를 확보하는 데 주력한다. 경찰의 디지털 증거 분석이 최근 10년 새 약 7배 증가했을 정도다. 압수수색 전자정보 사후 관리 논란 이렇다 보니 압수수색이 남발되는 건 아닌지, 범죄 혐의와 무관한 디지털 자료까지 수사기관이 갖고 있는지 등을 놓고 종종 논란이 벌어진다. 최근 야권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민간인 사찰’ 의혹도 그중 하나다. 검찰은 이른바 ‘대선 개입 여론조작’ 의혹 수사 과정에서 압수한 한 인터넷 매체 대표의 휴대전화를 통째로 복제한 ‘이미지 파일’을 서버(디넷)에 보관 중이다. 범죄와 무관한 사적인 자료까지 검찰이 보관하다가 들여다본다면 사찰이나 다름없다는 게 야당의 논리다. 판례에는 수사기관에서 휴대전화를 압수한 뒤 범죄와 관련 있는 부분을 선별해서 추출하고 나머지는 ‘지체 없이’ 삭제·폐기하거나 반환하라고 돼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추후 재판 과정에서 증거 능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검찰은 우려한다. 추출한 증거가 원본에서 나온 것인지가 재판에서 쟁점이 될 경우 이미지 파일을 갖고 있어야 입증할 수 있다는 취지다. 그 대신 다른 용도로는 이미지 파일에 접근할 수 없도록 봉인하는 등 대검 예규에 따라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실제로 재판에서 디지털 자료의 증거 능력을 둘러싼 공방이 드물지 않은 만큼 검찰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그렇다고 해도 피압수자로서는 압수한 결과물을 별건 수사 등에 이용하지 않도록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검찰의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법조계에서는 제도를 개선하면 이런 논란을 피할 수 있다고 본다. 대표적인 방안이 수사가 끝난 뒤에는 이미지 파일을 법원이나 독립적인 제3의 기관에 보내 관리하게 하는 것이다. 범죄와 무관한 전자정보 폐기를 의무화하도록 형사소송법에 명시하자는 의견도 있다.법원에 이송·관리하도록 법 개정해야이런 방안을 실현하려면 입법이 필요하다. 그런데 조국혁신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은 이번 의혹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전현직 검찰총장을 공수처에 고발했고, 총선 뒤 국정조사나 특검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법률 개정에 대해선 일절 언급이 없다. 근본적 해법을 찾기보다 정치 이슈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비친다. 또 영장을 엄격하게 심사하고 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것도 압수수색에 따른 부작용을 막는 방법일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이런 내용의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를 도입하는 형사소송규칙 개정을 추진했지만 검찰 등의 반대로 보류됐다. 대법원 규칙에 의해 국민을 심문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지적도 있는 만큼 형사소송법에서 다루는 편이 깔끔할 것이다. 하지만 야당은 압수수색 폭증의 폐해를 비판하면서도 법률 개정안을 내놓지는 않았다. 압수수색은 개인의 내밀한 정보까지 강제로 들춰내는 거친 방식의 공권력 행사인 만큼 강력한 사전·사후 통제 시스템이 필요하다. 다만 실체 규명을 어렵게 하거나 증거력을 훼손하는 방식이어선 안 되기 때문에 균형점을 찾기가 까다롭다. 이런 사안일수록 법의 잣대로 접근해 법률로 정리해야 한다. 정치적 공방의 영역으로 끌고 간다면 해법은 꼬이고 논란은 반복될 것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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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공관 주재관에 갑질’ 신고당한 주중대사

    미중일러 ‘4강’ 대사는 전직 총리나 장관, 중진 의원, 고위 외교관 등이 주로 임명되는 자리다. 그만큼 외교적 비중이 크고 공관 직원, 교민 관리도 중요해서다. 그런데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가 부하 직원에게 갑질을 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외교부가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소규모 해외공관에서는 간혹 벌어지는 일이지만 4강 대사에게 갑질 논란이 제기된 전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베이징 주중대사관에 근무 중인 주재관 A 씨는 이달 초 ‘정 대사에게서 폭언을 들었다’며 정 대사의 발언을 녹음해 외교부에 제출했다고 한다. A 씨는 다른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으로, 정 대사가 수차례 인신공격성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사는 “일방의 주장”이라고 반박했고, 의혹의 진위는 조사를 통해 확인될 것이다. 하지만 대사의 입이 문제가 돼 갑질 신고가 접수됐고,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는 것 자체가 가벼이 넘길 문제가 아니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그는 2022년 8월 윤석열 정부 초대 주중대사로 발탁됐다. 학자가 4강 대사로 직행한 것은 이례적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업무 수행을 놓고 구설이 이어진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지 특파원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월례 브리핑 방식이다. 미리 이메일로 받은 질문에 한해 준비된 답변만 읽고 끝낸다. 