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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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장택동 논설위원입니다.

will71@donga.com

취재분야

2024-03-27~2024-04-26
칼럼100%
  • [횡설수설/장택동]‘위안부 동원 강제성 없었다’ 거꾸로 가는 日 교과서

    “‘위험한 교과서’ 검정 통과를 즉각 취소하라.” 일본 문부과학성이 19일 레이와서적의 중등 역사 교과서 2권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일본의 한 시민단체가 발표한 성명이다. 일본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만큼 이 교과서에는 일본군 위안부, 한일합병 등 한일 간의 과거사를 왜곡하는 내용들이 들어 있다.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항의하는 등 후폭풍이 거세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서술이다. 이 교과서는 “일본군이 조선 여성을 강제 연행했다는 사실은 없으며 그들은 보수를 받고 일했다”고 적었다. 돈을 벌려고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됐다는 취지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1993년 발표한 ‘고노 담화’에는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위안부 모집은) 대체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행해졌다”고 돼 있다. 일본 정부도 인정한 내용을 학생들은 반대로 배우게 됐다. ▷이 교과서는 일제의 식민 지배는 미화하고 정당화했다. “안전 보장을 위해 일본이 주도해 조선의 근대화를 진행”한 것이고, 을사늑약 당시 고종이 “만족”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종은 늑약 체결 직전까지 이토 히로부미에게 사람을 보내 ‘대신들이 반대한다’며 유예를 요청했을 만큼 부정적이었고(최덕수 ‘근대 조선과 세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대표단을 보내기도 했다. 일본이 조선을 보호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합병한 게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교과서 몇 줄로 뒤집을 수 없는 역사다. ▷더 큰 문제는 일본 우익 사관을 반영해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들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3월 검정을 통과한 이쿠호샤 중등 역사 교과서는 강제징용과 관련한 서술을 “혹독한 노동을 강요받았다”에서 “혹독한 환경에서 일한 사람들도 있었다”로 바꿔 징용의 강제성을 흐리게 했고, 야마카와출판의 교과서는 ‘종군위안부’ 표현을 삭제했다. 지난해에는 조선인이 ‘징병됐다’는 표현을 뺀 초등학생용 사회 교과서들이 승인됐다. 프랑스와 공동으로 제작한 역사 교과서로 객관적 시각에서 나치의 책임과 과오를 가르치는 독일과 대비된다. ▷현 정부 들어 한일 관계는 개선되는 흐름이지만 과거사 문제는 제자리다. 한국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안을 내놓는 등 노력을 기울인 반면 일본은 달라진 게 없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최근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봉납했고, 외교청서에는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주장을 거듭 적었다. 여기에 역사 교과서까지 퇴행하고 있다. 정확하고 균형 잡힌 역사를 배워야 미래 세대에서라도 과거사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 있을 텐데, 일본 정부가 그 기회마저 빼앗고 있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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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목련은 지는데”… 與 서울 편입 추진 지역구 전패한 까닭

    더불어민주당 18석 대 국민의힘 0석. 김포를 비롯해 고양 과천 광명 구리 남양주 부천 하남 등 여당이 서울 편입 대상으로 꼽았던 지역들의 4·10총선 성적표다. ‘메가시티론’을 앞세워 서울 주변 지역 주민들의 표심을 얻고, 총선 승리의 발판으로 삼으려 했던 여당의 바람은 수포가 됐다. ▷여당이 김포의 서울 편입을 추진하겠다고 처음 밝힌 것은 지난해 10월 30일이다. 같은 달 11일 치러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예상 밖의 대승을 거두면서 여권에 위기감이 커지던 때였다. 총선에서 수도권 민심을 잡기 위해 여당이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서울 편입론을 주도했던 김기현 전 대표가 12월 물러났고, 촉박한 일정 때문에 총선 전 주민투표도 무산되면서 메가시티 구상은 흐지부지되는 듯 보였다. ▷그러다 올 2월 초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목련이 피는 봄이 오면 김포는 서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서울 편입론이 다시 부상했다. 그는 22대 국회에서 1호 법안으로 김포 등의 서울 편입과 경기도 분도를 한꺼번에 추진하는 ‘원샷법’을 발의하겠다고도 했다. 서울시와 해당 지자체들은 공동연구반을 꾸렸고 이 지역 여당 후보들은 너나없이 ‘서울 편입’을 외쳤다. 하지만 여당은 총선에서 참패했고, 이미 목련이 지고 있는데도 메가시티와 관련된 움직임은 전혀 없다. 별다른 계기가 없다면 이대로 묻힐 공산이 크다. ▷서울 편입은 주민들의 이해가 복잡하게 뒤엉킨 이슈였다. ‘서울 프리미엄’으로 부동산값 인상을 기대하는 집주인들은 환영하는 쪽이지만 세입자 입장에선 전월세 인상을 걱정해야 한다. 교육 측면에선 서울의 자사고 입학이 가능해지는 장점이 있는 반면 대입 농어촌 특례입학에서 제외되는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복잡한 서울 편입보다 지하철 노선 연장 등 당장 도움이 되는 정책을 요구하는 주민도 있다. 전문가들은 ‘메가 서울’에 인구가 더 몰릴 경우 지방도시 소멸을 부추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런데도 사전 연구, 여론 수렴 등은 생략한 채 정치공학적 차원에서 불쑥 민감한 이슈를 던져 주민들만 혼란스럽게 했다. ▷이는 여당이 큰 그림을 보지 못한 채 ‘유권자들은 눈앞의 이익에 따라 투표할 것’이라는 구시대적 사고에 머물렀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김포에 출마했던 한 여당 후보는 “‘내가 서울로 안 가도 상관없고 정권 심판이 먼저다’라는 여론이었다”고 전했다. 나라를 걱정하는 주민들 앞에서 실현 여부도 불투명한 지역 공약만 외쳤다는 얘기다. 여당이 유권자들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앞으로 선거에서 외면받는 일이 반복되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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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장택동]檢 ‘휴대전화 자료 통째 보관’, 그냥 놔둘 일인가

