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장원재]여전히 풍차와 싸우는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4월 15일 23시 15분


장원재 논설위원
장원재 논설위원
윤석열 전 대통령이 용산 관저에서 퇴거한 다음 날(12일) 광화문과 사저 인근에는 총 1만2000여 명(경찰 추산)의 지지자가 모였다. 이들은 ‘윤 어게인(YOON AGAIN)’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같은 구호를 외쳤다. 14일 윤 전 대통령이 내란 혐의 재판에 처음 출석할 때도 법원과 사저 앞에서 지지자들은 ‘윤 어게인’을 외쳤다.

‘윤 어게인’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직후 지지자들에게 보낸 편지에 등장한 문구다. 다만 의미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광화문 집회를 주도하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윤 전 대통령이 5년 후 대선에 재출마할 것”이라며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 하지만 헌법상 대통령 중임은 금지돼 있어 현실화되려면 개헌이 필요하다.

일부에선 비유적으로 해석한다. ‘윤 전 대통령의 뜻을 이어가자는 의지의 표현’ 또는 ‘윤 전 대통령의 뜻을 이어갈 후보와 대선에서 이기자는 취지’란 것이다. 어떻게 받아들이든 이 구호를 외치는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헌재 파면 결정을 인정할 수 없고 계속 싸우겠다”는 태도다.

예언 틀렸지만 믿음은 더 강해져

100일 가까이 거리에서 “탄핵 기각”을 외쳤던 이들이 헌재의 만장일치 파면 결정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순 있다. 다만 실망과 분노가 헌법 질서에 대한 부정이나 음모론으로 이어지는 건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100% 기각을 확신한다”고 했던 극우 유튜버들은 윤 전 대통령 파면 직후부터 “헌법재판관 의견이 5 대 3이었는데 막판에 보수 재판관 한 명이 배신해 무너졌다”, “더불어민주당이 약점을 잡아 보수 재판관을 협박했다” 등 각종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다. 온라인에도 “좌파 판사 카르텔이 사기 탄핵을 했다”, “반국가 세력이 언론을 장악해 여론을 조종한 결과다” 등 밑도 끝도 없는 일방적 주장이 퍼지고 있다.

사회심리학에는 신념과 다른 현상이 발생했을 때 심리적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현실을 부정하거나, 음모론에 빠지거나, 자기 합리화에 나서는 경향이 있다는 ‘인지부조화 이론’이 있다. 이 이론을 발표한 리언 페스팅거 교수팀은 실제로 사이비 종교 집단에 잠입했는데 대홍수와 외계인 등장이 예언된 날 아무 일도 안 일어나자 신자 상당수가 “기도가 세상을 구원했다”, “외계인이 소요 사태를 우려해 그냥 돌아갔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특히 금전이나 시간을 많이 투자한 신자일수록 믿음은 더 강했다. 자신이 그동안 헛된 일을 했다는 걸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현저히 비합리적이고 자의적인 계엄”

헌재는 파면을 결정하면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현저히 비합리적이거나 자의적인 판단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과 변호인단의 주장과 달리 반국가세력 때문에 국가가 중대한 위기에 처한 상황도 아니었고, 부정선거나 북한 중국 러시아 등과의 하이브리드전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였다고 볼 객관적 근거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거리에 남은 상당수는 ‘윤 어게인’을 외치며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반국가세력과 끝까지 싸우겠다”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여기에는 윤 전 대통령이 헌재 결정에 승복하지 않고 자기 합리화로 일관하는 영향도 크다.

파면당하고도 개선장군처럼 사저로 돌아온 윤 전 대통령을 보며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주인공 돈키호테가 떠올랐다. 그는 “거인을 무찌르겠다”며 놋그릇을 머리에 쓰고 풍차에 돌진했다가 나가떨어졌는데 나중에 왜 그랬냐는 질문을 받고 “마법사가 막판에 거인을 풍차로 둔갑시켰다”며 남 탓을 했다.

하나 확실한 건 윤 전 대통령과 지지자들이 계속 ‘반국가세력 척결’을 외치며 풍차에 돌진할수록 국민 다수와 더 유리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보수 진영의 재건은 늦어질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파면#윤 어게인#오늘과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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