취임 직후 특파원 간담회에서 일부 언론이 정 대사의 발언을 ‘관계자’가 아닌 ‘실명’으로 보도한 것에 항의하며 이런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고 한다. 본인은 공직자이고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을 망각한 것이다. ▷정 대사가 중국 정부와 원활하게 소통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취임 이후 10개월간 네트워크 구축비를 이용해 중국 외교부와 접촉한 것은 단 1건뿐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중국 정부가 탈북민을 대거 강제 북송했을 때도 대사관은 모르고 있었다. 대사 취임 일성으로 “무엇보다 한중 간 안정적 소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던 그의 다짐이 무색하다. 중국통인 그가 외교력을 발휘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목소리도 이제는 쏙 들어갔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지난해 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대해 비판적 기사를 쓴 중국 관영매체들에 항의 서한을 보내고 이를 국내 언론에 공개해 중국 측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외교가에선 한중 관계가 냉각된 상황이지만 중국에 할 말은 하되 조용히, 효과적으로 전달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는 재임 1년 반 동안 대중 외교에서 우군이 돼야 할 직원, 언론, 교민도 끌어안지 못한 듯하다. 학자로서는 손꼽히는 중국 전문가라지만 외교관으로서의 자질에는 큰 의문부호가 남는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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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야구배트보다 긴 비례대표 투표용지

    4월 10일 실시되는 22대 총선의 유권자들은 투표소에서 어지간한 성인 남성 키의 절반 정도 되는 긴 초록색 용지를 1장씩 받게 될 것 같다. 노란색 용지는 지역구, 초록색은 비례대표용 투표용지인데 비례대표 선거에 후보를 내는 정당이 크게 늘기 때문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고 기표했다가는 자칫 엉뚱한 정당에 표를 주거나 무효표를 양산할 가능성이 커졌다. ▷15일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됐거나 창당을 준비 중인 정당은 71개다. 위성정당을 만든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을 뺀 나머지 69개 정당이 모두 비례대표 후보를 낸다면 투표용지 길이는 88.9cm가 된다. 야구 배트 평균 길이 83.82cm보다도 길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21대 총선부터 정당 득표율에 비해 지역구 의석을 적게 얻은 정당이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서 유리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다. 비례대표 할당 하한선인 ‘정당 득표율 3%’만 넘기면 예전보다 많은 의석을 가져갈 수 있다는 기대에 너나없이 욕심을 내보는 상황이 됐다. ▷유권자들로서는 비례대표 투표가 더 복잡해지게 됐다. 좁은 기표소 안에서 긴 투표용지를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지지 정당의 이름을 찾아야 하는데, 눈이 어둡거나 거동이 불편한 이들은 실수하기 쉬운 환경이다. 이는 무효표 증가로 이어진다. 실제로 21대 총선 비례대표 선거에서 무효표는 122만여 표로 20대 총선 66만여 표의 2배 가까이로 늘었다. 비례대표 후보를 낸 정당 수가 14개 증가했고, 투표용지 길이도 15cm가량 길어진 것이 주된 요인으로 분석됐다. ▷그렇다고 이런 불편을 감수할 만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순기능을 하는지도 의문이다. 21대 총선에서 35개 정당 중 비례대표 당선자를 낸 정당은 5개에 불과했고, 비례 의석 대부분을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이 차지했다. 소수 정당의 원내 진출을 늘린다는 이 제도의 본래 취지가 무색해졌다. 14개 정당은 0.1%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미한 지지율을 얻었다. 이름을 처음 듣는 정당이 대부분인 이번 총선 역시 비슷한 양상이 반복될 소지가 크다. 긴 투표용지를 만드느라 종이만 낭비하고, 174억 원을 들여 도입한 신형 분류기와 심사계수기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허무한 결과로 끝날 수도 있다. ▷이런 문제점들은 4년 전에 이미 다 드러났고, 여야 모두 개선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민주당은 한동안 이런저런 방안을 고민하는 듯하더니 결국 ‘현상 유지’를 택했고, 이를 비판하던 국민의힘은 되레 민주당보다 먼저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총선이 끝나면 ‘떴다방 선거’가 돼버린 비례대표 선거를 비판하는 여론이 다시 한번 분출할 것이다. 이번에는 말로 끝나서는 안 된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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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국금지 중에 호주대사로 임명된 전 국방장관[횡설수설/장택동]

