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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대통령실의 특수활동비 예산은 ‘0’원이었다. 지난해 말 국회의 예산안 심사 당시 더불어민주당에서 대통령실 특활비 예산 82억 원을 전액 삭감해서다. 여당이던 국민의힘은 “국정 핵심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시도”라며 결사반대했지만, 다수당인 민주당은 “특활비 삭감했다고 국정이 마비되지 않는다”며 밀어붙였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국민의힘 반대 속에 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추가경정예산안에는 대통령실 특활비 41억여 원이 포함됐다.▷추경안에 반영된 특활비는 하반기에 사용할 금액으로, 연간 기준으로는 삭감했을 때와 같은 82억여 원이다. 지난해 예산안대로 원상복구된 셈이다. 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필요한 정보, 사건 수사, 외교·안보, 경호 등에 쓰이는 경비로 대부분 현금으로 지급되고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증빙자료가 없다 보니 어디에 썼는지, 본래 목적과 다르게 사용한 건 아닌지 확인하기 어렵다. 자칫 고위공직자들이 ‘쌈짓돈’처럼 써도 확인할 길이 없다.▷이렇다 보니 특활비를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실 예산을 총괄한 정상문 총무비서관이 특활비 12억여 원을 빼돌려 차명계좌에 보관한 사실이 드러나 징역 6년 판결을 받은 게 대표적 사례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가정보원의 특활비를 상납받아 사용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인 김정숙 여사의 옷값을 특활비로 결제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불투명한 특활비 사용이 논란을 낳고 있는 것이다.▷물론 국가안보실이 은밀한 정보 활동에 쓰는 비용이나 대통령이 주는 각종 격려금 등이 특활비에서 나오는 만큼 대통령실 특활비를 없애기는 어렵다. 민주당도 이번에 “국익 및 안보 등과 연계돼 고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라는 점을 대통령실 특활비 복원의 명분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지난해에는 왜 특활비 예산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깎았는지 설명을 했어야 하는데, 별 언급이 없다. 이러니 국민의힘에서 ‘후안무치’ ‘이중잣대’라고 비난하며 정쟁이 반복되는 것이다.▷삭감-복원을 둘러싼 여야 간의 다툼보다 중요한 건 특활비로 인해 세금이 낭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특활비 사용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국회가 예산을 심의할 때 특활비 규모를 필요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한다. 기획재정부의 관련 지침에도 ‘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면 특활비를 증빙이 필요한 특정업무경비로 전환하라’고 돼 있다. 국민의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감시하는 게 국회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라는 점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살아 있는 권력에 수사의 칼끝을 겨눈다는 건 때론 목을 걸어야 하는 험난한 일이다. 그래서 ‘법조 3성(聖)’ 중 한 명이자 ‘대쪽 검사’로 평가받는 최대교 전 서울고검장도 1949년 임영신 상공부 장관을 수사할 당시 “앞으로 불어닥칠 회오리바람에 맞서야 한다는 생각에 착잡했다”고 회고했다. 임영신은 이승만 대통령에게서 청혼받았던 것으로 알려질 만큼 가까운 사이였고 당시 정부의 실세였다. 외압이 거셌지만 최대교는 임영신을 수뢰 등 혐의로 기소했고, 이 일로 옷을 벗었다가 4·19혁명 뒤 복직했다. 권력형 비리에 대한 수사는 검찰의 전체 업무 가운데 극히 일부이지만, 검찰의 존재 이유와 직결된다. 최대교 같은 검사들이 ‘성역 없는 수사’에 주춧돌을 놨고, 민주화 이후 검찰은 현직 대통령의 가족과 측근 등 권부 핵심에 대한 수사를 주도했다. 수사 배경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검찰이 권력에 맞서는 모습을 보일 때 국민은 지지를 보냈다. 지금 검찰은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기소권-수사권 분리’를 공약했고 국정기획위원회는 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여당 의원들은 검찰청 폐지를 포함한 ‘검찰개혁 4법’을 내놨다. 그런데 검찰의 수사권 자체를 옹호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검수완박’을 진행할 때 찬반 여론이 팽팽했던 것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여권 “기소권-수사권 분리”… 관건은 여론 그동안의 검찰개혁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 대상은 ‘부패·경제범죄 등’으로 대폭 줄었다. 다음 단계는 기소권-수사권 분리가 되리라는 건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은 검사의 수사권에 대해 침묵한다”며 수사권을 검찰의 헌법상 권한으로 인정하지 않은 만큼 검찰이 수사기관으로 남기 위해선 여론의 지지가 반드시 필요했다. 이런 측면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당선은 검찰에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에게도 예외는 없다’는 결기를 보여줬다면 검찰의 수사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풀 꺾였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반대로 갔다. 대표적으로 김건희 여사를 소환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및 디올백 수수 의혹을 조사하자고 했던 서울중앙지검장이 전격 경질됐을 때, 새 수사팀이 김 여사를 ‘출장 조사’하고 불기소 처분했을 때 검찰 수뇌부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일 때 도이치 사건에 대한 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배제한 법무부 장관의 지시가 계속 유효한지는 논란이 있다. 후임 총장이 김 여사를 기소하도록 지휘한 뒤, 이 지휘가 적법한지는 나중에 법원의 판단을 받아 볼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그랬다면 검찰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검찰엔 두고두고 뼈아픈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尹 힘 빠진 뒤 돌변한 檢… 민심은 냉담 그랬던 검찰이 비상계엄 사태 이후 돌변했다. 서울고검은 도이치 사건 재수사에 나선 지 한 달여 만에 김 여사의 연루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녹음파일을 대거 찾아냈다. 김 여사가 ‘건진법사’를 통해 샤넬 가방 등을 받았는지도 윤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 명태균 씨 수사 역시 윤 전 대통령 직무 정지 뒤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돼 속도가 빨라졌다. 이는 검찰이 ‘성역 있는 수사’를 했었다고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힘 빠진 권력을 향해 추상같은 수사에 나선들 냉담한 민심을 돌릴 수 있겠나. 검찰 해체로까지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대수술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한 검찰의 자업자득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누가 최고 사법기관인지를 놓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간에 벌어지는 힘겨루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KSS해운 법인세 부과 공방이다. 대법원은 2011년 세금 부과가 정당하다고 판결했지만, 헌재는 실효된 부칙을 근거로 판결한 것은 헌법 위반이라며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를 근거로 KSS해운이 낸 재심 청구를 대법원이 기각하자 헌재는 기각 판결을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대법원은 이 결정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KSS해운은 국세청이 세금 부과를 취소하지 않는 건 위헌이라는 소송을 헌재에 냈다. 국세청이 헌재 결정보다 대법 판결을 우선시하는 건 부당하다는 점을 확인해 달라는 취지가 담겨 있다. 헌재는 지난달 13일 이 사건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하고,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지했다. 주목되는 건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7일 ‘재판소원’을 도입하는 헌재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과 시점이 맞물린다는 점이다.헌재 권한 확대와 직결된 숙원 사업 이 제도가 도입되면 법원 판결이 헌법소원 대상에 포함돼 판결에 문제가 있는지 헌재가 결정할 합법적 권한을 갖게 된다. KSS해운과 관련한 헌재의 움직임은 민주당의 법안을 지지한다는 점을 보여주려 한 것으로 읽힌다. 헌재는 헌재법 개정에 공감한다는 의견서도 국회에 냈다. 나아가 법원이 헌재의 결정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점을 법에 명시하고,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판결의 효력을 정지할 수 있게 하자고 제안했다. 재판소원 도입은 헌재의 숙원 사업이다. 재판소원이 전면 허용되면 헌재의 권한이 대폭 확대되고 위상이 한층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도 국민의 기본권 보장 확대 차원에서 재판소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헌법에 부합하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 따져봐야 할 문제가 여럿이다. 