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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칼럼]대한민국 vs 대안민국탈(脫)진실의 시대. ‘탈진실(Post-truth)’이란 용어로 그럴싸하게 포장했지만, 진실은 중요치 않고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이 세상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진실이 무시되는 세상엔 조작된 정보와 대안현실(Alternative reality)이 판친다. 뻔히 보이는 현실을 외면하고 가상의 현실을 진짜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2016년 11월 옥스퍼드 사전은 탈진실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직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인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것 등이 큰 영향을 미쳤다. 공교롭게도 그때부터 대한민국도 드라마틱하게 탈진실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 창궐한 허위정보와 이후 문재인 정권에서 팽배한 대안현실의 세상을 돌아보라. 북한의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다는 가상현실에 빠져 외교안보 정책을 말아먹은 결과가 어떤가. 핵 포기는커녕 문 정권 5년 동안 김정은은 핵·미사일 능력을 비약적으로 증강시킨 뒤 이제 7차 핵실험의 단추를 누르려 한다. 소득을 올려주면 경제가 성장할 거라는 ‘소주성’은 어떤가. 이제 전 정권 사람들도 입 밖에 내기를 꺼리는 ‘듣보잡 정책’이자 경제정책사(史)에 기록될 코미디다. 탈원전과 주52시간 등 대안현실을 진짜라고 믿은 대통령과 추종자들이 국정(國政) 곳곳에 질러놓은 정책 실패의 덩어리들은 이제 새 정부의 발목을 잡고, 국민에게 청구서를 들이민다. 정권이 교체됐으니 이런 대안세상은 정상화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한반도 남쪽에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짜 대한민국과 대안현실에서 헤어나지 못한 ‘대안민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윤석열이지만, 대안민국의 대통령은 여전히 문재인이다. 대안민국 사람들이 정권 교체라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회도 내 것이고, ‘검수완박’도 내 것이다. 정권이 바뀌지 않았으니 공공기관장도 물러날 필요가 없다. ‘알박기’가 아니라 법에 정한 임기요, 권리다. 그 나라에선 문재인은 성공한 대통령이고, 위선의 조국은 검찰개혁의 희생자다. ‘세월호의 진실’ 역시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문 정권 5년을 포함해 무려 7년 동안 9번이나 조사를 했어도 진상은 가려져 있다는 것이다. 천안함이 북한 공격에 의해 폭침됐다는 것도 믿을 수 없다. 북한이 그런 잔학무도한 짓을 할 리가 없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나라다. ‘미(美) 점령군과 친일세력의 합작’으로 탄생했고, 이후엔 친일파와 사이비 보수가 득세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한민국과 싸우는 대안민국 사람이라면 뭘 해도 용서가 된다. 변명이 더 낯 뜨거운 ‘짤짤이’를 입에 올려도 문제될 건 없다. 모두가 한편인 ‘대안민국 만세’다. 진짜 현실과는 다른 이런 대안현실들이 모여 대안민국을 이룬다. 오직 팩트(fact)만이 대안현실을 깰 수 있건만, 대안민국에서 팩트는 중요치 않다. 가뜩이나 SNS에 허위정보가 넘쳐나는 탈진실의 시대에 지난 5년간 대안현실을 진짜 현실로 믿도록 팩트를 왜곡하고 통계를 분식(粉飾)하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서해 피살 공무원의 월북몰이 의혹이나 탈북어부 강제 북송 사건이 그런 것들이다. ‘월북이면 좋겠다’는 기대가 ‘월북인 것 같다’는 추정으로, 결국엔 ‘월북이 맞다’는 확신으로 변질돼 간 것 아닌가. 그 과정에서 양념을 치듯, 팩트를 조금 비틀어도 상관없다.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한다는 운동권 논리에 젖은 그들은 ‘팩트도 목적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믿은 게 아닐까. 팩트를 무시하는 탈진실 현상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에서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이 아니다. 자국에 헬리콥터로 달러를 퍼부어도 경제위기가 찾아오면 세계가 달러화에 기대 결국 달러 가치만 높아지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국가와 국민이 함께 뛰어도 닥쳐온 미증유(未曾有)의 경제위기를 넘길까 말까다. 문 전 대통령 표현대로 ‘이쪽’과 ‘저쪽’, 우리 편과 너희 편, 대한민국과 대안민국으로 분열해선 ‘퍼펙트 스톰’의 파고(波高)를 넘을 수 없다. 전 정권이 파놓은 분열의 골을 따라 흐르는 넓고도 깊은 강. 이 강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에 윤석열 대통령의 성패(成敗)가 달려 있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2022-06-27 03:00
[박제균 칼럼]“대통령도 성공한 방식으로 실패한다”검찰공화국 논란을 부른 검찰 편중 인사 건(件)을 들여다보자. 이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대응은 다음 네 가지 경우의 수를 상정할 수 있겠다. 첫째, 가장 바람직한 건 누가 봐도 검찰 편중으로 느껴지는 인사를 안 하는 것이었다. 취임 전부터 검찰공화국 우려가 나온 만큼 최소한의 선에서 자제하는 것이 상수(上手)였다. 그런데, 했다. 그랬다면 겸허하게 국민들에게 이유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두 번째 수(手)다. ‘하루빨리 국가를 정상화하려는 마음에서 믿을 만한 인사들을 찾다 보니 인재 풀이 좁아졌다. 검찰공화국 우려를 잘 알고 있으며, 앞으로 검찰 출신 기용을 자제하겠다’고. 하지만 이렇게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 수는 비판에 대해 침묵하는 거다. 전임 문재인 대통령이 많이 쓰던 방식으로 악수(惡手)에 속한다. 문 전 대통령처럼 거듭되는 비판에도 다른 하늘을 쳐다보는 일이 임기 내내 반복되면 공분(公憤)이 쌓인다. 그러나 취임 초 대통령과의 ‘허니문 기간’에는 다소 용인될 여지가 있다. 윤 대통령이 둔 게 가장 나쁜 수였다. “과거엔 민변 출신들이 아주 도배를 하지 않았느냐”…. ‘도배’라는 용어 자체가 대통령이 쓰기에 부적절하고 과한 데다 ‘거번먼트 어토니(government attorney)’ 운운하며 미국 사례를 들었으나 한국 실정과 맞지 않아 비판이 커졌다. 그럼에도 “글쎄 뭐, 필요하면 또 해야죠”라고 고집을 부린 것이다. 지난번 칼럼에도 썼듯 윤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은 한국 대통령사(史)에 남을 만한 변화다. 임기응변에 능한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답변하는 말 가운데 팔 할 정도는 국정의 소통에 큰 도움이 된다고 본다. 문제는 실언(失言), 더 나가서 설화(舌禍)를 부르는 20%다. 문 전 대통령 사저 앞 시위에 대해 ‘대통령 집무실 앞 시위도 허가되는 판이니까’라고 답한 것도 대통령답지 못한 발언이었다. 그래도 출근길 문답은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낫다. 그렇다면 실언이나 설화를 줄여야 한다. 대통령의 말실수가 잦아지면 나머지 80%의 소통 언어마저 묻혀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대통령이 발화(發話)하는 언어의 무게다. 윤 대통령은 다변이고 달변이다. 함께 자리를 많이 했던 사람들에 따르면 대화의 80% 이상을 혼자 끌어가다시피 하는데, 꽤 들을 만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고시 장수(長修)생이나 검사 시절, 술자리에서 ‘구라’를 풀던 스타일의 언어생활은 달라져야 한다. 덜 말하고 더 들으라. 앞으로의 출근길 문답에선 지금보다는 더 정치(精緻)한 언어가 나오길 바란다. 그러려면 국정 관심사에 자문을 하는 그룹의 범주가 훨씬 넓어져야 한다. 윤 대통령의 첫 인사엔 검사 선후배를 비롯한 검찰 출신, 학교 친구와 선후배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만큼 윤 대통령을 잘 아는 친구 선후배들끼리의 집단사고에 빠질 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윤석열은 검사 출신이어서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이다. 모든 검사가 그처럼 강단 있을 수는 없겠으나 검사나 검찰총장이 아니었다면 박근혜 문재인 정권을 연달아 들이받는 게 가당키나 했겠나. 자신을 졸지에 한국사회의 정점(頂點)이랄 수 있는 대통령 자리까지 오르게 한 검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휴브리스(Hubris)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인간의 오만을 뜻하지만 성공한 오너나 CEO, 1위 기업 등이 자신들이 성공한 방식에 집착하다 실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금의 숱한 권력자들도 집권에 성공한 방식으로 통치하려다 실패의 길을 걸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워 집권한 이명박은 ‘패밀리 비즈니스’로, 박정희 신화의 계승자를 자처했던 박근혜는 결국 공주의 덫에, 보수세력 교체를 앞세운 문재인은 편 가르기의 함정에 빠져 실패하지 않았나. 검사로 성공한 윤석열이 대통령으로도 성공하려면 되레 검찰을 멀리해야 하는 이유다. 더구나 검찰과 엘리트 검사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이 아직도 엄존한다. 검찰개혁 얘기가 달리 나온 게 아니다. 이런 마당에 일 잘한다는 이유로 검찰 출신과 친구 선후배들을 계속 데려다 쓰면 결국 문 정권 때처럼 ‘끼리끼리 다 해먹는다’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땐 윤석열 식 ‘소탈 행보’도 더 이상 먹히지 않을 것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2022-06-13 03:00
[박제균 칼럼]정치초년 尹, 대통령像 바꾸나동아일보사가 청와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그런지, 가끔 가던 식당 중에 대통령이 다녀갔다는 곳들이 있다. 그런 식당들은 현직 대통령이 왔다는 데 남다른 자부심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꼭 잘되는 건 아니다. 정권의 부침(浮沈)이라는 거대한 파도의 끝자락은 때로 음식점 장사까지 때린다. 내가 애용하던 한두 집은 결국 문을 닫았다. 과거 대통령들은 외국에 나가지 않는 한 거의 청와대에서 밥을 먹었다. 장삼이사(張三李四)야 청와대 식사 한번 초대받길 고대하건만, 만날 먹어야 하는 대통령은 지겨울 법도 하다. 그래서 모처럼 ‘사제 식당’에 행차할라치면 경호 문제로 거의 007 작전이었다. 꼭 이래야 하나. 세계 최강 미국의 대통령들도 공개적으로 워싱턴DC의 식당에서 식사하고, 아이스크림을 들고 먹는다. 베이글을 테이크아웃하고, 단골 딤섬 식당을 찾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즐겨 먹던 햄버거는 ‘오바마 버거’로 불린다. 경호를 이유로 대통령을 청와대에 가두는 것이야말로 제왕적 대통령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좀 다르다. 당선인 때도 여기저기 맛집 순례를 하더니, 대통령이 돼서도 냉면 빈대떡 잔치국수 따로국밥을 사먹고, 순대 떡볶이 만두 소보로빵 등을 사갔다. 경호 문제로 시민들을 불편하게 한다고? 대통령 경호에 빈틈이 있어서야 안 되겠지만, 대통령과 국민을 괴리시키는 경호는 경호라고 할 수도 없다. 음식남녀(飮食男女)라고 했다. 원래는 군자가 식(食)과 색(色)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였으나, 지금은 음식과 사랑이 삶의 기본이라는 긍정적인 뜻으로 많이 쓰인다. 대통령도 사람이다. 청와대, 아니 용산 집무실의 문턱을 넘어 저잣거리에서 사람들과 만나 먹고 마시고 떠드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윤 대통령의 먹방 행보가 임기 초 보여주기 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그가 먹는 데 ‘진심인 편’인 듯하니. 기대를 걸어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퇴근길 시장에서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약속했다. 