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박제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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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제균 고문입니다.

phark@donga.com

취재분야

2024-03-17~202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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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3%
  • [박제균 칼럼]與, 대통령에 업힌 ‘정치 양로원’인가

    “내가 득점하는 것보다 팀이 승리하기를 바란다.” 스포츠 경기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스타 플레이어들의 멘트다. 하지만 이는 스포츠 세계의 미담일 뿐. 어느 때부턴가 한국 정치에선 이런 정치인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팀의 승리(정권의 성공)보다 자신의 득점(당선)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곳이 작금의 여의도다. ‘나보다는 당(黨), 당보다는 나라’를 앞세웠던 선배 정치인들의 공(公)의식은 실종된 지 오래다. 그 대신 정치 영역이 자신들의 전유물인 양 착각하는 ‘정치업자’들이 판친다. 여의도를 ‘정치 양로원’ 삼는 노추(老醜)들이 늘어만 간다. 심지어 국회의원이 기초단체장으로, 대선후보가 광역단체장으로 격을 낮추며 한사코 방 빼기를 거부한다. 이러니 국회가 신인들의 충원을 막고, 권세와 생계를 동시에 챙겨주는 최고의 노인 일자리로 전락해가는 느낌이다. 정치를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정치에 발 들이고 제 발로 나온 사람은 거의 없다. 시대의 화두인 ‘세대 불평등 해소’에 가장 노력해야 할 정치야말로 그 불평등의 본산(本山)이다. 정치의 저질 평준화에 여와 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비정상으로 폭주했던 문재인 정권을 거치며 바닥으로 파고들던 정치의 수준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표방한 윤석열 정권에서도 올라올 줄을 모른다. 여기엔 아직도 정권이 교체됐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거야(巨野)의 책임이 더 무거울 것이다. 하지만 제힘으로 이루지도 못한 정권교체를 제 공(功)으로 착각하며 이제 겨우 살 만하니까 ‘기득권 본색(本色)’부터 드러내는 여당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벌써부터 염불보다 잿밥에 혈안이 된 국민의힘 3월 전당대회. 당 대표 경선 룰을 놓고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고 했으나 별 관심을 끌지 못한다. 가장 큰 이유는 거론되는 후보들만 놓고 보면 모두 ‘그 나물에 그 밥’이기 때문이다. 정권교체 후 첫 집권여당 대표를 맡을 만한 무게감과 개혁 의지를 지닌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친윤(親尹) 주자든, 비윤(非尹) 주자든 ‘윤 정부의 성공’이라는 염불을 외지만, ‘공천권 혹은 공천’이라는 잿밥에만 쏠려 있다. 비윤 주자 중 윤 대통령 쪽에서 가장 먼 유승민 전 의원을 보자. 유승민은 2015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들이받으며 정치적으로 컸다. 돌아보면 여당 원내대표라는 분이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를 노린 건 ‘자기 정치’요, 물러나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운운한 건 치기(稚氣)에 가까웠다. 그런 그를 키운 건 ‘배신의 정치’로 찍어낸 박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이후 유승민은 탈당 창당 합당 등을 거듭하며 지난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한 번은 본선에서, 한 번은 경선에서 탈락했다. 올해는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에까지 도전해 경선 탈락했다. 그쯤 됐으면 자신의 정치 인생을 돌아볼 때도 된 거 같은데, 또다시 뛰어들었다. 다른 주자들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다. ‘지족원운지(知足願云止·만족함을 알고 멈추기를 바람)’하고 후배들에게 길을 터줬으면 하는 분들이거나 ‘친윤’이라는 라벨만 떼면 당 대표가 아니라 원내대표하기에도 버거운 정치력을 지닌 분들이 거의 다다. 윤석열 정부의 성패는 차기 총선 결과에 달려 있고, 여당의 총선 성패는 공천에 좌우된다. 18대 총선의 ‘친이(親李) 공천’은 공천권을 행사한 사람들이 자기 선거에서 추풍낙엽처럼 떨어질 정도로 역풍을 불렀고, 이후 여권의 극심한 분열로 이어졌다. 20대 총선의 ‘친박 공천’은 총선 참패의 역풍을 불러 결국 박근혜 탄핵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윤 대통령으로선 오히려 ‘친윤 공천’이란 말을 경계해야 한다. 대통령에 업혀 당선되려는 사람들만 좋은 일 시키고, 정작 자신은 실패하지 않으려면. 이런 점에서 전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친윤 공천의 자락을 까는 듯한 ‘당원투표 100%’ 룰 변경이 과연 대통령에게 득이 될지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내년 상반기엔 최악의 경제 한파가 몰려온다. 국민의힘이 무슨 대단한 일을 했다고 논공행상이라도 하듯, ‘그들만의 잿밥’을 놓고 벌이는 잔치가 국민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윤 대통령과 여당 사람들은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 집권세력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 202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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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대통령 궤도에 오른 尹, 직언·비판에 귀 열어라