이론적으론 사실 판단 및 법률 해석으로 이뤄지는 법원의 재판과 재판에 의한 기본권 침해 여부를 다루는 재판소원이 구분되지만, 둘 사이의 경계는 희미하다. 헌재가 제시한 ‘헌법적으로 중요한 원칙이나 청구인의 기본권 보호에 필요한 경우’에만 재판소원의 대상으로 하자는 기준도 모호하다. 재판소원이 시행된다면 헌재가 헌법상 법원의 권한인 사법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3심제가 실질적인 4심제로 바뀌면서 판결 확정까지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도 늘어난다. 또 재판소원이 법제화되면 헌재의 업무가 폭증할 것이다. 독일의 경우 헌법소원 가운데 약 90%를 재판소원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헌법소원은 전원재판부에서 판단하므로 재판관만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따라서 재판소원 도입 여부에 대해 먼저 충분히 숙의한 뒤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필요 최소한의 사건만 대상이 되도록 정교하게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속전속결로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사법부 압박에 장단 맞추는 듯 비쳐 법리적 쟁점과 함께 반드시 짚어봐야 할 게 민주당에서 재판소원을 추진하는 배경이다. 대법원이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자 민주당은 사법부를 압박하는 여러 방안을 들고나왔다. 재판소원도 그중 하나로 평가된다. 그런데 헌재가 이에 장단을 맞추는 것으로 비칠 만한 행보를 보이는 건 신중하지 못하다. 헌재의 무게를 감안한다면 조직의 이익이 걸린 문제라도 때를 가려야 하지 않겠나. 향후 헌재가 민감한 사건을 여권에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하면 재판소원 도입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의심받을 가능성도 있다. 가벼운 처신으로 그동안 쌓아온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헌재가 무겁게 받아들이길 바란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공직후보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은 요즘 파장 분위기가 역력하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가 관리단의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내부 화장실이 폐쇄돼 직원들은 인근 관공서나 공원으로 가야 하고, 전기요금도 체납돼 언제 전기가 끊길지 모른다고 한다. 여기에 관리단 소속 검사 3명 모두 대선 전날 검찰로 복귀하게 됐고, 후속 인사는 없다. 3년 전 논란 속에 출범했던 관리단이 별 성과 없이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모양새다. ▷인사정보관리단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하고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뒷받침하면서 탄생했다. 윤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 왔다”는 등의 이유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선언했다. 이어 취임 뒤 당시 최측근이던 한 전 장관이 맡은 법무부에 인사 검증 업무를 넘겼다. 야당에선 “소통령의 탄생”이라며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정부는 시행령을 개정해 밀어붙였다. 한 전 장관도 “정치권력의 비밀 업무가 감시받는 통상 업무로 전환되는 것”이라며 적극 옹호했다. ▷1차 검증은 법무부, 2차 검증 및 판단은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로 나눠 정보가 집중되는 것을 막고 검증을 강화하는 게 당초의 취지였다지만 법무부와 공직기강비서관실 모두 수장은 검찰 출신이다. ‘검찰 공화국’에서 검사 선후배들끼리 얼마나 철저하게 역할을 분리했을까 싶다. 또 검증 과정에서 범죄의 단서를 발견했을 때 어떻게 처리할지도 논란의 대상이었다. 법무부 소속인 데다 검사들이 중심 역할을 한 관리단에서 이를 못 본 척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검경에 넘겨 수사하도록 하면 검증에 응할 후보자들이 확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 소재가 불투명해진 것도 관리단 설치의 부작용이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대법원장, 여성가족부 장관, 국가수사본부장 후보자 등이 잇따라 낙마하는 ‘인사 참사’가 이어졌다. 재산 신고 누락, 자녀 학교폭력 같은 기본적 사항조차 걸러내지 못해 일어난 일이다. ‘인사 검증에 구멍이 더 커졌다’는 지적이 쏟아졌는데도 법무부는 ‘기계적으로 자료만 수집한다’는 식의 변명으로 빠져나갔고, 대통령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럴 거였으면 굳이 왜 관리단을 만든 것인지 의문이 가시질 않는다. ▷지난해 5월 윤 전 대통령이 민정수석을 부활하면서 관리단의 입지는 더 애매해졌다. 관리단을 설립했던 명분은 사라진 셈이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다시 규정을 바꾸고 파견 인력을 돌려보내는 것도 무리라는 의견이 나왔다. 그렇게 관리단은 명맥을 유지하다가 대선을 앞두고 조용히 문을 닫고 있다. 인사 검증 시스템을 놓고 벌어진 이런 혼란이 윤석열 정부의 난맥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현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 1, 2부는 조직도에 이름만 있는 ‘유령 부서’나 다름없다. 검사가 부족해 이들 부서는 부장, 평검사 모두 공석이다. 공수처 검사 정원은 25명이지만 실제로 근무 중인 검사는 처·차장을 포함해 14명으로, 검찰로 치면 중간 규모 지청 수준에 불과하다. 퇴직하는 검사들만큼 충원이 이뤄져야 하는데 정부가 8개월 동안 신규 임용을 해주지 않고 뭉개면서 벌어진 일이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전 대통령은 애당초 공수처를 마뜩잖게 여겼다. 대선 후보 시절 “공수처에 엘리트는 안 가고 3류, 4류가 간다”는 비하성 발언을 내놓는가 하면 “공수처가 정치화된 데서 벗어나지 못하면 폐지를 추진할 것”이라고도 했다. 윤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는 다른 기관이 수사하는 사건에 대한 공수처의 이첩요청권 폐지가 포함됐다. 검경도 독자적으로 고위공직자의 부패 범죄를 수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실상 공수처를 무력화하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공수처법에서 이첩요청권을 삭제하는 방안은 여소야대의 국회에서 무산됐지만, 윤 전 대통령에게는 인사권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남아 있었다. 공수처 검사는 3년마다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연임할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 눈 밖에 나면 임기 만료 뒤 짐을 싸야 한다. 민감한 사건을 수사하는 공수처 검사들로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이 연관된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을 담당하는 공수처 검사들의 연임안 결재를 미루고 미루다가 검사 임기가 끝나기 53시간 전에야 재가하는 ‘몽니’를 부렸다. 당사자들은 물론 다른 공수처 검사들도 이 과정을 지켜보며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공수처 검사의 임용 역시 대통령의 재가가 필요한데, 있는 사람도 내쫓길 판에 인력 충원은 언감생심이었을지 모른다. 공수처는 지난해 9월 검사 3명 신규 임명을 추천했지만 윤 전 대통령은 끝내 재가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이 탄핵 소추돼 직무가 정지된 뒤인 올해 1월 공수처는 추가로 검사 4명 임명안을 올렸지만 권한대행을 맡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 최상목 전 부총리 역시 결재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윤 전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느라 뒷사람에게 미룬 듯한 느낌을 준다. ▷결국 ‘대대대행’인 이주호 권한대행이 이들 공수처 검사 7명을 25일자로 임명하는 안을 재가하면서 공수처는 숨통이 트이게 됐다. 그렇다고 윤 전 대통령 등의 내란 혐의 수사, 채 상병 외압 수사 등 윤석열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연루된 주요 사건들을 수사하는 공수처의 인력난을 일부러 방치한 정부의 책임이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치졸한 방식으로 공수처의 수사를 방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와도 할 말이 없게 됐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허위사실공표죄의 구성요건에서 ‘행위’를 삭제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전광석화처럼 진행되고 있다. 이재명 후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 다음 날인 2일 민주당 소속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이 발의하더니, 7일 행안위에 이어 14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이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곧바로 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한 뒤 시행할 기세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민주당이 서두르는 건 이 조항으로 기소돼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된 이 후보의 선거법 위반 재판을 면소 판결로 끝냄으로써 눈앞에 닥친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다만 대외적 명분은 이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행위’와 같은 추상적 용어는 법 적용 범위를 예측하기 어렵게 한다”고도 주장했다.