    세간의 시선에서 잠시 멀어진 듯했던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고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사건과 관련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를 받고 있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4일 주호주 대사로 임명되면서부터다. 더욱이 이 전 장관은 이미 1월부터 출국금지 된 상태다. 수사를 위해 출국을 막아 놓은 피의자를 해외에서 일하는 공관장에 앉히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해 7월 수해 실종자 수색에 나섰던 스무 살 해병대원의 안타까운 희생에 온 국민이 애도했고, 여야 가릴 것 없이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그런데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이 전 장관은 초동 수사를 맡은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 기록을 경찰에 넘기는 것을 승인했다가 하루 만에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그런데 수사단은 이틀 뒤 수사 기록을 이첩했다. 이를 놓고 ‘항명이냐 외압이냐’는 논란이 커졌고 정치적 이슈로 번졌다. ▷외압 의혹의 핵심은 이 전 장관이 왜 지시를 바꿨느냐다. 박정훈 전 수사단장 측은 당시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것에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하자 장관이 지시를 번복했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반면 국방부는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은 “(박 전 단장이) 보고했기에 수고했다고 결재했다가 다음 날 다시 짚어봐야겠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지만, 수사를 통해서 확인돼야 할 부분이다. 공수처에서 이 전 장관을 출금 조치한 이유였을 것이다. ▷부실 검증 의혹이 제기되자 대통령실은 “우리로선 이 전 장관이 출금됐는지 알 길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대통령실이 독립적 수사기관인 공수처에 자료 제출 등을 요구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돼 있다는 것이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야당과 시민단체에서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이 전 장관이 공수처의 핵심 수사 대상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공수처가 지난달 국방부와 해병대를 압수수색하면서 수사에 속도를 내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런 시점에 굳이 이 전 장관을 외국에 보내는 인사를 해야 했나. 공수처가 어제 이 전 장관을 불러서 조사하기는 했지만, 수사 상황에 따라서는 추가 소환이 필요할 가능성도 있다. ▷이 전 장관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당시 보고선상에 있던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은 경북 영주-영양-봉화,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은 충남 천안갑에 여당의 단수공천을 받았다. 임 전 차장은 해병대 수사단이 기록을 이첩한 직후 김계환 해병대사령관과 통화한 것으로 밝혀져 외압 관여 의혹이 제기됐고, 신 전 차관도 당시 김 사령관에게 ‘장관 지시를 따르라’고 종용했다는 의혹이 있다.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을 대사로 임명하고, 여당 후보로 낙점한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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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변론에 손 놓고 의뢰인 등치는 불량 변호사

    “제가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있었습니다.” 의뢰인의 문자를 받은 지 사흘 만에야 A 변호사는 이런 내용의 답신을 보냈다. 하지만 이후 A 변호사는 의뢰인과 연락을 끊었다. 항소이유서 제출 등 업무는 일절 하지 않았고, 공판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의뢰인이 피해자에게 주라고 건넨 합의금도 행방이 묘연하다. A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정직 1년의 징계를 받았다. 대한변협이 최근 공개한 2019∼2022년 징계 사례 316건 가운데 하나다. ▷의뢰인을 속 터지게 하는 변호사의 대표적 유형은 연락이 두절되고 재판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사기 피의자 변호를 맡은 B 변호사는 구속영장실질심사 당일 오전 의뢰인에게 “골프 미안하네요”라는 문자를 보낸 뒤 전화를 받지 않았고 오후에 열린 심사에 불참했다. 결국 구속된 의뢰인의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대여금 소송을 맡은 C 변호사는 3년 동안 별 이유 없이 소장조차 제출하지 않는 등 불성실한 변론으로 정직 1년 징계를 받았다. 이들 외에도 변호인이 시한 내에 항소, 상고를 하지 않거나 이의신청 기간을 놓쳐 의뢰인을 울린 사례가 다수 있다. ▷의뢰인을 등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태를 보인 변호사들도 징계 리스트에 올랐다. 주택조합을 상대로 한 분담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뒤 의뢰인에게 전달해야 할 약 7000만 원을 지급하지 않은 변호사는 정직 1년 처분을 받았다. 단순히 법원에서 공탁금을 출급받는 업무를 맡고서는 성공보수 명목으로 공탁금의 20%를 받아서 ‘과다한 보수를 챙겼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변호사도 있었다. 변론에 손을 놓고도 수임료는 돌려주지 않은 낯 두꺼운 변호사들도 적잖다. ▷변호사의 행동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법한 일을 저지른 이들도 있다. 