    윤석열 대통령 취임 7개월. 비로소 대통령의 궤도에 올라섰다는 느낌이다. 취임 반년은 참으로 불안했다. 이명박 대통령 때 광우병 선동의 성공 경험에 취해 어떻게든 취임 6개월 안에 대통령을 무력화시키려 했던 좌파세력의 조직적인 대선 불복(不服). 여기에 정치경험 부족한 대통령과 정무감각 부족한 집권세력의 실책과 실수까지 겹쳐 대한민국이 어디로 갈지 걱정하는 국민이 많았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직업상 권력을 감시하는 기자들도 나와 비슷한 딜레마에 시달렸을 것이다. ①아무리 윤 대통령이 정치 초보라지만 대통령으로서 실망스럽다. ②그래도 대선에 불복하며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건 너무한 것 아닌가. ①에 방점을 둬 글을 쓰면 한쪽이 거세게 반발하고 ②에 역점을 둬 칼럼을 쓰면 다른 쪽이 달려들어 악플을 달았다. 그만큼 우리 국민이 심각하게 둘로 쪼개진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지독한 편 가르기 통치가 남긴 슬픈 유산이다. 그 불안하고 불편한 시간이 흐르고, 20일 뒤면 윤 대통령도 벌써 2년 차를 맞는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아직 국정을 이끌기에 모자란다. 그럼에도 문 정권 때부터 사실상 치외법권이었던 민노총에 법치로 대응하면서 윤석열의 ‘대통령다움’을 회복하고 있다. “제 임기 중에 노사 법치주의를 확고하게 세울 것이며 불법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란 대통령다운 언어를 들어본 게 얼마 만인가. 윤 대통령이 취임 반년이 지나서 민노총에 정면 대응한 건 여러모로 평가할 만하다. 그 지난(至難)한 과정을 거쳐 정권교체에 성공하고도 정권이 바뀐 걸 실감하지 못한다는 사람들에게 선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거야(巨野)의 ‘입법 가두리’ 속에서 밀고 나갈 윤석열표 정책이 별로 없던 대통령으로선 잘한 선택이다. 더구나 ‘대통령이 직접 교섭에 나오라’고 할 정도로 오만한 거대 노조와 ‘맞짱’을 뜨는 건 윤석열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린다. 민노총을 잡아 노동개혁을 이룬다면 윤 대통령의 굵직한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때마침 사사건건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 거야도 ‘이재명 사법 리스크’에 허덕이는 데다 힘의 완급 조절 없이 폭주하면서 이제는 동력이 전 같지 않다. 뜬금없이 윤 정권을 ‘군사독재’니 ‘계엄령’ 운운하며 국민감정과 동떨어진 얘기를 하는 의원들은 차라리 대통령의 우군이다. 이런 정치적 환경에서 맞는 윤석열의 집권 2년 차. 정권이 보다 안정되려면 대통령부터 달라져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비판에 익숙지 않은 검사 체질부터 벗어던져야 한다. 검찰에서야 검사 개인이 비판받는 일이 드물지만, 여기는 정치의 세계다. 무엇보다 대통령이란 최고 권력은 원래 비판받는 자리다. 비판은 영광의 또 다른 얼굴이기에. 악의적인 비난과 사심 없는 비판은 충분히 구분할 수 있을 터. 후자에는 귀를 열어야 한다. 대표적인 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경우다. 그를 싸고도는 것으로 그만큼 비판을 받았으면 야당이 해임건의안을 강행 처리하기 전에 정무적 책임을 지우고 읍참마속(泣斬馬謖) 했어야 했다. 내가 아는 상당히 보수적인 지인들도 대통령이 왜 그토록 ‘이상민 보호’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도대체 행안부 장관이 이태원 참사와 무슨 인과관계가 있어서 자르냐’고 생각한다면 아직 정치를 잘 모르는 것이다. 대통령을 자를 수 없으니 장관을 자르는 거다. 대통령실에선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는 얘기도 나온다고 한다. 아니, 장관 하나 자르는 게 왜 대통령이 밀리는 건가. 그건 밀리는 게 아니라 민의를 수용해 민심의 바다로 전진하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작은 것에 밀리지 않으려다 대세(大勢)에서 밀린 경우를 부지기수로 봐오지 않았던가. 이제는 제 식구 챙기기보다 자기 것을 내놓는 대통령으로 변모했으면 한다. 그것이 별다른 자기희생 없이 권력의 정점에 오른 윤석열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국민에 응답하는 길이다. 새로 지은 대통령 관저에 야당은 부르지도 않은 채 국민의힘 지도부보다 먼저 친윤 4인방과 부부 동반 만찬을 가진 게 국민의 눈에 어떻게 보였겠나.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직언에 버럭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특히 김건희 여사와 관련됐을 때 그런 반응을 보인 경우가 더러 있었다는 것이다. 뭐가 됐든 최고 권력자가 직언에 거부 반응을 보인다면 집권세력 내에 소통을 막고 아부꾼들이 득세한다. 결국엔 ‘우리가 옳다’는 집단사고의 함정에 갇히게 된다. 직언과 비판에 귀를 막아 실패한 전임자들의 전철. 윤 대통령은 밟지 마시라.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 20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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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대통령 선거 불복이 국민 스포츠인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누구인가. 윤석열인가. 이 당연한 질문에 아직도 내심 대답을 거부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취임 반년이 지났음에도. 윤석열 대통령. 나도 실망스럽게 느끼는 대목이 많다. 무엇보다 만사(萬事)의 기본인 인사(人事)가 그렇다. 대통령의 인사는 임명 못지않게 경질도 중요하다. 그런데 여전히 검찰 수장이나 조직 보스처럼 제 식구를 감싼다. 또 대통령은 참는 자리다. 아직도 성질을 못 죽이고 옹졸한 결정을 할 때도 있다. 대통령 직(職)은 남들은 수십 년 인고(忍苦)의 세월을 거쳐 오르는 곳이다. 지난 대선 때 중도·보수 유권자 중에는 윤석열을 지지해서라기보다, 이재명 대통령 탄생을 막기 위해 별다른 정치 경험도 자기희생도 없던 그를 찍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 겸허하고 또 겸허해야 한다. 자신과 김건희 여사 측을 비롯한 주변에 더욱 엄격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그러한가. 아직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과 대통령으로 인정 못 한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온갖 정쟁과 소란의 밑바닥엔 바로 이 네 글자가 깔려 있다. ‘대선 불복(不服).’ 그리고 기어이 이를 현실화하려는 총체적 좌파세력의 조직적인 플레이가 이 나라를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다. 정상적인 나라에서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을 중간에 끌어내리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나라 좌파세력엔 너무나 달콤한 두 번의 성공 경험이 있다. 첫 번째가 이명박 대통령 때의 광우병 시위. 근거라고는 ‘1’도 없는 악의적 조작 선동이었지만 집권 반년도 안 돼 531만 표 차로 승리한 대통령의 힘을 빼버리는 데 성공하지 않았나. 두 번째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진짜로 대통령을 끌어내린 것이다. 다른 선진국에선 있을 수 없는 두 번의 경험이 좌파세력엔 유혹의 속삭임이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이 정도라면 계속 흔들어 식물 대통령을 만들고, 잘하면 박근혜처럼 진짜로 끌어내릴 수 있다고. 게다가 국회는 더불어민주당이 169석인 거야(巨野) 체제 아닌가. 한국 좌파세력의 놀라운 힘은 목적에 따라 역할을 분담해 조직적인 플레이를 하는 데 있다. 월드컵 축구도 울고 갈 조직력이다. 거대 야당은 검수완박법을 비롯한 대선 불복 법안을 관철시키고, 윤 정부의 국정과제·공약 예산과 정책은 사사건건 가로막는다. 광우병 선동에 성공했던 MBC 같은 공영방송은 또다시 선동의 전위대로 나서고, 야당은 그런 방송을 보호한다며 ‘방송 알박기’ 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헌법기관이라는 국회의원이 누가 봐도 거짓인 괴담을 퍼뜨려도 문재인 대통령 당시 임명된 기관장이 포진한 국민권익위원회가 ‘공익신고자’ 운운하며 지원사격을 한다. 민노총은 업종이 다른 공공운수·화물연대·학교비정규직·서울교통공사·전국철도 노조의 파업 날짜를 한데 모아 대규모 정치 파업을 기획해 사회를 흔든다. 좌파 시민·사회단체는 주말마다 이태원 참사를 엮어 “퇴진이 추모다”를 외치고 있다.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사회적 참사에 대해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참사가 날 때마다 대통령을 퇴진시키자고 하는 건 정상이 아니다. 대통령 퇴진 운동이 국민 스포츠가 돼 가는 건 아닌가. 오죽하면 북한 김여정이 “(한국) 국민들은 윤석열 저 천치 바보들이 들어앉아 자꾸만 위태로운 상황을 만들어 가는 정권을 왜 그대로 보고만 있는지 모를 일”이라며 정권 전복을 ‘사주’하는 지경까지 됐을까. 윤 대통령으로선 국정, 특히 인사를 잘해 나가고 본인은 물론 주변 관리에 철저해야 한다. 그래야 뭔가 방아쇠를 당길 건수만을 찾는 세력의 조직적인 팀플레이에 놀아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잘하든 못하든 김의겸 장경태 의원처럼 끊임없이 한 방을 노리는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다. 그들에게 그 한 방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비판은 사실상 무제한적으로 허용돼야 한다. 그것이 살아있는 권력의 정점인 한국 대통령의 숙명이다. 그러나 윤석열이 싫다고 그에게 헌법이 부여한 권력 자체를 빼앗으려 해선 안 된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탄핵의 불행한 역사는 한 번으로 족했으면 한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 202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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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참사를 수단으로 삼지 않는 예의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거리가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파리 특파원 시절, 두 사람이 겨우 지나칠 수 있는 좁은 골목이나 복도에서 누군가와 마주쳤을 때. 한국 같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그들은 달랐다. 옆으로 비켜서서 먼저 지나가라고 했다. 그런 배려가 처음에는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졌다. 어깨 스치는 것쯤은 다반사인 밀집사회에서 살았던 터에. 그 배려가 고대부터 전란이 잦았던 서구 사회에서 자기 보호를 위한 거리 두기에서 유래했다는 해석도 있다. 어쨌거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훨씬 편안하다는 걸 몸으로 알게 됐고, 나 또한 그들을 위해 길을 비켜줬다. 물론 이런 서구식 매너는 밀집과 속도의 한국으로 돌아온 뒤 금방 잊었지만. 아직 꽃피우지도 못한 젊은이들의 이른 희생과 아닌 밤중에 참척의 슬픔을 당한 분들께 드릴 말씀이 없다. 참사 수습과 위로, 규명과 문책의 시간을 갖되 어쩌면 그런 참사를 막을 수도 있었을 그 무엇에 대해 생각한다. 그 무엇이 바로 사회의 기본이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때려 넣어도 괜찮은 우리 사회의 문화. 이젠 바꿀 때 됐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기 때문이다. 버스나 택시, 엘리베이터 같은 밀폐공간에서 알고 싶지 않은 자기 집안 대소사까지 들려주는 통화 매너부터 듣고 싶지 않은 이념 방송을 크게 틀어놓는 공중 매너, 만나자마자 상대의 학력과 재력은 물론이고 자식들 근황까지 파악해야 직성이 풀리는 대화 매너까지…. 사람과 사람의 거리를 존중하지 않는, 무례가 범람하는 사회다. 시위 한답시고 직장도 아니고 집 앞까지 몰려가 이웃 주민까지 괴롭히고, 공인(公人)도 아닌 사인(私人)의 SNS를 터는 것도 모자라 가족까지 털어 인격살인을 자행하며, 떼로 달려들어 댓글 폭탄을 퍼붓는 작태는 사람이 사람에게 지켜야 할 거리를 넘어서는 짓이다. 무엇보다 사회적 참사와 개인의 불행을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삼는 건 인간에 대한 예의의 문제다. 공동으로 장례를 치르든, 추모공간을 만들든 유족들이 자발적으로 하겠다면 도와줘야 할 것이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먼저 나서 참사 희생자의 얼굴과 이름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지나치지 않나. 주말마다 “퇴진이 추모다”를 외치는 사람들. “대장동 몸통은 윤석열”이라는 말만큼이나 밑도 끝도 없는 이 구호에는 무엇이 목적이고, 무엇이 수단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추모는 수단이고, 퇴진이 목적이다. 정작 추모는 없고, 퇴진만 있는 냉혹한 프로파간다가 아닐 수 없다.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블라디미르 레닌. 그는 22세 때 기근으로 죽어가는 농민을 도우려고 모금을 하는 친구를 설득해 그만두게 했다. ‘굶주림이 진보적인 역할을 수행해 농민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인 현실에 대해 숙고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역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폴 존슨은 저서 ‘모던 타임스’에서 “레닌 자신은 실존하는 인간에게 사랑을 나타낸 적이 거의 없었고 관심조차 없었다”고 평가했다. 레닌에게 기근으로 죽어가는 농민에 대한 연민은 없었다. 그들의 굶주림은 혁명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런 레닌의 악령이 아직도 한반도의 하늘을 배회하고 있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무슨 수단을 쓰든 합리화하는 세력들. 그 수단이 설혹 남의 불행이나 국가적 참사라 할지라도. 더 비관적인 건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하는 데 이골이 난 문재인 정권에 점염(點染)된 많은 국민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풍토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 보자. 2003년 유럽에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대폭염이 닥쳤다. 프랑스에서만 1만여 명의 노인이 죽었다. 피해자는 거의 다 도시가 텅 비는 바캉스 시즌에 홀로 남겨진 노인들이었다. 한국 같으면 정권이 무너질 수도 있었겠으나, 프랑스 정부는 1년이 지나서야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거기에는 △사고 원인 규명 △문책의 범위와 처리 결과 △1년간 대폭 늘린 요양시설 개수 등 노인보호 시스템 개선 결과 △향후 대책 등이 망라돼 있었다. 참사가 일어나도 말만 앞세우며 호들갑 떨지 않고, 더욱이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으며, 시간이 지나도 가신 분과 남은 분을 기억하고 위로하며, 다시는 이 땅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추모의 길이 아닐까.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 202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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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文·李 이익공동체는 진화한다