그 말을 의식한 듯 ‘퇴근길 국민과의 대화’라는 이름을 붙여 호프집 만남을 했으나 한 차례 보여주기에 그쳤다. 청와대에서 퇴근하지 않는 분의 퇴근길 대화라니…. 어색한 만남이었다. 그렇다. 윤 대통령의 먹방 행보는 청와대에서 나온 것과 관계 깊다. 청와대가 시내에 있지만 현실 세상과 격리된 듯한 데다 청와대의 ‘대(臺)’가 ‘흙이나 돌 따위로 높이 쌓아 올려 사방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 곳’이란 뜻이다. 권력자가 높다란 대에서 내려오니 세상과 어울리는 게 수월해지는 것이다. 청와대 개방은 뜻밖의 효과도 거두고 있다. 심지어 “무섭다”고 한 관저의 80평 침실을 비롯해 대통령 삶의 속살을 보여준다. 그런 ‘시설’에 살아야 했던 대통령들도 쉽진 않았겠으나, 국민에게도 은연중에 대통령의 제왕적 삶에 대한 거부감을 키워준다. 이제 윤석열 이후 누가 대통령이 돼도 청와대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해졌다. 윤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도 한국 대통령사(史)에서 특기할 만한 변화다. 출입 기자들이 대통령 얼굴 보는 게 연중행사나 다름없던 박근혜 문재인 때를 돌아보라. ‘국민희망대표’ 20명을 초청해 대통령이 직접 집무실 브리핑을 한 것도 달라진 대통령상(像)을 예고한다. 윤 대통령이 특출 나서 이런 변화가 만들어졌을까. 물론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대통령제가, 대통령상이, 대통령관(觀)이 달라진 세상에 따라가지 못하고 시대착오적이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그런 세상의 변화에 올라탔을 뿐이다. 그것이 정상화요, 정치보다 강한 일상(日常)의 힘이다. 그가 정치 초년생이라는 점도 선입견 없이 변화를 수용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 과거 대통령과 다른 윤석열 스타일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탈피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변화이기는 하다. 형식의 변화가 내용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더 중요한 건 내용의 변화다. 즉, 실제로 제왕적 권력을 내려놓느냐가 관건이다. 대통령의 권력 중 외교·안보는 나눌 수도 없고, 나눠서도 안 된다. 그러나 내치(內治)는 다르다. 대통령이 마음먹기 따라 충분히 분점과 권한 이양이 가능하다. 그러려면 인사권의 과감한 하방(下放)과 검찰권 독립이 필수다. 역대 대통령 누구도 못 한 일, 윤석열은 해낼 수 있을까.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2022-05-30 03:00
[박제균 칼럼]尹의 공정, 公私 구분 흐릿하면 ‘말짱 도루文’“저는 이제 해방됐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10일 경남 양산 사저로 가는 길에 ‘해방’이란 단어를 세 번이나 말했다. 그 말을 접하며 역시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분이란 생각을 다시 확인했다. 문재인 시대의 대한민국은 공정 정의 상식은 물론 안보까지 흔들린 ‘아무나 흔들 수 있는 나라’였다. 그런 나라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하고픈 말을 본인이 앞세운다. 대통령 퇴임 후 ‘잊히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대통령 문재인’을 잊고 싶은 국민이 오히려 많은데, 잊히고 싶다면서 퇴임 직전의 언행은 정반대였다. 이제 양산에서라도 ‘잊힌 삶’을 살아주시길 바란다. 그래도 그를 추앙하는 국민이 아직도 적지 않으니 본인으로선 행복한 은퇴 이후일 수도 있겠다. 대통령이 돼서도 철저히 우리 편만 든 데 따른 보너스가 무비판적인 팬덤 구축이다. 하지만 그 보너스엔 대가가 따랐다. 반쪽만의 대통령인 ‘반(半)통령’으로 남은 것이다. 그는 최고지도자도 철저히 우리 편만 들면 자신은 손해 보지 않는다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 자신은 손해 보더라도 국가와 국민을 통합해야 할 분이 가서는 안 될 길이다. 양식 있는 국민들은 까놓고 우리 편만 챙긴 문재인 나라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살았다. 그래서 공정과 상식을 표방한 윤석열 나라는 확연히 다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조각(組閣)과 대통령실 인사는 기대 이하다. 대통령의 인사는 대(對)국민 메시지인 만큼 어느 정도의 안배는 반드시 필요하다. 윤 대통령의 첫 인사는 지역 직역 학교 성별 세대별 안배에 실패했다. 백보를 양보해 윤 대통령의 지론인 ‘능력 위주’ 인사를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치자. 동창회나 검찰친목회를 연상시킬 정도로 학연 직연(職緣)에 치우치고, 자신과 가족의 변호인단을 다수 요직에 중용한 건 공사(公私) 구분을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더구나 김건희 여사를 ‘남편을 빛나게 할 평강공주’에 빗댄 낯 뜨거운 글을 쓰고 문제 발언이 숱한 사람을 대통령비서관으로 발탁했던 건 그야말로 낯 뜨거운 일이었다. 그의 사퇴로 정리됐지만, 이 인사의 기용에 김 여사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항간에 돌았다. 그 진위를 떠나서,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부터 이런 우려가 제기된 만큼 앞으로도 윤 대통령이 각별히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 대통령의 인사가 대통령과 직간접으로 통하는 인물을 기용하는 ‘연고(緣故) 인사’의 색채가 짙어진 건 박근혜 대통령 때부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좌파·운동권 세력에서 ‘형’ ‘아우’ ‘누나’ ‘동생’으로 통할 만한 이너서클에서 주로 사람을 골랐다. 코드만 맞으면 구체적인 연고는 따지지 않았던 노무현 대통령과 다른 점이었다. 연고 인사는 대통령의 권력의 사유화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윤 대통령의 첫 인사에서 권력 사유화의 그림자가 비친 건 우려할 만하다. 공정과 상식을 중시하고 누구보다 권력 사유화의 폐해를 잘 아는 그가 왜 그랬을까. 아직은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의 마력에 빠졌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정치를, 대통령이란 자리를, 대통령의 인사가 한국사회에서 갖는 함의(含意)를 너무 쉽게 본 건 아닌가. 정권이 교체됐다지만, 윤석열을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듯한 거대 야당과 좌파 기득권의 발호가 상상 이상으로 거세다. 국회 질서와 합의를 뒤집고, 꼼수에 꼼수 범벅을 하고도 되레 당당한 기괴한 집단이 된 것 같다. 여기에 실질적인 권력의 이동 여부를 가늠할 6·1지방선거가 코앞이라 윤 대통령의 첫 인사 실패가 다소 상쇄되는 감이 있다. 그러니 윤 대통령은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과거 한국 정치의 어른들은 ‘나보다는 당(黨), 당보다는 나라’를 앞세운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을 말하곤 했다. 선공후사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공과 사를 구분해 이해(利害) 충돌 소지가 있는 일을 삼가는 게 대통령 인사의 기본이 돼야 한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공과 사를 버무리다간 ‘문재인 때와 달라진 게 뭐냐’는 소리가 나올 것이다. 공보다 사를 앞세웠던 운동권 좌파 권력의 대못을 뽑으려면 윤 대통령부터 정신 차려야 한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2022-05-16 03:00
[박제균 칼럼]대통령 아닌 ‘半통령’으로 기억될 文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9일까지이니 재임 중 쓰는 마지막 칼럼이다. 본 칼럼이 격주로 나가기 때문이다. 일주일 뒤 청와대를 나오는 대통령을 비판하려니 마음이 불편하다. 하지만 떠나는 대통령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 문 대통령은 그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주 청와대 기자간담회와 jtbc 인터뷰에 많은 말을 쏟아냈다. 주말엔 청와대 국민청원의 마지막 답변자로 나서 같은 주장을 늘어놓기도 했다. 5년 임기 중 정상회담 때를 빼고 기자회견과 ‘국민과의 대화’를 합쳐 고작 10번 정도 언론 앞에 섰던 대통령이다. 임기 중에 자주 등장했으면 좋았으련만 ‘떠날 때는 말없이’는커녕 떠날 때 왜 그리 할 말이 많은가. 그것도 퇴임 후엔 ‘잊히고 싶다’던 분이. 말의 내용은 더 기막히다. 거의 다 자화자찬 내로남불 궤변이거나 아니면 후임자 깎아내리기였다. 국정(國政) 실패를 조금이라도 시인하고 후임자를 배려했다면 떠나는 뒷모습이 조금은 더 크게 보였을 터. 더불어민주당은 ‘검수완박’으로 폭주하는 사이, 홀로 여기저기서 ‘문재인 정부는 성공했어요’를 외치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참여정부는 절반의 성공도 못 했다.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실패와 좌절의 기억”이라고 토로했다.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한 노무현의 인간적 면모가 그를 더 추억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 하지만 문 대통령은 경남 양산에 내려가서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를 것 같다. 오히려 성공한 대통령이었다는 ‘대안 세계’에 살지는 않을까. 인간 문재인의 행복이고, 많은 국민의 불행이다. 대한민국 역사를 돌아볼 때 권한대행 같은 임시직을 빼고 대통령이라는 직함이 가장 어울리지 않았던 한 분을 꼽으라면 단연 문 대통령일 것이다. 그는 5년이 되도록 국가와 국민이라는 큰 크림을 보지 못했다. 오로지 ‘우리 편’을 주류세력으로 교체하겠다는 ‘세상 바꾸기 게임’에 몰두했다. 그는 집권자가 돼서도 대놓고 우리 편만 든 사상 첫 대통령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은연중에 지지층을 의식한 정책을 편 사람은 있어도 문 대통령처럼 노골적으로 상대편에 적의를 표시한 분은 없었다. 임기 말인 지난주까지도 상대편은 ‘저쪽’, 우리 편은 ‘이쪽’ ‘우리 편’으로 부르며 금을 그었다. 그럼에도 문재인의 세상 바꾸기 게임은 실패했다. 성공했다면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됐겠나. 남은 건 두 동강 난 대한민국이다. 우리 편을 열광케 한 대통령은 비교적 높은 지지율로 물러날지 몰라도, 그 자신은 반쪽만의 대통령인 ‘반(半)통령’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그가 우리 편의 지지를 잃지 않기 위해 구사한 언어는 ‘유체이탈 화법’이란 신조어를 남겼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는 자세로 임해야 할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될 비겁한 언어로 대통령사(史)에 남을 만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6일에도 ‘세월호 진상 규명’을 주장했다. 5년간이나 ‘진상 규명’이란 걸 해온 정권의 수장이 할 말인가. 무려 7년간 9번이나 조사를 하고도 진상이 나오지 않았다면 더 나올 진상이 없다는 뜻 아니겠는가. 국정 최고책임자라면 아픈 진실도 솔직하게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조국 사태 때 뜬금없이 ‘대입제도 개선’을 말하거나 윤석열 징계 파동 때 ‘인사권자로서 사과’ 운운한 것도 본질을 회피한 ‘문재인 어록’으로 남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원래 정치를 할 의사가 없던 분이었다. 그런 사람을 친노(親盧) 운동권 세력이 ‘기획상품’으로 내세워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나 의사는 물론 능력도 없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 결과가 참담한 국정 실패다. 무비판적 팬덤을 키워 정치를 병들게 하고 공정과 정의, 상식과 언어의 경계선을 허물어 사회의 건강을 좀먹은 건 보너스다. 이제 8일밖에 남지 않은 임기. 측근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 사면이라도 자제해 마지막이라도 대통령다움을 보였으면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에 관한 한 ‘불안한 상상은 항상 현실이 되고’ ‘뭘 상상해도 그 이상’이었으니 별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는 퇴임 후 “잊힌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지만, 도리어 잊고 싶은 사람은 우리다. 하지만 어쩐지 그러지 못할 거란 불안한 예감이 든다.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2022-05-02 03:00