한 변호사는 자신이 변호하는 성폭행 피해자를 집으로 데려가 몸을 만졌고, 술집에서 소란을 피우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여성 경찰관을 추행한 변호사도 있었다. 필로폰을 7차례 투약한 변호사, 의뢰인의 부탁을 받고 서류를 위조해 경찰에 제출한 변호사, 소송 상대방에게 “× 같은 ××야” 등 욕설을 퍼부은 변호사 역시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법적 권리를 보호하고 소송의 승패를 좌우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다. 변호사법에서 변호사를 ‘공공성을 지닌 법률 전문직’으로 규정하면서 품위 유지 등의 의무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이유다. 이를 어기면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변호사 자격을 완전히 박탈하는 ‘영구제명’은 지금까지 단 1명에 불과하고 대부분 1년 이하의 정직이나 과태료, 견책 처분을 받았다. 이런 솜방망이 징계로는 ‘불량 변호사’들의 일탈을 막기 어려울 것이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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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장택동]합법의 탈을 쓴 파옥(破獄), 특별사면

    독일에는 절대왕정 시대에 “사면 없는 법은 불법”이라는 법언이 있었다고 한다. 법 위의 존재였던 절대군주가 자신이 내린 벌을 스스로 거둬들일 권한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뀐 지 오래다. ‘법 앞에 평등’인 세상에서 통치권자가 자의적으로 재판 결과를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은 모순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사면권은 한국은 물론 대부분의 선진국에 존재한다. 학계에서는 이른바 ‘법치주의의 자기 교정’이라는 측면에서 근거를 찾는다. 아무리 법을 치밀하게 만들어도 완벽하지는 않으므로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했을 때 바로잡기 위한 최후의 장치라는 뜻이다. 일종의 ‘필요악’인 만큼 누가 봐도 수긍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 극히 예외적으로 행사돼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에서 실시되는 특사는 이런 원칙과는 거리가 멀다. 6일 설 특사를 포함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채 2년이 안 되는 동안 4차례 특사가 단행됐고, 대상자는 6000명이 넘는다. 수사하고 기소해 범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게 업무인 검사 출신들이 요직에 포진해 ‘검찰 공화국’으로 불리는 현 정부에서 특사가 잦은 것은 뜻밖이다. 정부는 대부분 생계형 사범이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한 사면이라고 설명한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횟수가 너무 잦고 대상이 과다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인이나 전직 고위 공무원 등 이른바 ‘고위층’들이 뚜렷한 설명조차 없이 줄줄이 사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특사에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외에도 10여 명의 정치인과 전직 공직자들이 포함됐다. 이 중에는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직 의원들도 있다. 뒷돈을 받아 처벌받은 정치인에게 특혜를 주면서 정부는 “갈등 극복과 화해를 통한 국민통합 도모”라는 억지 명분으로 포장했다. 이전 정부들도 별반 차이가 없다. 민주화 이후 노태우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정식 특사가 총 41차례 이뤄졌다. 연평균 1.2회꼴이다. 이를 통해 특별사면·감형·복권된 사람만 20만 명이 넘는다. 거물급 정치인이나 전직 고위 관료는 ‘왜 특사를 못 받았는지’가 화제에 오를 만큼 사면이 당연시된다. 특사가 “형사 사법의 빗장을 열어젖히는 무소불위의 파옥(破獄) 도구”(이승호 건국대 교수)로 전락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이처럼 무분별한 특사가 가능한 것은 ‘헌법상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헌법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대통령이 사면을 하도록 돼 있고, 학계에서는 적정한 범위 내에서 법률로 사면권을 제한하는 것은 위헌이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그런데 현 사면법에는 특사의 절차만 규정할 뿐 기준과 조건 등 실질적 내용은 없다. 1988년 13대 국회 이후 사면법 개정안은 50건이나 발의됐다. 특사의 절차를 강화하고 대상을 제한하자는 내용이 다수다. 부패사범 선거사범 등은 특사에서 제외하고 특사 전에 대법원장의 의견을 듣거나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방안, 형기의 일정 부분을 복역해야 사면 대상이 되도록 하는 방안 등 다양한 대책이 제시됐다. 하지만 대부분 별 논의 없이 흐지부지 폐기됐고 통과된 개정안은 3건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의미가 있는 내용은 2007년 개정으로 사면심사위원회를 신설한 것 정도다. 그나마 사면심사위원회의 심사 결과에는 구속력이 없어서 사면권을 견제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남발되는 사면은 사법 정의의 핵심인 공정성에 대한 믿음을 근본적으로 흔든다. 지금껏 봐왔듯 대통령 스스로 사면권을 자제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제 입법을 통해 사면권 남용에 제동을 걸어야 할 때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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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청사 접견실에서 수사 중인 사기 피의자 만난 치안정감