    2019년 쌍방울그룹이 중국으로 외화를 밀반출할 때 직원 수십 명이 동원됐다. 이들은 1인당 수천만∼수억 원에 이르는 달러와 위안화를 책자나 화장품 같은 여행용품에 숨겨 나갔다. 이 직원들은 과연 현행법 위반 사실을 모르고 외화를 밀반출했을까. 그렇다고 이들에게 ‘아무리 회사가 요구해도 불법이라면 거부했어야 옳다’고 다그치고 싶지는 않다. 불법·탈법을 조장할 생각은 없지만 선과 악, 더 나아가 적법과 위법의 경계가 다소 흐릿해지는 지점이 생계와 직결돼 있을 때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이 왜 나왔겠나. 그만큼 생계는 위대하고, 또 비루하다. 일찍이 이 땅의 좌파 정치세력은 인간에게 생계가 갖는 이런 이중성과 생계의 정치적 잠재력에 주목했다. 공무원과 세금 알바를 늘리고, 재난지원금이든 기본소득 명목이든 더 많은 국민에게 나랏돈을 퍼줘 생계를 국가에 의존하는 국민이 늘어날수록 좌파 진영 표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여기에 문재인 정권은 한발 더 나갔다. 운동권 좌파 정치세력과 이에 빌붙은 지식인, 민노총 전교조 공무원노조 등 노동단체, 산재한 좌파 시민·사회·환경단체 등이 정치·경제·사회적 이익 추구를 위해 뭉친 거대한 이익공동체를 구축하려 했다. 문 정권의 기도(企圖)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다만 생계뿐 아니라 내 집도 국가에 의존케 하려는, 인간 본성에 반하는 정책에 걸려 넘어졌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아직도 건재한 거대 이익공동체의 주군(主君)은 여전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다. 문 전 대통령은 사실상 좌파 이익공동체를 구축한 것도 모자라 임기가 6개월도 안 남은 기간에 공공기관 52곳의 기관장과 감사·이사를 임명했다. 상도의(商道義)를 벗어난 ‘알박기’를 하면서까지 좌파공동체를 온존하려 했다. 그러니 아직도 자기 의자를 바닥에다 못으로 박은 듯, 꿈쩍 않는 전 정권 임명 인사들은 겉으로는 진영의 이익을 지키는 척하며 속으로는 꿀을 빨고 있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이 감사원의 서면 조사 요구에 ‘대단히 무례’ 운운했을 때 도대체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설마 ‘태종’ ‘세종’을 입에 올린 얼빠진 아첨을 믿은 건 아닐 테고. 혹시 이 땅에 전에 없던 좌파 생태계를 구축한 첫 대통령,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가능한 물밑의 ‘문재인 나라’를 건설한 창업자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그래도 문 정권 이전까지 한국의 좌파 비즈니스는 대체로 ‘생계형’에 가까웠다. ‘위안부 할머니 장사’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아직까지 금배지를 달고 있는 윤미향류의 시민단체 비즈니스가 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5년간 3300여 개 시민단체에 7100여억 원을 지원한 것도 이런 생계형 좌파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일조했으리라. 그런데 문 정권 들어 권력의 노골적인 지원을 받으며 대박을 치는 좌파 비즈니스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해상 풍력 사업권을 중국에 팔아넘겨 수천 배의 이익을 챙긴 업자들도 나왔다. 이런 대박이 가능했던 건 업자가 인허가에 관여하는, 사실상 업자와 인허가권자가 한 몸이 되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일은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에서도 벌어졌다. 빙산의 일각이 드러나기 시작한 태양광 사업을 비롯해 정권의 지원을 받은 일부 벤처사업의 진실도 수면 아래 웅크리고 있다. 문 전 대통령보다 뛰어난 비즈니스 마인드를 지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그의 좌파 비즈니스 지원은 한층 더 세련됐다. 네이버가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구단주로 있던 성남FC에 39억 원을 우회 지원할 때 통로로 사용된 곳은 한 시민단체였다. 시민단체 기능의 새로운 발견이자 진화다. 대박을 친 이익공동체의 압권은 단연 대장동 일파일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터진 대박은 인간 본성의 바닥을 드러내기 십상이다. 그러니 돈을 모을 때는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한 몸”이라고 했다가 돈을 나눌 때는 “내가 판 깨면 니들 모두 끝”이라고 협박하는 복마전이 펼쳐진다. 이재명 대표가 이 대박 공동체에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가 관건이다. 분명한 건 있다. 이 대표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한 끗 차이로 패배한 직후에, 그것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시점에 2억여 원의 주식 투자를 할 정도로 놀랍도록 돈을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권력만 쥔다면 돈에는 초연했을까.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 202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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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이재명 대표, 국방에는 장난치지 말아야

