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망한 과제 자랑대회’ 개최
실패 경험 전시로 온전히 받아들여
뇌, 성공할 때 도파민 분비하지만
큰 실패에도 원인 파악 위해 증가
KAIST에서 지난달 개최한 ‘2025년 망한 과제 자랑대회’ 수상자 단체 사진. KAIST는 다양한 실패 경험을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실패를 받아들이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2023년부터 대회를 개최했다. 어린이과학동아 제공
대전 유성구 KAIST 존해너홀에서 지난달 5일 독특한 대회가 열렸습니다. KAIST 학생들이 겪은 다양한 실패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 ‘망한 과제 자랑대회’입니다. 2023년부터 시작된 이 대회는 실패 경험을 서로 공유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열렸습니다.
● 누가 더 잘 실패했을까?
대회에 참여한 KAIST 학생들은 팀별로 부스를 꾸며 자신의 실패담을 사진과 영상으로 함께 전시했습니다. “무대 위에서 해야 할 말을 까먹었다”, “댄스 경연 대회에서 30번이나 탈락했다” 등 실패담을 관람객에게 들려주면, 관람객은 부스를 돌며 실패담을 듣고 가장 인상 깊은 부스에 투표합니다.
가장 많은 투표를 얻은 팀은 대회 1등 상인 ‘최상’을 받습니다. 이 외에도 △빛나는 잔해상 △재의 꽃상 △망함의 미학상 △아름다운 잔상 등 5개 부문에서 시상이 진행됩니다.
KAIST 글로벌디지털혁신대학원 석사과정 라파엘 루빈 데 셀리스 우리아스 학생의 ‘Pride, Redacted’. 망한 과제 자랑대회 1등 상인 ‘최상’을 수상했다. KAIST 실패연구소 제공올해 ‘최상’의 영예는 KAIST 글로벌디지털혁신대학원 석사 과정 라파엘 루빈 데 셀리스 우리아스 학생에게 돌아갔습니다. 라파엘 학생의 실패담 ‘Pride, Redacted’는 총 168표 중 무려 162표를 얻었습니다. 라파엘 학생은 완벽한 대본을 위해 수정을 거듭하다 결국 검은색으로 칠해진 대본을 마주하게 된 사연을 소개했습니다. 그러던 중 부끄러운 기억을 종이에 적고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하늘로 날렸고, 이후 자신의 부끄러움을 인정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 실패와 도파민의 상관관계
여러분이 생각하는 실패는 무엇인가요. 뇌과학에서 말하는 실패란 일을 그르쳐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뇌과학이 정의하는 실패는 실제 보상이 예측보다 적은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달걀프라이를 만들 때 제대로 완성된 프라이는 예측 보상, 즉 내가 원하는 결과입니다. 반면 새카맣게 탄 달걀프라이는 실제 보상, 즉 실제로 내가 마주한 결과를 의미합니다. 내가 예측한 보상은 멋진 모양의 맛있는 달걀프라이지만, 실제로 새카맣게 타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달걀프라이를 마주했을 때 뇌는 실패라고 인식합니다.
실제 보상이 예측보다 클 때, 즉 내가 예측한 것보다 결과가 좋으면 뇌는 도파민 분비를 증가시킵니다. 도파민은 뇌의 복측피개부에서 나와 전전두엽 등으로 방출되는 신경전달 물질입니다. 도파민은 기쁘고 즐거울 때 많이 분비되는 물질로 널리 알려졌지만, 실제 보상과 예측 보상의 차이를 알아내는 중요한 역할도 합니다.
도파민 양이 많아지면 우리는 같은 행동을 계속 반복합니다.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은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고리인 시냅스로 전달되고 신경전달물질에 반응하는 표적세포까지 이동합니다. 도파민이 반복적으로 분비되면 도파민을 전달하는 신경세포가 함께 작동하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 도파민이 전달되는 신호 경로가 탄탄해집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작은 자극에도 도파민 신호가 쉽게 활성화됩니다. 달걀프라이를 완성했을 때 도파민이 분비됐다면 나중에는 달걀을 깨는 것만으로도 도파민이 나오게 됩니다. 반면 실제 보상이 예측 보상보다 적으면 도파민이 감소합니다. 이에 따라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게 됩니다.
● 큰 실패 이후, 성장을 위한 도파민 분비
예상치 못한 큰 실패를 경험할 때도 도파민이 일시적으로 증가합니다. 공부를 하지 않았을 때 시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면 도파민이 감소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예상 밖의 낮은 점수를 받았을 땐 도파민이 잠시 증가합니다.
뇌는 예상과 다른 결과를 마주하면 이것을 중요한 정보로 받아들이고 행동을 고치려고 합니다. 이때 도파민 분비가 증가하면서 뇌는 원인을 파악하려고 합니다. 오용석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뇌과학과 교수는 “도파민 분비가 늘어나면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동기를 얻을 수 있다”며 “실패는 성장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패를 통해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복탄력성은 실패했을 때 부정적인 감정 상태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감정을 감지하고 공포나 위험에 빠르게 대처하는 편도체와 이를 제어하는 전전두엽에서 주로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롤러코스터를 탈 때, 편도체는 위험하다는 경보 신호를 뇌의 여러 부위로 전달합니다. 이때 전전두엽에서 ‘안전띠를 매고 있기 때문에 괜찮다’는 판단을 하며 편도체를 진정시킵니다. 덕분에 뇌는 롤러코스터를 통제된 위험으로 인식해 감정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실패를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으로 KAIST 실패연구소에서는 포토 보이스 실험을 제안했습니다. 포토 보이스 실험은 주제와 관련된 사진을 찍고 글을 남기는 활동입니다. 조성호 KAIST 실패연구소장은 “사진을 통해 실패를 적당한 거리에 두고 바라볼 수 있다”며 “사진과 글을 친구, 가족과 공유하다 보면 실패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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