    ‘자백은 증거의 왕’이던 시절은 지나간 지 오래다. 법정 진술을 중시하는 공판중심주의가 강화되면서 지금은 피고인이 검찰, 경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공판에서 부인하면 증거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만큼 물증의 중요성은 커졌고, 수사기관들은 압수수색에 사활을 걸다시피 한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압수수색영장 발부 건수는 2013년에 비해 2.5배가량 늘었다. 특히 수사기관은 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휴대전화와 PC 등 전자정보를 확보하는 데 주력한다. 경찰의 디지털 증거 분석이 최근 10년 새 약 7배 증가했을 정도다. 압수수색 전자정보 사후 관리 논란 이렇다 보니 압수수색이 남발되는 건 아닌지, 범죄 혐의와 무관한 디지털 자료까지 수사기관이 갖고 있는지 등을 놓고 종종 논란이 벌어진다. 최근 야권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민간인 사찰’ 의혹도 그중 하나다. 검찰은 이른바 ‘대선 개입 여론조작’ 의혹 수사 과정에서 압수한 한 인터넷 매체 대표의 휴대전화를 통째로 복제한 ‘이미지 파일’을 서버(디넷)에 보관 중이다. 범죄와 무관한 사적인 자료까지 검찰이 보관하다가 들여다본다면 사찰이나 다름없다는 게 야당의 논리다. 판례에는 수사기관에서 휴대전화를 압수한 뒤 범죄와 관련 있는 부분을 선별해서 추출하고 나머지는 ‘지체 없이’ 삭제·폐기하거나 반환하라고 돼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추후 재판 과정에서 증거 능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검찰은 우려한다. 추출한 증거가 원본에서 나온 것인지가 재판에서 쟁점이 될 경우 이미지 파일을 갖고 있어야 입증할 수 있다는 취지다. 그 대신 다른 용도로는 이미지 파일에 접근할 수 없도록 봉인하는 등 대검 예규에 따라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실제로 재판에서 디지털 자료의 증거 능력을 둘러싼 공방이 드물지 않은 만큼 검찰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그렇다고 해도 피압수자로서는 압수한 결과물을 별건 수사 등에 이용하지 않도록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검찰의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법조계에서는 제도를 개선하면 이런 논란을 피할 수 있다고 본다. 대표적인 방안이 수사가 끝난 뒤에는 이미지 파일을 법원이나 독립적인 제3의 기관에 보내 관리하게 하는 것이다. 범죄와 무관한 전자정보 폐기를 의무화하도록 형사소송법에 명시하자는 의견도 있다.법원에 이송·관리하도록 법 개정해야이런 방안을 실현하려면 입법이 필요하다. 그런데 조국혁신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은 이번 의혹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전현직 검찰총장을 공수처에 고발했고, 총선 뒤 국정조사나 특검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법률 개정에 대해선 일절 언급이 없다. 근본적 해법을 찾기보다 정치 이슈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비친다. 또 영장을 엄격하게 심사하고 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것도 압수수색에 따른 부작용을 막는 방법일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이런 내용의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를 도입하는 형사소송규칙 개정을 추진했지만 검찰 등의 반대로 보류됐다. 대법원 규칙에 의해 국민을 심문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지적도 있는 만큼 형사소송법에서 다루는 편이 깔끔할 것이다. 하지만 야당은 압수수색 폭증의 폐해를 비판하면서도 법률 개정안을 내놓지는 않았다. 압수수색은 개인의 내밀한 정보까지 강제로 들춰내는 거친 방식의 공권력 행사인 만큼 강력한 사전·사후 통제 시스템이 필요하다. 다만 실체 규명을 어렵게 하거나 증거력을 훼손하는 방식이어선 안 되기 때문에 균형점을 찾기가 까다롭다. 이런 사안일수록 법의 잣대로 접근해 법률로 정리해야 한다. 정치적 공방의 영역으로 끌고 간다면 해법은 꼬이고 논란은 반복될 것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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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공관 주재관에 갑질’ 신고당한 주중대사

    미중일러 ‘4강’ 대사는 전직 총리나 장관, 중진 의원, 고위 외교관 등이 주로 임명되는 자리다. 그만큼 외교적 비중이 크고 공관 직원, 교민 관리도 중요해서다. 그런데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가 부하 직원에게 갑질을 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외교부가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소규모 해외공관에서는 간혹 벌어지는 일이지만 4강 대사에게 갑질 논란이 제기된 전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베이징 주중대사관에 근무 중인 주재관 A 씨는 이달 초 ‘정 대사에게서 폭언을 들었다’며 정 대사의 발언을 녹음해 외교부에 제출했다고 한다. A 씨는 다른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으로, 정 대사가 수차례 인신공격성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사는 “일방의 주장”이라고 반박했고, 의혹의 진위는 조사를 통해 확인될 것이다. 하지만 대사의 입이 문제가 돼 갑질 신고가 접수됐고,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는 것 자체가 가벼이 넘길 문제가 아니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그는 2022년 8월 윤석열 정부 초대 주중대사로 발탁됐다. 학자가 4강 대사로 직행한 것은 이례적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업무 수행을 놓고 구설이 이어진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지 특파원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월례 브리핑 방식이다. 미리 이메일로 받은 질문에 한해 준비된 답변만 읽고 끝낸다. 취임 직후 특파원 간담회에서 일부 언론이 정 대사의 발언을 ‘관계자’가 아닌 ‘실명’으로 보도한 것에 항의하며 이런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고 한다. 본인은 공직자이고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을 망각한 것이다. ▷정 대사가 중국 정부와 원활하게 소통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취임 이후 10개월간 네트워크 구축비를 이용해 중국 외교부와 접촉한 것은 단 1건뿐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중국 정부가 탈북민을 대거 강제 북송했을 때도 대사관은 모르고 있었다. 대사 취임 일성으로 “무엇보다 한중 간 안정적 소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던 그의 다짐이 무색하다. 중국통인 그가 외교력을 발휘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목소리도 이제는 쏙 들어갔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지난해 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대해 비판적 기사를 쓴 중국 관영매체들에 항의 서한을 보내고 이를 국내 언론에 공개해 중국 측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외교가에선 한중 관계가 냉각된 상황이지만 중국에 할 말은 하되 조용히, 효과적으로 전달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는 재임 1년 반 동안 대중 외교에서 우군이 돼야 할 직원, 언론, 교민도 끌어안지 못한 듯하다. 학자로서는 손꼽히는 중국 전문가라지만 외교관으로서의 자질에는 큰 의문부호가 남는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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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야구배트보다 긴 비례대표 투표용지

    4월 10일 실시되는 22대 총선의 유권자들은 투표소에서 어지간한 성인 남성 키의 절반 정도 되는 긴 초록색 용지를 1장씩 받게 될 것 같다. 노란색 용지는 지역구, 초록색은 비례대표용 투표용지인데 비례대표 선거에 후보를 내는 정당이 크게 늘기 때문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고 기표했다가는 자칫 엉뚱한 정당에 표를 주거나 무효표를 양산할 가능성이 커졌다. ▷15일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됐거나 창당을 준비 중인 정당은 71개다. 위성정당을 만든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을 뺀 나머지 69개 정당이 모두 비례대표 후보를 낸다면 투표용지 길이는 88.9cm가 된다. 야구 배트 평균 길이 83.82cm보다도 길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21대 총선부터 정당 득표율에 비해 지역구 의석을 적게 얻은 정당이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서 유리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다. 비례대표 할당 하한선인 ‘정당 득표율 3%’만 넘기면 예전보다 많은 의석을 가져갈 수 있다는 기대에 너나없이 욕심을 내보는 상황이 됐다. ▷유권자들로서는 비례대표 투표가 더 복잡해지게 됐다. 좁은 기표소 안에서 긴 투표용지를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지지 정당의 이름을 찾아야 하는데, 눈이 어둡거나 거동이 불편한 이들은 실수하기 쉬운 환경이다. 이는 무효표 증가로 이어진다. 실제로 21대 총선 비례대표 선거에서 무효표는 122만여 표로 20대 총선 66만여 표의 2배 가까이로 늘었다. 비례대표 후보를 낸 정당 수가 14개 증가했고, 투표용지 길이도 15cm가량 길어진 것이 주된 요인으로 분석됐다. ▷그렇다고 이런 불편을 감수할 만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순기능을 하는지도 의문이다. 21대 총선에서 35개 정당 중 비례대표 당선자를 낸 정당은 5개에 불과했고, 비례 의석 대부분을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이 차지했다. 소수 정당의 원내 진출을 늘린다는 이 제도의 본래 취지가 무색해졌다. 14개 정당은 0.1%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미한 지지율을 얻었다. 이름을 처음 듣는 정당이 대부분인 이번 총선 역시 비슷한 양상이 반복될 소지가 크다. 긴 투표용지를 만드느라 종이만 낭비하고, 174억 원을 들여 도입한 신형 분류기와 심사계수기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허무한 결과로 끝날 수도 있다. ▷이런 문제점들은 4년 전에 이미 다 드러났고, 여야 모두 개선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민주당은 한동안 이런저런 방안을 고민하는 듯하더니 결국 ‘현상 유지’를 택했고, 이를 비판하던 국민의힘은 되레 민주당보다 먼저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총선이 끝나면 ‘떴다방 선거’가 돼버린 비례대표 선거를 비판하는 여론이 다시 한번 분출할 것이다. 이번에는 말로 끝나서는 안 된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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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국금지 중에 호주대사로 임명된 전 국방장관[횡설수설/장택동]