    새삼 헌법을 들여다본다. 대통령의 첫 번째 책무는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 수호’(66조 2항)다. 대통령의 취임 선서(69조)에서도 ‘국가 보위’는 ‘조국의 평화 통일’이나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에 앞선다. 쉽게 말해 대통령이 해야 할 지상(至上)의 과제는 나라를 지키는 것, 즉 국방(國防)이다. 이는 국민을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보다 중요한 책임이다. 나라가 없으면 국민도 자유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도 첫 번째 책무에 대체로 충실했다. 단 한 분만 빼고. 이분은 ‘평화를 지켜주는 건 힘이 아닌 대화’라는, 국가 지도자로선 위험천만한 안보관을 지녔다. 위기의 순간에도 상대의 선의에 기대어 대화에 연연했던 지도자들이 나라를 패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것이 고금(古今)의 진리임에도. 문재인 전 대통령. 대한민국 70년 안보의 보루인 한미동맹을 위협했고, 자신의 표현대로 ‘높은 산봉우리’ 중국에 ‘작은 나라’ 한국의 안보주권 일부를 내준 ‘3불’(사드 추가 배치 불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 불참, 한미일 삼각동맹 불가)을 약속했으며, 대일 죽창가로 일본과의 안보 협력을 파탄 냈다. 그러면서도 오로지 북한에만 ‘몰빵’했다. 31세나 어린 김정은으로부터 갖은 수모를 받으며 대화를 구걸하고 9·19 군사합의로 우리 안보의 안방 문을 열어줬다. 그 결과가 작금의 무차별 도발 시리즈다. 북한은 지난달 25일부터 한반도 근해와 공해상에 미친 듯이 중·단거리탄도미사일과 저수지 발사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장거리순항미사일과 방사포를 쏘고 고물 전투기까지 수백 대를 동원해 우리 군의 전술조치선을 넘어 군사분계선(MDL) 북방 25km까지 내려왔다. 이런 무더기 도발엔 미국을 향한 김정은의 초조감이 읽힌다. 하지만 남쪽을 향해서는 ‘이래도 니들이 뭘 할 수 있겠느냐’는 자신감도 과시하는 듯하다. 대한민국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문 정권 대북 굴종의 참담한 후과(後果)다. 문 전 대통령 못지않게 북한에 유화적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과 평택 주한미군·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관철할 정도로 안보의 기본 원칙은 지켰다. 문재인은 국방을 자해한 유일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 아스라한 5년을 버텼더니, 이번에는 차기 대통령을 하겠다는 분이 듣도 보도 못한 친일(親日) 국방론을 들고나왔다. 다른 것도 아닌 국방에까지 색깔을 입히는 그 상상력에 먼저 경의를 표한다. 그럼 한미동맹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70년의 국방은 ‘친미 국방’이고, 북한과의 대화가 평화를 지켜준다는 전 정권의 국방은 ‘친북 국방’ ‘대화 국방’인가. 대통령이 될 생각이라면 국방만큼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국방마저 색깔을 입혀 정쟁의 대상으로 만든다면 군 통수권자로서의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 헌법이 요구하는 대통령의 자격이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한미일 연합훈련에 ‘극단적 친일 국방’이라는 황당한 언사를 한 것도 모자라 그 말을 주워 담느라 ‘한반도에 일본군이 진주(進駐)’ ‘욱일기가 한반도에 걸릴 수도’ ‘일본이 사실상 경제 침탈’ 같은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고 있다. 스텝이 엉켰을 때는 한발 물러나야지, 더 밟으려다간 더 꼬일 수밖에 없다. 항간의 소문대로 ‘사법 리스크’를 호도하기 위해 이렇게 극단적인 발언을 했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이 대표가 아직도 차기 대통령에 뜻이 있다면 국방에도 색깔론을 들이대는, 불안한 이미지가 무슨 도움이 될지 돌아보기 바란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김정은이 보란 듯이 9·19 군사합의를 파기하며 도발 쇼를 벌이는 와중에도 국방 색깔론이 어느 정도 먹히는 이 나라의 수준이다. 점점 대한민국이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나라가 돼가는 느낌이다. 미국의 대북 전문가들도 ‘북한이 이미 이겼다’며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려는 터. 누군가, 어디선가 대한민국의 핵 보유 시나리오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어야 정상적인 나라다. 이미 휴지 조각이 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나 9·19 군사합의를 부여잡고 감 떨어지기만 바라서야 되겠는가. 경국지색(傾國之色) 포사의 웃음을 보기 위해 거짓 봉화를 올리다 멸망한 서주(西周)의 고사를 돌아보라. 다른 건 몰라도 안보나 국방 갖고 장난치지는 말라.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 20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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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尹 대통령과 ‘뺄셈 인사’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은 민망하지만, 큰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참에 윤 대통령의 말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 방송으로 접하는 대통령의 어투, 말이 짧을 때가 적지 않다. 그런 반말 투가 사적으로 들으면 친근감의 표시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공식행사에서 대통령의 언어로는 부적절하다. 이런 언어 습관이 결국 이번 사달을 부르지 않았나, 돌아보기 바란다. 거듭 밝히지만 비속어 논란 자체가 큰일은 아니다. 이번 순방에서 드러난 외교 아마추어리즘이 큰일이다. 윤 대통령은 당초 영국에 도착한 지난달 18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관이 안치된 웨스트민스터홀에서 조문하려 했다. 이 조문이 불발된 건 명백한 외교 실패다. 사전에 런던 현지 상황을 숙지해 미리 가거나, 대통령을 위한 ‘패스트 트랙(Fast track)’을 깔았어야 했다. 둘 다 어려웠다면 성사가 불투명한 행사 일정은 공지하지 말았어야 한다. 대한민국 정도 되는 나라의 정상이 미리 알린 조문을 못 하고 현지 교통 상황이 어쩌니, 하고 변명을 하는 게 말이 되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48초 환담은 더 심각하다. 바이든 대통령과 만나는 일정이 그 정도로 설익은 상황이었다면 유엔 총회라는 다자 외교의 장(場)에서 정상 외교의 유동성, 미국 대통령의 국내 정치 일정의 불확실성 등 사전에 충분한 ‘밑밥’을 깔고, 바이든과의 만남을 ‘기대 밖의 성과’처럼 포장했어야 옳다. 그런데도 한미 정상회담을 열어 ‘통화 스와프’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미국의 협조를 얻어낼 것처럼 분위기를 띄워 국민의 기대감만 높였으니…. 이 모든 게 치열하고도 미묘한 외교 현장을 잘 모르는 아마추어들이 지휘봉을 쥐고 흔들어서 그런 건 아닌가. 그렇다고 박진 외교부 장관의 해임건의안까지 강행하는 건 거야(巨野)의 폭주지만, 박 장관이 ‘자기 정치’에 신경 쓰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외교부 안팎에서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경제는 먹고사는 문제지만, 외교는 죽고 사는 문제’라는 말이 있다. 윤 대통령이 이번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외교 라인의 재조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취임 5개월이 다 돼 간다. 전임 문재인 대통령 때는 국정을 국익과는 반대 방향으로 끌고 가 숨이 턱 막히게 하더니, 윤석열 정부는 국정 방향은 맞는데 실력이 모자라 그쪽으로 못 가는 것 같아 답답하다. 그 중심에 정실 인사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건 아닌가.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측은 물론이고 이번 정권에서 신(新)실세로 등장한 인물들과 이런저런 연(緣)을 통해 이루어지는 인사 말이다. 실력보다 정실이 출세의 코드가 되는 조직이나 나라의 미래는 어둡다. 역대 어느 정권에나 정실 인사는 있었다. 하지만 운동권 좌파 코드에 맞추기 위해 무능한 3류를 대거 중용했던 문 정권 뒤에 등장한 윤 정권에서, 그것도 ‘공정과 상식’을 표방한 대통령 아래서 벌어지는 정실 인사는 실망스럽다. 특히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인사 뒤에 대통령과 이러저러한 검찰의 연이 있다거나, 김 여사 측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들리면 씁쓸하다. 권력의 핵심에서 이러면 그 주변도 준동하게 마련이다. ‘검(檢)핵관’ ‘용(龍)핵관’ ‘권(權)핵관’ ‘장(張)핵관’ 소리가 달리 나온 게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을 돌아보라. 첫 당선인 수석대변인을 필두로 “어, 이 사람이 왜…” 하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인사가 적잖게 이어졌다. 오죽하면 ‘수첩인사’라는 신조어가 나왔겠는가. 수첩인사는 결국 친박→진박(眞朴) 감별이라는 황당한 논란으로 비화돼 총선 참패를 부르고, 결국 탄핵의 불씨가 됐다고 본다. 비상식적인 인사가 내부의 적을 키우고, 보수의 방관을 조장했다. 그렇게 박 대통령은 인사로 고립돼 갔다. 5개월도 안 된 대통령에게 박근혜의 인사 실패를 갖다대는 게 무리라는 걸 잘 안다. 그만큼 대통령의 성패는 인사 성패에 달려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달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거에서 비주류 이용호 의원이 40%의 득표율을 가져간 건 심상치 않다. 대통령 임기 초 여당에서 그 정도의 ‘반란표’가 나온 건 희한하다. 혹시 “니들끼리 다 해먹는 거냐”란 불만의 표시는 아니었을까. 인사를 할수록 우군을 키우기는커녕 아군과 지지층까지 떨어져 나가는 ‘뺄셈 인사’. 윤 대통령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 2022-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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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윤석열 것은 尹에게, 이재명 것은 李에게

    3월 대통령 선거 이후 한국 정치를 물밑에서 움직이는 동인(動因)은 두려움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처리에 대한 두려움. 이 대표는 대선 전부터 그런 두려움을 토로했다. “이번에 제가 (선거에서) 지면 없는 죄를 만들어서 감옥에 갈 것 같다”고. 너무 나갔다 싶었던지, 발언 이틀 뒤 ‘내 얘기가 아니라 검찰공화국 우려를 표현했다’고 물을 타기는 했다. 하지만 발언 당시 “제가 인생을 살면서 참으로 많은 기득권과 부딪혔고 공격을 당했지만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두렵다”는 설명까지 붙인 걸 보면 그의 두려움은 과장이 아니었다. 이재명의 두려움은 윤석열 당선이 현실화하면서 고조됐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인천 계양을 지역구 출마는 어쩌면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두려움을 덮어 줄 방탄 갑옷의 첫 단추를 채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때마침 7월부터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했다. 상대적으로 이재명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당 대표 출마부터 당선까지 거칠 것이 없었다. 지난 대선에서 1600만 표 이상을 얻은 0.73%포인트 차 2위에 이어 국회의원 배지, 다수당 대표까지 ‘방탄의 3종 세트’를 구비한 셈이다. 그러면 이제 이 대표의 두려움은 해소됐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이 대표와 관련해 성남FC 후원금, 변호사비 대납, 허위사실 공표, 대장동·백현동·위례 개발 의혹 등에 대한 수사가 전방위로 전개되고 있다. 배우자 김혜경 씨의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에 장남의 불법도박 의혹도 수사 중이다. 만에 하나, 이 대표가 구속되거나 피선거권을 잃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당장 속이 후련해할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사에 불행한 일이자 무시 못 할 후폭풍을 불러올 게 뻔하다. 직전 대선 2위이자 거대 야당 대표가 구속되거나 피선거권을 잃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보지만, 수사는 생물이다. 변호사 출신인 이 대표도 이를 모를 리 없다. 문재인 정권 내내 무사했던 은수미 전 성남시장도 지난 주말 법정구속 되지 않았나. 이 대표가 두려움으로 움찔할 때마다 ‘이재명 방탄당’으로 돌변한 민주당은 요동을 칠 것이다. 그럴수록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측에 대한 공격도 물불을 가리지 않을 터. 바로 이재명 비리 의혹에 윤석열 물타기 수법이다. 이 대표의 비리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대통령 주변을 물고 들어가 이재명이나 윤석열이나 도긴개긴이라는 이미지를 굳히려는 것이다. 이재명 비리의 잉크 색은 상대적으로 옅어지고, 윤 대통령은 그 잉크를 묻힐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아울러 이 대표에게 대통령으로부터 핍박받는 야당 지도자의 옷을 입히려는 것. 대선도 끝난 마당에 이 대표가 굳이 자신을 윤 대통령의 ‘정적(政敵)’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전술의 일환이다. 그러나 이재명의 비리 의혹과 윤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무엇보다 대통령 평가의 제1기준은 국정 운영이다. 그럼에도 전혀 별개의 문제를 한 냄비에 넣어 ‘섞어찌개’를 만드는 게 포퓰리즘 좌파의 오랜 수법이다. 문 정권 때 정치적으로 불리해지면 뜬금없이 ‘토착왜구’ 운운하며 친일몰이를 하거나, 지난 대선 때 이재명 후보가 ‘대장동 몸통은 윤석열’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한 걸 돌아보라. 민주당이 7일 ‘김건희 특검법’을 발의한 게 대표적인 섞어찌개 전법이다. 정권이 바뀐 뒤 수사당국이 김 여사 관련 수사를 뭉그적거린 게 빌미를 준 측면도 있으나, 취임 4개월 된 대통령의 부인을 탈탈 털겠다는 건 정치 도의상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재명 방탄당이 돼버린 민주당에 정치 도의를 말하기도 어렵게 됐지만. 무엇보다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려 초장부터 윤석열 정부의 성공에 재를 뿌리려는 심보가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이재명 사법 리스크의 대응이 다급하다는 반증(反證)이다. 문제는 지난 정권 5년을 거치면서 포퓰리즘 좌파의 섞어찌개 수법이 잘 먹히는 사회적 토양이 마련됐다는 점이다. 그런 토양에서 양비론(兩非論)이 횡행하고, 이재명 단추를 누르면 윤석열이 나오는 본말전도가 이루어진다. 그런 사회에선 공정과 불공정, 정의와 불의의 경계마저 모호해진다. 그런 사회로 가지 않으려고 정권을 교체했건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윤석열의 것은 윤석열에게, 이재명의 것은 이재명에게 돌려주는 상식의 복원이 절실하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 202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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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대통령 권력이란 무엇인가