[박제균 칼럼]尹, 검찰인사 말고 ‘통치인사’를 하라‘뭘 상상해도 그 이상.’ 문재인 정권 5년간 이 말을 되뇌고 살았지만, 수명이 한 달도 안 남은 터에 이런 일까지 벌일 줄은 몰랐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밀어붙이기. 12일 기어이 이를 당론으로 채택하는 더불어민주당을 보면서 느낀 건 정치적 호불호가 아니었다. 인간에 대한 회의(懷疑)였다.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으면, 즉 수치를 모르면 인간이 아니라고 했다. 한 사람도 아니고 172석이나 되는 거대정당이 한국 의회사에 수치로 남을 만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을 의식해 취임 전에 법을 공포하겠다는, 낯 뜨거운 말도 당당하게 한다. 다시 인간에 대한 비애를 느낀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전 민주당 대선후보 보호를 위해서? 172명의 의원들이 모두 떠나는 대통령과 패배한 대선후보에 그만큼 충성심이 강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국회 의석 과반을 훌쩍 넘는 거대 당이 제대로 된 토론도, 표결도 없이 만장일치로 위헌 소지까지 있는 막장 법안을 채택한다는 건 이들이 권력에 취해 있다는 거다. 권력에 취해 정상 사고의 틀을 벗어난 것이다. 취한 권력은 남용된다. 민주당은 이미 선거법 일방 처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 5·18역사왜곡처벌법과 대북전단금지법의 입법 등에서 의회 권력을 남용한 바 있다. 한 번 선을 넘으면 두 번, 세 번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누구도, 심지어 대선 패배도 브레이크를 걸 수 없는 이 당의 시스템이다. 이제 구심점마저 없으니, 어디로 폭주할지 모른다. 이런 폭주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오히려 기회다. 그런데 윤 당선인도 바로 다음 날, 호기(好機)를 차버렸다. 13일 2차 조각(組閣) 발표 직후 한 모임에 나갔다. 대선 전에는 ‘이재명이 되면 나라가 큰일 난다. 그래도 윤석열이 돼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였던 모임이다. 그랬던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번 조각에 우려를 표시했다. 대통령의 인사는 일반 기업이나 조직의 인사와는 달라야 한다. 일반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조직의 장(長)은 얼마든지 능력 있고, 가까운 사람을 데려다 써도 된다. 대체로 우수한 엘리트의 집단인 검찰에선 능력 위주 인사가 답일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의 인사는 정(政)·관(官)·재(財)계를 비롯한 한국 사회 전반, 무엇보다 국민에 던지는 메시지다. 능력 있다고, 가깝다고 함부로 썼다간 뒤탈이 나기 십상이다. 단적으로 최측근인 한동훈을 법무부 장관 후보에 지명한 건 패착이다. 대통령직인수위 보도자료는 한 후보 지명 이유에 대해 “정치권력, 경제권력 등 사회적 강자를 상대로 한 부정부패 범죄 수사에서 역대 비교 대상이 없을 만큼 발군의 성과를 거두었고, 진영을 가리지 않는 ‘권력 비리 수사의 상징’이 되었다”고 했다. 다른 후보자들과 비교해도 극찬이다. 검찰 수사를 잘 아는 윤 당선인의 의중이 반영된 문구로 볼 수밖에 없다. 과연 그런가. 한 후보자의 수사는 목적 달성을 위해 거칠게 밀어붙인다는 논란도 적지 않았다. ‘역대 비교 대상이 없을 만큼 발군의 성과’라는 대목에 그래도 절제하며 칼을 쓰려 했던 선배 검사들이 동의할지 모르겠다. ‘발군의 성과’의 이면에 인권 침해라는 그늘이 드리운 건 아닌가. 더구나 검수완박으로 폭주하던 민주당에는 울고 싶은 데 뺨 때려준 인사다. 또 이번에 기용된 국무총리와 장관 후보 19명 가운데 박진 외교부, 권영세 통일부, 원희룡 국토교통부, 이상민 행정안전부, 한동훈 법무부 등 5명의 장관 후보가 서울법대 출신이다. 아무리 ‘능력 위주’라도 특정 학과 출신이 4분의 1을 넘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40년 지기’라는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는 어떤가. 한마디로 창피한 인사다. 많은 국민은 내 편이라면 능력이나 도덕성, 언론의 비판 따위엔 신경 안 쓰고 중용한 문재인식 인사에 질릴 대로 질렸다. 그런 사람들에게 윤석열의 인사도 별반 다르지 않겠구나, 하는 실망감을 준 게 이번 조각의 가장 큰 잘못이다. 하루라도 빨리 잘못된 인사, 무엇보다 정호영 후보부터 철회하라. 그래서 새 대통령은 전임과는 다르다는 메시지를 한국 사회에 발신해야 한다. 그것이 평생을 검찰에 몸담아 통치자로선 다소 결격임을 알면서도 밀어준 국민에 대한 예의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2022-04-18 03:00
[박제균 칼럼]비호감 대통령 성공의 길김정숙 여사의 옷값 논란이 편치 않다. SNS에 떠도는, 화려한 옷차림에 장신구를 두른 ‘유쾌한 정숙 씨’ 편집 사진을 보는 건 더욱 불편하다. 정권교체의 대의(大義)가 실현된 지 25일째, 대한민국을 정상화해야 할 새 정부 출범이 불과 36일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이 이럴 때인가. 그러나 어쩌랴. 이 모든 건 문재인 대통령과 그 주변을 곤룡포로 꽁꽁 싸맨 청와대의 자승자박(自繩自縛)이다. 김 여사의 옷값 논란은 물론 ‘버킷리스트’ 외유, 최근 다시 불거진 경남 양산 사저 문제, 딸의 태국 이주와 청와대 거주, 아들의 거액 예술 지원금 수령, 대통령 자신이 연루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중 어느 하나 새롭게 제기된 게 없다. 이런 문제가 나올 때마다 문재인 청와대는 구체적인 해명은커녕 ‘감히 알려고 들지 마라’는 식의 제왕적 태도로 일관했다. 때론 대통령 본인이 ‘좀스럽고 민망하다’며 발끈하기도 했고, 청와대 관계자라는 사람들이 거짓 해명을 버무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특별감찰관법상 임명해야 할 대통령 주변의 감시자를 5년 내내 공석으로 두었다. 간이 크다고 할 수밖에 없다. 권력의 시간은 짧고, 진실의 시간은 길다. 원하든, 원치 않든 문 대통령 임기 중 털고 갔어야 할 문제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오는 불편한 시간이 찾아왔다. 대통령 주변에 높다란 가림막을 세우는 자들. 임기 중엔 충신일지 몰라도, 길게 보면 대통령의 실패를 부르는 간신이다. 의외였다. 급진 운동권 정권에서 이토록 대통령을 제왕으로 떠받들 줄 몰랐다. 같은 학생들끼리 전대협 한총련 의장을 ‘의장님’으로 부르며 옹위하던, 기이한 운동권 권위주의의 잔재인가. 문 대통령을 성군(聖君)에 비유하는 시대착오는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제왕적 대통령의 고질병이 어디 문 대통령만의 문제인가. 박근혜를 비롯해 많은 전직들이 곤룡포를 입고 대통령 실패의 무덤으로 향했다. 누가 대통령을 제왕으로 만드는가. 대통령 주변의 간신들보다 더 큰 문제는 은연중에 ‘대통령=제왕’으로 동일시하는 우리 안의, 내 안의 ‘제왕적 대통령관(觀)’이 아닐까. 자신이 ‘×××대 경기도관찰사’라는 경기지사를, 자기를 판서에 비유하는 장관 출신을 만난 적이 있다. 그렇게라도 격(格)을 올리고 싶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선후보 선대(先代)의 묏자리를 살펴보고, 청와대와 대통령 집무실 이전 터의 풍수를 따지는 우리의 의식이 대통령을 제왕으로 만드는 건 아닌가.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없애려면 우리의 제왕적 대통령관부터 혁파해야 한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졸속으로 진행된 것 맞지만, 그렇다고 무슨 왕궁이라도 옮긴다는 듯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다. 설사 윤석열 당선인이 통의동 집무실에서 대통령직을 시작한다 해도 건물을 방탄으로 둘러싸야 하나. 대통령과 시민의 거리를 멀게 하는 과도한 경호와 의전은 시대의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기대치가 역대 어느 정권보다 낮은 편인 것도 제왕적 대통령관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역대 최악의 비호감, 역대 최저 득표율 차 대선을 치른 지금, 윤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는 그를 자신의 ‘치자(治者)’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팽배해 있다. 심한 경우 윤석열 정부는 실패해야 마땅하고,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는 확증편향에 빠지기도 한다. 역대 최악의 출발선에 설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당선인은 이런 현실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이를 타개할 방법은 하나, 대통령 권위의 문턱을 확 낮추고 소통 또 소통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문 대통령이 지키지 못한 취임사의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 ‘퇴근길에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과 격의 없는 대화’ 같은 약속을 윤 대통령이 지키면 된다. 특히 전임자의 ‘편 가르기’ 정치를 반면교사 삼아 야당과 반대자와 적극 소통해야 한다. 출발은 나쁘지 않다. 대통령 당선인이 지시봉을 들고 직접 브리핑을 하거나, 격의 없는 ‘식사 정치’를 하는 건 과거 당선인 중에 못 보던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반작용으로 탄생했다. 대통령들을 실패로 내몬 제왕적 대통령의 사슬을 끊는 것이야말로 윤석열의 소명이자 성공의 길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2022-04-04 03:00
[박제균 칼럼]실패한 대통령의 권력 내려놓기대한민국호(號)의 선장이 바뀌었다. 그런데 전·후임 선장의 만남 자체가 무산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역대 전임 대통령들이라고 승리의 기쁨에 ‘오버’하는 당선인 측에 기분 상하는 일이 없었을까. 그래도 별 잡음 없이 만남이 성사된 건 떠나는 분이 들어오는 분에게 한수 접어주었기 때문이다. 잘잘못을 가리는 것 자체가 민망한 일이지만, 이런 사달이 난 데 전·후임 중 누구 잘못이 더 큰지는 말 안 해도 다 안다. 전임 선장은 ‘한 번도 못 가본’ 항로로 배를 몰았다. 자칫 한국호가 난파(難破)할 뻔했다. 그럼에도 후임 선장이 항로를 바꾸지 못하도록 배의 키를 묶어둘 태세다. 그것도 모자라 봉급은 많고 할 일은 많지 않은, 꿀 빠는 자리에 자기 사람을 듬뿍 ‘알박기’ 하고 있다. 그러면서 ‘떠나는 날까지 인사권은 내게 있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의 권력 내려놓기 과정에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높다고는 하나 어차피 떠나는 권력이다. 문 대통령보다 퇴임 지지율이 한참 높았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나 메르켈 독일 총리도 후임자를 배려해 길을 비켜주는 아름다운 퇴장을 하지 않았나. 웬만해선 떠나는 권력을 비판하지 않는 것이 정치 담당 기자의 상도의(商道義)라면 상도의다. 비판의 대상은 권력이지,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웬만하지 않은 것 같다.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흘러내리는 권력을 최후의 순간까지 거머쥐려는 모습은 안타깝다. 대통령부터 이러니 ‘문재인 사람들’의 낯 두꺼운 알박기는 보너스다. 김오수 검찰총장의 처신은 두고 볼 여지가 있지만,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어떤가. 그래도 한국 민주주의를 이만큼 지켜온 선거관리위원회의 전통에 오물을 끼얹으면서도 수치를 모른다. 중앙과 지방의 선관위를 움직이는 상임위원이 모두 20명이다. 이들 중 15명이 물러나라고 했으면 선관위 수장으로선 이미 끝난 거다. 다 끝났는데 본인만 모른다. ‘앞으로 잘할 것’이라고 했다는데, 앞으로 잘할 사람을 위해 비켜줘라. 