    세간의 시선에서 잠시 멀어진 듯했던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고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사건과 관련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를 받고 있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4일 주호주 대사로 임명되면서부터다. 더욱이 이 전 장관은 이미 1월부터 출국금지 된 상태다. 수사를 위해 출국을 막아 놓은 피의자를 해외에서 일하는 공관장에 앉히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해 7월 수해 실종자 수색에 나섰던 스무 살 해병대원의 안타까운 희생에 온 국민이 애도했고, 여야 가릴 것 없이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그런데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이 전 장관은 초동 수사를 맡은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 기록을 경찰에 넘기는 것을 승인했다가 하루 만에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그런데 수사단은 이틀 뒤 수사 기록을 이첩했다. 이를 놓고 ‘항명이냐 외압이냐’는 논란이 커졌고 정치적 이슈로 번졌다. ▷외압 의혹의 핵심은 이 전 장관이 왜 지시를 바꿨느냐다. 박정훈 전 수사단장 측은 당시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것에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하자 장관이 지시를 번복했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반면 국방부는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은 “(박 전 단장이) 보고했기에 수고했다고 결재했다가 다음 날 다시 짚어봐야겠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지만, 수사를 통해서 확인돼야 할 부분이다. 공수처에서 이 전 장관을 출금 조치한 이유였을 것이다. ▷부실 검증 의혹이 제기되자 대통령실은 “우리로선 이 전 장관이 출금됐는지 알 길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대통령실이 독립적 수사기관인 공수처에 자료 제출 등을 요구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돼 있다는 것이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야당과 시민단체에서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이 전 장관이 공수처의 핵심 수사 대상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공수처가 지난달 국방부와 해병대를 압수수색하면서 수사에 속도를 내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런 시점에 굳이 이 전 장관을 외국에 보내는 인사를 해야 했나. 공수처가 어제 이 전 장관을 불러서 조사하기는 했지만, 수사 상황에 따라서는 추가 소환이 필요할 가능성도 있다. ▷이 전 장관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당시 보고선상에 있던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은 경북 영주-영양-봉화,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은 충남 천안갑에 여당의 단수공천을 받았다. 임 전 차장은 해병대 수사단이 기록을 이첩한 직후 김계환 해병대사령관과 통화한 것으로 밝혀져 외압 관여 의혹이 제기됐고, 신 전 차관도 당시 김 사령관에게 ‘장관 지시를 따르라’고 종용했다는 의혹이 있다.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을 대사로 임명하고, 여당 후보로 낙점한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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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변론에 손 놓고 의뢰인 등치는 불량 변호사

    “제가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있었습니다.” 의뢰인의 문자를 받은 지 사흘 만에야 A 변호사는 이런 내용의 답신을 보냈다. 하지만 이후 A 변호사는 의뢰인과 연락을 끊었다. 항소이유서 제출 등 업무는 일절 하지 않았고, 공판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의뢰인이 피해자에게 주라고 건넨 합의금도 행방이 묘연하다. A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정직 1년의 징계를 받았다. 대한변협이 최근 공개한 2019∼2022년 징계 사례 316건 가운데 하나다. ▷의뢰인을 속 터지게 하는 변호사의 대표적 유형은 연락이 두절되고 재판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사기 피의자 변호를 맡은 B 변호사는 구속영장실질심사 당일 오전 의뢰인에게 “골프 미안하네요”라는 문자를 보낸 뒤 전화를 받지 않았고 오후에 열린 심사에 불참했다. 결국 구속된 의뢰인의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대여금 소송을 맡은 C 변호사는 3년 동안 별 이유 없이 소장조차 제출하지 않는 등 불성실한 변론으로 정직 1년 징계를 받았다. 이들 외에도 변호인이 시한 내에 항소, 상고를 하지 않거나 이의신청 기간을 놓쳐 의뢰인을 울린 사례가 다수 있다. ▷의뢰인을 등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태를 보인 변호사들도 징계 리스트에 올랐다. 주택조합을 상대로 한 분담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뒤 의뢰인에게 전달해야 할 약 7000만 원을 지급하지 않은 변호사는 정직 1년 처분을 받았다. 단순히 법원에서 공탁금을 출급받는 업무를 맡고서는 성공보수 명목으로 공탁금의 20%를 받아서 ‘과다한 보수를 챙겼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변호사도 있었다. 변론에 손을 놓고도 수임료는 돌려주지 않은 낯 두꺼운 변호사들도 적잖다. ▷변호사의 행동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법한 일을 저지른 이들도 있다. 한 변호사는 자신이 변호하는 성폭행 피해자를 집으로 데려가 몸을 만졌고, 술집에서 소란을 피우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여성 경찰관을 추행한 변호사도 있었다. 필로폰을 7차례 투약한 변호사, 의뢰인의 부탁을 받고 서류를 위조해 경찰에 제출한 변호사, 소송 상대방에게 “× 같은 ××야” 등 욕설을 퍼부은 변호사 역시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법적 권리를 보호하고 소송의 승패를 좌우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다. 변호사법에서 변호사를 ‘공공성을 지닌 법률 전문직’으로 규정하면서 품위 유지 등의 의무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이유다. 이를 어기면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변호사 자격을 완전히 박탈하는 ‘영구제명’은 지금까지 단 1명에 불과하고 대부분 1년 이하의 정직이나 과태료, 견책 처분을 받았다. 이런 솜방망이 징계로는 ‘불량 변호사’들의 일탈을 막기 어려울 것이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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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장택동]합법의 탈을 쓴 파옥(破獄), 특별사면