    사진 속의 경찰관은 양옆에 선 2명의 남성과 친근하게 손을 잡고 서 있다. 경찰관의 어깨에는 큰 무궁화 3개가 달린 견장이 붙어 있다. 경찰에서 경찰청장(치안총감)에 이어 두 번째 높은 계급인 치안정감이라는 뜻이다. 14만 경찰 가운데 단 7명밖에 없는 최고위직으로, 이 경찰관은 현직 모 지방경찰청장인 A 씨다. 문제는 함께 사진을 찍은 한 명이 가상화폐 사기 피의자 최모 씨라는 점이다. ▷경찰의 수사를 받는 상황이 되면 경찰관 그림자만 봐도 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자수하려는 게 아니고서야 피의자가 제 발로 경찰관서에 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사진을 촬영한 장소는 A 청장의 접견실이다. 최 씨는 코인 투자금을 모은 뒤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A 청장이 관할하는 경찰서 중 한 곳에서 수사받던 시점에 청사를 찾아갔다.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장면이다. 경찰은 곧 기소 의견으로 최 씨를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이 사진을 소셜미디어(SNS)에 공개한 것은 최 씨다. 접견실 내 청장 자리에 최 씨 혼자 앉아 있는 사진도 함께 올렸다. ‘나 이런 사람이다’라고 과시하는 듯하다. 사기 피해자들은 A 청장과 최 씨의 관계를 의심의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반면 A 청장은 최 씨가 피의자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한다. 고향 선배와 그 선배의 아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아들의 친구라는 최 씨가 함께 와서 엉겁결에 동석하게 됐다는 취지다.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인터넷상에는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궁금하다’는 식의 댓글이 여럿 달렸다. ▷A 청장의 해명이 사실이라고 해도 문제다. 수사기관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공직자는 모르는 사람과 만날 때 조심하는 게 몸에 배어 있다. 사진 촬영은 어림도 없고, 남이 들었을 때 오해할 소지가 없도록 말도 가려서 한다. 혹시라도 상대방이 몰래 녹음해서 ‘누구랑 친분이 있다’며 악용할 소지가 있어서다. 이를 모를 리 없는 A 청장이 처음 만났다는 최 씨와 손까지 잡고 사진을 찍어준 처신은 부적절했다. 이들이 만난 경위와 대화 내용 등을 경찰청이 철저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근래 경찰은 잇따른 고위 간부들의 일탈로 바람 잘 날이 없다. 브로커에게 인사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조사받던 전직 치안감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 사건에 연루된 현직 치안감은 기소됐다. 유치장 내 피의자를 불법 면회 시켜준 혐의로 경무관 2명이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치안정감마저 석연치 않은 언행으로 입길에 오르면서 경찰에 부담을 얹게 됐다. ‘나는 잘못한 게 없다’고 변명하기에 앞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반성부터 하는 것이 최고위직 경찰 간부가 갖춰야 할 몸가짐일 것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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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저질 판사’ ‘저질 검사’

    법정에서 판사는 ‘슈퍼갑’이다. 재판 진행과 판결이 전적으로 판사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법관의 눈치를 살피고 지시에 따른다. 수사와 기소에서는 검사가 절대적이다. 피의자와 피고인은 “사건에 있어서는 검사가 하느님”(김두식 ‘불멸의 신성가족’)이라고 느낄 정도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조용히 판검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 “법관은 재판을 할 때 재판을 받는 것”이라는 아하론 바라크 전 이스라엘 대법원장의 말처럼 판검사의 언행과 판단은 추후 평가의 대상이 된다. ▷재판과 수사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변호사들이 지적하는 판검사의 대표적인 문제는 막말이다. 서울변회의 법관 평가를 보면 피고인에게 “예전 같았으면 곤장을 칠 일”이라거나 “반성문 그만 쓰고 몸으로 때우라”고 하는 등 거친 말을 한 판사들이 낮은 점수를 받았다. 검사에 대한 대한변협의 평가도 비슷하다. “피해자에게 변제할 돈은 없고 변호인 선임 비용은 있냐”, “죄를 지은 사람이 너무 당당한 것 아니냐” 등 모욕적인 발언을 하는 검사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다음으론 맡은 업무를 얼마나 철저하고 공정하게 처리했는지가 중요한 요소다. 별 이유 없이 재판을 1년 넘게 방치하거나 서면으로 제출한 내용도 파악하지 않은 채 공판을 진행한 판사, 원고와 피고를 혼동해 판결을 번복한 판사가 나쁜 평가를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검사 평가에서도 피의자를 한 번도 조사하지 않은 채 불기소 처분하거나 증거물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재판에 들어온 검사들이 하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판검사들은 옷을 벗은 뒤에야 남의 눈에 본인이 어떻게 비쳤는지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한다. 