그것이 또 다른 오욕(汚辱)을 더는 길이다. 5년 전 이맘때, 촛불의 겨울을 지낸 많은 국민은 새로 출범하는 문재인 정권에 대한 기대로 가슴 뛰었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기대와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의 결과는 ‘한 번도 경험 못한 나라’ ‘두 번 경험해선 안 될 대통령’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본인이나 주변의 흠결은 있더라도 안보를 튼튼히 하고 국부(國富)를 늘리는 ‘국익의 대열’에서 벗어난 분은 없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외교 안보 경제 재정 에너지 노동 교육 시민사회 정책은 물론 법치와 국민화합 등 국정 전 분야에서 국익을 자해(自害)하는 통치를 해왔다. 국정의 구석구석에서 그렇게 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만큼 했으면 이제 내려놓을 때도 되지 않았나. 마지막에라도 문 대통령이 내 편의 지지율보다 역사의 평가를 중시하는 대통령다움을 보였으면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이명박(MB) 전 대통령 사면 문제를 정리하고 갈 필요가 있다. MB는 문 대통령 임기 전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달리 임기 중 구속됐다. 아무리 반대 여론이 있더라도 떠나는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중 묶은 불행한 역사의 매듭을 풀고 가는 게 순리 아닐까.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나 민정수석 폐지 같은 당선인 공약에 청와대가 왈가왈부하는 것도 가당찮다. 그런 점에서 ‘여기 안 쓸 거면 우리가 그냥 쓰면 안 되나’라며 윤 당선인을 조롱한 비서의 경박한 언동에 대통령이 경고한 건 당연하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선언이 졸속으로 이뤄진 감이 있지만, 그 책임은 어디까지나 윤석열의 몫이다. 다만 식언(食言)으로 얼룩져 신뢰 잃은 한국 정치에서 잊혀진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법언(法諺)을 새삼 일깨워준 건 평가할 만하다. 문 대통령 퇴임까지 49일. 당선인 측과 청와대가 기싸움을 벌이는 듯한 풍경 자체가 생뚱맞다. 이제 주연 자리를 윤 당선인에게 물려주고 커튼 뒤로 물러서야 할 시간이다. 통 크게 당선인에게 권한을 이양하라. 마지막 날까지 인사권을 내세워 알박기 하려 든다면 경남 양산 사저로 떠나는 뒷모습도 어쩐지 초라해 보일 것 같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2022-03-21 03:00
[박제균 칼럼]대한민국 정상화 D―2모레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이 탄생하므로 문재인 대통령의 실질적 임기도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작금의 청와대 풍경은 역대 대통령의 이맘때와는 사뭇 다르다. 명실상부(名實相符) ‘첫 민주정부’였던 김영삼 정부 이후 청와대의 임기 말은 스산하기 짝이 없었다. 지지율이 반 토막 난 대통령의 레임덕 탓이 컸지만,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이나 가족의 문제가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웠기 때문이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 중 아들들이 구속되는 비운(悲運)을 겪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2년 차에 이미 형 건평 씨가 알선수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지지율이 20% 전후로 떨어진 임기 말에 가족들이 거액의 금품을 수수했음이 뒷날 드러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내곡동 사저 문제를 수사할 특별검사를 스스로 임명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직계가족이 없는 박근혜 대통령은 본인 문제로 탄핵까지 당했다. 지금도 40%를 넘나드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본인과 가족 문제로 내상(內傷)을 입지 않은 것과도 관련 깊다. 그러면 문 대통령은 그 문제가 없을까. 아직은 알 수 없다. 돌이켜보면 문 대통령은 촛불 정국의 와중에 후보 검증 때부터 사실상 ‘특별대우’를 받았다. 대통령 취임 1년여 만에 딸이 태국으로 이주했다가 돌아와 청와대에 장기 거주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왜 갔는지, 가서 어떻게 살았는지, 왜 돌아와 청와대에 살게 됐는지 아무도 모른다. 딸의 태국 이주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이상직 의원이 구속됐음에도 이 문제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대통령의 아들은 ‘세계적인 예술가’라는데 국내에서만, 그것도 아버지 재임 시에 억대가 넘는 지원금을 받았다. 선정 과정 또한 궁금하다.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인 남정호는 2019년 ‘김정숙 여사의 버킷리스트?’란 칼럼을 썼다가 청와대로부터 소송을 당해 2년간 법정싸움을 벌여야 했다. 남 칼럼니스트는 그 과정을 책으로 엮은 ‘김정숙 버킷리스트의 진실’을 최근 펴냈다. 과연 진실은 뭘까. 무엇보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같은 대통령 자신의 문제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이 구속돼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가 반복되는 건 반대한다. 그래도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 어쩌면 이는 대통령 주변에 높다란 가림막을 세우고, 그 안을 들여다보려는 사람들에게 때론 거짓 해명으로, 때론 겁박으로 진실을 호도하려 한 청와대의 자업자득일지 모른다. 돌아보면 문재인의 시대는 시종(始終) 대통령과 언론이 건강한 긴장관계를 정립하는 데 실패했다. 이는 언론 앞에 나서는 게 편치 않은 성격임에도 취임사에서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다’는 허황된 약속을 한 최고 권력자 탓이 가장 크다. 하지만 취임 초기 촛불 대통령의 위세에 눌렸든, 이후 징글징글한 문빠의 공격에 질렸든, 편이 갈라진 언론의 지형 탓이든 권력자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언론의 책임도 무겁다.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 할 말이 없다. 이틀 뒤 이재명이나 윤석열 누가 당선되든, 권력자와 언론이 건강한 긴장관계를 재정립하는 것부터 첫 단추를 끼워야 한다. 권력자, 특히 대통령이 다소 부당하다고 느낄 정도의 비판도 들을 줄 알아야 그런 관계가 성립된다. 30년 넘게 정치권력의 속성을 봐 온 기자의 눈으로 볼 때 결론은 하나다. 선한 권력은 없다. 문 정권 5년은 상식과 양식을 지닌 많은 국민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안겼다. 잘못이 드러나면 반성하고 사과하거나, 그렇게는 못해도 부끄러워하거나, 아니면 변명으로 책임을 조금이나마 덜어 보려는 게 우리가 아는 정상적인 세상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정치보복을 ‘적폐청산’으로, 검찰장악을 ‘검찰개혁’으로, 심지어 증거인멸을 ‘증거보존’으로 진실을 180도 뒤집는 건 민주화 이후 어떤 정권에서도 없던 방식이었다. 더욱 고통스러운 건 입법 행정 사법 권력을 줄 세우고, 심판기관을 내편으로 만들어 그런 도착(倒錯)된 진실이 아무렇지 않게 일상화되는 세상이었다. 9일 밤 이런 세상이 정상화하기를 소망한다. 누굴 뽑아야 대한민국이 정상화의 길로 들어설까. 비호감 대선이라 누굴 뽑기 싫다면, 누가 안 뽑혀야 이 비정상 대한민국을 끝낼지 판단하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자.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2022-03-07 03:00
[박제균 칼럼]윤석열, 교만의 늪에 빠져 大義 잃지 말라‘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文의 나라’가 사실상 끝났다. 임기는 두 달여가 남아 있지만 16일 뒤면 새로운 대통령의 시대가 열리기 때문이다. 지난 5년을 겪어내면서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인 이 정권에 놀란 적이 많았다. 그래도 중국에 대해 이 정도까지 친중(親中), 아니 사대(事大)일 줄은 몰랐다. 친북(親北)인 건 같은 진보좌파 정권인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같았다. 하지만 김·노 정부는 대통령 자신이 ‘높은 산봉우리’(중국) ‘작은 나라’(한국)라는 표현을 써가며 고개를 숙일 정도는 아니었다. 대한민국 안보 주권의 일부를 내준 ‘3불(사드 추가배치 불가, 美 미사일방어체계 불참, 한미일 삼각동맹 불가) 약속’은 더 이상 한중이 대등한 관계가 아님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도무지 ‘1’도 닮지 않을 것 같은 급진 운동권 정권과 조선 후기 주자학 교조주의가 통한다는 점도 놀랄 일이었다. 그들 주자학자는 친명(親明) 사대도 모자라 명나라가 멸망한 뒤에도 명의 연호를 쓰고, 명 황제를 모시는 만동묘(萬東廟)와 대보단(大報壇)까지 만들어 대대로 예를 올렸다. 만동은 중국 천자(天子)에게 충성을 서약하는 ‘만절필동(萬折必東)’에서 나온 말이다. 일본과 중국 같은 주변국에 서구 문물이 유입되는 시기에 대륙의 실체인 청(淸)을 부정하고 없어진 명나라의 맥을 이었다는, 기이한 정신 승리를 구가하던 사람들이 좌지우지했던 조선. 그런 나라가 망하지 않았다면 이상한 일이다. 그 만절필동이란 말은 문재인 정권 초대 주중대사가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면서 다시 등장한다. 이런 정신세계의 사람들이 집권했으니 정권 초부터 ‘중국 앞에만 가면 작아지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 정권과 당시 주자학 세력을 꿰는 실은 교조주의다. 우리가 항상 옳다, 그러니 비판은 전혀 용납할 수 없다는. 용납하지 않는 걸 넘어 반대자들에게 ‘적폐청산’이나 ‘사문난적(斯文亂賊)의 굴레를 씌워 제거하는 것도 닮았다. 대한민국 번영을 지켜준 한미동맹을 경시하고, 북한이라는 환상에 빠져 중국에 기울어진 반(反)외교적인 외치(外治), 현실에 안 맞는 편 가르기 정책을 밀어붙이다 번번이 실패한 내치(內治), 그러면서도 정치도 경제도 방역도 잘했다는 정신 승리에 빠진 이 정권은 조선 후기의 아픈 역사를 소환한다. 그래도 이 정권 사람들이 확연하게 다른 게 있다. 내로남불이다. 이제 조국-윤미향-추미애로 이어지는 위선의 ‘거룩한 계보’에 김원웅 전 광복회장도 추가해야 하나. 물론 이 내로남불 정권의 뒷배는 문 대통령 자신이다. 적폐청산의 이름으로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대놓고 정치 보복을 하고도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일을 겪고도 우리 정치문화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남 얘기하는 듯한 멘털에 또 한 번 놀란다. 그러므로 3·9 대통령 선거의 시대정신은 자명하다. 이 모든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 ‘대한민국 정상화’다. 뻔히 보이는 그 길을 가는 게 과반수 국민의 염원이다. 그런데 그 국민을 태운 쌍두마차가 어기적대고 있다. 두 마리 말이 각자 다른 길로 가려 한다면 마차와 승객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어제 단일화 제안을 철회했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다. 애초 안철수의 ‘여론조사 단일화’ 제의도 최후통첩은 아니었다. 유권자의 역선택을 노려 대선주자 지지율이 세 배도 넘는 윤석열에게 여론조사 단일화를 제안했다면 시쳇말로 ‘도둑× 심보’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안철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험한 정치판에 발을 들여 신고(辛苦)를 겪고도 반듯함을 유지하려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안철수의 단일화 제의는 물론 철회마저도 윤석열 본인의 분명한 응답을 촉구하는 메시지일 수 있다. 안철수의 설명대로 윤석열이 ‘단일화 제의 이후 일주일이 지나도록 가타부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면 교만의 늪에 빠진 것이다. 문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빠진 그 늪이다. 오차범위 넘게 이재명 여당 대선후보를 이기는 여론조사 결과와 단일화로 지분 상실을 우려하는 이준석 대표와 ‘윤핵관’ 등의 속삭임이 교만을 부추겼을 것이다. 그 교만으로 윤석열 개인이야 얼마든지 모험을 해도 좋다. 하지만 그 모험주의로 과반수 국민을 시험에 들게 하지 말라. 정권교체 없이 윤석열은 없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2022-02-21 03:00