    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써야 하나. 취임 100일 만에 이처럼 많은 지지율 여론조사가 쏟아진 게 윤 대통령이 처음이지만, 이토록 많은 대통령 비판 칼럼이 나온 것도 내 기억엔 처음이다. 과거에는 있었던 ‘허니문’ 기간이 사라진 것, 문재인 정권 이후 어느 때보다 진영으로 갈라진 언론 풍토가 큰 이유일 것이다. 여기에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필자들도 비판 글을 양산(量産)한 게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윤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이 정부의 실패는 ‘이재명 집권’의 시나리오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대로 가면 실패할 것 같으니까 대통령부터 변하라는 것이다. 어차피 윤석열은 대통령이 됐고, 이재명은 ‘사법 리스크’가 심각하니 차기 대선까지 갈 수 있겠냐고? 지난 대선에 1600만 표 이상을 얻어 0.73%포인트 차로 2위를 한 ‘확대명’(확실히 대표는 이재명)을 사법으로 ‘처리’하는 게 한국사회에서 가능할 것 같은가. 그러니 윤 대통령에게 남은 길은 하나, 정치를 잘해서 보수 정권에도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취임 100일이 지난 지금, 윤 대통령이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남긴 감정은 실망감이다. 무엇보다 윤석열 집권 후에 과연 달라진 게 뭔가, 하는 회의감마저 준다. 물론 달라진 건 있다. 외교안보 정책은 한미 동맹을 중심축으로 복귀했고, 경제 정책은 경제논리에 맞게 기업 친화적으로 바꾸고 있으며, 부동산 정책도 수요 억제보다 공급 확충으로 제 방향을 찾았다. 그러나 이런 건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는 순간부터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던 국가 정상화 과정이다. 한마디로 윤 정권만의 그 무엇이 안 보인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기고, 출근길 문답을 정례화한 것이 달라졌다면 달라진 모습이다. 하지만 이는 국정 운영의 내용이 아니라 겉모양을 바꾼 것이어서 별다른 임팩트를 주지 못한다. 지난 5년 동안 많은 국민이 그토록 희구했던 공정(公正)을 복원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착이다. 윤석열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던 공정을 인사 실패로 좀먹으면서 문 정권과의 현격한 차별화에 실패한 것이다. 부적절한 인사를 중용하는 것도 실망스러운데, 그런 인사를 쉽사리 내치지 못하는 것도 제 식구라면 귀 막고 싸고돌던 문재인 시절을 연상케 했다. 군왕무치(君王無恥)다. 국가 운영을 위한 최고 권력자의 변심은 무죄다. 17일 기자회견의 각오처럼 국정 쇄신을 하려면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국민이 변화를 실감할 만한 인사 쇄신을 해도 부족한 터. 만만한 홍보라인부터 손대 포장지만 바꾸려 하니 쇄신 의지를 의심받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남긴 유명한 말.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 이 말을 변주해 돌려주고 싶다. “대통령이 인사권 가지고 보호하면 그게 보스지, 대통령입니까.” 그렇다고 정책에서 ‘윤석열다움’을 보인 것도 없다. 문 정권이 치외법권 집단으로 키운 민노총은 여전히 시너 통을 들고 다니며 불법을 자행한다. 그런데도 고용노동부 장관이란 사람은 농성 중인 노동자에게까지 직접 찾아가 ‘농성 푸는 걸 한번 더 생각해 달라’고 사정한다. 노동개혁이나 이명박 사면처럼 사회적 인화성이 큰 문제를 피하고 미루지 말고, 당당하게 대응하는 모습이 윤석열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기대했던 모습이 아닐까. 돌이켜보면 윤 대통령은 말 위에 올라 싸울 준비는 돼 있었어도, 말에서 내려 통치할 준비는 부족했던 것 같다. 검사라는 특이한 직군에서 대통령으로 직행한 것이 한계였으나, 그건 지지자들도 아는 문제였다. 그렇다면 본인 주장대로 머리를 빌렸어야 한다. 그런데 주변을 검찰 식구나 친구 동문, 정무 감각 떨어지는 B급 정치인들로 ‘도배’하다시피 하니 빌릴 머리가 없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은 권력의 속성, 최고 권력자의 처신에 대한 숙고의 시간이 부족해 보인다. ‘반지의 제왕’에서 보듯 권력의 절대반지는 소유자의 인성(人性)을 파괴한다. 대통령에겐 인간관계도, 친구도, 심지어 가족도 없다. 적어도 대통령을 하는 동안은. 왜 한비자가 “군주는 어질고 지혜로운 신하라도 개인적으로 가까이 하지 말라”고 했겠는가. 100일간 ‘대통령 신고식’을 호되게 치른 윤석열은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깊이 고민했으면 한다. 대통령 권력이란 과연 무엇인가.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 2022-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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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자기희생 없이 최고권력 쥔 尹의 함정

    윤석열 대통령은 억울할 수도 있겠다. ‘아니, 내가 무슨 대단한 잘못을 했다고 취임 석 달 만에 지지율이 임기 말에도 나오기 힘든 20%대인가. 안보 경제 민생 위기를 부른 것도, 누구처럼 국정농단 사태를 자초한 것도 아닌데…. 오히려 외교·안보는 한미 동맹을 중심축으로, 경제는 마차가 말을 끄는 전 정부의 정책을 경제논리에 맞게 정상화하고 있지 않은가. 막말로 내가 처음부터 정치를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닌데, 대통령 자리에 올려놓고 이렇게 흔들 수 있나.’ 국익을 증진하기는커녕 해치는 국정 운영을 하고도 지지율 40% 안팎을 유지한 전임 문재인 대통령과 비교하면 서운함은 배가할 것이다. 윤 대통령에게 그런 억울함과 서운함만이 있다면 전임자와 자신에 대한 지지의 속성 차이와 권력의 생리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말이 상징하듯, 무비판적 팬덤이 본류(本流)다. 지지자들은 한국 사회의 보수 주류세력과 싸워온 문재인에게 자신을 투사(投射)하며 심리적 동질감을 느낀다. 그러니 뭘 해도 지지율이 빠지지 않는다. 물론 정치인에게 무비판적 팬덤은 건강한 지지가 아니다. 하지만 지난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지지 대상을 이재명으로 갈아탄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현상이 재연되고 있어서 걱정스럽다. 반면 윤 대통령에 대해선 비판적 지지가 본류다. 문재인-이재명으로 좌파 포퓰리즘 독재가 이어지면 나라가 망할 것 같은 두려움에 빠진 합리적 중도·보수층이 그 고리를 끊을 대표선수로 윤석열을 차출한 것이다. 대선 당시 그 역할을 맡기에 가장 적격이어서 그를 택한 것이지, 정권교체만 이룰 수 있다면 윤석열이 아니어도 상관은 없었다. 그러니 문 정권 5년간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이니’에 질릴 대로 질린 중도·보수층은 윤 대통령에게 반대로 말하고 싶은 것이다. “여리는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마.” 애석하게도 윤 대통령은 당선 이후 ‘하고 싶은 대로’ 했다. 대선 전부터 ‘검찰공화국’ 우려와 김건희 여사 주변 문제가 불거졌음에도 ‘검찰 식구’와 학교 동문을 중용하고, 경찰국 신설을 강행하며, 김건희 여사 주변 문제가 아직도 툭툭 터져 나올 정도로 방치한다. 그러면서 지난 대선 때 윤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을 회의감에 빠뜨리는 것이다. 국민은 치자(治者)에게 자신을 다스릴 권력을 주는 대신 권력자도 자신의 것을 내놓기를 바란다. 그것은 자기희생이다. 윤 대통령은 그런 자기희생 없이 정치 참여 선언 9개월여 만에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다. 그것이 윤 대통령 권력의 태생적 약점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역대 대통령은 크든 작든 자기희생과 헌신의 스토리가 있다. 김영삼 김대중은 민주화의 거인, 노무현은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분투한 ‘바보 노무현’의 신화가 있다. 이명박은 청계천을 복원해 시민에게 돌려줬다는 공적인 기여가, 박근혜는 부모를 모두 총격으로 잃은 희생의 시간이, 문재인은 인권변호사로 살아낸 시절이 있었다. 윤 대통령에겐 무슨 자기희생이 있었나. 사법시험 9수를 했다지만, 그 당시 수험생활을 9수까지 밀어줄 집안이 얼마나 됐을까. 박근혜 정권 시절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로 좌천됐다고는 하나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전국적 지명도를 얻지 않았나. 문재인 정권에서 검찰총장이 된 뒤 산 권력과 맞붙은 건 자기희생이라기보다는 성공신화에 가깝다. 권력은 공짜가 아니다. 더구나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은. 그런데 윤 대통령은 당선 이후 양향자 의원의 표현대로 ‘인생 목표를 다 이룬 사람처럼’ 행동했다. 하여, 윤석열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그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대선 기간 내내 노심초사하면서 대통령 권력을 쥐여 줬더니, 당신이 내놓은 건 뭔가.’ 윤 대통령은 이제라도 자기희생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자기희생이란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자기 것,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손해 보는 것이다. 검찰을 더 차갑게 대하고, 친구와 동문을 더 멀리하며, 윤핵관이란 사람들에 더 엄격하고, 김건희 여사와 연결된 사람이나 사업과 매정하게 절연하며, 김 여사와 처가 식구들에게 더 단호하게 대응해 구설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정 운영을 잘하면 언젠가 국민이 인정해 지지율도 반등할 거라고? 권력의 생리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 2022-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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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尹, 안 변하면 ‘문재명 나라’ 온다