    독일에는 절대왕정 시대에 “사면 없는 법은 불법”이라는 법언이 있었다고 한다. 법 위의 존재였던 절대군주가 자신이 내린 벌을 스스로 거둬들일 권한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뀐 지 오래다. ‘법 앞에 평등’인 세상에서 통치권자가 자의적으로 재판 결과를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은 모순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사면권은 한국은 물론 대부분의 선진국에 존재한다. 학계에서는 이른바 ‘법치주의의 자기 교정’이라는 측면에서 근거를 찾는다. 아무리 법을 치밀하게 만들어도 완벽하지는 않으므로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했을 때 바로잡기 위한 최후의 장치라는 뜻이다. 일종의 ‘필요악’인 만큼 누가 봐도 수긍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 극히 예외적으로 행사돼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에서 실시되는 특사는 이런 원칙과는 거리가 멀다. 6일 설 특사를 포함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채 2년이 안 되는 동안 4차례 특사가 단행됐고, 대상자는 6000명이 넘는다. 수사하고 기소해 범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게 업무인 검사 출신들이 요직에 포진해 ‘검찰 공화국’으로 불리는 현 정부에서 특사가 잦은 것은 뜻밖이다. 정부는 대부분 생계형 사범이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한 사면이라고 설명한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횟수가 너무 잦고 대상이 과다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인이나 전직 고위 공무원 등 이른바 ‘고위층’들이 뚜렷한 설명조차 없이 줄줄이 사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특사에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외에도 10여 명의 정치인과 전직 공직자들이 포함됐다. 이 중에는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직 의원들도 있다. 뒷돈을 받아 처벌받은 정치인에게 특혜를 주면서 정부는 “갈등 극복과 화해를 통한 국민통합 도모”라는 억지 명분으로 포장했다. 이전 정부들도 별반 차이가 없다. 민주화 이후 노태우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정식 특사가 총 41차례 이뤄졌다. 연평균 1.2회꼴이다. 이를 통해 특별사면·감형·복권된 사람만 20만 명이 넘는다. 거물급 정치인이나 전직 고위 관료는 ‘왜 특사를 못 받았는지’가 화제에 오를 만큼 사면이 당연시된다. 특사가 “형사 사법의 빗장을 열어젖히는 무소불위의 파옥(破獄) 도구”(이승호 건국대 교수)로 전락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이처럼 무분별한 특사가 가능한 것은 ‘헌법상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헌법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대통령이 사면을 하도록 돼 있고, 학계에서는 적정한 범위 내에서 법률로 사면권을 제한하는 것은 위헌이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그런데 현 사면법에는 특사의 절차만 규정할 뿐 기준과 조건 등 실질적 내용은 없다. 1988년 13대 국회 이후 사면법 개정안은 50건이나 발의됐다. 특사의 절차를 강화하고 대상을 제한하자는 내용이 다수다. 부패사범 선거사범 등은 특사에서 제외하고 특사 전에 대법원장의 의견을 듣거나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방안, 형기의 일정 부분을 복역해야 사면 대상이 되도록 하는 방안 등 다양한 대책이 제시됐다. 하지만 대부분 별 논의 없이 흐지부지 폐기됐고 통과된 개정안은 3건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의미가 있는 내용은 2007년 개정으로 사면심사위원회를 신설한 것 정도다. 그나마 사면심사위원회의 심사 결과에는 구속력이 없어서 사면권을 견제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남발되는 사면은 사법 정의의 핵심인 공정성에 대한 믿음을 근본적으로 흔든다. 지금껏 봐왔듯 대통령 스스로 사면권을 자제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제 입법을 통해 사면권 남용에 제동을 걸어야 할 때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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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청사 접견실에서 수사 중인 사기 피의자 만난 치안정감

    사진 속의 경찰관은 양옆에 선 2명의 남성과 친근하게 손을 잡고 서 있다. 경찰관의 어깨에는 큰 무궁화 3개가 달린 견장이 붙어 있다. 경찰에서 경찰청장(치안총감)에 이어 두 번째 높은 계급인 치안정감이라는 뜻이다. 14만 경찰 가운데 단 7명밖에 없는 최고위직으로, 이 경찰관은 현직 모 지방경찰청장인 A 씨다. 문제는 함께 사진을 찍은 한 명이 가상화폐 사기 피의자 최모 씨라는 점이다. ▷경찰의 수사를 받는 상황이 되면 경찰관 그림자만 봐도 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자수하려는 게 아니고서야 피의자가 제 발로 경찰관서에 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사진을 촬영한 장소는 A 청장의 접견실이다. 최 씨는 코인 투자금을 모은 뒤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A 청장이 관할하는 경찰서 중 한 곳에서 수사받던 시점에 청사를 찾아갔다.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장면이다. 경찰은 곧 기소 의견으로 최 씨를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이 사진을 소셜미디어(SNS)에 공개한 것은 최 씨다. 접견실 내 청장 자리에 최 씨 혼자 앉아 있는 사진도 함께 올렸다. ‘나 이런 사람이다’라고 과시하는 듯하다. 사기 피해자들은 A 청장과 최 씨의 관계를 의심의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반면 A 청장은 최 씨가 피의자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한다. 고향 선배와 그 선배의 아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아들의 친구라는 최 씨가 함께 와서 엉겁결에 동석하게 됐다는 취지다.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인터넷상에는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궁금하다’는 식의 댓글이 여럿 달렸다. ▷A 청장의 해명이 사실이라고 해도 문제다. 수사기관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공직자는 모르는 사람과 만날 때 조심하는 게 몸에 배어 있다. 사진 촬영은 어림도 없고, 남이 들었을 때 오해할 소지가 없도록 말도 가려서 한다. 혹시라도 상대방이 몰래 녹음해서 ‘누구랑 친분이 있다’며 악용할 소지가 있어서다. 이를 모를 리 없는 A 청장이 처음 만났다는 최 씨와 손까지 잡고 사진을 찍어준 처신은 부적절했다. 이들이 만난 경위와 대화 내용 등을 경찰청이 철저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근래 경찰은 잇따른 고위 간부들의 일탈로 바람 잘 날이 없다. 브로커에게 인사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조사받던 전직 치안감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 사건에 연루된 현직 치안감은 기소됐다. 유치장 내 피의자를 불법 면회 시켜준 혐의로 경무관 2명이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치안정감마저 석연치 않은 언행으로 입길에 오르면서 경찰에 부담을 얹게 됐다. ‘나는 잘못한 게 없다’고 변명하기에 앞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반성부터 하는 것이 최고위직 경찰 간부가 갖춰야 할 몸가짐일 것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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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저질 판사’ ‘저질 검사’

    법정에서 판사는 ‘슈퍼갑’이다. 재판 진행과 판결이 전적으로 판사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법관의 눈치를 살피고 지시에 따른다. 수사와 기소에서는 검사가 절대적이다. 피의자와 피고인은 “사건에 있어서는 검사가 하느님”(김두식 ‘불멸의 신성가족’)이라고 느낄 정도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조용히 판검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 “법관은 재판을 할 때 재판을 받는 것”이라는 아하론 바라크 전 이스라엘 대법원장의 말처럼 판검사의 언행과 판단은 추후 평가의 대상이 된다. ▷재판과 수사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변호사들이 지적하는 판검사의 대표적인 문제는 막말이다. 서울변회의 법관 평가를 보면 피고인에게 “예전 같았으면 곤장을 칠 일”이라거나 “반성문 그만 쓰고 몸으로 때우라”고 하는 등 거친 말을 한 판사들이 낮은 점수를 받았다. 검사에 대한 대한변협의 평가도 비슷하다. “피해자에게 변제할 돈은 없고 변호인 선임 비용은 있냐”, “죄를 지은 사람이 너무 당당한 것 아니냐” 등 모욕적인 발언을 하는 검사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다음으론 맡은 업무를 얼마나 철저하고 공정하게 처리했는지가 중요한 요소다. 별 이유 없이 재판을 1년 넘게 방치하거나 서면으로 제출한 내용도 파악하지 않은 채 공판을 진행한 판사, 원고와 피고를 혼동해 판결을 번복한 판사가 나쁜 평가를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검사 평가에서도 피의자를 한 번도 조사하지 않은 채 불기소 처분하거나 증거물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재판에 들어온 검사들이 하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판검사들은 옷을 벗은 뒤에야 남의 눈에 본인이 어떻게 비쳤는지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한다. 변호사로 전업하고 법원을 다시 보게 됐다는 판사 출신의 정인진 변호사는 “인간 존중 없는 취급에 법대(法臺) 앞에 선 사람들은 분노하고 좌절한다”고 썼다. 검사 경력이 있는 변호사들도 “변호인으로서 검사를 보면 ‘나도 예전에 저랬을까’ 싶을 때가 종종 있다”고 말한다. 현직에 있을 때 깨달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역지사지의 자세로 성찰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가능한 일이다. ▷물론 밤잠을 아껴가며 재판과 수사에 전념하고 당사자들을 배려하는 판검사들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판검사에게는 예외 없이 높은 윤리적 기준과 업무의 완결성이 요구된다. 재판과 수사의 당사자들에게는 인생이 걸린 일이어서다. “사법기관이라는 것은 온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과 명예 등을 결정하는 일을 가지기 때문에 자가(본인)의 수양을 더욱 긴급히 아니하면 안 될 것”이라는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말은 지금도 판사와 검사 모두에게 유효하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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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전 국민 상대로 한 毒性 시험”