변호사로 전업하고 법원을 다시 보게 됐다는 판사 출신의 정인진 변호사는 “인간 존중 없는 취급에 법대(法臺) 앞에 선 사람들은 분노하고 좌절한다”고 썼다. 검사 경력이 있는 변호사들도 “변호인으로서 검사를 보면 ‘나도 예전에 저랬을까’ 싶을 때가 종종 있다”고 말한다. 현직에 있을 때 깨달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역지사지의 자세로 성찰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가능한 일이다. ▷물론 밤잠을 아껴가며 재판과 수사에 전념하고 당사자들을 배려하는 판검사들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판검사에게는 예외 없이 높은 윤리적 기준과 업무의 완결성이 요구된다. 재판과 수사의 당사자들에게는 인생이 걸린 일이어서다. “사법기관이라는 것은 온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과 명예 등을 결정하는 일을 가지기 때문에 자가(본인)의 수양을 더욱 긴급히 아니하면 안 될 것”이라는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말은 지금도 판사와 검사 모두에게 유효하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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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전 국민 상대로 한 毒性 시험”

    공식적인 사망자만 최소 1258명에 이르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책임을 둘러싼 공방은 이 사건이 공론화된 지 14년째 이어지고 있다. 옥시의 전 대표는 2018년 유죄가 확정돼 이미 형기를 끝마쳤다. 반면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의 전 대표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가 11일 진행된 항소심에서 유죄로 뒤집혔다. 이들 제품에 쓰인 화학 원료가 인체에 유해한지에 대한 판단이 관건이었다. ▷옥시가 만든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의 주원료는 PHMG다. 피부에 닿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흡입하면 폐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성분이라는 점이 확인됐고, 옥시 전 대표는 1심부터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SK케미칼과 애경이 만든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의 원료인 CMIT·MIT는 유해성을 입증하기가 한층 까다로웠다. 결국 1심 재판부는 ‘SK·애경이 만든 살균제와 옥시의 살균제는 성분이나 위해성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1심 판결 이후 국립환경과학원에서 CMIT·MIT가 호흡기를 통해 폐로 전달된다는 점을 입증하는 논문을 발표하는 등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나왔다. 이를 근거로 항소심 재판부는 SK케미칼·애경의 살균제를 사용한 것과 폐 질환과의 인과관계가 입증됐다고 판단했다. 특히 안전성에 관해서는 제조·판매업자에게 강력한 주의 의무가 요구된다는 것이 법원의 시각이다. 원료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 길이 없는 소비자로서는 ‘인체에 해가 없는 제품’이라는 업체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더 근본적으로는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이 1994년 살균제를 만들 때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유공은 독성시험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제품 출시를 강행했고, 이듬해 서울대에서 ‘문제 소지가 있으니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는데도 판매 중지나 회수 조치를 하지 않았다. 2002년 이 제품을 이어받은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를 생산할 때도 별도의 검사는 없었다. 그 결과 “장기간에 걸쳐 전 국민을 상대로 살균제의 만성 흡입 독성시험이 행해진 사건”이 됐다고 재판부는 질타했다. ▷가습기 살균제는 그동안 약 900만 명이 사용했을 만큼 인기 제품이었고 주로 큰 기업들이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불거지자 기업들은 ‘유해 성분인지 몰랐다’ ‘살균제가 피해의 원인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등의 변명만 내놨고, 이는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대법원의 최종심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번 재판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업체들의 법적 책임은 보다 분명해졌다. 기업들이 하루라도 빨리 배상·보상 방안에 합의해 피해자의 어려움을 덜어 주는 게 조금이나마 사회적 책임을 지는 길일 것이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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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몰래 한 녹음 증거능력 있나 없나