    지배자가 폭군인 나라가 있었다. 압제에 신음하던 민중의 뜻을 업고 왕의 조카가 쿠데타를 일으킨다. 폭군을 추방하는 데 성공한 그가 시민들에게 제안한다. 폭군을 낳는 왕정 자체를 없애자고. 그리고 자신이 첫 공화정의 지도자가 된다. 추방된 폭군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왕정 폐지에 불만을 품은 내부 세력을 규합해 왕정복고를 기도했다. 음모는 발각돼 수포로 돌아갔지만, 아뿔싸! 왕정복고 음모에 지도자의 두 아들이 가담한 것. 반역죄는 사형이었으나 지도자의 심정을 헤아린 시민들은 국외 추방형을 내리자고 했다. 하지만 지도자는 단호히 거절하고, 사형을 결정했다. 그리고 두 아들이 채찍질을 당한 뒤 도끼로 목이 잘리는 광경을 현장에서 목도했다. 기원전 509년 로마에 첫 공화정을 연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얘기다. 아무리 지도자라 해도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도 들지만 2500년 전 인류가 공화정을 연 때부터 공(公)과 사(私)를 엄격히 구분하는 건 공화국의 이념을 지탱하는 근간(根幹)이었다. 그것이 공과 사를 섞어도 되는 왕정과의 다른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두 달 만에 지지율이 30%대(37%·한국갤럽)로 떨어졌다. 지지율 급락 원인의 팔 할은 공사를 구분하지 못한 대통령의 처신 탓이라고 본다. 우수하다는 이유만으로 역대 대통령 중 유례가 없을 정도로 ‘검찰 식구’와 학교 선후배 및 지인들을 중용한 인사, ‘조용한 내조’ 약속을 지키지 않은 김건희 여사와 그 가족을 둘러싼 잡음, 김 여사 주변에 불쑥 등장하는 공인인지 사인인지 모를 사람들…. 무엇보다 ‘윤(尹)사단 챙기기’ 인사와 김 여사 주변 문제에서 공과 사를 칼같이 자르지 못하는 대통령을 보며 우리가 아는 강단의 윤석열이 맞나, 하고 실망하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 공은 공으로, 사는 사로 구분하는 게 공정(公正)의 출발점이다. 공과 사를 섞는 게 바로 불공정이다. 윤석열의 트레이드마크인 공정이 흔들리니 지지율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여당의 자중지란 또한 국정 지지율을 갉아먹는다. 자기밖에 모르는 30대 당 대표, 그런 대표를 상대하기엔 정치력이 부족한 ‘윤핵관’들. 이준석 대표의 성 상납 의혹은 진상이 밝혀져야 하지만, 사냥(선거)이 끝나자 윤 대통령과 핵관들이 토사구팽(兎死狗烹)하는 듯 비쳐서는 안 될 일이다. 핵관들과 관련해 윤 대통령은 대선 때 공은 인정한다 해도 새로운 시대를 열기엔 ‘올드 보이’들이라는 점을 인식할 때가 됐다. 그렇다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검찰 출신 ‘신(新)핵관’들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벌써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걱정스럽다. 문재인 정권에서 ‘운동권 형·동생’이 쥐고 흔들었던 국정을 ‘검찰 형·동생’이 좌지우지한다면 얼마나 허망한가. 신핵관들의 소임은 비정상 대한민국을 정상화하는 데 있다고 본다. 다만 그 정상화가 문 정권식 적폐청산이어선 안 된다. 윤 정권의 성공을 바라는 다수는 정상화 과정은 신속하게 거친 뒤 미래로 나아가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정 정국을 펼치면 대통령의 지지율이 반등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윤 대통령 당선 후 넉 달, 그에게 투표했던 유권자들 사이에선 ‘이재명 후보가 당선됐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하며 위안을 삼는 정신승리법마저 등장하고 있다. 앞날은 더 불안하다. 초유의 ‘퍼펙트 스톰’이 닥쳐 민심은 부글부글 끓는 가운데 이재명 의원이 대표가 된 거대 야당이 거칠게 흔들어대면 국민들 사이에선 ‘문재인 때가 더 나았다’는 소리가 나올 수 있다. 그러면 후년 총선을 앞두고는 여야 모두 퍼주기 경쟁을 할 수밖에 없을 터. 이 나라는 포퓰리즘의 늪 속으로 더욱 깊숙이 빠져들 것이다. 문 대통령 때는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까 걱정했는데, 윤 대통령 때는 다시 그런 나라로 돌아갈까 걱정해야 하는가. 그런 ‘문재명의 나라’로 가는 걸 막을 유일한 선택지였기에 오늘의 윤석열 대통령이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앞으로 닥칠 안팎의 거센 파도와 맞서려면 대선 전후 국민이 걸었던 기대와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려면 공과 사를 단칼에 자르고, 필요하면 김 여사 주변 문제도 단호히 정리하며, 아무리 친해도 미래로 가는 데 발목을 잡는 세력과 ‘손절’해야 한다. 그것이 윤석열의 소명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 2022-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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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대한민국 vs 대안민국

    탈(脫)진실의 시대. ‘탈진실(Post-truth)’이란 용어로 그럴싸하게 포장했지만, 진실은 중요치 않고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이 세상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진실이 무시되는 세상엔 조작된 정보와 대안현실(Alternative reality)이 판친다. 뻔히 보이는 현실을 외면하고 가상의 현실을 진짜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2016년 11월 옥스퍼드 사전은 탈진실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직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인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것 등이 큰 영향을 미쳤다. 공교롭게도 그때부터 대한민국도 드라마틱하게 탈진실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 창궐한 허위정보와 이후 문재인 정권에서 팽배한 대안현실의 세상을 돌아보라. 북한의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다는 가상현실에 빠져 외교안보 정책을 말아먹은 결과가 어떤가. 핵 포기는커녕 문 정권 5년 동안 김정은은 핵·미사일 능력을 비약적으로 증강시킨 뒤 이제 7차 핵실험의 단추를 누르려 한다. 소득을 올려주면 경제가 성장할 거라는 ‘소주성’은 어떤가. 이제 전 정권 사람들도 입 밖에 내기를 꺼리는 ‘듣보잡 정책’이자 경제정책사(史)에 기록될 코미디다. 탈원전과 주52시간 등 대안현실을 진짜라고 믿은 대통령과 추종자들이 국정(國政) 곳곳에 질러놓은 정책 실패의 덩어리들은 이제 새 정부의 발목을 잡고, 국민에게 청구서를 들이민다. 정권이 교체됐으니 이런 대안세상은 정상화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한반도 남쪽에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짜 대한민국과 대안현실에서 헤어나지 못한 ‘대안민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윤석열이지만, 대안민국의 대통령은 여전히 문재인이다. 대안민국 사람들이 정권 교체라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회도 내 것이고, ‘검수완박’도 내 것이다. 정권이 바뀌지 않았으니 공공기관장도 물러날 필요가 없다. ‘알박기’가 아니라 법에 정한 임기요, 권리다. 그 나라에선 문재인은 성공한 대통령이고, 위선의 조국은 검찰개혁의 희생자다. ‘세월호의 진실’ 역시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문 정권 5년을 포함해 무려 7년 동안 9번이나 조사를 했어도 진상은 가려져 있다는 것이다. 천안함이 북한 공격에 의해 폭침됐다는 것도 믿을 수 없다. 북한이 그런 잔학무도한 짓을 할 리가 없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나라다. ‘미(美) 점령군과 친일세력의 합작’으로 탄생했고, 이후엔 친일파와 사이비 보수가 득세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한민국과 싸우는 대안민국 사람이라면 뭘 해도 용서가 된다. 변명이 더 낯 뜨거운 ‘짤짤이’를 입에 올려도 문제될 건 없다. 모두가 한편인 ‘대안민국 만세’다. 진짜 현실과는 다른 이런 대안현실들이 모여 대안민국을 이룬다. 오직 팩트(fact)만이 대안현실을 깰 수 있건만, 대안민국에서 팩트는 중요치 않다. 가뜩이나 SNS에 허위정보가 넘쳐나는 탈진실의 시대에 지난 5년간 대안현실을 진짜 현실로 믿도록 팩트를 왜곡하고 통계를 분식(粉飾)하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서해 피살 공무원의 월북몰이 의혹이나 탈북어부 강제 북송 사건이 그런 것들이다. ‘월북이면 좋겠다’는 기대가 ‘월북인 것 같다’는 추정으로, 결국엔 ‘월북이 맞다’는 확신으로 변질돼 간 것 아닌가. 그 과정에서 양념을 치듯, 팩트를 조금 비틀어도 상관없다.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한다는 운동권 논리에 젖은 그들은 ‘팩트도 목적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믿은 게 아닐까. 팩트를 무시하는 탈진실 현상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에서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이 아니다. 자국에 헬리콥터로 달러를 퍼부어도 경제위기가 찾아오면 세계가 달러화에 기대 결국 달러 가치만 높아지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국가와 국민이 함께 뛰어도 닥쳐온 미증유(未曾有)의 경제위기를 넘길까 말까다. 문 전 대통령 표현대로 ‘이쪽’과 ‘저쪽’, 우리 편과 너희 편, 대한민국과 대안민국으로 분열해선 ‘퍼펙트 스톰’의 파고(波高)를 넘을 수 없다. 전 정권이 파놓은 분열의 골을 따라 흐르는 넓고도 깊은 강. 이 강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에 윤석열 대통령의 성패(成敗)가 달려 있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 2022-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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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대통령도 성공한 방식으로 실패한다”