“‘행위’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금지는 합헌” 이에 대한 해답은 이미 헌법재판소가 내놨다. 헌재는 2021년 2월 이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합헌으로 결정하면서 “후보자의 ‘행위’란 자질, 성품, 능력 등과 관련된 것으로서 선거인의 판단에 영향을 줄 만한 사항으로 한정”되고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떠한 행위가 금지되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발언이 다소 과장됐거나 미세한 부분에서 오류가 있다고 해서 처벌하는 건 아니므로 “표현에 대한 지나친 제약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돈은 묶고 입은 풀라’는 말처럼 선거법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정돼 왔다. 그 궁극적인 목적은 자유로운 선거운동 보장 자체보다는 국민의 의사가 정확하게 선거에 반영되도록 하는 데 있을 것이다. “후보자가 자신의 행위에 관해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결과적으로 선거의 공정성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고 헌재가 판시했듯이 거짓말을 하는 입까지 풀어준다면 표현의 자유는 커질지언정 국민이 왜곡된 정보를 근거로 투표할 위험 역시 높아진다. 본말이 전도되는 셈이다. 법조계 일각에선 행위에 대한 후보자의 발언이 허위인지 여부는 사법기관이 아니라 공론의 장에서 가려져야 하고, 형사처벌보다는 정치적인 책임을 물어야 하는 영역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상적인 방향일지는 몰라도 처벌과 피선거권 박탈이라는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거짓말을 늘어놓는 후보들이 넘쳐나는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고 본다.“공론의 장에서 검증” 실현 가능성 있나 사실 후보자나 가족의 ‘출생지, 가족관계, 신분, 직업, 경력, 재산’ 등 허위사실공표죄의 다른 요건들에 비해 어떤 행위를 했는지 안 했는지, 이에 대한 발언이 인식의 표현인지 사실의 진술인지를 가리는 건 전문가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시민들이 이를 판단해 투표에 반영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 더욱이 선거운동 막바지에 나온 발언은 검증할 시간적 여유도 없는데, 선거에서 이기고 나면 허위 발언이라는 게 밝혀진들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날 당선자가 얼마나 되겠나. 이 법이 시행되면 대다수 정치인과 정치지망생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를 것이다. 반면 허위 정보를 근거로 공직자를 잘못 선출한 피해는 국민이 감당해야 한다. 헌재가 합헌이라고 했고, 삭제할 경우 부작용 우려가 큰 법 조항을 없애려면 숙의를 거치는 시늉이라도 하는 게 정상이다.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과반 의석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건 정치적 폭력이나 다름없다. 대선을 앞두고 역풍을 우려할 만도 한데 그조차 개의치 않는 건 민주당의 자신감인지 무모함인지 의아할 따름이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이건 진짜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2일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우두머리 혐의 3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오상배 전 수방사령관 부관(대위)은 이 발언을 두 차례 했다. 처음은 비상계엄 당시 윤 전 대통령이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에게 전화로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라”고 지시하는 걸 들었을 때, 두 번째는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뒤에도 윤 전 대통령이 “두 번, 세 번 계엄 하면 된다”고 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은 피고인석에 앉아 젊은 군 간부의 증언을 들었다. ▷오 대위는 윤 전 대통령의 변호인이 기자회견에서 “체포의 ‘체’ 자를 얘기한 적도 없다”고 말한 것을 듣고는 “배신감 같은 걸 느꼈고”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이 돼야겠다”는 마음에 검찰에서 진술하게 됐다고 했다. 앞서 조성현 수방사 제1경비단장, 김형기 특전대대장 등 현장 군 간부들도 헌법재판소나 법원, 검찰에서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이런 증언들이 쌓여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고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윤 전 대통령은 전날 SNS를 통해 ‘국민께 드리는 호소’를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기습적인 대선 후보 교체 시도가 당원들에 의해 제지된 직후다. ‘정당 민주주의의 파괴’란 비난을 받는 국민의힘의 단일화 논란에 대해 윤 전 대통령은 “여전히 건강함을 보여준 경선”이라는 상식 밖의 평가를 내놨다. 그러면서 “제 마음은 여전히 국가와 당과 국민에게 있다” “끝까지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에 여러분과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자신을 당의 후견인으로 여기는 듯 보인다. ▷하지만 국민의힘 당원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의문이다. 조기 대선이 치러지게 된 것도, 국민의힘이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라진 것도 윤 전 대통령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그런데도 윤 전 대통령은 이번 호소문에서 당원과 국민에게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윤 전 대통령의 행태가 대선을 목전에 둔 국민의힘에 점점 부담이 되고 있는 형국인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당의 단결을 촉구하고 대선 승리를 외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재판에 출석하는 모습은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일반 피고인과 마찬가지로 지상을 통해 법정에 들어오도록 법원이 결정했기 때문이다. 윤 전 대통령은 ‘대선과 관련해 국민에게 할 말이 있느냐’는 등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대답하지 않았다. 전날 ‘호기로운’ 호소문을 발표한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윤 전 대통령이 진정 어린 사과를 할 게 아니라면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현명한 처신일 것이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건진법사’ 전성배 씨는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캠프 네트워크 본부에서 ‘실세’로 불렸다. 이 본부 사무실을 방문한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어깨를 툭툭 치며 직원들을 소개하는 동영상도 공개됐다. 하지만 무속인이 대선 캠프에 합류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배경은 뚜렷하게 알려지지 않았는데, 김건희 여사의 소개가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전 씨의 측근은 2022년 김 여사가 전 씨에게 “남편이 대선에 나가니까 도와달라”고 제안했고, 이를 전 씨가 수락해 캠프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전 씨가 언제부터 김 여사와 알고 지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두 사람이 꽤 친분이 있었던 정황은 여럿 있다. 전 씨는 김 여사가 운영한 코바나컨텐츠의 ‘고문’이라고 적힌 명함을 갖고 있었고, 2015년 이 업체가 주관한 전시회 VIP 개막 행사에도 참석했다. 김 여사와의 관계를 발판 삼아 전 씨가 캠프에서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다. ▷윤 전 대통령 당선 뒤 전 씨는 통일교 고위 간부 윤모 씨로부터 ‘김 여사에게 전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고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받았다고 한다. 전 씨와 김 여사가 가까운 사이라는 얘기가 퍼졌기 때문에 윤 씨가 접근했을 터다. 윤 씨는 ‘윤 전 대통령 부부를 따로 만났다’고 주장했고, 이를 토대로 캄보디아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추진하려 한 정황도 포착됐다. 의혹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국이다. ▷돌이켜보면 김 여사가 “내가 되게 영적인 사람이라 도사들하고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한 녹음파일이 공개된 적이 있다. 김 여사는 윤 전 대통령도 “약간 영적인 끼”가 있다고 평했다. 이런 윤 전 대통령 부부의 성향 때문인지 무속인들과 관련된 게이트급 비리 의혹이 잇따랐다. 그중 한 명이 ‘지리산 도사’ 명태균 씨다. 명 씨가 윤 전 대통령 부부에게 김영선 전 의원 공천 등을 부탁했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는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두 사건 모두 진상 규명을 위해선 김 여사 출석 조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이런 가운데 김 여사와 관련된 또 하나의 사건인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연루 의혹도 재수사가 이뤄지게 됐다.