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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박제균 칼럼]망국병 ‘대깨×’

입력 2021-11-01 03:00업데이트 2021-11-0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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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숱한 의혹에 눈감은 팬덤
‘머리 깨져도 끝까지’ 대깨문 닮아
‘대깨명’까지 출현하면 나라의 불행
‘대깨×’는 또 다른 증오 팬덤 불러
박제균 논설주간
궁금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지지자들은 과연 이 후보의 욕설 녹취를 들어봤을까? 들었다면 그 이후에도 이 후보를 지지하는 마음에 변화가 없었을까.

조사하기도 민망한 일이지만, 이 후보 지지자들 가운데는 의외로 욕설 녹취를 들어본 사람이 적지 않은 듯하다. 도저히 일국(一國)의 대통령 후보 입에서 나올 거라곤 상상할 수 없는 말을 듣고도 지지를 거두지 않은 사람들의 심리는 뭘까? 이재명 측이 주장하는 ‘욕설 이유’를 100% 수긍했기 때문일까. 그보다는 ‘내가 지지하는데, 욕설 따위가 대수냐’는 일종의 저항 심리가 작동한 건 아닐까.

지지자들 중에는 일부러 욕설 녹취를 찾아서 듣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어떤 도전(?)에도 흔들리지 않는 ‘명파’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로 봐야 하나. 이런 열혈 지지자들에게 이재명의 종북 조폭 연루, ‘공짜 불륜’ 의혹 등은 ‘신념을 흥미롭게 하는 양념’일 뿐이다.

그나마 이 후보 지지 심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대장동 의혹이다. 지지자 입장에서 다른 의혹들은 나와 큰 관계없는 ‘먼 나라 얘기’처럼 들렸지만, 대장동 게이트는 우리네 삶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재명은 아직도 30% 안팎의 단단한 지지율을 지탱하고 있다. 대장동 게이트가 이재명과 관련 없다고 믿고 싶어 하는 지지자들에게 그의 다른 의혹들처럼 ‘먼 나라 얘기’로 들리게 하는 신공(神功)을 이 후보가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장동 게이트에는 벌써 3개의 녹취록이 등장했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8년에 걸쳐서 녹음된 것들이다. 그들의 대화가 얼마나 어둡고 추악했으면 이렇게 ‘보험용’ 녹취록까지 생산됐을까. 그렇다면 ‘대장동 키맨’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의 녹취록도 없으란 법이 없다. 만일 유동규의 녹취록이 있다면 그건 ‘윗분들’과 관련된 것일 공산이 크다.

여태 공개된 녹취록에서 드러난 충격적인 내용만으로도 대장동 사업의 최고 책임자였던 이재명은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특유의 음모론과 적반하장, 야당과 언론 탓, 강변과 궤변으로 비판자들을 도리어 조소(嘲笑)하고 있다. 이쯤 되면 아무리 지지자라도 흔들릴 법하건만, 오히려 이재명의 화법에 동화(同化)되고 있으니 걱정스럽다.

그런데 이런 무비판적인 지지의 모습,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5년 가까이 질리도록 봐온 소위 ‘대깨문’이 꼭 이랬다.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지도자, 내가 지지하니까 무조건 옳다는 지지자, ‘머리가 깨져도 끝까지 간다’는 극렬함, 지도자에 대한 비판이 거세질수록 더 똘똘 뭉치는 저항 심리까지…. 아직 댓글 공격까지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 또한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 대깨문에 이어 ‘대깨명’까지 출현한다면 대한민국의 불행이다.

돌아보면 민주당 쪽에서 정치적 지지 차원을 넘는 팬덤을 가졌던 정치인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정도다. 김대중은 본인이 받은 박해와 지역차별 정서가 어우러져 호남 출신을 중심으로 살아생전에 ‘선생님’ 팬덤을 형성했다. 하지만 그 자신이 화해와 용서, 국민화합 행보를 솔선해 비교적 건강한 팬덤을 남기고 떠났다.

노무현의 노사모도 고인의 대통령 재임 시에는 비판적 지지를 유지했던 ‘깨시민’이 주류였다. 노사모가 열혈로 바뀐 건 그의 비극적 선택 뒤였다. 그래도 노사모는 조직적으로 반대자를 공격하는, 자유민주주의에 도전하는 짓은 벌이지 않았다.

그런데 대깨문은 반대자를 적으로 돌리는 지도자에게 영향 받아 상대를 배척하고 공격했다. 대깨문에 이어 대깨명이 나타난다면 더 두렵다. 이 후보는 반대자를 배척하는 문재인 대통령보다 한술 더 떠 반대자를 겁박하고 심지어 조롱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측 윤석열 홍준표 예비후보에 대한 지지는 어떤가. 아직은 두 사람이 좋아서라기보다 문재인-이재명으로 이어지는 정권 승계에 대한 거부감이 더 큰 소극적 팬덤이다. 그만큼 지지 기반이 물렁하다.

하지만 노사모가 대깨문을 낳고 대깨문이 대깨명을 낳을 조짐을 보이듯, 국민의힘 후보가 확정되면 ‘대깨윤’ ‘대깨홍’도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바닥에 상대에 대한 증오가 깔린 팬덤은 또 다른 증오의 팬덤을 부르게 마련이다. 그런 증오와 분열의 정치가 갈 길은 오직 하나, 망국(亡國)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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