    검찰공화국 논란을 부른 검찰 편중 인사 건(件)을 들여다보자. 이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대응은 다음 네 가지 경우의 수를 상정할 수 있겠다. 첫째, 가장 바람직한 건 누가 봐도 검찰 편중으로 느껴지는 인사를 안 하는 것이었다. 취임 전부터 검찰공화국 우려가 나온 만큼 최소한의 선에서 자제하는 것이 상수(上手)였다. 그런데, 했다. 그랬다면 겸허하게 국민들에게 이유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두 번째 수(手)다. ‘하루빨리 국가를 정상화하려는 마음에서 믿을 만한 인사들을 찾다 보니 인재 풀이 좁아졌다. 검찰공화국 우려를 잘 알고 있으며, 앞으로 검찰 출신 기용을 자제하겠다’고. 하지만 이렇게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 수는 비판에 대해 침묵하는 거다. 전임 문재인 대통령이 많이 쓰던 방식으로 악수(惡手)에 속한다. 문 전 대통령처럼 거듭되는 비판에도 다른 하늘을 쳐다보는 일이 임기 내내 반복되면 공분(公憤)이 쌓인다. 그러나 취임 초 대통령과의 ‘허니문 기간’에는 다소 용인될 여지가 있다. 윤 대통령이 둔 게 가장 나쁜 수였다. “과거엔 민변 출신들이 아주 도배를 하지 않았느냐”…. ‘도배’라는 용어 자체가 대통령이 쓰기에 부적절하고 과한 데다 ‘거번먼트 어토니(government attorney)’ 운운하며 미국 사례를 들었으나 한국 실정과 맞지 않아 비판이 커졌다. 그럼에도 “글쎄 뭐, 필요하면 또 해야죠”라고 고집을 부린 것이다. 지난번 칼럼에도 썼듯 윤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은 한국 대통령사(史)에 남을 만한 변화다. 임기응변에 능한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답변하는 말 가운데 팔 할 정도는 국정의 소통에 큰 도움이 된다고 본다. 문제는 실언(失言), 더 나가서 설화(舌禍)를 부르는 20%다. 문 전 대통령 사저 앞 시위에 대해 ‘대통령 집무실 앞 시위도 허가되는 판이니까’라고 답한 것도 대통령답지 못한 발언이었다. 그래도 출근길 문답은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낫다. 그렇다면 실언이나 설화를 줄여야 한다. 대통령의 말실수가 잦아지면 나머지 80%의 소통 언어마저 묻혀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대통령이 발화(發話)하는 언어의 무게다. 윤 대통령은 다변이고 달변이다. 함께 자리를 많이 했던 사람들에 따르면 대화의 80% 이상을 혼자 끌어가다시피 하는데, 꽤 들을 만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고시 장수(長修)생이나 검사 시절, 술자리에서 ‘구라’를 풀던 스타일의 언어생활은 달라져야 한다. 덜 말하고 더 들으라. 앞으로의 출근길 문답에선 지금보다는 더 정치(精緻)한 언어가 나오길 바란다. 그러려면 국정 관심사에 자문을 하는 그룹의 범주가 훨씬 넓어져야 한다. 윤 대통령의 첫 인사엔 검사 선후배를 비롯한 검찰 출신, 학교 친구와 선후배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만큼 윤 대통령을 잘 아는 친구 선후배들끼리의 집단사고에 빠질 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윤석열은 검사 출신이어서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이다. 모든 검사가 그처럼 강단 있을 수는 없겠으나 검사나 검찰총장이 아니었다면 박근혜 문재인 정권을 연달아 들이받는 게 가당키나 했겠나. 자신을 졸지에 한국사회의 정점(頂點)이랄 수 있는 대통령 자리까지 오르게 한 검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휴브리스(Hubris)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인간의 오만을 뜻하지만 성공한 오너나 CEO, 1위 기업 등이 자신들이 성공한 방식에 집착하다 실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금의 숱한 권력자들도 집권에 성공한 방식으로 통치하려다 실패의 길을 걸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워 집권한 이명박은 ‘패밀리 비즈니스’로, 박정희 신화의 계승자를 자처했던 박근혜는 결국 공주의 덫에, 보수세력 교체를 앞세운 문재인은 편 가르기의 함정에 빠져 실패하지 않았나. 검사로 성공한 윤석열이 대통령으로도 성공하려면 되레 검찰을 멀리해야 하는 이유다. 더구나 검찰과 엘리트 검사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이 아직도 엄존한다. 검찰개혁 얘기가 달리 나온 게 아니다. 이런 마당에 일 잘한다는 이유로 검찰 출신과 친구 선후배들을 계속 데려다 쓰면 결국 문 정권 때처럼 ‘끼리끼리 다 해먹는다’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땐 윤석열 식 ‘소탈 행보’도 더 이상 먹히지 않을 것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 2022-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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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정치초년 尹, 대통령像 바꾸나

    동아일보사가 청와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그런지, 가끔 가던 식당 중에 대통령이 다녀갔다는 곳들이 있다. 그런 식당들은 현직 대통령이 왔다는 데 남다른 자부심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꼭 잘되는 건 아니다. 정권의 부침(浮沈)이라는 거대한 파도의 끝자락은 때로 음식점 장사까지 때린다. 내가 애용하던 한두 집은 결국 문을 닫았다. 과거 대통령들은 외국에 나가지 않는 한 거의 청와대에서 밥을 먹었다. 장삼이사(張三李四)야 청와대 식사 한번 초대받길 고대하건만, 만날 먹어야 하는 대통령은 지겨울 법도 하다. 그래서 모처럼 ‘사제 식당’에 행차할라치면 경호 문제로 거의 007 작전이었다. 꼭 이래야 하나. 세계 최강 미국의 대통령들도 공개적으로 워싱턴DC의 식당에서 식사하고, 아이스크림을 들고 먹는다. 베이글을 테이크아웃하고, 단골 딤섬 식당을 찾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즐겨 먹던 햄버거는 ‘오바마 버거’로 불린다. 경호를 이유로 대통령을 청와대에 가두는 것이야말로 제왕적 대통령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좀 다르다. 당선인 때도 여기저기 맛집 순례를 하더니, 대통령이 돼서도 냉면 빈대떡 잔치국수 따로국밥을 사먹고, 순대 떡볶이 만두 소보로빵 등을 사갔다. 경호 문제로 시민들을 불편하게 한다고? 대통령 경호에 빈틈이 있어서야 안 되겠지만, 대통령과 국민을 괴리시키는 경호는 경호라고 할 수도 없다. 음식남녀(飮食男女)라고 했다. 원래는 군자가 식(食)과 색(色)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였으나, 지금은 음식과 사랑이 삶의 기본이라는 긍정적인 뜻으로 많이 쓰인다. 대통령도 사람이다. 청와대, 아니 용산 집무실의 문턱을 넘어 저잣거리에서 사람들과 만나 먹고 마시고 떠드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윤 대통령의 먹방 행보가 임기 초 보여주기 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그가 먹는 데 ‘진심인 편’인 듯하니. 기대를 걸어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퇴근길 시장에서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약속했다. 그 말을 의식한 듯 ‘퇴근길 국민과의 대화’라는 이름을 붙여 호프집 만남을 했으나 한 차례 보여주기에 그쳤다. 청와대에서 퇴근하지 않는 분의 퇴근길 대화라니…. 어색한 만남이었다. 그렇다. 윤 대통령의 먹방 행보는 청와대에서 나온 것과 관계 깊다. 청와대가 시내에 있지만 현실 세상과 격리된 듯한 데다 청와대의 ‘대(臺)’가 ‘흙이나 돌 따위로 높이 쌓아 올려 사방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 곳’이란 뜻이다. 권력자가 높다란 대에서 내려오니 세상과 어울리는 게 수월해지는 것이다. 청와대 개방은 뜻밖의 효과도 거두고 있다. 심지어 “무섭다”고 한 관저의 80평 침실을 비롯해 대통령 삶의 속살을 보여준다. 그런 ‘시설’에 살아야 했던 대통령들도 쉽진 않았겠으나, 국민에게도 은연중에 대통령의 제왕적 삶에 대한 거부감을 키워준다. 이제 윤석열 이후 누가 대통령이 돼도 청와대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해졌다. 윤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도 한국 대통령사(史)에서 특기할 만한 변화다. 출입 기자들이 대통령 얼굴 보는 게 연중행사나 다름없던 박근혜 문재인 때를 돌아보라. ‘국민희망대표’ 20명을 초청해 대통령이 직접 집무실 브리핑을 한 것도 달라진 대통령상(像)을 예고한다. 윤 대통령이 특출 나서 이런 변화가 만들어졌을까. 물론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대통령제가, 대통령상이, 대통령관(觀)이 달라진 세상에 따라가지 못하고 시대착오적이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그런 세상의 변화에 올라탔을 뿐이다. 그것이 정상화요, 정치보다 강한 일상(日常)의 힘이다. 그가 정치 초년생이라는 점도 선입견 없이 변화를 수용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 과거 대통령과 다른 윤석열 스타일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탈피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변화이기는 하다. 형식의 변화가 내용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더 중요한 건 내용의 변화다. 즉, 실제로 제왕적 권력을 내려놓느냐가 관건이다. 대통령의 권력 중 외교·안보는 나눌 수도 없고, 나눠서도 안 된다. 그러나 내치(內治)는 다르다. 대통령이 마음먹기 따라 충분히 분점과 권한 이양이 가능하다. 그러려면 인사권의 과감한 하방(下放)과 검찰권 독립이 필수다. 역대 대통령 누구도 못 한 일, 윤석열은 해낼 수 있을까.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 202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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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尹의 공정, 公私 구분 흐릿하면 ‘말짱 도루文’