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검이 불기소 처분한 것에 대한 항고를 서울고검이 25일 받아들인 것이다. 검찰이 수사를 질질 끌다가 김 여사를 ‘출장 조사’할 때부터 공정성이 의심받았던 사건이다. 김 여사에게 유리한 진술을 했던 공범들이 말을 바꾸면 김 여사 재조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정부 내내 김 여사 관련 의혹들이 여기저기서 불거졌지만 제대로 밝혀진 게 없다. 하지만 ‘살아 있는 권력’일 때는 묻힐 듯했던 일들도 결국엔 드러나는 게 세상 이치다. 김 여사도 예외일 수 없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헌법재판소에 한바탕 폭풍이 지나갔다. 지난해 12월 14일 국회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됐을 때부터 이달 16일 한덕수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 인용까지 약 4개월 동안 헌재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고, 헌재의 결정들에 따라 정국이 출렁였다. ‘헌재의 시간’이었다고 할 만하다. 그 과정에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헌재에 관한 별별 말들이 돌았다.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놓곤 문형배·이미선 전 재판관 퇴임 전까지 결론을 못 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재판관들을 정치 성향에 따라 분류하면 인용하기에는 진보 측 재판관이 부족하고, 기각이나 각하를 하기에도 애매한 숫자라는 게 이런 분석의 근거였다. 선고가 늦어지자 마은혁 재판관 임명을 놓고 구여권과 야권이 극단적으로 대치한 이유이기도 하다.성향대로만 판단하진 않는 재판관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1988년 헌재 설립 이후 한 명의 ‘우군’이라도 더 재판관으로 앉히려는 보수-진보 정치권 간의 물밑 싸움은 계속돼 왔다. 각 진영의 운명을 가를 결정적인 사건에서 재판관들의 ‘표 대결’이 벌어질 때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한 대행이 대통령 몫 재판관 2명 지명을 강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에 대해 만장일치로 파면 결정이 나온 것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는 이런 계산법이 들어맞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2004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10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헌법소원은 인용되면 진보 진영에 타격이 불가피한 사건들이었다. 같은 재판관 9명이 심리했고, 많게는 7명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됐다. 재판관들이 성향 그대로 의견을 냈다면 두 사건에서 같은 결과가 나왔겠지만 실제로는 탄핵은 기각, 헌법소원은 인용(위헌)이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도 비슷하다. 재판관 8명 중 적어도 5명이 보수 성향으로 평가됐다. 당시 청와대에선 이 중 3명 이상이 파면에 반대해 기각 결정이 나오길 기대했지만 결과는 만장일치 인용이었다. 사안의 성격과 중대성, 당시 여론의 흐름 등을 감안했을 때 이들 사건에서 헌재의 결정은 합리적이었다는 게 법조계의 중평이다. 이는 재판관들의 ‘집단지성’이 작동한 결과라고 본다. 물론 인용과 기각이 4 대 4로 팽팽하게 나온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심판처럼 재판관들의 색채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취임 이틀 만에 탄핵소추된 이 위원장에 대해 예상보다 인용 의견이 많았다는 반응이 적지 않지만, 결과는 기각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각 재판관의 성향이 표출되더라도 이를 종합한 최종 결론이 상식의 궤에서 벗어날 정도에 이르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우군’ 심기 지양하고 헌재 존중해야 대법관과 함께 사법기관의 최고위직인 헌법재판관은 대부분 그에 걸맞은 능력과 연륜을 갖춘 인물들이 맡아 왔고, 밖에서 분류하는 성향대로 기계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더욱이 위헌 법률, 헌법소원, 탄핵, 권한쟁의 심판에는 재판관 6인 이상이 찬성해야 인용되는 ‘가중 정족수’가 적용된다. 재판관들의 중지가 모여야 결론이 나올 수 있게끔 만든 일종의 안전장치다. 대통령 대법원장 국회에 각 3명씩 재판관 지명 또는 추천권을 배분한 현행 헌법의 방식이 이상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까지는 헌재의 자율성과 재판관들의 양식을 통해 편향 우려를 극복해 왔다. 진보-보수 정치권이 이를 존중하고 헌재의 중립성 강화 방안을 고민하지는 못할망정 더 극단으로 치우친 재판관을 심어 헌재를 내 편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접길 바란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미국에는 전직 대통령이 아무리 후임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공개적인 비판을 삼가는 불문율이 있다. 200년 넘게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전·현직 대통령 간의 갈등으로 국론이 분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오랜 전통이다. “나라를 하나로 묶고 정부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미 정치전문매체 ‘더힐’)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불문율이 흔들리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시도에 의해 우리의 삶이 압도된다면, 건국 이래 더 완벽한 연방을 위한 250년간의 여정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했다. 앞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에서는 ‘그건 옳지 않다’라고 말하는 평범한 시민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트럼프를 직접 거명하진 않았지만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는 분명하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도 “이 정부는 100일도 안 돼 너무나 큰 피해와 파괴를 가져왔다”며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세 사람 모두 트럼프와 이런저런 악연이 있기는 하다. 트럼프는 바이든을 향해선 “졸린 조”, 클린턴의 아내이자 2016년 대선에서 맞붙은 힐러리는 “사악한 힐러리”라고 부르며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오바마가 처음 대선에 출마했을 때는 ‘미국 태생이 아니다’는 허위 정보를 퍼뜨렸다. 그렇다고 유례가 없는 전직 대통령들의 동시다발적 현직 대통령 비난을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긴 어렵다. 트럼프에 대한 미국 사회의 반감이 심상치 않아서다. ▷트럼프가 보조금 중단을 무기로 하버드대, 컬럼비아대 등 ‘진보의 아성’으로 꼽히는 아이비리그 대학들을 길들이려 하자 미 지식인들과 대학가가 들끓고 있다. 트럼프의 막무가내식 이민자 추방 정책에 보수 성향인 대법원이 ‘정부는 추방을 잠정 중단하라’며 제지에 나서기에 이르렀다. 연방정부 직원들을 대규모 해고하면서 관가 분위기도 흉흉하다. 트럼프의 대표 정책인 관세 인상으로 시민들은 물가 상승, 기업들은 미국의 대외 이미지 하락에 따른 해외 영업 손실을 우려하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는 반(反)트럼프 시위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19일 워싱턴, 뉴욕 등 미국 700여 곳에 모인 시민들은 “창피하다” “왕은 없다”고 외치며 집회를 열었다. 미 전역에서 ‘핸즈오프(Hands Off·트럼프는 손을 떼라)’ 시위가 벌어진 지 2주 만이다. 미 갤럽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1분기(1∼3월) 지지율은 45%로, 1952년 이후 취임한 대통령들의 첫해 1분기 평균 지지율 60%보다 한참 낮다. 이대로라면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당 의원들이 ‘손절’에 나설 수도 있다. 국민을 이기는 정치는 없다. 트럼프가 끝까지 독주를 계속할지, 아니면 중간에 돌아설지는 미국인들의 손에 달렸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대통령 등 주요 공직자들에 대한 탄핵이 가능하다는 조항은 1948년 헌법 제정 이후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제헌 헌법의 기틀을 잡은 유진오 박사는 해설서에서 탄핵의 조건에 대해 “형사 범죄의 경우에 한하지 않음은 물론이며, 대통령이 공포해야 할 법률을 공포하지 않았다든가… 하는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하는 사유가 있을 때”라고 썼다. 탄핵의 범위를 상당히 넓게 상정하고 탄핵 제도를 설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까지 헌법재판소가 선고한 12건의 탄핵 사건 중 인용은 1건뿐이고 10건은 기각, 1건은 각하됐다. 헌법이나 법률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기각한 사례가 적지 않아서다. 이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에서 헌재가 제시한 “모든 법 위반이 아니라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이 있어야 한다는 기준에 따른 것이다. 헌법에는 적시되지 않은 위헌·위법의 ‘중대성’이 실제론 파면 여부를 좌우하는 핵심 요건이라는 얘기다.