    “선생님이 제게 ‘1, 2학년 제대로 나온 것 맞냐’고 말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 아들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엄마는 책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었다. 얼마 뒤 교사가 아이에게 “구제 불능”, “쟤가 맛이 갔어” 등의 발언을 한 것이 고스란히 녹음됐다. 이에 엄마는 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했다. 1, 2심에서는 교사에게 유죄가 선고됐지만 대법원은 11일 원심을 파기했다. 녹음파일을 증거로 인정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형사재판에서는 아무리 결정적인 증거라도 적법하게 수집하지 않았다면 유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녹음파일의 경우 대상이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라면 증거로서의 가치가 사라진다. 먼저 ‘타인 간의 대화’인지를 놓고 원심과 대법원의 판단이 갈렸다. 원심은 “녹음자(엄마)와 대화자(아들)를 동일시할 정도로 밀접한 인적 관련이 있다”는 이유에서 증거능력을 문제 삼지 않았지만,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모라고 해도 직접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이상 당사자가 될 수는 없다는 취지다. ▷다음 쟁점은 교사가 수업 시간에 한 발언이 ‘공개된 대화’에 해당하는지였다. 원심은 교실에서 30명 정도의 학생이 함께 수업을 듣는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공개적인 대화라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수업은 학생들에게만 공개되는 것일 뿐 불특정 다수가 듣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로 비공개 대화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유·무죄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지만, 유죄 판결의 핵심 증거가 효력을 잃음에 따라 교사에게는 유리한 결과가 됐다. ▷교사들은 교실에서 몰래 녹음이 이뤄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하소연한다. 일부 학생은 첩보영화에나 나올 법한 펜형·목걸이형 녹음기를 차고 등교한다고 한다. 주변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는 앱을 자녀의 스마트폰에 깔아서 수업 내용을 실시간으로 들은 학부모도 있었다. 이를 근거로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이 사건이나 웹툰 작가 주호민 씨 아들 사건처럼 법정 다툼으로 비화하기도 한다. 비슷한 소송에서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기준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몰래 녹음한 파일의 증거능력이 쟁점인 사건은 여럿 있다. 대법원은 아내가 남편의 불륜을 의심해 남편 모르게 통화녹음 기능을 활성화한 결과 녹음된 파일이라고 해도 부부간에 통화한 내용은 형사재판의 증거로 쓸 수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증거 수집 절차가 사생활이나 인격적 이익을 중대하게 침해해 사회 통념상 한도를 벗어난” 경우라면 증거능력이 부정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부분은 의미가 있다. 사건의 실체 입증이 다소 어려워지더라도 증거의 적법성을 엄격하게 따지는 것이 절차의 정의를 중시하는 사법제도의 발전 방향에 맞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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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대형 쓰나미·방사능 유출 악몽 되살린 日 노토반도 지진

    바다 건너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이 한국에 영향을 미칠 대표적인 위험 요소는 두 가지다. 먼저 원자력발전소에 문제가 생겨 방사능이 유출되면 한반도에 직간접적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다. 지진해일(쓰나미)도 공포의 대상이다. 특히 일본 서부에서 일어난 지진해일은 동해를 거쳐 바로 한반도를 덮칠 수 있다. 1일 일본 노토(能登)반도에서 발생한 규모 7.6의 강진은 이런 악몽들을 동시에 떠올리게 했다. ▷일본 본토인 혼슈섬 중서부에 위치한 이시카와현 노토반도 일대는 유라시아판과 오호츠크판의 경계 지점에 있어서 평소에도 지진이 잦다. 최근 3년간 진도 1 이상의 지진이 500차례 넘게 일어났을 정도다. 하지만 진도 6이 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례적인 강진으로 70여 명이 목숨을 잃고 수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도로는 갈라지고 산사태까지 이어지면서 구조와 복구 작업이 늦어지고 있다. 일본 전문가들은 깊은 지하에서 고온의 유체가 상승하면서 지진이 커졌을 것이라는 등의 분석을 내놓고 있다. ▷노토반도는 강릉에서 직선거리로 약 730km 떨어져 있다. 그 사이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있을 뿐 망망대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는 일본 본토가 쓰나미의 방파제 역할을 해서 한국으로 밀려오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쓰나미가 발생한 지 약 2시간 만에 동해안에 도착했고 묵호에서 가장 높은 85cm의 쓰나미가 관측됐다. 동해안에는 1983년 일본 아키타현 서쪽 해상에서 발생한 쓰나미가 최고 2m의 높이로 밀려와 3명이 목숨을 잃은 적이 있다. 당시의 참상을 기억하는 동해안 주민들은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노토반도 인근에는 일본 최대 원전인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과 시카 원전 등이 밀집해 있다. 