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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미적분의 쓸모는 어디까지일까?[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입력 2022-04-22 03:00업데이트 2022-04-22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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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누구나 “이거다!” 하는 때가 있다. 소설가는 한 인간의 서사를 들을 때, 시인은 이제껏 존재하지 않던 은유가 떠오를 때, 사진가는 빛이 만드는 공간을 볼 때, 정치인은 역사적 소명을 마주할 때가 바로 그때일 것이다. 물리학자인 나에게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고등학교 때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친구 형님의 책상을 보게 되었다. 책상 위엔 종이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 종이 위엔 지우개로 지워 가며 연필로 푼 미적분 문제들로 가득했다. 친구의 형은 한 회사의 사장이었다. 퇴근하고 미적분을 푸는 게 취미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퇴근하고 밤늦게 책상에 앉아 어려운 미적분 문제를 푸는 게 취미라니. 그 친구의 형을 직접 만나 보지는 못했지만, 그날 이후 나도 그런 멋진 사람이 되길 꿈꿨고, 수학을 좋아하게 되었으며, 그 멋짐을 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가치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삶은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 있다. 나 자신도,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도 움직인다. 이런 변화엔 물리적 규칙성이 있다. 매일 아침 해가 뜨고, 태양과 지구는 자신만의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계절을 만들어낸다. 그렇다. 우리는 수학적 규칙을 따르는 질서정연한 태양계에 살고 있다. 이런 움직임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하는 수학이 바로 미적분학이다. 미적분을 발견한 뉴턴은 이를 토대로 해서 우주의 작동 원리를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설명했다. 만약 미적분학이라는 수학이 없었다면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

얼마 전 블랙홀을 연구하던 제자가 학교에 와서 후배들과 함께 세미나를 했다. 그는 블랙홀 연구로 박사학위를 따고 난 다음 유명 포털 회사에 취직한 상태였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이용해 블랙홀을 연구하다가 세상의 온갖 데이터를 연구하는 데이터 과학자로 변신한 것이다. 그는 인공지능(AI) 컴퓨터 시스템을 응용해 데이터를 분석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블랙홀 연구에 사용하는 수학적 방법과 포털 사이트의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는 수학적 방법은 유사하다. 데이터 과학자들은 블랙홀을 설명하는 운동 방정식을 이용해 포털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데이터를 분석한 후 원하는 정보를 얻어낸다. 물리학이 실험과 이론을 수학으로 연결시켰다면, 데이터 과학은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코딩 언어와 정보를 수학으로 연결시킨다. 공통점은 수학이라는 언어다. 다루는 문제가 복잡하고 클수록, 복잡한 문제를 잘게 쪼개서 단순하게 바꾸는 미적분학은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큰 위력을 과시한다.

모든 것이 전산화되고 자동화되면서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시공간의 제약을 없애주는 플랫폼 메타버스, 인간의 지능의 한계를 없애주는 인공지능, 중앙집권화를 없애주는 블록체인 등 우리가 아는 세상의 개념이 이진법의 세상으로 빅뱅처럼 확장되고 있다. 내 인생을 바꾼 미적분학은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변화를 이끄는 중이다.

제자가 연구실에서 바라봤던 블랙홀과 포털이라는 세상이 어떻게 달리 보이는지 궁금하다. 다음에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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