“파면 효과 압도할 법 위반” 여부가 관건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는 더 엄격하게 중대성을 따진다. “파면 결정의 효과가 지대하기 때문에 이를 압도할 수 있는 중대한 법 위반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론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것이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해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 탄핵안을 인용할 수 있다는 게 헌재의 판례다. 대통령 위헌·위법 행위의 정도와 반복될 가능성, 국민의 신뢰를 계속 받을 수 있을지를 따져 결정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그렇다고 ‘중대성’이 넘지 못할 높은 벽은 아니라는 게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의 결과였다. 당시 헌재에선 훗날 형사 재판에서 중형이 확정된 뇌물수수, 직권남용 등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업들에 미르재단 등에 출연하도록 요구했고(기업 경영의 자유 등 침해), 최순실 씨의 국정 개입을 허용했으며(공익실현 의무 등 위배), 진상 규명 협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헌법 수호 의지 불분명)는 이유로 대통령을 파면했다. 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도 같은 기준에서, 박 전 대통령에 버금가거나 무거운 ‘국민 신임 배신’이나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행위’가 있었는지가 준거점이 될 것이다. 먼저 헌법과 계엄법상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상황에서 계엄을 선포했는지에 관해선 법조계에서 부정적 의견이 많다. 계엄 선포 전 필수 절차인 국무회의에 대해서도 참석자 대부분이 ‘하자가 있었다’고 했다. 朴 탄핵 인용 기준이 尹 선고의 준거점 계엄 실행 과정에서는 헌법이 보장한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권 행사를 막기 위해 국회에 군을 투입하고 경찰을 동원해 국회를 봉쇄했는지가 관건이다. 윤 대통령은 적극 부인했고 일부 군 사령관들은 헌재에선 침묵했지만,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한 일선 군경 간부들이 여럿 있다. 법조인들은 진술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은 증언을 하면 신빙성을 높게 평가한다. 정치 활동 전면 금지 등이 담긴 포고령의 위헌성도 간과할 수 없다. 헌법재판관들은 저울의 한쪽에 탄핵 인용에 부합하는 요소들을, 다른 한쪽에는 대통령 파면이 가져올 효과를 올려놓고 세밀하게 법익을 계량해서 각자의 의견을 정했을 것이다. 법리와 증거가 복잡한 데다 정치 세력들의 희망이 섞인 전망까지 더해져 다양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다수의 시민이 수긍할 만한 결정문을 내놓는다면 헌재의 오랜 고민이 헛되지 않았다는 뜻이 될 것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과 이광우 경호본부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에 검사가 불참한 것을 놓고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들의 영장은 “범죄 혐의에 다퉈 볼 여지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21일 법원에서 기각됐는데, 검사가 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해서 구속 필요성을 주장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마지못해 이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던 검찰이 일종의 ‘태업’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김 차장과 이 본부장은 경호처 내에서 대표적인 ‘강경파’로 분류되는 인물들이다. 경찰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하고, 경호처가 관리하는 비화폰 서버에서 군 사령관들의 통화 기록을 삭제하려 한 혐의 등으로 김 차장에 대해 3차례, 이 본부장에 대해 2차례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도주나 증거 인멸 우려 등이 없다’며 번번이 기각했다. 이에 경찰의 신청으로 6일 열린 서울고검 영장심의위원회에서 ‘영장을 청구하는 게 타당하다’고 권고한 뒤에야 검찰은 법원에 영장을 청구했다. ▷경찰이 수사를 주도하고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사건의 영장실질심사에 검사의 참석 여부는 사안의 중대성에 달려 있다. 경찰이 일상적으로 넘기는 사건은 검사가 영장실질심사에 불참하기도 하지만, 이번처럼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라면 검사가 직접 챙긴다는 것이다. 내란 혐의로 영장이 청구된 조지호 경찰청장은 물론 ‘음주 뺑소니’ 사건으로 영장이 청구된 가수 김호중 씨 등은 경찰이 수사했어도 검사가 심사에 들어갔다. 고위 검사 출신의 법조인은 “심사에서 검사에게는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지만 경찰관은 판사가 묻는 것에만 답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다. 검사가 참석하면 구속 사유를 입증할 기회가 늘어나는 셈이다. ▷법원이 발부한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경호처가 막아서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및 경찰과 대치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던 게 두 달 전이다. 비화폰 서버에 계엄 당시 벌어진 일들에 대한 단서가 남아 있는지 궁금하게 여기는 국민도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지목된 두 사람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결정할 영장실질심사였다. 어떤 과정을 거쳐 영장을 청구하게 됐든 심사에 참석해 최선을 다하는 게 검찰의 기본 아닌가. ▷더욱이 윤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에 대해 검찰이 항고를 포기한 것을 놓고 ‘봐주기’라는 비판 여론이 일었고, 그 여진이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상황이다. 계엄 선포 직후 대검 과장급 간부가 방첩사 대령과 통화한 것 등을 놓고 ‘검찰도 뭔가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 미묘한 시점인 만큼 검찰이 계엄 관련 사건에서는 더욱 신중했어야 했는데, ‘나 몰라라’ 식의 행보로 의혹과 논란을 키운 결과가 됐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의 정당성과 내란죄 적용의 부당함을 주장한 논리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비상계엄 선포는 야당의 줄탄핵과 일방적 예산 삭감, 광범위한 부정선거 등으로 인해 국가가 비상사태에 처했으므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말한다. 계엄 이후 상황에 대해선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발언이 핵심이다. 국회 봉쇄, 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 저지, 정치인 체포 등은 “일어나지도 않았고 일어날 수도 없는 불가능한 일”이므로 국헌 문란은 없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범죄는 실질적 피해가 발생했을 때 성립한다. 윤 대통령의 주장처럼 국회가 완전히 마비되거나 정치인이 체포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2시간 반 만에 계엄이 해제됐으니 결과적으로 별문제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일부 있을 듯하다.내란죄는 위험범… “목적 달성과 무관” 하지만 이는 내란죄가 ‘위험범’, 즉 법익이 침해될 위험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성립되는 범죄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대법원은 내란죄의 성격에 대해 “국헌 문란 목적으로 다수인이 결합해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폭행·협박 행위를 하면 기수(범죄의 완성)가 되고, 그 목적의 달성 여부는 무관하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국회 등 국가기관이 실제로 전복되지 않았더라도 헌정질서가 무너질 위험이 발생했다면 내란죄가 성립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더욱이 법원은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요소로서 폭행·협박을 “최광의(가장 넓은 의미)”로 해석했다. “일체의 유형력 행사나 외포심을 생기게 하는 해악의 고지”가 있으면 폭행·협박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폭행은 사람뿐 아니라 물건에 대한 물리력 행사도 포함된다(신동운 ‘형법각론’). 또 대법원은 ‘전두환·노태우 내란 사건’ 판결에서 1980년 비상계엄 전국 확대에 관해 “그 자체만으로도 국민에게 기본권이 제약될 수 있다는 위협을 주는 측면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내란죄의 협박이 있었다고 했다. 그만큼 인정되는 범위가 넓다는 얘기다. 이번 계엄은 어땠나. 국회 경내에는 군용 헬기와 무장 병력이 투입됐고, 선관위에도 군이 들이닥쳤다. 크고 작은 충돌이 벌어지면서 군은 유리창을 깨고 국회 본관에 진입했다. 윤 대통령은 ‘경비와 질서 유지’를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현장에 있던 이들에게는 심각한 위협이었을 것이다. 이에 더해 포고령에는 영장 없는 체포·구금·압수수색, 언론과 출판 통제 등 기본권을 제약하는 내용이 여럿 있다. 물리력이 행사됐고, 다수의 국민이 두려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고 본다. 법원, 폭행·협박을 폭동으로 넓게 인정 계엄이 합헌·합법적으로 이뤄졌다면 행정과 사법을 관장하기 위해 계엄군이 일부 투입되는 건 용인될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국회에 군을 보낼 근거는 없다. 