[박제균 칼럼]안철수 책임총리論“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미국의 SF 소설가 윌리엄 깁슨의 말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2012년 9월 정치를 시작하면서 이 말을 인용했고, 자신의 저서 ‘안철수, 우리의 생각이 미래를 만든다’의 서문도 이 말로 시작한다. 그만큼 ‘미래’는 안철수의 인생을 관통하는 화두(話頭)다. 안철수는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떨어진 뒤 유럽 각국을 돌아보고 펴낸 이 책에서 “다른 나라들에서는 내가 과거부터 꿈꿔왔던 미래는 이미 와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국민들로 이루어진 대한민국에서는 바깥은 쳐다보지 않고 안쪽만 바라보고, 서로 분열과 갈등만 반복하면서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하나’와 같은 중요한 미래 담론은 실종됐다”고 우려했다. 맞다. 국가의 미래를 논해야 할 큰 장(場)인 대통령 선거에서도 미래 담론은 사실상 실종 상태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왜 이 모양이 됐을까. 이는 팔 할이 미래보다 과거를 헤집는 데 국정(國政) 에너지를 소진한 문재인 정권의 유산 탓이라고 본다. 밖으로는 왕조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친중 사대(事大)와 구시대적 반일(反日) 선동, 안으로는 이전 정권 지우기를 겨냥한 ‘적폐청산’과 건국 이후 다져진 나라의 토양을 갈아엎는 역사 뒤집기와 주류세력 교체까지…. 이런 정권이 연장돼서는 대한민국이 결코 미래로 갈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안 후보가 절감할 것이다. 그러려면 야권의 윤석열-안철수 후보 단일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도 모를 안 후보가 아니다. 그런데도 ‘안일화’ 같은 안일한 소리를 해댄다. 어쩌면 이는 ‘문제의 키는 내가 쥐고 있지 않다, 답(答)을 가져올 사람은 윤석열이다’라는 메시지의 또 다른 표현일지 모른다. 그렇다. 먼저 손 내밀 쪽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다. 그냥 손만 내밀어선 안철수가 잡을 리 없다. 안 후보의 ‘철수 트라우마’를 해소할 카드가 필요하다. 그 카드엔 역시 ‘안철수 책임총리’만 한 것이 없다. 안철수 국무총리가 경제 분야 장관의 인사권을 사실상 보유하고, 모든 장관과 중앙행정기관장의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실질적으로 보장받는 책임총리가 되는 것. 안철수 총리가 나라의 미래를 열 경제 분야의 최고 책임자가 되는 공동정부 형태다. 윤석열 후보로선 손해나는 장사가 아닐뿐더러 무엇보다 명분이 선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로 제왕적 권력을 건드렸다가 좌천된 윤석열. 문 정부에서 화려하게 부활했으나 다시 ‘산 권력’에 손을 대 신산(辛酸)을 겪고 우여곡절 끝에 제1 야당 대선후보에 오른 인물.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롤러코스터처럼 겪은 그가 ‘나부터 권력을 나누겠다’고 나서는 건 제왕적 대통령제 청산이라는 시대정신에도 응답하는 길이다. 권력 분산을 솔선하는 건 윤석열이 집권하면 부인 김건희 씨 등 처가가 막후 권력을 휘두를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의 우려를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만일 안 후보가 책임총리 제의를 거절한다 해도 큰 문제는 아니다. 윤석열은 정권교체의 대의(大義)를 구현하려 애쓴 후보로 남고, 이후 윤 후보로의 표 결집 현상은 가속화할 것이다. 안철수로서도 손해 볼 장사가 아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어차피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는 어렵다. 안철수로 단일화가 돼도 승산은 있겠으나, 명백한 야권 1위 후보를 제치고 ‘안일화’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윤석열과의 단일화를 포기하고 그대로 ‘고’ 한다면 막판 표 결집 현상 때문에 지지율은 더 떨어질 것이다. 윤석열이든, 안철수든 뻔히 보이는 정권교체의 길을 거부하고 ‘마이웨이’를 고집하다가 정권 연장의 문을 열어준다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윤석열이 안철수와 손잡으려면 ‘자강론’ 운운하며 ‘잔칫집’에서 한자리를 노리는 당내 세력들의 저항에 직면할 터. 그걸 극복하는 정치력을 보이는 게 검사 출신 윤석열이 국정 수임의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도 될 수 있다. 안철수는 위의 책에서 “(정치 투신 후) 7년이 지난 지금, 실패와 패배, 실망과 비난, 그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함께 희망을 가졌던 분들께 늦었지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더 큰 회한(悔恨)을 남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선 투표일까지 30일. 아직 시간은 있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2022-02-07 03:00
[박제균 칼럼]“신하 뒤에 숨었다”는 文, 유체이탈 國政의 끝은?이러니 ‘정치는 생물’이라고 한다. 민심을 누그러뜨리려 사과했을 때는 오히려 지지율이 급락하고, 치부(恥部)가 까발려진 듯한 녹취록 폭로엔 지지율이 반등하는 패러독스. 요 한 달 새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지지율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가장 큰 변수는 부인 김건희 씨. 여러모로 희한한 대선이다. 역대 대선에서 부인 변수로 유력 후보의 지지율이 급등락한 건 윤 후보가 처음이다. 많은 사람들은 김건희의 사과에서 ‘예쁜 체하는 가식’을, 녹취록에선 ‘날것 그대로의 솔직함’을 읽었다고 했다. 특히 녹취록을 접한 사람들 중에는 ‘생각보다는 머리가 좋은 여자’라고 평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김건희 씨의 머리가 더 좋았다면 기자인지, 기사인지 모를 ‘듣도 보도 못한’ 인사와 50번 넘게 통화하며 8시간 가까운 녹취록을 남겼을까. 대선 후보도 아니면서 “내가 정권을 잡으면…” 운운한 건 가소롭기까지 하다. 분명한 건 이런 캐릭터의 김 씨가 진짜로 청와대에 입성하면 과연 뒷짐 지고 가만히 있을까, 하는 깊은 우려를 남겼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오는 대로 말해버린 김건희 녹취록에도 내 귀에 쏙 들어오는 대목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진심이 있었고 희생하신 분이고, 문재인 대통령은 여기저기 신하 뒤에 숨은 분이다.” 문 대통령의 국정(國政) 5년을 시정(市井)의 언어로 잘 압축했다고 본다. 그럼에도 40%를 넘나드는 국정 지지도는 여야 유력 대선 후보의 지지율을 뛰어넘는다. 대통령이 국정을 잘해서? 그게 아니라는 건 다 안다. 문 대통령처럼 임기가 끝나는 이 시점에 국정의 단 한 분야라도 잘한 걸 찾기 어려운 대통령이 있었을까. 아니, 문 대통령처럼 임기 내내 국정의 각 분야를 돌아가면서 망가뜨린 분은 없었다고 해야 하나. 오늘의 문 대통령을 만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말 지지율은 20% 밑으로까지 떨어졌다. 본인의 이념 과잉 탓이 컸지만 내 편이 반대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이라크 파병,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을 밀어붙이면서 집토끼도 산토끼도 다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노무현은 그래도 나라의 미래를 생각한 지도자로 남았다. 문 대통령은 어떤가. 그의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는 비결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지지층이 싫어할 일은 안 한다 ②책임은 ‘신하’에게 미루고, 공은 자신에게 돌린다 ③잘못해도 사과 안 하고, 사과해도 남 얘기하듯 한다 ④누가 뭐래도 줄기차게 ‘국정 성과’를 주장한다. 이러니 지지자들에겐 잘못한 것 하나 없는 대통령이지만, 본질을 들여다보면 ‘유체이탈 국정’이다. 그런들 어떠랴. 북한이 남한 전역 타격을 상정한 가공할 미사일 도발 시리즈를 펼치고, 오미크론 위기가 닥쳤어도 대통령 부부는 임기 끝나기 전 밀린 숙제라도 하듯 ‘외유성 순방’을 멈추지 않는다. 문재인 5년은 우리 대통령사(史)에서 책임윤리를 저버린 국정이 먹힌 나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시민의식과 민주주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 유체이탈 국정의 끝은 예상대로 관권선거다. 문 정권이 뒤집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가, 5년 가까이 이룩한 좌파 생계공동체의 운명이, 심지어 문 대통령의 퇴임 후 안위(安危)가 3·9대선 결과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선거관리 부처인 법무 행정안전부 장관에다 중앙선거관리위원 8명 중 7명을 친여 일색으로 해놓고도 못 미더워 무리수를 두다 벌어진 중앙선관위 파동을 보라. 임기 말에 이렇게 노골적으로 대선에 개입한 대통령은 없었다. 이렇듯 정권 연장에 목숨을 건 여권과는 달리 야당 쪽을 돌아보면 여전히 한가하다. 선거 캠프 합류 여부를 가르는 첫 만남에서 공천권을 요구한 홍준표 의원이나 단둘이 나눈 밀담을 흘린 윤 후보 측이나 지질하긴 마찬가지다. 뭐라 명분을 갖다대든 속내는 웰빙 보수 특유의 지겨운 자리다툼이다. 무엇보다 최근 윤석열의 지지율 등락에서 보듯 ‘김건희 리스크’는 윤 후보에게 벌써 현실이 됐다. 더 우려되는 건 부인 말고 장모와 처남을 둘러싸고도 이런저런 구설이 나온다는 점이다. 윤석열의 대선 성패는 물론 설혹 대선에서 승리한다 해도 그의 정치적 명운(命運)이 처가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권교체를 위한 전략적 선택을 염두에 둔 국민들은 그 문제에 대해 이미 충분히 참고 있다. 그 인내가 폭발하지 않도록 하는 건 전적으로 윤석열의 몫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2022-01-24 03:00
[박제균 칼럼]野 대선후보 이름은 네 글자다대장동은 가고 김건희만 남았다. 대권 경쟁 보려 했더니, 야당의 지저분한 권력투쟁만 봤다. 최근 대통령 선거 판을 들여다본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이러니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지지율이 추락하지 않았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윤 후보와 국민의힘 잘못만은 아니다. 상대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보여주는 신공(神功)이 놀랍다. 역대 유력 대선후보 가운데 이렇게 숱한 허물과 전비(前非)를 지닌 분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그런 잘못에 대처하는 이 후보의 방식이 너무도 신속 태연하며, 심지어 당당하다. 그러니 보는 사람이 더 헷갈린다. 그 과정에서 아전인수와 적반하장, 남 탓과 궤변 등 많은 ‘기술’이 동원되지만, 아들 문제에서 보듯 필요하다면 사과도 빠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잘못을 인정 안 하고, 뒤늦게 사과하면서도 남 얘기 하는 듯한 유체이탈 화법으로 복장을 터지게 했다면 이재명은 대응의 타이밍을 놓치는 법이 거의 없다. 정책 뒤집기도 여반장(如反掌)이다. ‘모(毛)퓰리즘’ 논란에서 보듯, 표가 되면 뭐든 ‘이재명은 합니다’. 대장동 게이트에서 봤듯, 가까웠던 사람도 쉽게 버릴 수 있는 캐릭터다. 그런 점들이 오히려 한 번 정하면 바꿀 줄 모르는 교조주의에 빠져 집권 4년 반 자기들끼리 해먹은 문 정권에 질린 사람들에게 신선감마저 주는 것도 사실이다. 너무 편리한, 그래서 위험한 이재명식 실용주의다. 국가 정책의 제1 요건인 일관성을 흔들 뿐 아니라, 막상 권력을 잡으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준다. 문 대통령과 친문 세력도 이 후보가 집권하면 토사구팽(토死狗烹) 당하지 말란 법이 없다. 윤석열 후보는 그 반대다. 가까운 사람은 끝까지 지키려 한다. 시중에 돌아가는 민심도 모르고, 본인 표현대로 ‘제 처’ 김건희를 애처롭게 바라본다. 이쯤 되면 김건희 씨가 화장기 없는 맨 얼굴로 속죄의 봉사 활동이라도 꾸준히 해야 하건만, ‘요양’ 운운하며 아내의 건강을 걱정한다. 