    공식적인 사망자만 최소 1258명에 이르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책임을 둘러싼 공방은 이 사건이 공론화된 지 14년째 이어지고 있다. 옥시의 전 대표는 2018년 유죄가 확정돼 이미 형기를 끝마쳤다. 반면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의 전 대표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가 11일 진행된 항소심에서 유죄로 뒤집혔다. 이들 제품에 쓰인 화학 원료가 인체에 유해한지에 대한 판단이 관건이었다. ▷옥시가 만든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의 주원료는 PHMG다. 피부에 닿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흡입하면 폐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성분이라는 점이 확인됐고, 옥시 전 대표는 1심부터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SK케미칼과 애경이 만든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의 원료인 CMIT·MIT는 유해성을 입증하기가 한층 까다로웠다. 결국 1심 재판부는 ‘SK·애경이 만든 살균제와 옥시의 살균제는 성분이나 위해성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1심 판결 이후 국립환경과학원에서 CMIT·MIT가 호흡기를 통해 폐로 전달된다는 점을 입증하는 논문을 발표하는 등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나왔다. 이를 근거로 항소심 재판부는 SK케미칼·애경의 살균제를 사용한 것과 폐 질환과의 인과관계가 입증됐다고 판단했다. 특히 안전성에 관해서는 제조·판매업자에게 강력한 주의 의무가 요구된다는 것이 법원의 시각이다. 원료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 길이 없는 소비자로서는 ‘인체에 해가 없는 제품’이라는 업체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더 근본적으로는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이 1994년 살균제를 만들 때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유공은 독성시험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제품 출시를 강행했고, 이듬해 서울대에서 ‘문제 소지가 있으니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는데도 판매 중지나 회수 조치를 하지 않았다. 2002년 이 제품을 이어받은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를 생산할 때도 별도의 검사는 없었다. 그 결과 “장기간에 걸쳐 전 국민을 상대로 살균제의 만성 흡입 독성시험이 행해진 사건”이 됐다고 재판부는 질타했다. ▷가습기 살균제는 그동안 약 900만 명이 사용했을 만큼 인기 제품이었고 주로 큰 기업들이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불거지자 기업들은 ‘유해 성분인지 몰랐다’ ‘살균제가 피해의 원인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등의 변명만 내놨고, 이는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대법원의 최종심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번 재판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업체들의 법적 책임은 보다 분명해졌다. 기업들이 하루라도 빨리 배상·보상 방안에 합의해 피해자의 어려움을 덜어 주는 게 조금이나마 사회적 책임을 지는 길일 것이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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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몰래 한 녹음 증거능력 있나 없나

    “선생님이 제게 ‘1, 2학년 제대로 나온 것 맞냐’고 말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 아들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엄마는 책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었다. 얼마 뒤 교사가 아이에게 “구제 불능”, “쟤가 맛이 갔어” 등의 발언을 한 것이 고스란히 녹음됐다. 이에 엄마는 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했다. 1, 2심에서는 교사에게 유죄가 선고됐지만 대법원은 11일 원심을 파기했다. 녹음파일을 증거로 인정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형사재판에서는 아무리 결정적인 증거라도 적법하게 수집하지 않았다면 유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녹음파일의 경우 대상이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라면 증거로서의 가치가 사라진다. 먼저 ‘타인 간의 대화’인지를 놓고 원심과 대법원의 판단이 갈렸다. 원심은 “녹음자(엄마)와 대화자(아들)를 동일시할 정도로 밀접한 인적 관련이 있다”는 이유에서 증거능력을 문제 삼지 않았지만,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모라고 해도 직접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이상 당사자가 될 수는 없다는 취지다. ▷다음 쟁점은 교사가 수업 시간에 한 발언이 ‘공개된 대화’에 해당하는지였다. 원심은 교실에서 30명 정도의 학생이 함께 수업을 듣는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공개적인 대화라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수업은 학생들에게만 공개되는 것일 뿐 불특정 다수가 듣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로 비공개 대화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유·무죄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지만, 유죄 판결의 핵심 증거가 효력을 잃음에 따라 교사에게는 유리한 결과가 됐다. ▷교사들은 교실에서 몰래 녹음이 이뤄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하소연한다. 일부 학생은 첩보영화에나 나올 법한 펜형·목걸이형 녹음기를 차고 등교한다고 한다. 주변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는 앱을 자녀의 스마트폰에 깔아서 수업 내용을 실시간으로 들은 학부모도 있었다. 이를 근거로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이 사건이나 웹툰 작가 주호민 씨 아들 사건처럼 법정 다툼으로 비화하기도 한다. 비슷한 소송에서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기준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몰래 녹음한 파일의 증거능력이 쟁점인 사건은 여럿 있다. 대법원은 아내가 남편의 불륜을 의심해 남편 모르게 통화녹음 기능을 활성화한 결과 녹음된 파일이라고 해도 부부간에 통화한 내용은 형사재판의 증거로 쓸 수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증거 수집 절차가 사생활이나 인격적 이익을 중대하게 침해해 사회 통념상 한도를 벗어난” 경우라면 증거능력이 부정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부분은 의미가 있다. 사건의 실체 입증이 다소 어려워지더라도 증거의 적법성을 엄격하게 따지는 것이 절차의 정의를 중시하는 사법제도의 발전 방향에 맞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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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대형 쓰나미·방사능 유출 악몽 되살린 日 노토반도 지진

    바다 건너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이 한국에 영향을 미칠 대표적인 위험 요소는 두 가지다. 먼저 원자력발전소에 문제가 생겨 방사능이 유출되면 한반도에 직간접적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다. 지진해일(쓰나미)도 공포의 대상이다. 특히 일본 서부에서 일어난 지진해일은 동해를 거쳐 바로 한반도를 덮칠 수 있다. 1일 일본 노토(能登)반도에서 발생한 규모 7.6의 강진은 이런 악몽들을 동시에 떠올리게 했다. ▷일본 본토인 혼슈섬 중서부에 위치한 이시카와현 노토반도 일대는 유라시아판과 오호츠크판의 경계 지점에 있어서 평소에도 지진이 잦다. 최근 3년간 진도 1 이상의 지진이 500차례 넘게 일어났을 정도다. 하지만 진도 6이 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례적인 강진으로 70여 명이 목숨을 잃고 수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도로는 갈라지고 산사태까지 이어지면서 구조와 복구 작업이 늦어지고 있다. 일본 전문가들은 깊은 지하에서 고온의 유체가 상승하면서 지진이 커졌을 것이라는 등의 분석을 내놓고 있다. ▷노토반도는 강릉에서 직선거리로 약 730km 떨어져 있다. 그 사이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있을 뿐 망망대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는 일본 본토가 쓰나미의 방파제 역할을 해서 한국으로 밀려오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쓰나미가 발생한 지 약 2시간 만에 동해안에 도착했고 묵호에서 가장 높은 85cm의 쓰나미가 관측됐다. 동해안에는 1983년 일본 아키타현 서쪽 해상에서 발생한 쓰나미가 최고 2m의 높이로 밀려와 3명이 목숨을 잃은 적이 있다. 당시의 참상을 기억하는 동해안 주민들은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노토반도 인근에는 일본 최대 원전인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과 시카 원전 등이 밀집해 있다. 내진 설계가 충실하게 돼 있더라도 단전 등으로 인해 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전기 공급이 끊기면서 원자로 냉각장치가 작동을 멈춘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방사성물질은 대부분 해류를 타고 태평양으로 이동하는데도 한국에선 걱정하는 이들이 적잖다. 동해를 사이에 두고 한반도와 마주 보고 있는 일본 서부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훨씬 직접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 ▷일본 정부는 현재까지는 원전의 안전성에 이상이 없다고 밝혔다. 지진 발생 인근 지역에 내려졌던 쓰나미 경보도 해제됐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본 기상청은 1주일 안에 진도 7 수준의 지진이 또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연재해를 완벽하게 예측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언제, 얼마나 강력한 지진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만큼 바짝 긴장하면서 대비하는 것이 최선이다. ‘설마’ 하고 방심하다가 뒤늦게 가슴을 치는 일은 없어야겠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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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장택동]말만 앞세운 空論으론 해결 못 할 재판 지연