포고령으로 국회·정당을 포함한 정치활동을 전면 금지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 더욱이 지난해 12월 3일이 계엄법상 선포 요건인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돼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상태였나. 공직자 탄핵과 예산 삭감이 도를 넘었다고 해도 정치로 풀어야 할 영역이다. 법적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계엄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6조 원 이상이라고 한국은행은 추산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측이 평가하는 민주주의 지수에서 한국은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추락했다. 계엄 이후 증폭된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는 데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윤 대통령이 아무리 부인해도 이 모든 게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군을 동원해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표결을 막고 정치인들을 체포하려 했는지는 탄핵심판의 최대 쟁점이다. 윤 대통령 측은 헌법재판소 변론에서 “의원 아닌 요원을 끌어내라 한 것”, “체포가 아니라 동향 파악”이라며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현장에 출동했거나 사령관들의 지시를 받았던 일선 지휘관들은 윤 대통령 측의 주장과 상반되는 증언을 쏟아내고 있다.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이 ‘대통령이 문을 부숴서라도 국회의원을 끄집어내라, 필요하면 전기도 끊으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21일 국회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에서 나온 이상현 특전사 1공수여단장의 발언이다. 이 여단장은 “대통령 지시 사항이라고 부하에게 전달은 했지만 당혹스러웠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당시 있었던 일을 “수첩에 다 기록하고, 수정할 수 없게 볼펜으로 써 검찰에 제출했다”고 한다. ▷이 여단장이 곽 전 사령관의 전화를 받을 때 차에 함께 있던 1공수 작전참모도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대통령님 지시’라는 단어가 기억난다”고 했다. 방첩사 방첩부대장은 곽 전 사령관이 긴장해서 전화를 받길래 다른 간부에게 물어보니 ‘코드원’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앞서 조성현 수방사 1경비단장은 헌재에서 “이진우 전 사령관으로부터 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이들이 모두 입을 맞춰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여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정치인 체포 지시에 관한 증언도 이어지고 있다. 구민회 방첩사 수사조정과장은 국조특위에서 “(김대우 전 수사단장이) 체포한다는 지시와 명단을 불러줘서 받아 적었다”고 증언했다. 김 전 단장도 앞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체포 대상자들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잡아서 수방사로 이송시켜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줄줄이 명령이 하달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당시 출동한 방첩사 요원들은 포승줄, 수갑 등을 지참했다. 누가 봐도 동향 파악 차원의 움직임은 아니다. ▷계엄 포고령의 절차적 하자 문제도 제기됐다. 계엄 포고령은 대통령이 서명한 계엄 공고문을 토대로 작성해 계엄사령관 결재, 대통령 재가를 거치도록 규정돼 있는데 당시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대통령) 서명이 들어간 포고령 1호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정해진 절차를 건너뛴 채 정치활동 전면 금지 등이 포함된 포고령을 발표했다는 얘기다. ▷계엄 당시 특전사, 수방사, 방첩사 사령관에게서 명령을 하달받은 일선 지휘관과 간부들은 준장, 혹은 대령이나 중령 계급으로 현장 상황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기소된 사령관들에 비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날 상황을 꾸며낼 이유도 없을 것이다. 이들의 잇단 증언에 대한 군 통수권자의 입장은 뭔가.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3년여 전 헌법재판소가 내놓은 결정으로 법조계가 술렁인 적이 있다. 성폭력 피해 미성년자의 영상녹화 진술을 재판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성폭력처벌법 조항이 위헌이라는 내용이다. 결국 어린 피해자가 직접 법정에 나와 진술해야 한다는 것이어서 ‘2차 피해’ 우려가 제기됐다. 그럼에도 헌재가 이런 결정을 한 것은 녹화 과정에서 피고인 측이 반대신문을 할 수 없으므로 “방어권 제한의 정도가 매우 중대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만큼 한국의 사법체계에서는 방어권을 중시한다.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권리,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권리 등이 방어권의 구체적 내용이다. 방어권이 강조되다 보면 수사와 재판에 차질이 생길 수 있고,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권리를 우선시한다는 지적이 나올 소지도 있다. 하지만 “공정한 형사절차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자기방어를 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이고, 이에 대한 이견은 찾아보기 어렵다.체포 거부도, 재판 지연도 ‘방어권 차원’ 그런데 최근 윤석열 대통령 주변에서 분출되는 ‘방어권 보장’ 요구는 도를 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란죄 수사 초기부터 피의자로서의 방어권만 강조하며 체포와 구속에 반대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체포영장 2차 집행을 앞두고 대통령실에서 “시민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자기 방어권을 보장해 달라”고 한 게 압권이었다. 방어권이 중요한들 적법한 영장 집행을 막는 명분이 될 순 없다. 윤 대통령 측은 요즘엔 헌재가 탄핵심판 변론기일을 한꺼번에 지정한 것 등을 방어권 침해라고 주장하며 피청구인으로서의 방어권에 집중하는 양상이다. 국가인권위원회까지 ‘헌재가 탄핵심판에서 적법 절차를 엄격하게 준수해야 한다’며 가세했다. 이럴 만큼 윤 대통령의 방어권은 취약한가. 윤 대통령은 고위직 전관 출신을 포함한 대규모 변호인단의 조력, 여당과 대통령실의 지원 사격 등 겹겹이 보호를 받으면서 체포 적부심, 구속 취소 청구 등 다양한 제도를 꼼꼼하게 활용하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검찰의 출석 요구 거부, 체포 뒤에도 진술 거부 등 피의자의 권리를 넘치도록 행사했다. 헌재에서도 윤 대통령이 의견을 밝히는 데 별 제약이 없다. 그래도 부족하다고만 한다.권력자 아닌 약자를 지키는 방패 돼야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측의 방어권 주장도 지나친 측면이 있다. 이 대표 역시 변호인단과 민주당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다. 공직선거법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뒤 소송서류를 송달받지 않고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아 항소심을 늦췄다. 그럼에도 “정당한 방어권 행사”라며 1심 판결의 근거가 된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대권 가도에 차질이 없도록 항소심 선고를 늦춰 보겠다는 게 속내일 텐데, 이를 방어권으로 포장한 셈이다. 방어권은 지위 고하와 무관하게 인정되지만, 방어권이 소중한 근본적 이유는 막강한 국가의 형벌권 앞에서 약자인 시민의 방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방어권 뒤에 숨으려는 듯한 행태를 보이는 건 방어권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다. 직무가 정지됐어도 현직인 윤 대통령, 원내 제1당의 ‘일극’인 이 대표라면 ‘나에 대한 방어권은 최소화하고 신속하게 진상을 규명하자’고 나서야 하지 않겠나. 유능한 변호인을 구할 능력도, 법률 지식도 부족해 꼭 필요한 방어권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힘 없고 가난한 서민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느낄 박탈감을 생각해서라도 여야 정치 지도자와 그를 돕는 이들이 함부로 방어권을 입에 담지 말았으면 한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검찰 재직 당시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등 혐의로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을 기소했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6일 “국민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 회장에게 적용한 19개 혐의에 대해 2심에서도 ‘모두 무죄’ 판결이 나오자 고개를 숙인 것이다. 2020년 9월 이 원장의 주도로 검찰이 “판례, 증거관계, 사안의 중대성” 등을 강조하며 기소를 밀어붙인 지 3년 반 만이다. 그런데 발언의 내용을 짚어 보면 뒷맛이 개운치 않다. ▷먼저 뭘 사과한다는 것인지 모호하다. 이 원장이 사과한 직접적인 대상은 “국민”과 “공판업무를 수행해 준 후배 법조인들”이었다. 