좋은 남편이겠으나 훌륭한 지도자감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김종인과 ‘윤핵관’들을 내치고 선거대책위를 슬림화한다면서 중용하는 사람이 또 권영세 원희룡 같은 서울대 법대 선후배다. 너무 쉽게 가려 한다. 아직도 ‘검사스러운’ 골목대장 리더십을 버리지 못했다. 이번 개편 때 윤희숙 전 의원 같은 사람을 선대본부장으로 전격 중용했다면 뭔가 달라졌다는 인상을 주지 않았을까. 이런 윤석열의 결점을 보완하기는커녕 도리어 대량 실점을 유발하는 게 그의 주변에 몰려든 ‘대선 한탕주의자’들이다. 대표 선수는 역시 김종인. 긴 말이 필요 없다. 그쯤 했으면 ‘지족원운지(知足願云止·만족함을 알고 멈추기를 바람)’하고 말을 줄이시라. 보수는 품격인데, 이준석 대표를 비롯해 윤 후보 주변 사람들이 웰빙 보수 특유의 ‘집권하면 대박, 아니면 말고’ 식 기회주의 속성을 드러내 피로감을 준다. ‘참을 수 없는 보수의 가벼움’이다. 어차피 국민의힘을 보고 윤석열을 지지한 사람은 많지 않다. 정권교체라는 대의(大義)를 구현할 도구로 그가 가장 적합해 보였기에 그 당에 올라탄 윤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가 대다수일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선거에 생존을 걸고, 대선 때만 되면 집 나갔던 사람들도 돌아와 뭉치는 진보좌파 진영, 그런 생리에 힘입어 연일 정책 행보를 펼치는 이재명 후보 측과 너무 대비된다. ‘김건희 리스크’만 해도 버거운 터에 주변도 그 모양이니, 정권교체 도구로서 윤석열의 매력지수는 떨어졌다. 아울러 정권교체의 대의마저 흔들리는 위기 상황이다. 그래도 분명한 건 있다. 이번 대선에선 사상 처음 누굴 뽑느냐가 아니라 누굴 안 뽑느냐가 관건이라는 점이다. 동맹을 흔들며 북-중(北中)과 밀착해 안보를 위협하고, 내일이 없는 포퓰리즘 돈 풀기로 나라와 청년의 미래에 암운(暗雲)을 드리우며, 무엇보다 법치와 상식은 물론 언어까지 파괴한 문 정권의 시즌2를 막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라를 걱정하는 유권자들은 말 안 해도 알고 있다. 이런 대의와 견주면 윤석열이나 그 주변의 문제는 어쩌면 사소하다. 그리하여 윤석열이 됐든 안철수가 됐든, 야당 대선후보 이름은 바로 이 네 글자다. 정권교체.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2022-01-10 03:00
[박제균 칼럼]文, 임기 말까지도 속 보이는 ‘정치 사면’23일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 사실이 동아일보 취재진에 포착된 날이. 공교롭게도 그 날짜 신문들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남 양산 사저 사진이 실렸다. 대지 800평에 신축 중인 사저가 내년 4월 준공되면 5월 퇴임하는 대통령이 내려가 살게 된다. 바로 그 대지를 두고 ‘9개월 만에 농지→대지’ 형질 변경 논란이 있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 대지를 두고 형질 변경 논란을 벌인 것은 문 대통령 표현대로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다. 다만 대통령 자신이 분을 못 참고 기어이 그런 논평을 한 것 자체가 더 민망하다. 어쨌거나 공사 가림막 뒤로 보이는 파스텔 톤의 사저 외관은 꽤 아늑하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런데 31일 풀려날 박 전 대통령은 돌아갈 사저가 없다. 병원 치료를 마치고 들어가 살 집이야 동생 지만 씨가 여유도 있고 해서 어떻게든 마련될 것이다. 하지만 4년 9개월 수형 생활로 몸과 마음이 망가진 70세 여성 전직 대통령이 돌아갈 사저조차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짠하다. 그래도 문 대통령의 박근혜 사면은 안 한 것보다는 낫다. 다만 “과거에 매몰돼 서로 다투기보다는 미래를 향해 담대하게 힘을 합쳐야 할 때다. 이번 사면이 생각의 차이나 찬반을 넘어 통합과 화합, 새 시대 개막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입장 발표가 없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박근혜 수형 기간에 맞먹는 4년 7개월여 임기 내내 과거에 매몰돼 ‘적폐청산’ 친일몰이 역사바꾸기 등을 밀어붙이고, 통합과 화합은커녕 민주화 이후 최악의 편 가르기를 한 정권의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니었다. 청와대는 박근혜 사면을 대통령의 결단처럼 포장했지만, 그렇게 훌륭한 일이라면 왜 진작 못 했나. 박 전 대통령을 군사 쿠데타로 집권하고 천문학적 비자금을 챙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보다 두 배도 넘는 기간을 감방에 놔둔 건 도무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국격(國格)에도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문 대통령을 두고 내 편에는 한없이 따뜻해도 ‘네 편’의 아픔이나 고통에는 공감능력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번 사면 배경에 대해서도 ‘박 전 대통령 건강이 심각해 자칫 수감 중에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보고가 올라가 그에 따른 정치적 파장을 우려한 대통령이 결심을 하게 됐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박 전 대통령만 사면했다면 만시지탄(晩時之歎)은 있지만, 나도 박수를 쳤을 것이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복권, 이석기 가석방 끼워 넣기는 뭔가. 더구나 제주 해군기지와 성주 사드기지 반대 시위, 불법 노동 집회를 주도한 민노총 지도부와 시민단체 관련자들도 대거 사면·복권해 줬다. 이러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동계의 환심을 사고, 진보좌파를 결집시키며, 박근혜 사면 카드로 보수우파를 흔들려는 선거용 정치 사면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문 대통령이 아무리 이번 사면의 정신을 ‘통합과 화합’이라고 말해도 많은 국민에겐 ‘편 가르기와 내 편 봐주기’로 들리는 것이다. 그나마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상에서도 빠졌다. 그의 사면 제외를 보고 문 대통령의 ‘분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은 2018년 1월 자신을 향한 사법의 올가미가 조여 오자 ‘노무현 죽음에 대한 정치 보복’을 입에 올렸다. 이에 문 대통령은 최고 권력자답지 않게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개인감정을 드러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미 군사반란죄 내란죄를 범하고 수천억 원대 비자금을 챙긴 전·노 씨보다 오래 형을 살고 있다. 형평성 차원에서든, 국격 차원에서든 풀어줘야 마땅하다. 4개월여 남은 대통령의 임기, 국민은 주시할 것이다. 문재인의 ‘아픈 손가락’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사면할지, 이명박 사면을 김경수 사면의 물타기용으로 쓸지, 이명박만 사면할지를. 닷새 뒤면 임인(壬寅)년 새해가 밝는다. 그 67일 뒤엔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선거다. 그 선거를 앞두고 이 나라가 얼마나 두 동강 나 분열의 굿판을 벌일지 벌써부터 아스라하다. 그러니 이재명 윤석열 후보 진영은 치열하게 경쟁하되, 모질게 상대를 적으로 돌리는 문 정권의 우(愚)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한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취임사의 약속을 마지막에라도 지키는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2021-12-27 03:00
[박제균 칼럼]윤석열, 검찰주의자-검찰공화국 우려 씻어야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일 것이다. 윤 후보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주도한 소위 ‘적폐청산’ 수사 과정에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을 비롯해 4명이 비극적 선택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 대개는 진실이 드러나는 법. 이제 우리는 안다. 적폐청산 수사가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무리한 수사였음을. ‘칼은 찌르되 비틀지 말라’고 했는데, 칼을 비트는 무리한 수사 기법도 동원됐음을. 당시 윤 지검장이 적폐청산이라 쓰고 ‘보수 정권 죽이기’로 읽은 문재인 대통령의 의도를 몰랐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문 정권의 ‘잘 드는 칼’ 노릇을 한 것이다. 그 칼이 조국이라는 ‘산 권력’ 앞에서 무뎌지거나 칼끝이 휘었다면 오늘의 윤석열은 없었다. 그랬다면 또 다른 김오수(검찰총장)나 김진욱(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으로 끝났을 것이다. 현 검찰이나 공수처는 여권(與圈)에는 장난감 칼이나 다름없다. 차이가 있다면 검찰은 수사 능력은 있는데 의지가 없고, 공수처는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점. ‘잠자는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잠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청와대나 여당 대선 후보가 연루된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하는 척만 하는 검찰과 공수처를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진짜 수사를 할 리 없다. 이들과의 차이가 윤석열을 대권 후보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검사 윤석열이 아무리 산 권력에 칼을 겨눴다고 해도 그가 주도한 무리한 적폐청산 수사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는 검찰주의자로 정평이 나 있던 검사. 사법시험 9수를 해서라도 검사가 될 정도로 ‘대한민국 검사’에 대한 자긍심이 남달랐다. 윤 검사를 유명하게 만든 말.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2013년 여주지청장이던 그가 이 말을 하면서 덧붙인 언급이 있다. “조직을 대단히 사랑한다.” 결국 윤석열 검사의 충성 대상은 사람은 아니지만, 검찰 조직이 아니었던가. 그런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검찰공화국이 될 거란 우려가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 사회는 조직에 충성하며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검사들이 빚은 무서운 결과들을 너무 많이 봐 왔다. 이런 마당에 조직에 충성하던 검찰주의자, 수사 성과를 내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던 검사 윤석열에게 과연 검찰권보다 더 큰 권력을 맡겨도 되나, 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윤 후보는 아직도 이런 우려를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본인부터 ‘검사스러운’ 티를 벗지 못한 데다 무엇보다 주변에 최측근인 권성동 사무총장을 비롯해 검사 출신들이 너무 많다. 뒤에서 윤 후보를 돕거나 조언하는 그룹들도 검사 출신이 다수다. 그가 평생을 검사로 살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너무 쉬운 길로만 가려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검찰은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집단 중 하나다. 검사 개개인이 대체로 유능하고 조직도 효율적이다. 하지만 유능하고 효율적인 이 집단의 실패가 결국 검찰개혁을 불렀다. 사회의 갖은 목소리를 담아야 할 정치의 세계에서 똑똑한 집단이 꼭 성공을 거두는 것도 아니다. 서울대 법대 출신들이 주류였던 이회창 대선 후보의 사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만약 윤 후보가 집권해 검사 출신들이 사회 요직을 꿰찬다면 말 그대로 검찰공화국이다. 벌써부터 항간에는 그가 집권하면 특정 인사가 검찰총장이 될 거란 얘기가 돈다. 유능하지만 거칠게 수사한다는 이 인사가 총장이 돼 문 정권에 ‘복수혈전’을 펼쳐 주기를 바라는 시각도 보수 일각에 엄존한다. 하지만 그런 길은 과거보다 미래로 나아가야 할 21세기 대한민국이 갈 길은 아니다. 그렇기에 윤 후보가 문 정권류의 가짜 아닌 진짜 검찰개혁을 원한다면 ‘검찰과의 거리 두기’부터 실천해야 마땅하다. 정치인 윤석열의 충성 대상이 ‘조직’이 아니라 ‘국민’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검사 대통령’의 탄생에 불안감을 지우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윤 후보의 공식 슬로건(잠정)은 ‘국민이 불러낸 대통령’이다. 국민이 불러낸 건 맞지만, 현직 검찰총장이 대통령 감으로 적합해서가 아니다. 무도한 정권을 끝낼 다른 대안이 안 보였기 때문이다. 윤 후보는 이를 겸허히 새기고, 정권교체의 대의(大義)에 걸리적거린다면 검사복부터 벗어던져야 한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2021-12-13 03:00