    “너희 아빠는 집에서 뭐 하니?” “타자 치는데요.” “타자 안 칠 때는?” “책 보는데요.” 질문자는 판사의 친구, 대답한 사람은 판사의 어린 딸이다. 남편이 밤늦게까지 재판 서류를 읽다가 조는 모습을 본 아내는 “당신이 고3이냐”며 혀를 찬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정인진 변호사가 쓴 ‘이상한 재판의 나라에서’에 나오는 대목이다. 과거에는 이처럼 퇴근길에 자료를 보따리에 싸가서 밤새 씨름하는 것은 판사들의 흔한 일상이었다. 지금도 불철주야 재판을 준비하는 판사들이 적지 않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고 한다. 법조계에선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법원에도 스며든 데다 근래에 바뀐 제도들이 영향을 줬다고 본다. 한 전직 법관은 “열심히 일하는 판사를 우대할 방법이 없어졌다”고 했다. 판사들이 밤샘 근무를 마다하지 않았던 현실적인 동기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거쳐 법원장으로 승진하겠다는 희망이었다. 그런데 2020년 고법 부장 승진제가 폐지되면서 굳이 재판 실적에 목을 맬 이유가 사라졌고, 판사들의 투표로 법원장 후보를 정하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도입되면서 고참 법관들이 후배 판사들을 독려하기도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그 결과 판사들이 일을 덜 하게 됐고, 이는 재판 지연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재판이 늦어진다는 점은 수치로 나타난다. 지난해 전국 법원에 접수된 본안 사건 수는 2013년에 비해 40만 건가량 줄었고, 판사 1명당 사건 수도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민사 본안 1심 합의부 사건의 평균 처리 기간은 6개월, 형사재판 불구속 1심 합의부 사건은 2개월 정도 늘었다. 하지만 이는 고법부장 폐지나 법원장 추천제 때문이 아니라 사법부의 구조적 문제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것이 법관 수가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산술적인 사건 수는 줄었더라도 민사사건은 나날이 복잡해지고, 형사재판은 법정 진술을 중시하는 공판중심주의 도입으로 길어졌는데 법관 정원은 2014년 말 증원 이후 그대로라는 것이다. 경력 법조인을 판사로 임용하는 법조일원화에 따른 법관의 고령화, 잦은 인사이동 등도 신속한 재판의 걸림돌로 꼽힌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재판이 늦어졌겠지만, 사안의 경중을 가려서 급한 것부터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거나 외부 컨설팅을 받아서라도 정확한 실태부터 진단해야 한다. 주로 재판이 복잡해진 탓이라면 그에 따라 판사들이 사건당 투입하는 시간이 얼마나 늘었는지, 법관의 근태 때문이라면 실질적인 업무량이 어느 정도 줄었는지 정밀하게 따져서 데이터를 산출하는 게 먼저다. 그래야 법원의 근무 시스템이나 기강을 개선하면 될 일인지, 법관 증원이 불가피한지 판단할 수 있다. 고법 부장 폐지와 법원장 추천제도 마찬가지다. 제도를 바꿀지 말지를 놓고 각자 주장만 내세울 게 아니라 법관의 근무 태도와 재판 기간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뒤 자료를 놓고 토론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생략한 채 알맹이 없는 공론(空論)을 주고받는 것은 문제 해결을 늦출 뿐이다. 지연된 재판의 당사자들은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고 있다. 형사 피고인에게는 재판이 길어지는 것 자체가 처벌이나 다름없다. 민사재판 판결을 기다리는 사이에 가정이 파탄 나거나 기업이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이 누적되면 국민이 법원을 믿지 못하게 된다. 재판 기간이 10% 길어지면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가 2% 정도 떨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재판 지연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실행력과 리더십이 절실하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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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日軍 문서로도 확인된 간토대학살, 더는 묻을 수 없다