정작 본인이 기소한 사건으로 100차례 넘게 공판에 출석하며 고통을 겪은 이 회장과 피해를 당한 삼성그룹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또 자신이 “기소 결정을 하고 논리를 만들고 근거를 작성”했는데 “법원을 설득할 만큼 단단히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과한다”고 했다. 기소가 잘못됐다기보단 탄탄하게 기소하지 못한 게 문제라는 취지로 들린다. 과연 그런가. ▷검찰에서 이 사건을 수사할 당시 무리한 수사라는 지적이 나온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삼성 계열사 등을 50여 차례 압수수색하고 관련자 110여 명을 조사하는 등 저인망식 수사를 펼쳤는데도 이 회장을 비롯한 삼성 경영진에 대한 구속영장은 줄줄이 기각됐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서 10 대 3의 압도적 의견으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을 때라도 받아들였어야 했지만 거부하고 기소를 강행했다. 결국 재판에서는 단 하나의 혐의도 인정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 대한 이 원장의 사과는 없었다. ▷나아가 이 원장은 “사법부가 법 문헌 해석만으로는 주주 보호 가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며 법률 개정을 주문했다. 법의 미비, 법원의 소극적 해석으로 유죄 판결을 받지 못했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지만 핑계로 비칠 뿐이다. 법률이 어떻게 돼 있든 검사는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사안만 기소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 사건에서 검찰이 압수한 디지털 자료들이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아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했고, 그럼에도 항소심 재판부는 핵심 증거 229개를 살펴본 뒤 무죄라고 결론 내렸다. 검찰의 수사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 아닌가. 법률 탓, 법원 탓으로 돌릴 계제가 아니다.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발이 묶인 9년간 삼성의 글로벌 이미지는 실추되고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기업에 국한된 게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에 타격을 준 일이다. 검찰의 수사팀장이었던 이 원장이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데도 사과인지, 변명인지 모를 발언을 내놓는 걸 보니 책임의 무게를 느끼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강변하며 ‘통치행위론’을 꺼내 든 것은 퇴진 거부 방침을 분명히 밝힌 지난달 12일 담화에서였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사면권, 외교권 행사와 같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라는 것이다. 사법의 영역을 넘어선 결단이므로 탄핵이나 수사·재판의 이유로 삼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후 윤 대통령 측은 통치행위를 명분으로 수사 절차를 거부했지만, 법원의 체포·구속영장 심사에서는 인정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 측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변론에서 계엄 선포는 “헌법 질서 수호를 위한 최후 수단”,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이라고 강조하며 통치행위론을 반복하고 있다. 헌재가 이를 받아들인다면 탄핵안이 각하될 수도 있기 때문에 윤 대통령으로선 포기할 수 없는 카드라고 여길지 모른다.외교권·사면권과 계엄선포권은 다른 차원 하지만 그동안의 헌재 결정과 법원 판결을 살펴보면 ‘계엄=통치행위’라는 주장은 허상에 가깝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외교권’ 사례는 2003년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에 관한 헌법소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헌재가 통치행위로 보고 각하한 유일한 사례다. 헌재는 국방·외교에 관련된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점과 함께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를 지켜 이뤄진 것임이 명백”하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번 계엄은 어땠나. 지금까지 나온 진술과 정황으로 보면 흠결이 한둘이 아니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표결을 막기 위해 국회에 병력을 투입했다는 점이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졌고,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는 허겁지겁 진행하다 국무위원들의 부서 없이 끝났다. 계엄 건의는 총리를 거치지 않았고, 계엄 선포문 공고 절차도 없었다.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에 대해선 “사면권자의 고도의 정치적·정책적 판단에 따른 ‘시혜적’인 조치”라고 본 대법원 판례가 있다. 그렇지만 형량을 줄이거나 복권해 주는 사면과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계엄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실제로 헌재는 금융실명제 실시, 신행정수도 건설법, 개성공단 전면 금지 조치 등에 관한 헌법재판에서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된다”는 이유로 통치행위가 아니라 심판 대상이라고 했다. 이런 점들은 언급하지 않은 채 통치행위가 광범위하게 인정되는 듯이 말하는 건 ‘눈 가리고 아웅’이다.판결문 앞뒤 자르고 유리한 부분만 부각 나아가 일부 여권 인사는 ‘전두환·노태우 내란 사건’ 판례를 통치행위론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제시한다. 앞뒤 자르고 유리한 부분만 떼어낸 일종의 기만이다. 판결문에는 “비상계엄 선포·확대는 고도의 정치적·군사적 성격을 지닌 행위”라면서도 “국헌 문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해진 경우에는 범죄에 해당하는지 심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결국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을 보면 어디에 방점이 찍혔는지는 자명하다. 계엄 포고령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더 적극적이다. 정치활동 목적의 집회·시위 금지, 언론·출판 검열, 영장 없는 수색·구속 등을 규정한 유신 계엄 포고령은 “위헌이고 위법해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번 포고령에도 비슷한 내용이 들어 있다. 계엄선포권이나 긴급재정경제명령권 같은 국가긴급권은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한이고, 헌법에 정해진 대로 사용했는지 사법적으로 판단하는 게 마땅하다. 다시 말해 계엄선포를 무조건 통치행위로 인정해 사법 심사에서 배제한다면 굳이 헌법에 발동 요건과 절차를 명시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런데도 계속 통치행위론을 방패처럼 앞세우는 것은 어떻게든 계엄의 책임을 회피해 보겠다는 말이나 다를 게 없어 보인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박종준 전 대통령경호처장이 10일 전격적으로 경찰에 출석하고, 사직까지 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닷새 전만 해도 “대통령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신명을 바칠 것”이라며 호위무사를 자처했던 그다. 윤석열 대통령 변호인단도 박 전 처장 출석 직후 “처장 복귀 시까지 차장이 직무를 대행한다”고 공지했다. 그가 돌아올 것으로 여겼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 체포를 둘러싼 대치 와중에 경호처 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세간에서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부분은 두 차례 출석을 거부했던 박 전 처장이 왜 갑자기 사표를 낸 뒤 경찰에 나왔을까 하는 점이다. 뭔가 계산된 행보라고 보는 이들은 박 전 처장을 먼저 체포한 뒤 윤 대통령 신병 확보에 나서려는 공수처와 경찰의 계획을 흔들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한다. 반면 세 번째 출석 요구에도 불응하면 경찰의 체포영장 신청이 유력한 상황에서 체포를 피하고 경호처장으로서의 심적 부담을 덜기 위해 이런 선택을 했다는 시각도 있다. 그는 11일에도 경찰에 출석한 뒤 “최대한 성실히 협조하고 있다”고 했다. ▷이른바 경호처 내의 ‘강경파’에 박 전 처장이 밀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야당에선 “경호처에도 김건희 여사의 총애를 받는 한남동 십상시가 있다” “김용현·김성훈·이광우는 한 몸”이라며 김성훈 경호차장, 이광우 경호본부장을 ‘김건희·김용현 라인’으로 지목한다. 공채 출신인 두 사람은 윤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근접 보좌해 왔다. 반면 박 전 처장은 지난해 9월부터 4개월 정도 처장으로 재직해 왔을 뿐이다. 8일 윤 대통령이 관저를 둘러봤을 때도 두 사람이 박 전 처장보다 먼저 알고 경호관을 배치했다고 한다. ▷공채 출신으로 경호처의 또 다른 핵심으로 꼽히는 이진하 경비안전본부장도 11일 경찰에 출석했다. 