[박제균 칼럼]낙원 꿈꾸는 이상주의 정치, 지옥을 부른다대낮 서울 한복판에 나타난 지옥의 사자. 무참히 사람을 죽이고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간다. 형언할 수 없는 공포에 빠진 시민들에게 신흥 종교단체 지도자가 전하는 신(神)의 메시지. “너희는 더 정의로워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진짜 신의 메시지였을까, 아니면 신을 가장한 이 단체 지도자의 목소리였을까.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의 모티브지만, 중·근세 역사를 돌아보면 신의 메시지를 ‘독점’한 자들이 되레 지옥을 펼친 사례는 많다. “신이 그것을 바란다”는 교황의 선동으로 시작돼 200년 동안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에 참화를 불러온 십자군 전쟁이 그랬고, 중세의 종교재판과 근세까지 이어진 마녀재판이 그랬다. 신의 대리인을 자처한 그들은 지상에 신국(神國)을 세운다며 지옥을 펼친 것이다. 20세기 들어서는 그런 신의 메시지가 신처럼 군림한 독재자의 이상주의(理想主義) 통치 형태로 나타났다. 독일의 유럽 정복을 꿈꾸다 결국 독일은 물론 세계를 전쟁의 불구덩이로 몰아넣은 히틀러의 ‘게르만 우월주의’, 빈자도 부자도 없는 평등사회를 지향했으나 종국에 빈곤과 공포만 남아 망한 구(舊)소련과 동구권의 공산주의, ‘문화(文化)’를 앞세웠지만 야만적인 사형(私刑)과 숙청, 권력투쟁만 남긴 마오쩌둥의 문화혁명…. 멀리 갈 것도 없다. 오죽 불행하면 “우리는 행복해요”라는 구호까지 내걸었으나 오직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만 행복하고, 아직까지도 인민들에게는 지옥도를 펼치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보라. 하나같이 지상에 낙원을 건설한다는 이상주의가 펼친 지옥이다. 여기서 드라마 지옥의 모티브를 차용하면, 그런 독재자들이 앞세운 이상은 과연 신념이었을까, 권력욕이었을까. 정치에서 이상주의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개인의 이기심이라는 인간 본성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이기심과 공동체의 이상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정치다. 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한다며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그게 바로 독재다. 20세기 들어 그런 이상주의 정치 실험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런데 실패한 이상주의의 망령이 세계 10위권 이상 선진국 가운데는 유일하게 이 나라의 하늘을 배회하고 있다. 혁명이 아닌 촛불시위를 끝까지 ‘촛불혁명’이라고 우긴 문재인 정권이 그 망령을 불러들였다. 문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혁명을 내세운 이유는 자명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류의 이상주의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현실의 기반을 갈아엎을 명분이 필요했던 거다. 허나, 이제 우리는 모두 안다. 문 정부의 이상주의 국정(國政)이 거의 다 실패로 끝났고, 아름다웠던 대통령 취임사의 약속들은 공수표였음을.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에 무지한 운동권 집권세력이 워낙 무능하기도 했지만, ‘북-미 중재자론’을 필두로 탈원전과 소득주도성장, 비정규직 제로 등 그들이 내건 이상주의 정책이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탓도 컸다. “평생 살 집 걱정 없는 대한민국”처럼 꿈같은 목표를 내세우더니, 정책이란 정책은 내놓는 족족 실패해 ‘벼락거지’를 양산한 부동산 정책. 사람은, 특히 청년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사는데, 그 희망이 없는 땅이 지옥 아니고 뭔가. 그러고는 ‘너희 2% 때문에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는 듯이 보복적인 종부세 폭탄을 투하하는 것이 정권 말의 풍경이다. 이만큼으로도 대한민국은 곪을 대로 곪고, 나라의 곳간은 거덜 날 지경인데 이번에는 더 센 분이 나타났다. ‘억강부약(抑强扶弱)으로 모두가 평등한 대동(大同)세상을 만든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다. 이 지구의 역사에 대동세상이 구현된 나라가 한 번이라도 있었나. 소득도, 주택도, 대출까지도 ‘기본’으로 제공되는 나라. 그런 낙원이 있다면 나도 한번 살아보고 싶다.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누구보다 풍파를 겪고 그 자리까지 간 분이 그러니 또다시 묻게 된다. 이 후보가 내건 이상주의 기치는 과연 신념인가, 대권욕인가. 위기의 대한민국, 지금 필요한 지도자는 이루고 싶은 이상과 이룰 수 있는 현실 사이에 균형을 잡고, 무엇보다 이 나라 청년의 미래를 책임질 사람이다. 이상주의는 매혹적이지만 허망하다. 유토피아(Utopia·이상향)의 그리스어 어원을 풀어보면 ‘세상에 없는 곳’이다.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2021-11-29 03:00
[박제균 칼럼]대통령, 가족이라는 업(業)문재인 대통령의 딸이 1년 가까이 청와대 관저에 거주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한 첫 느낌은 부끄러움이었다. 도대체 나를 비롯한 한국의 기자들은 그 1년 동안 뭘 하고 있었던 건가. 국가 최고의 공인(公人)이자 권력자의 딸이 다른 곳도 아닌 청와대에 거주했다는데 권력 감시자인 언론이 몰랐다는 건 변명이 안 된다. 만에 하나, 아는 언론인이 있었는데 보도를 안 했다면 직무유기다. 사실 문 대통령의 딸 문제는 언론으로서도 ‘아픈 손가락’이다. 현직 대통령의 딸과 가족이 취임 1년여 만에 태국으로 이주하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음에도 왜 갔는지, 가서 어떻게 사는지 제대로 규명하고 보도하지 못했다. 과거 같으면 주요 언론들이 현지 취재라도 보냈을 법하건만, 취임 초반 대통령의 서슬 퍼런 권력을 의식해서든, 극성 문빠들의 공격이 부담스러워서든, 둘 다이든 간에 그러질 못했다. 하지만 진실, 특히 권력 주변의 진실이 그대로 묻히는 법은 거의 없다. 청와대가 문 대통령의 가족을 보호한다고 쳐올린 높은 장막이 퇴임 후에는 대통령과 가족에게 되레 그늘을 드리우게 될 것이다. 대통령 자신은 ‘잊혀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지금쯤은 본인도 잘 알지 않을까. 그래도 청와대나 대통령 측근이란 사람이 “법령을 위반하거나 부적절한 사항은 없다”고 해명하거나 “딸이 친정에 와 있는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지 않았다면, 부끄러운 척이라도 했다면 본란(本欄)에서까지 딸 문제를 거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야박하게 들릴지 몰라도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청와대 관저는 친정이 아니다. 그것이 이 나라 최고 권력자와 그 가족이 짊어져야 할 업(業)이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아들들이 구속당하는 비운(悲運)을 맛봤다. 그래도 검찰에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그것은 민주화 거인들이 보여준 최소한의 선공후사(先公後私)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선택도 가족의 금품수수에 대한 공적 수치심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부터 공사 구분이 흔들려 그의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종종 ‘패밀리 비즈니스’로 흘렀다. 대통령의 가족이었으나 자신은 가족이 없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가족인 줄 알았던 최순실(본명 최서원) 앞에서 공사 구분이 무너졌다. 반대 진영에 담을 높이 쌓은 문 대통령. 자기 진영엔 늘 따뜻하고, 무엇보다 자신과 주변에 대해 너무 관대하다. 그러니 공사 구분도 무너지기 일쑤. ‘대통령의 친구’ 송철호를 울산시장으로 만들기 위한 청와대의 선거개입 의혹 사건은 대통령과 울산시장의 임기가 다 끝나가는 이제야 재판이 시작됐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한가. ‘세계적인 예술가’라는 대통령 아들이 국내에서만, 그것도 아버지의 재임 시에 억대가 넘는 지원금을 받았다. 강원 양구군,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지원 단체도 다양하다. 이런 지적이 나올 때마다 발끈하는 아들은 그렇다 치고, 아버지인 대통령은 부끄러워해야 하는 게 상식 아닌가. 자식은 맘대로 안 된다지만, 적어도 자신이 최고 권력자로 재임하는 동안이라도 지원금을 안 받도록 하는 것이 대통령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염치이자 경우다. 아무리 예술가라도 현직 대통령 아들의 세금 지원은 퇴임 후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국적 대통령제 풍토에서 가족 문제는 참으로 민감하고 미묘하다. 그래도 분명한 건 대통령 가족이라고 끝까지 봐주고 넘어가는 일은 없다는 거다. 현재로선 대통령 자리에 가까이 가 있는 여야의 이재명 윤석열 후보의 가족 문제 또한 남다르다. 단, 미래에 터질 문제의 인화성(引火性)으로 볼 때 윤석열의 가족 문제가 더 악성이다. 유력 대선 후보의 장모가 선거 전에 구속된 건 한국 정치사에 희한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그래도 윤 후보의 지지율이 빠지지 않은 건 그만큼 보수 유권자의 정권교체 열망이 컸던 터. 그런 보수 일각에서도 ‘대통령 윤석열은 봐도, 영부인 김건희는 못 본다’는 소리가 들린다. 가족 문제에 대한 윤 후보의 대응과 부인의 처신이 어떠해야 할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역대 대통령의 가족사가 보여주듯, 대통령 자리와 가족의 행복은 양립(兩立)하기 어렵다. 그것이 이 나라에서 대통령이 되는 자와 그 가족의 업(業)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2021-11-15 03:00
[박제균 칼럼]망국병 ‘대깨×’궁금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지지자들은 과연 이 후보의 욕설 녹취를 들어봤을까? 들었다면 그 이후에도 이 후보를 지지하는 마음에 변화가 없었을까. 조사하기도 민망한 일이지만, 이 후보 지지자들 가운데는 의외로 욕설 녹취를 들어본 사람이 적지 않은 듯하다. 도저히 일국(一國)의 대통령 후보 입에서 나올 거라곤 상상할 수 없는 말을 듣고도 지지를 거두지 않은 사람들의 심리는 뭘까? 이재명 측이 주장하는 ‘욕설 이유’를 100% 수긍했기 때문일까. 그보다는 ‘내가 지지하는데, 욕설 따위가 대수냐’는 일종의 저항 심리가 작동한 건 아닐까. 지지자들 중에는 일부러 욕설 녹취를 찾아서 듣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어떤 도전(?)에도 흔들리지 않는 ‘명파’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로 봐야 하나. 이런 열혈 지지자들에게 이재명의 종북 조폭 연루, ‘공짜 불륜’ 의혹 등은 ‘신념을 흥미롭게 하는 양념’일 뿐이다. 그나마 이 후보 지지 심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대장동 의혹이다. 지지자 입장에서 다른 의혹들은 나와 큰 관계없는 ‘먼 나라 얘기’처럼 들렸지만, 대장동 게이트는 우리네 삶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재명은 아직도 30% 안팎의 단단한 지지율을 지탱하고 있다. 대장동 게이트가 이재명과 관련 없다고 믿고 싶어 하는 지지자들에게 그의 다른 의혹들처럼 ‘먼 나라 얘기’로 들리게 하는 신공(神功)을 이 후보가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장동 게이트에는 벌써 3개의 녹취록이 등장했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8년에 걸쳐서 녹음된 것들이다. 그들의 대화가 얼마나 어둡고 추악했으면 이렇게 ‘보험용’ 녹취록까지 생산됐을까. 