    “정부 내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을 발견할 수 없다.” 1923년 9월 간토대지진 당시 벌어진 조선인 학살에 대한 일본 정부의 설명은 한결같다. 2017년 아베 정부도, 현 기시다 정부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를 언제까지 묻어둘 수 있을까. 당시 조선인이 무참하게 살해됐다는 구체적 내용이 담긴 일본군의 보고서가 25일 공개됐다.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에 소장된 ‘간토지방 지진 관계 업무 상보’에는 지진 발생 사흘 뒤 사이타마현에서 40여 명의 조선인이 “살기를 띤 군중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적혀 있다. 이 지역의 병무 담당 기관이 같은 해 12월 육군성에 보낸 것이다. 당시 일본군은 지진 피해 지역의 모든 부대에 보고를 지시했던 만큼 다른 지역에서 올린 보고서가 더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100년 전에 일본 정부가 간토대학살에 대해 인지했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뚜렷한 물증이다. ▷있는 사실을 부인하려다 보면 말이 꼬이기 마련이다. 지난달 일본 참의원에서는 국립공문서관에 보관 중인 1924년 각의 문건이 공개됐다. “대지진 당시 조선인 범행의 풍설(소문)을 믿은 결과 살상 행위를 한 사람”들에 대한 특사를 논의하는 내용으로, 일본 내각이 학살을 알고 있었다는 또 다른 증거다. 그런데 ‘이 문서가 정부 내 문서인가’를 묻는 질의에 관방장관은 “공문서관은 독립행정법인”이라는 등 동문서답을 내놓으며 답을 피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무회의 회의록에 해당하는 문서조차 공식 문서로 인정하길 꺼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다. ▷요즘도 일본에서는 대형 사건이 발생할 때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한국인을 탓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엔 ‘조센진(조선인)을 죽이자’는 구호가 등장했고, 34명이 숨진 2019년 교토 애니메이션센터 화재 때는 ‘방화는 한국인의 습성’이라는 글이 포털사이트에 올라왔다. 미국 법학자 브라이언 레빈은 편견과 선입견이 차별, 폭력을 거쳐 집단학살로 발전하는 현상을 ‘혐오의 피라미드’라고 표현했다. 재일 한국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또 다른 불상사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렇다고 일본 정부만 탓하고 있을 수는 없다. 한국 정부 역시 1950년대 초 이후 간토대학살 피해자에 대한 실태 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렇다 보니 상하이 임시정부가 집계한 한국인 희생자는 6661명인데,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500명 정도에 불과하다. 더 늦기 전에 일본 정부에 공식 사과와 공동조사를 요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과거사를 덮은 채 이뤄지는 한일관계 개선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사상누각이 되기 쉽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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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검사는 자기 손부터 깨끗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수사를 지휘하던 이정섭 수원지검 2차장검사가 갑자기 수사에서 배제됐다. 이 검사에 대해 여러 비위 의혹이 제기되자 20일 서울중앙지검이 관련 장소들을 압수수색하고, 이원석 검찰총장은 이 검사를 인사조치 한 것이다. 이 총장이 예상 밖의 강수를 뒀다는 평가가 검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9일 야당이 이 검사와 ‘고발 사주’ 손준성 검사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하자 이 총장은 “나를 탄핵하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 검사를 탄핵한 것은 “보복 탄핵”이라는 이유에서다. 9월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마당에 이 검사까지 쌍방울 관련 수사에서 빠지게 되면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현실적 우려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총장은 이 검사를 대전고검 검사 직무대리로 발령해 수사에서 손을 떼도록 했다. ▷이 총장은 이 조치를 발표하기 전 검찰 간부들에게 “남의 죄를 단죄하는 검사는 자기 손부터 깨끗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1990년대 이탈리아에서 검찰이 주도한 반부패 수사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를 연상케 한다. 평검사 시절부터 자기 관리에 철저했다는 이 총장은 2016년 ‘정운호 게이트’ 당시 특수통 출신 전직 검사장을 구속할 만큼 검찰 출신의 비리에도 엄격했다. 지난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나는 ‘제 식구 감싸기’라는 말이 제일 싫다”며 “(검찰총장) 직분을 할 동안에 ‘감찰총장’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을 정도다. ▷일각에선 사법시험 동기이자 지금은 직속상관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의 관계가 이번 조치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한 장관에 가려 존재감이 부각되지 않는 이 총장이 도덕성, 청렴성을 내세운 것은 일종의 ‘차별화 전략’이라는 시각이다. 야당이 일단 철회한 이 검사에 대한 탄핵안을 다시 발의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려는 방안이라는 해석도 있다. 검찰이 자체적으로 강제수사와 인사조치까지 한 만큼 탄핵은 불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다는 것이다. 이 검사에게 쌍방울 수사 지휘를 계속 맡기면 두고두고 논란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했을 것이다. ▷배경이 어떻든 이번 조치로 이 총장이 검사의 비위 문제에 칼을 꺼내 든 모양새가 됐다. 골프장을 운영하는 처남의 부탁으로 골프장 직원의 범죄 기록 조회, 재벌그룹 부회장으로부터 가족모임 접대 등 이 검사에 대해 제기된 의혹들도 가볍지 않다. ‘라임 전주’ 김봉현 씨로부터 술 접대를 받은 검사들에 대한 이른바 ‘99만 원 불기소’ 등 과거 검찰에서 제 식구 감싸기라는 지적을 받았던 사건이 한둘이 아니다. 이를 기억하는 시민들이 과연 ‘이원석 검찰’은 다를지 지켜보고 있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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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현실성도 없고 지켜지지도 않는 ‘김영란법 식사비’ 3만원

    2016년 9월 ‘김영란법’이라고 불리는 청탁금지법이 시행되자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 등지의 식당에는 2만9000원짜리 ‘김영란 세트’가 등장했다. 가짓수와 양을 줄인 한정식에 맥주 한 병을 끼워 넣는 식이다. 청탁금지법에 규정된 ‘식사비 한도 3만 원’ 때문에 매상이 줄어들 것을 걱정해 음식점 업주들이 내놓은 고육책이었다. 이제는 김영란 세트를 찾아보기 어렵다. 최소한의 구성으로 세트를 내놓으려 해도 가격을 맞추기 어려운 데다 사실상 이 조항이 사문화돼서다. ▷요즘 밖에 나가서 밥 한번 먹는 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외식 물가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집계 기준으로 2016년 9월 서울의 냉면 가격은 평균 8077원, 삼겹살 1인분은 1만3154원이었는데 지난달에는 냉면 1만1803원, 삼겹살 1만9253원으로 인상됐다. 서울 도심의 어지간한 식당에서 삼겹살에 반주를 곁들이면 3만 원을 훌쩍 넘고 한우는 엄두도 못 낸다. 그런데 청탁금지법에서 정한 식사비 한도는 7년이 넘도록 3만 원으로 고정돼 있다. ▷이 기준은 2003년 제정된 공무원 행동강령을 참고해서 만든 것이다. 자장면 한 그릇 가격이 3000원이던 시절에 만든 기준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16일 “시간과 여건 등을 비춰 봤을 때 현실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한 이유다. 이렇다 보니 청탁금지법과 관련해 밥값을 기록하는 경우에는 흔히 참석 인원을 부풀려 1인당 비용을 줄이는 편법을 쓴다. 참석자 중 누군가가 증거를 모아 신고하지 않는 한 적발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청탁금지법이 탄생하게 된 계기는 ‘벤츠 여검사’ 사건이었다. 내연 관계인 변호사에게서 벤츠 등을 선물 받고 다른 사건에 영향을 미친 혐의로 기소된 여검사가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아 무죄 선고를 받자 여론이 들끓었다. 이에 대가성 여부와 상관없이 공직자가 금품과 청탁을 받지 못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 이 법이다. 공직사회의 청렴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당초 취지와 달리 대상 범위가 너무 넓어졌고 지키기 어려운 조항이 섞였다는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청탁금지법이 적용되는 공직자와 교육기관·언론사 종사자는 25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은 식사비는 물론 경조사비, 선물값까지 규제를 받는다. 경조사비는 한도가 5만 원으로 정해져 있어서 여러 사람 명의로 봉투를 보내는 ‘봉투 쪼개기’가 횡행한다. 선물은 농축수산물이냐, 명절 전후냐에 따라 상한선이 5만 원에서 30만 원까지 제각각이라 품목과 날짜를 따져 가며 보내야 한다. 애매하고 비현실적인 법은 잠재적 범법자를 양산하기 마련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청탁금지법의 기준을 면밀하게 손볼 때가 됐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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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장택동]신설한다는 ‘절대적 종신형’, 이미 시행한 지 26년