그는 체포영장 집행을 막은 것은 “윗선의 지시를 전달한 것일 뿐”이라며 책임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TOP 4’로 불리는 수뇌부가 각자도생을 택한 마당에 경호처 직원들이 동요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경호처 직원들만 접속할 수 있는 내부망에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하는 행위는 공무집행 방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가 삭제되는가 하면 경호처 직원이 보냈다는 “춥고 불안하다”는 등의 메시지가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평소 경호 대상의 그림자처럼 임무를 수행하는 경호처는 “하나 된 충성 영원한 명예”를 처훈(處訓)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충성의 대상인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의 피의자가 된 데다 핵심 간부들이 누구 라인이네 하는 등의 잡음이 흘러나오면서 경호처 직원들은 자긍심에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경호처 직원들을 ‘사병’처럼 이용해 버티는 윤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불러온 것이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비상계엄 사태가 한 달 가까이 지나면서 검찰,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간에 벌어졌던 내란죄 수사권 혼란은 일단락되고 있다. 쟁점은 공수처와 검찰에 수사권이 있는지 여부였지만, 법원은 수사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다. 공수처가 청구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검찰이 청구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모두 발부한 것이 단적인 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 측은 수사를 미루거나 피할 수 있다는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심지어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마저 “불법” “무효”라며 생떼를 쓰고 있다. 체포영장은 항고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을 방법이 없다. 발부되면 일단 집행하고, 필요하면 구속영장 심사나 본재판에서 문제가 있는지 짚어보는 것이다. 신속성, 은밀성이 요구되는 체포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26년간 검사로 재직하며 숱하게 체포영장을 청구하고 발부받았던 윤 대통령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방어권 차원이라고 주장하더라도 현직 대통령이라는 신분과 사안의 중대성에 맞게 지켜야 할 선이 있다. 무작정 버티는 ‘내란 수괴’ 피의자 尹 그동안 공수처의 출석 요구에 불응했던 과정도 치졸하다. 관저에 숨은 채 ‘수취인 불명’ ‘수취 거절’이라는 이유로 출석요구서를 무시하면서 “공수처에는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 “수사보다는 탄핵심판이 우선”이라는 등의 주장으로 여론전만 펼쳤다. 이런 피의자를 그냥 두고 볼 수사기관은 없다. 더욱이 최고 형량이 사형인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 당사자를 조사하지 않는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얘기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 측이 공수처 수사를 거부하는 명분으로 드는 것은 공수처법상 수사 대상 범죄에 내란죄가 없다는 것이다. 공수처법에는 ‘공수처가 수사하는 범죄와 직접 관련성이 있는 죄’도 수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에 따라 공수처는 직권남용 관련 범죄로 윤 대통령의 내란죄를 수사하고 있고 법원도 적법하다고 인정했는데, 윤 대통령 측만 애써 귀를 막고 있는 셈이다. 공수처법상 수사 가능한 범죄에 내란·외환죄가 명시돼 있었다면 이런 불필요한 논란의 빌미마저 주지 않았을 것이다. 공수처법은 17개의 직위·직군을 수사 대상자로 적시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대통령이다. 그리고 현직 대통령에 대해 확실하게 수사가 가능한 범죄는 내란죄와 외환죄뿐이다. 이들 범죄가 공수처 수사 범위에 포함되는 게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는데, 현행법에는 빠져 있다. 형사사법 체계 보완은 차후의 문제 이는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출범, 2022년 ‘검수완박법’ 통과로 형사사법 체계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검찰 중심으로 이뤄지던 수사 시스템을 바꿔 검찰은 직접 수사를 최소화하고, 고위공직자의 주요 비리는 공수처에서 담당하며, 나머지 범죄는 경찰에 맡기는 방식으로 재정비했다. 그 과정에서 각 기관의 수사권을 입법적으로 세심하게 정리하지 못하다 보니 공수처법에서 내란죄가 누락되는 결과가 됐다고 본다. 윤 대통령을 비롯한 내란 관련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만큼 법원의 판단을 받아 가면서 진행하면 될 일이다. 다만 45년 만의 비상계엄 선포와 내란 사태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법리적 논란이 벌어진 만큼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차후에 총체적으로 점검할 필요는 있다. 불명확한 형사사법 체계로 인해 수사에 혼선이 생기거나 절차적 하자가 발생해 사법정의 실현이 지체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4일 새벽 비상계엄 해제를 위해 의원들이 모인 국회 본회의장 화면을 지켜보면서 ‘곧 계엄군이 들이닥쳐 난장판이 되리라’고 걱정한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표결은 순탄하게 진행됐고 계엄은 실패로 끝났다.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한편으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의아했다. 이번 계엄 실행을 위해 최소 1500명의 장병이 동원됐다는 점이 밝혀졌다. 게다가 특수전사령부 산하 707특수임무단과 제1공수특전여단,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특임대 등 내로라하는 최정예 부대가 투입됐다. 방첩사령부, 정보사령부 요원들과 경찰도 가세했다. 국회의 표결을 막기에 충분한 병력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수사와 증언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특전사, 수방사, 경찰에 수차례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독촉했다.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은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항명죄로 다스린다’며 엄포를 놨다고 한다. 대통령과 장관의 성화에도 장병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전 계엄들과의 결정적인 차이였다.‘항명죄’ 엄포에도 움직이지 않은 장병들 1980년 광주의 계엄군 중 상당수는 한강 작가가 적었듯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는” 잔인함을 보였다. 이런 부당한 행위를 저지른 군인들은 강압, 인식론적 한계, 축소된 책임 등 세 가지 범주에서 변명을 내놓는다고 제프 맥머핸 옥스퍼드대 교수는 분석한다. 군인으로서 어쩔 수 없었다, 잘못된 행동인 줄 몰랐다, 또는 정신적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과거 계엄군들의 생각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군인이라면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2024년 서울의 계엄군은 아무리 명령이라도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눠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인식했고 실천했다. 여기에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헌법의 힘이 작용했다고 본다. 윤 대통령 스스로 “예산 폭거” “입법 독재” 등을 명분으로 내세운 것처럼 이번 계엄이 정치적 이유에서 비롯됐다는 점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헌법상 계엄 선포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 계엄 선포권의 근간이 되는 국군 통수권은 헌법이 정한 대통령의 핵심 권한이지만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행사돼야 한다고 헌법에 적혀 있다. 헌법상 군 통수권의 한계와 군의 중립성 더욱이 헌법에는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고 명시돼 있다. 종합하면 대통령이 정치적 목적으로 군을 움직여 중립성을 훼손하는 것은 헌법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지금은 ‘군의 정치적 중립’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실제론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개정된 현행 헌법에 새로 들어간 조항이다. 그전까지 11차례 계엄이 선포되고 3차례 위수령이 발동되면서 국군이 국민을 해치는 비극이 벌어졌다. 군부독재하에서 고통받은 이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이들의 피와 눈물이 쌓여 헌법에 반영됐다. 계엄령에 따라 긴급 출동한 장병들이 헌법을 떠올릴 겨를이 있었겠냐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헌법 조항을 세세하게 아는 이들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현장의 군인들은 헌법에 부합하는 행동을 했고, 그 덕분에 헌법 규정에 따른 계엄 해제가 가능했다. 자연스럽게 헌법이 작동한 결과가 됐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긴 세월에 걸쳐 헌법의 가치가 개개인의 의식에 스며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무게는 대통령이 앞장선 계엄을 주저앉힐 만큼 무겁다. 이제 군을 동원해서 권력을 쥐어보겠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세상이 됐다. 혼란과 충격의 와중에 건진 희망이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