내진 설계가 충실하게 돼 있더라도 단전 등으로 인해 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전기 공급이 끊기면서 원자로 냉각장치가 작동을 멈춘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방사성물질은 대부분 해류를 타고 태평양으로 이동하는데도 한국에선 걱정하는 이들이 적잖다. 동해를 사이에 두고 한반도와 마주 보고 있는 일본 서부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훨씬 직접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 ▷일본 정부는 현재까지는 원전의 안전성에 이상이 없다고 밝혔다. 지진 발생 인근 지역에 내려졌던 쓰나미 경보도 해제됐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본 기상청은 1주일 안에 진도 7 수준의 지진이 또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연재해를 완벽하게 예측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언제, 얼마나 강력한 지진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만큼 바짝 긴장하면서 대비하는 것이 최선이다. ‘설마’ 하고 방심하다가 뒤늦게 가슴을 치는 일은 없어야겠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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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장택동]말만 앞세운 空論으론 해결 못 할 재판 지연

    “너희 아빠는 집에서 뭐 하니?” “타자 치는데요.” “타자 안 칠 때는?” “책 보는데요.” 질문자는 판사의 친구, 대답한 사람은 판사의 어린 딸이다. 남편이 밤늦게까지 재판 서류를 읽다가 조는 모습을 본 아내는 “당신이 고3이냐”며 혀를 찬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정인진 변호사가 쓴 ‘이상한 재판의 나라에서’에 나오는 대목이다. 과거에는 이처럼 퇴근길에 자료를 보따리에 싸가서 밤새 씨름하는 것은 판사들의 흔한 일상이었다. 지금도 불철주야 재판을 준비하는 판사들이 적지 않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고 한다. 법조계에선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법원에도 스며든 데다 근래에 바뀐 제도들이 영향을 줬다고 본다. 한 전직 법관은 “열심히 일하는 판사를 우대할 방법이 없어졌다”고 했다. 판사들이 밤샘 근무를 마다하지 않았던 현실적인 동기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거쳐 법원장으로 승진하겠다는 희망이었다. 그런데 2020년 고법 부장 승진제가 폐지되면서 굳이 재판 실적에 목을 맬 이유가 사라졌고, 판사들의 투표로 법원장 후보를 정하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도입되면서 고참 법관들이 후배 판사들을 독려하기도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그 결과 판사들이 일을 덜 하게 됐고, 이는 재판 지연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재판이 늦어진다는 점은 수치로 나타난다. 지난해 전국 법원에 접수된 본안 사건 수는 2013년에 비해 40만 건가량 줄었고, 판사 1명당 사건 수도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민사 본안 1심 합의부 사건의 평균 처리 기간은 6개월, 형사재판 불구속 1심 합의부 사건은 2개월 정도 늘었다. 하지만 이는 고법부장 폐지나 법원장 추천제 때문이 아니라 사법부의 구조적 문제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것이 법관 수가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산술적인 사건 수는 줄었더라도 민사사건은 나날이 복잡해지고, 형사재판은 법정 진술을 중시하는 공판중심주의 도입으로 길어졌는데 법관 정원은 2014년 말 증원 이후 그대로라는 것이다. 경력 법조인을 판사로 임용하는 법조일원화에 따른 법관의 고령화, 잦은 인사이동 등도 신속한 재판의 걸림돌로 꼽힌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재판이 늦어졌겠지만, 사안의 경중을 가려서 급한 것부터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거나 외부 컨설팅을 받아서라도 정확한 실태부터 진단해야 한다. 주로 재판이 복잡해진 탓이라면 그에 따라 판사들이 사건당 투입하는 시간이 얼마나 늘었는지, 법관의 근태 때문이라면 실질적인 업무량이 어느 정도 줄었는지 정밀하게 따져서 데이터를 산출하는 게 먼저다. 그래야 법원의 근무 시스템이나 기강을 개선하면 될 일인지, 법관 증원이 불가피한지 판단할 수 있다. 고법 부장 폐지와 법원장 추천제도 마찬가지다. 제도를 바꿀지 말지를 놓고 각자 주장만 내세울 게 아니라 법관의 근무 태도와 재판 기간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뒤 자료를 놓고 토론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생략한 채 알맹이 없는 공론(空論)을 주고받는 것은 문제 해결을 늦출 뿐이다. 지연된 재판의 당사자들은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고 있다. 형사 피고인에게는 재판이 길어지는 것 자체가 처벌이나 다름없다. 민사재판 판결을 기다리는 사이에 가정이 파탄 나거나 기업이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이 누적되면 국민이 법원을 믿지 못하게 된다. 재판 기간이 10% 길어지면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가 2% 정도 떨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재판 지연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실행력과 리더십이 절실하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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