    “병적인 집착과 광기에 이른 상태에서 일면식도 없던 피해자의 여동생과 모친, 피해자에 대한 살해 범행을 이어 나갔는바… 참작할 만한 사정이 전혀 없고 앞으로 교화될 가능성도 적어 보인다.” 이른바 ‘세 모녀 살해 사건’의 범인 김태현에 대한 판결문의 일부다. 그는 온라인 게임에서 알게 된 피해자가 연락을 거부하자 두 달 동안 스토킹하다 집에 침입해 세 명의 목숨을 잔혹하게 빼앗았다. 전국에는 김태현을 비롯해 살인이나 그에 버금가는 중범죄를 저지른 1300여 명의 무기수가 복역 중이다. 귀가하던 여성을 납치 살해한 뒤 시신을 358조각으로 훼손한 오원춘, ‘계곡 살인’의 이은해와 ‘신당역 살인’의 전주환 등이 포함돼 있다. 법원이 이들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은 수감 기간이 최장 50년인 유기징역보다 무겁게 처벌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무기수는 수감된 지 20년이 지나면 가석방 대상이 된다. 김태현은 18년 뒤, 오원춘은 9년 뒤에는 풀려날 가능성이 생긴다. 실제로 2015∼2022년 119명의 무기수가 가석방됐다. 반면 징역 42년형을 받은 ‘n번방 사건’ 조주빈의 경우 최소 32년을 복역해야 한다. 징역형은 형기가 10년 이상 남아 있으면 가석방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달 31일 무기형을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무기형(절대적 종신형)과 가석방이 허용되는 무기형(상대적 종신형)으로 나누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일부 악질적 흉악범은 평생 가석방 대상에서 배제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풀려날 수 있다는 희망을 박탈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교화의 여지를 없애는 과도한 처벌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피해자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인 생명권을 빼앗겼고 유족들은 끔찍한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데 가해자는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게 사법적 정의에 부합하나. 응보(應報)는 현대에서도 형벌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다. 또 석방된 무기수가 다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무기징역이 선고된 살인범이 가석방된 뒤 제보자의 아들을 살해하려다가 붙잡히는 등 실제 사례도 적잖다. 다만 실질적 사형폐지국인 한국에서 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하는 것에 문제가 없는지는 짚어봐야 한다. 법조계에서는 ‘사형이라고 쓰고 가석방 없는 무기형이라고 읽는다’고 말한다. 1997년 마지막 사형 집행 이후 26년간 사형은 본래의 의미가 아닌 절대적 종신형으로서 기능을 해왔다는 뜻이다. 이를 그대로 둔 채 절대적 종신형을 신설하면 사실상 내용이 같은 최고형벌이 두 가지 존재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영국처럼 사형제를 폐지하고 절대적 종신형으로 대체하는 방안이 있다. 국내 여론도 긍정적이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3분의 2가 대체형벌 도입을 전제로 한 사형제 폐지에 찬성했고, 이 중 79%는 대체형벌로 절대적 종신형이 적합하다고 답했다. 반면 미국 텍사스, 플로리다주 등에서는 절대적 종신형을 두면서도 사형을 집행함으로써 사형-절대적 종신형-상대적 종신형 순으로 처벌의 강도를 구분하고 있다. 현 정부는 사형제 폐지에 반대하고 있고, 사형 집행에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상 유지’로 사형에 관한 논란은 피하면서 절대적 종신형에 집중하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형벌 체계에 부조화가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사형제 존폐와 절대적 종신형 도입을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논란의 소지를 남기지 않고 이 문제를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3-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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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기계적인 자료수집만 한다’는 법무부 인사검증단

    11일 법무부에 대한 국정감사의 쟁점은 인사검증 부실 문제였다. 야당 의원들은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재산신고 누락,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주식 파킹’ 의혹 등을 지적하며 ‘법무부가 제대로 확인했느냐’ ‘본인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이냐’고 추궁했다. 이에 한동훈 장관은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인사검증단)은 프로토콜(정해진 절차)에 따라 기계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의견 없이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 넘긴다”고 답했다. 단순히 실무 작업만 한다는 취지다. ▷인사검증을 전담했던 대통령민정수석실이 폐지된 이후 1차 검증은 인사검증단, 2차 검증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맡는 것으로 역할이 나뉘었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6월 인사검증단을 신설할 당시 “대통령실은 정책 중심으로 가니까 고위공직자들의 검증 과정은 내각으로 보내는 것이 맞는다”고 했다. 인사검증의 무게중심이 공직기강비서관실보다는 인사검증단에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법무부의 권한이 지나치게 커진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이중으로 검증이 이뤄지는 만큼 부실 검증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인사검증의 수준은 여전히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친다. 인사검증 업무는 인사혁신처가 권한을 위임하는 형식으로 이뤄지므로 시행령에서 정하기에 따라 어느 부처로든 넘길 수 있다. 인사검증단에는 검찰 경찰 국세청 국가정보원 등 여러 기관에서 직원이 파견되므로 부처 전반을 조율하는 국무조정실 산하에 두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법무부에 설치한 것은 사실 확인과 법적 쟁점 파악에 전문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자료 취합으로 역할이 한정된다면 인사검증단을 굳이 법무부에 둬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인사검증에 대한 책임 소재도 불분명한 상태다. 한 장관은 지난해 7월 국회에서 인사검증과 관련해 “국민적 지탄이 커지면 제가 책임져야 할 상황도 생기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올 2월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가 낙마할 당시에는 “정무적 책임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책임을 진다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역시 부실 검증 책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인사검증단 설치의 또 다른 명분이었던 ‘인사검증의 투명성 제고’ 역시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음지’에 있던 인사검증을 ‘양지’로 끌어내 감시 가능한 통상의 시스템으로 만들겠다던 법무부의 당초 설명과 달리 국회에서 검증 과정을 물어도 ‘통상적으로 업무를 했다’는 식으로 답변을 피하고 있다. 인사검증단이 출범한 지 1년 4개월이 지났지만 이 조직이 왜 필요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형으로 남아 있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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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축구 응원으로 불거진 ‘차이나 게이트’ 논란

    한국과 중국의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시안게임 4강 티켓을 따내기 위해 맞붙은 1일. 중국 광저우에서 경기가 열린 만큼 현장에선 중국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이 쏟아졌다. 그런데 당시 국내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진행된 ‘클릭 응원’에서도 92%가 중국을 응원하고 한국 응원은 8%에 그쳤다는 결과가 나왔다. 같은 경기에서 네이버가 실시한 ‘터치 응원’에선 한국을 응원한 비율이 94%, 중국은 6%였다. 이렇게 상반된 결과가 나온 이유가 뭘까. ▷다음의 응원하기에서 한국보다 다른 나라를 압도적으로 응원한 사례는 여럿 있었다. 지난달 13일 열린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축구 친선 경기에선 사우디 응원 비율이 52%였고, 한국과 키르기스스탄의 아시안게임 축구 16강전에서는 키르기스스탄이 85%의 응원을 받았다. 여자 축구에서도 남북한이 맞붙은 아시안게임 8강전에선 북한에 75%, 한국과 홍콩 간의 예선전에서는 홍콩에 91%의 응원이 몰렸다. 이 정도면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의심스러운 대목은 더 있다. 평소 이용자는 네이버가 다음보다 6배가량 많다(마케팅 조사 업체 샘러시 8월 집계 기준). 반면 축구 한중전 응원 클릭 수는 다음이 네이버보다 3배 이상 많았다. 누군가 매크로 프로그램(특정 작업을 반복하는 소프트웨어)을 통해 대량으로 클릭을 했을 것이라는 의구심이 들 만하다. 로그인을 해야 응원에 참여할 수 있는 네이버와 달리 다음은 누구나 횟수에 제한 없이 클릭을 할 수 있어서 조작에 취약하다는 측면도 있다. 결국 다음은 “클릭 응원 숫자가 과도하게 부풀려질 수 있다”며 이 서비스를 잠정 중단했다. ▷문제는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느냐다. 여권과 일부 누리꾼은 중국을 배후로 지목하고 나섰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이용해 친중국 메시지를 전파하고 외국의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아온 터다. 2020년 한국 총선 때에도 중국 측이 온라인에서 보수진영에 불리한 여론을 조성했다는 ‘차이나 게이트’ 의혹이 불거진 적이 있다. 여당에선 해외에서 접속하는 이용자들은 댓글에 국적을 표기하도록 하는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다음 클릭 응원에 중국이 개입했다는 근거가 없다. 일각에선 한국 누리꾼이 장난으로 한 짓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사건을 의아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고, 정치권으로까지 논쟁이 번진 만큼 유야무야 넘길 수는 없어 보인다. 다음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번 일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급선무다. ‘차이나 게이트’의 증거가 될 사안인지, 아니면 해프닝으로 끝날 일인지는 그다음에 따져봐도 늦지 않겠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3-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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