그렇다면 ‘대장동 키맨’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의 녹취록도 없으란 법이 없다. 만일 유동규의 녹취록이 있다면 그건 ‘윗분들’과 관련된 것일 공산이 크다. 여태 공개된 녹취록에서 드러난 충격적인 내용만으로도 대장동 사업의 최고 책임자였던 이재명은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특유의 음모론과 적반하장, 야당과 언론 탓, 강변과 궤변으로 비판자들을 도리어 조소(嘲笑)하고 있다. 이쯤 되면 아무리 지지자라도 흔들릴 법하건만, 오히려 이재명의 화법에 동화(同化)되고 있으니 걱정스럽다. 그런데 이런 무비판적인 지지의 모습,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5년 가까이 질리도록 봐온 소위 ‘대깨문’이 꼭 이랬다.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지도자, 내가 지지하니까 무조건 옳다는 지지자, ‘머리가 깨져도 끝까지 간다’는 극렬함, 지도자에 대한 비판이 거세질수록 더 똘똘 뭉치는 저항 심리까지…. 아직 댓글 공격까지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 또한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 대깨문에 이어 ‘대깨명’까지 출현한다면 대한민국의 불행이다. 돌아보면 민주당 쪽에서 정치적 지지 차원을 넘는 팬덤을 가졌던 정치인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정도다. 김대중은 본인이 받은 박해와 지역차별 정서가 어우러져 호남 출신을 중심으로 살아생전에 ‘선생님’ 팬덤을 형성했다. 하지만 그 자신이 화해와 용서, 국민화합 행보를 솔선해 비교적 건강한 팬덤을 남기고 떠났다. 노무현의 노사모도 고인의 대통령 재임 시에는 비판적 지지를 유지했던 ‘깨시민’이 주류였다. 노사모가 열혈로 바뀐 건 그의 비극적 선택 뒤였다. 그래도 노사모는 조직적으로 반대자를 공격하는, 자유민주주의에 도전하는 짓은 벌이지 않았다. 그런데 대깨문은 반대자를 적으로 돌리는 지도자에게 영향 받아 상대를 배척하고 공격했다. 대깨문에 이어 대깨명이 나타난다면 더 두렵다. 이 후보는 반대자를 배척하는 문재인 대통령보다 한술 더 떠 반대자를 겁박하고 심지어 조롱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측 윤석열 홍준표 예비후보에 대한 지지는 어떤가. 아직은 두 사람이 좋아서라기보다 문재인-이재명으로 이어지는 정권 승계에 대한 거부감이 더 큰 소극적 팬덤이다. 그만큼 지지 기반이 물렁하다. 하지만 노사모가 대깨문을 낳고 대깨문이 대깨명을 낳을 조짐을 보이듯, 국민의힘 후보가 확정되면 ‘대깨윤’ ‘대깨홍’도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바닥에 상대에 대한 증오가 깔린 팬덤은 또 다른 증오의 팬덤을 부르게 마련이다. 그런 증오와 분열의 정치가 갈 길은 오직 하나, 망국(亡國)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2021-11-01 03:00
[박제균 칼럼]한 번도 경험 못한 대선, 두 번 경험해선 안 될 나라누군가 내게 물었다. “이번 대통령 선거의 시대정신은 뭡니까?” 시대정신? 아, 그런 게 있었지….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전이 치러지고 있지만, 시대정신은커녕 시대착오적 막장 드라마만 펼쳐지고 있다. ‘한 번도 경험 못한 나라’의 한 번도 경험 못한 대선이다. 그래도 역대 대선엔 시대정신이란 게 있었다. 노태우 당선 때는 오랜 군부독재의 사슬을 끊고 직선 대통령을 뽑는다는 민주화의 열망, 김영삼 당선 때는 비로소 문민통치의 시대가 열린다는 희망, 김대중 때는 지역감정의 뿌리였던 호남의 응어리를 푼다는 해원(解寃), 노무현 때는 정치 엘리트의 전유물이었던 권력을 시민사회로 하방(下放)한다는 기대, 이명박 때는 이념 과잉을 벗어나 실용(實用)으로 나가자는 컨센서스가 있었다. 비록 둘 다 참담한 실패로 돌아갔지만, 박근혜 당선 때는 무너져 내리는 우리 사회의 원칙을 다시 세워줄 거란 바람이, 문재인 때는 궁중통치로 망가진 정치를 복원하고 나라를 정상화해 달라는 비원(悲願)이 시대정신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뭔가. ‘공정과 상식의 복원’이나 ‘비정상의 정상화’ 같은 아름다운 말들은 ‘단군 이래 최대 공익 환수’에서 ‘단군 이래 최대 뇌물 사건’으로 변질된 대장동의 문(게이트)에서 불어오는 광풍에 흩어져 버렸다. 야당은 야당대로 유력 주자의 ‘고발 사주’ 의혹에 난데없는 ‘王’자 손바닥, 미신 막말의 이전투구(泥田鬪狗)가 정책·비전 경쟁을 말아먹고 있다. 도무지 어디 눈 둘 곳 없는 대선이다. 압권은 역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까도 까도 의혹덩어리 ‘양파남(男)’이다. ‘친일세력과 미(美)점령군의 지배’ 운운으로 대한민국 부정(否定)은 기본이요, 종북 경기동부연합 연루설, 녹음으로 확인된 패륜 발언에 ‘공짜 불륜’과 조폭 연루 의혹까지…. 이번에는 ‘대장동 그분’의 태풍까지 몰아닥쳤다. 이 후보가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뒤 다소 거칠게 살아온 점이 있다 해도 이건 너무 과하다. 과거야 그렇다 쳐도 더 심각한 건 이런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야당·기득권 세력의 음모’라는 편 가르기, ‘국민의힘 게이트’라는 적반하장, ‘가짜뉴스’(뉴스는 가짜가 아니므로 ‘가짜소식’이 맞는 말)라는 언론 탓, 패륜을 묻는데 ‘친인척 비리는 없지 않느냐’는 둘러치기, ‘한전 직원 뇌물에 대통령이 사퇴하느냐’는 궤변, 마음에 안 든다고 중간에 인터뷰를 끊어버리는 발끈함…. 그의 과거보다 이런 대응 방식이 이 후보가 권력을 잡았을 때를 걱정하게 만든다. 이재명 후보가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잘못을 진솔하게 반성하는 걸 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느낌 아닌가. 바로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추미애 윤미향으로 상징되는 이 정권 사람들의 대응 방식이 꼭 이랬다. 사실 문 정권이 상식과 언어, 정의와 역사 관념 등을 파괴하면서 국민의 도덕의식을 무디게 하지 않았다면 이재명 대선 후보의 탄생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다소 기이하지만, 그런 점에서 이재명은 이 정권에 빚지고 있다. 문 대통령 등 집권세력도 지상과제인 ‘퇴임 후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이 후보의 도덕성 따위에는 눈을 감아버렸다. 일종의 공생관계다. 이런 공생의 사슬을 끊으려면 야당이라도 정신 차려야 하는데,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다. 경선이 진행될수록 윤석열은 거듭되는 말실수와 검사스러운 태도, 고발 사주와 가족 의혹 등이 겹쳐지면서 특유의 ‘권력과 맞짱’ 이미지가 변색하고 있다. 여기에 야당인지 여당인지 모를 홍준표의 윤석열 때리기와 막말 행진, 갑자기 독해져서 뜬금없는 유승민의 언행까지 겹쳐 보수 야당의 기득권 본색(本色)에 저질 페인트까지 덧칠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이번 대선도 두 편으로 갈라져 40 대 40의 진영 대결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나머지 20의 중도와 2030세대를 잡는 쪽이 승자일 텐데, 국민의힘 주자들은 이들을 위해 무슨 정책과 비전을 보여준 게 있나. 야당이 이런 짝이라면 문 정권 시즌2인 ‘두 번 경험해선 안 될 나라’ 오지 말란 법이 없다. 그래도 선거까지는 140여 일. 내년 3월 10일 아침, 이번 대선에도 시대정신이 있었다는 뒤늦은 자각(自覺)이 오기를 소망한다. 그것은 ‘대한민국 정상화’였다고.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2021-10-18 03:00
[박제균 칼럼]“화천대유 못 해서 아빠가 미안해”“당신은 뭐 했어?” 참으로 민망하게도 ‘화천대유 게이트’에 1000배 이상 대박을 친 기자들이 등장하자 적잖은 친구와 지인들이 이렇게 농(弄)을 건다. “그러게…” 맞장구를 치면서도 그런 기자로 살지는 않았다고 자위(自慰)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헛헛한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로또 벼락을 맞은 것도, 신기술 벤처로 잭팟을 터뜨린 것도 아닌데 1000배, 아니 배당수익에 분양수익을 합치면 2000배가량을 벌어들인 희대의 사건. 지금이 무슨 개발연대도 아니고 그런 수익률이 가능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그 가공할 수익률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의외로 간단하다. 공권력이다. 국민들에게 난데없이 주역의 괘까지 알려준 화천대유(火天大有)-천화동인(天火同人)이 벌인 사업이 소위 시행. 이 사업의 3박자가 ①토지 매입 ②인허가 ③분양이다. 이 3박자가 모두 맞아떨어지면 시행업자는 큰돈을 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①의 과정이 길어져서 매입가가 오르거나 행여 ‘알박기’ 하는 사람들이라도 나오면 낭패다. ②에서도 공무원들이 절차를 내세워 ‘미뤄 조지기’라도 하면 사업기간이 길어져 비용은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① ②를 겨우 마쳐도 ③이 안 되면 사업은 실패한다. 그래서 시행업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대장동 개발사업에서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시장으로 있던 성남시의 공권력이 개입해 ① ②의 리스크를 모두 없애줬다. 토지는 수용(收用)하면 되니까 땅주인들과 줄다리기를 벌일 필요도 없고, 이 시장의 역점 사업이니 인허가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③도 대장동이 그 좋다는 판교 바로 남쪽이어서 아파트 이름이 ‘판교∼’로 시작되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민간 시행사업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면 이 경우는 리스크를 이재명의 성남시가 없애줬다. 결국 ‘하이 리턴’만 남게 된 것. 그렇다고 1000배 이상의 기상천외한 수익을 얻는 건 불가능하다. 공영개발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지 않은 데다 무엇보다 지분 7%에 불과한 화천대유-천화동인에 배당수익을 몰아주고 별도의 분양수익까지 올릴 수 있도록 한 ‘설계’가 신의 한 수였다. 이 지사는 당초 ‘설계는 내가 한 것’이라고 했다가 대장동 의혹으로 코너에 몰리자 지난 주말 ‘마귀와의 거래’라는 극단적 비유까지 들었다. 아무리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 해도 관(官)과 합작하는 민간업자 혹은 민간업자의 돈을 마귀로 비유한 건 지나치다. 말꼬리를 잡고 싶지는 않지만, ‘마귀’라는 섬뜩한 용어까지 들먹인 것이 집권당 유력 대선후보의 격(格)에 맞는지도 돌아봐야 할 것이다. 누가 뭐래도 이 지사는 대장동 사업의 최종 결정권자였다. 진상이야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겠지만, 그에 따라 합당한 법적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고 언명(言明)하는 것이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을 하겠다는 분의 언어여야 하지 않을까. 가정해 본다. 만약 대장동 사업이 화천대유-천화동인에 수천 배가 아닌 수십 배 정도의 이익만 안겨줬어도 이 사달이 났을까. 수천 배의 돈 잔치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시기와 질투 등 날것 그대로의 감정과 뒤엉키면서 추악한 얼굴을 드러내게 돼 있다. 그 흥청망청 돈 잔치에 대법관과 검사장, 특검과 국회의원, 기자와 업자, 피고와 변호인, 아들과 딸들까지 엮여 아수라의 복마전(伏魔殿)을 펼친 것이다. 한마디로 나라가 창피하다. 말로는 ‘사람이 먼저’라는 문재인 정권 들어 유독 국민을 ‘가붕개’(가재 붕어 개구리) 취급하며 필부필부(匹夫匹婦)와 그 자식들의 박탈감에 깊은 상처를 주는 일이 빈발하더니, 정권이 끝날 무렵엔 이 정권을 잇겠다는 유력 대선후보가 자랑하던 사업에 소위 잘난 분들과 그 자식들까지 빨대를 꽂아 꿀을 빤 사실이 드러나 상처에 굵은 소금을 뿌린다. 오늘도 억 소리 나게 오른 전셋값을 감당할 수 없어 결혼도 포기한 채 눈이 빠지게 구직 사이트를 들여다보며 공연히 부모 눈치를 보는 이 땅의 젊은이들. 되레 그런 자식들의 눈치를 살피며 안쓰러움과 함께 괜한 자격지심에 움츠러드는 이 나라의 부모들…. 하여, 절로 이런 탄식이 나오는 것이다. “화천대유 못 해서 아빠가 미안해.”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2021-10-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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