    “저는 이제 해방됐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10일 경남 양산 사저로 가는 길에 ‘해방’이란 단어를 세 번이나 말했다. 그 말을 접하며 역시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분이란 생각을 다시 확인했다. 문재인 시대의 대한민국은 공정 정의 상식은 물론 안보까지 흔들린 ‘아무나 흔들 수 있는 나라’였다. 그런 나라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하고픈 말을 본인이 앞세운다. 대통령 퇴임 후 ‘잊히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대통령 문재인’을 잊고 싶은 국민이 오히려 많은데, 잊히고 싶다면서 퇴임 직전의 언행은 정반대였다. 이제 양산에서라도 ‘잊힌 삶’을 살아주시길 바란다. 그래도 그를 추앙하는 국민이 아직도 적지 않으니 본인으로선 행복한 은퇴 이후일 수도 있겠다. 대통령이 돼서도 철저히 우리 편만 든 데 따른 보너스가 무비판적인 팬덤 구축이다. 하지만 그 보너스엔 대가가 따랐다. 반쪽만의 대통령인 ‘반(半)통령’으로 남은 것이다. 그는 최고지도자도 철저히 우리 편만 들면 자신은 손해 보지 않는다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 자신은 손해 보더라도 국가와 국민을 통합해야 할 분이 가서는 안 될 길이다. 양식 있는 국민들은 까놓고 우리 편만 챙긴 문재인 나라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살았다. 그래서 공정과 상식을 표방한 윤석열 나라는 확연히 다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조각(組閣)과 대통령실 인사는 기대 이하다. 대통령의 인사는 대(對)국민 메시지인 만큼 어느 정도의 안배는 반드시 필요하다. 윤 대통령의 첫 인사는 지역 직역 학교 성별 세대별 안배에 실패했다. 백보를 양보해 윤 대통령의 지론인 ‘능력 위주’ 인사를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치자. 동창회나 검찰친목회를 연상시킬 정도로 학연 직연(職緣)에 치우치고, 자신과 가족의 변호인단을 다수 요직에 중용한 건 공사(公私) 구분을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더구나 김건희 여사를 ‘남편을 빛나게 할 평강공주’에 빗댄 낯 뜨거운 글을 쓰고 문제 발언이 숱한 사람을 대통령비서관으로 발탁했던 건 그야말로 낯 뜨거운 일이었다. 그의 사퇴로 정리됐지만, 이 인사의 기용에 김 여사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항간에 돌았다. 그 진위를 떠나서,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부터 이런 우려가 제기된 만큼 앞으로도 윤 대통령이 각별히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 대통령의 인사가 대통령과 직간접으로 통하는 인물을 기용하는 ‘연고(緣故) 인사’의 색채가 짙어진 건 박근혜 대통령 때부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좌파·운동권 세력에서 ‘형’ ‘아우’ ‘누나’ ‘동생’으로 통할 만한 이너서클에서 주로 사람을 골랐다. 코드만 맞으면 구체적인 연고는 따지지 않았던 노무현 대통령과 다른 점이었다. 연고 인사는 대통령의 권력의 사유화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윤 대통령의 첫 인사에서 권력 사유화의 그림자가 비친 건 우려할 만하다. 공정과 상식을 중시하고 누구보다 권력 사유화의 폐해를 잘 아는 그가 왜 그랬을까. 아직은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의 마력에 빠졌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정치를, 대통령이란 자리를, 대통령의 인사가 한국사회에서 갖는 함의(含意)를 너무 쉽게 본 건 아닌가. 정권이 교체됐다지만, 윤석열을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듯한 거대 야당과 좌파 기득권의 발호가 상상 이상으로 거세다. 국회 질서와 합의를 뒤집고, 꼼수에 꼼수 범벅을 하고도 되레 당당한 기괴한 집단이 된 것 같다. 여기에 실질적인 권력의 이동 여부를 가늠할 6·1지방선거가 코앞이라 윤 대통령의 첫 인사 실패가 다소 상쇄되는 감이 있다. 그러니 윤 대통령은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과거 한국 정치의 어른들은 ‘나보다는 당(黨), 당보다는 나라’를 앞세운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을 말하곤 했다. 선공후사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공과 사를 구분해 이해(利害) 충돌 소지가 있는 일을 삼가는 게 대통령 인사의 기본이 돼야 한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공과 사를 버무리다간 ‘문재인 때와 달라진 게 뭐냐’는 소리가 나올 것이다. 공보다 사를 앞세웠던 운동권 좌파 권력의 대못을 뽑으려면 윤 대통령부터 정신 차려야 한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 2022-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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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대통령 아닌 ‘半통령’으로 기억될 文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9일까지이니 재임 중 쓰는 마지막 칼럼이다. 본 칼럼이 격주로 나가기 때문이다. 일주일 뒤 청와대를 나오는 대통령을 비판하려니 마음이 불편하다. 하지만 떠나는 대통령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 문 대통령은 그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주 청와대 기자간담회와 jtbc 인터뷰에 많은 말을 쏟아냈다. 주말엔 청와대 국민청원의 마지막 답변자로 나서 같은 주장을 늘어놓기도 했다. 5년 임기 중 정상회담 때를 빼고 기자회견과 ‘국민과의 대화’를 합쳐 고작 10번 정도 언론 앞에 섰던 대통령이다. 임기 중에 자주 등장했으면 좋았으련만 ‘떠날 때는 말없이’는커녕 떠날 때 왜 그리 할 말이 많은가. 그것도 퇴임 후엔 ‘잊히고 싶다’던 분이. 말의 내용은 더 기막히다. 거의 다 자화자찬 내로남불 궤변이거나 아니면 후임자 깎아내리기였다. 국정(國政) 실패를 조금이라도 시인하고 후임자를 배려했다면 떠나는 뒷모습이 조금은 더 크게 보였을 터. 더불어민주당은 ‘검수완박’으로 폭주하는 사이, 홀로 여기저기서 ‘문재인 정부는 성공했어요’를 외치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참여정부는 절반의 성공도 못 했다.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실패와 좌절의 기억”이라고 토로했다.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한 노무현의 인간적 면모가 그를 더 추억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 하지만 문 대통령은 경남 양산에 내려가서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를 것 같다. 오히려 성공한 대통령이었다는 ‘대안 세계’에 살지는 않을까. 인간 문재인의 행복이고, 많은 국민의 불행이다. 대한민국 역사를 돌아볼 때 권한대행 같은 임시직을 빼고 대통령이라는 직함이 가장 어울리지 않았던 한 분을 꼽으라면 단연 문 대통령일 것이다. 그는 5년이 되도록 국가와 국민이라는 큰 크림을 보지 못했다. 오로지 ‘우리 편’을 주류세력으로 교체하겠다는 ‘세상 바꾸기 게임’에 몰두했다. 그는 집권자가 돼서도 대놓고 우리 편만 든 사상 첫 대통령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은연중에 지지층을 의식한 정책을 편 사람은 있어도 문 대통령처럼 노골적으로 상대편에 적의를 표시한 분은 없었다. 임기 말인 지난주까지도 상대편은 ‘저쪽’, 우리 편은 ‘이쪽’ ‘우리 편’으로 부르며 금을 그었다. 그럼에도 문재인의 세상 바꾸기 게임은 실패했다. 성공했다면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됐겠나. 남은 건 두 동강 난 대한민국이다. 우리 편을 열광케 한 대통령은 비교적 높은 지지율로 물러날지 몰라도, 그 자신은 반쪽만의 대통령인 ‘반(半)통령’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그가 우리 편의 지지를 잃지 않기 위해 구사한 언어는 ‘유체이탈 화법’이란 신조어를 남겼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는 자세로 임해야 할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될 비겁한 언어로 대통령사(史)에 남을 만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6일에도 ‘세월호 진상 규명’을 주장했다. 5년간이나 ‘진상 규명’이란 걸 해온 정권의 수장이 할 말인가. 무려 7년간 9번이나 조사를 하고도 진상이 나오지 않았다면 더 나올 진상이 없다는 뜻 아니겠는가. 국정 최고책임자라면 아픈 진실도 솔직하게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조국 사태 때 뜬금없이 ‘대입제도 개선’을 말하거나 윤석열 징계 파동 때 ‘인사권자로서 사과’ 운운한 것도 본질을 회피한 ‘문재인 어록’으로 남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원래 정치를 할 의사가 없던 분이었다. 그런 사람을 친노(親盧) 운동권 세력이 ‘기획상품’으로 내세워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나 의사는 물론 능력도 없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 결과가 참담한 국정 실패다. 무비판적 팬덤을 키워 정치를 병들게 하고 공정과 정의, 상식과 언어의 경계선을 허물어 사회의 건강을 좀먹은 건 보너스다. 이제 8일밖에 남지 않은 임기. 측근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 사면이라도 자제해 마지막이라도 대통령다움을 보였으면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에 관한 한 ‘불안한 상상은 항상 현실이 되고’ ‘뭘 상상해도 그 이상’이었으니 별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는 퇴임 후 “잊힌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지만, 도리어 잊고 싶은 사람은 우리다. 하지만 어쩐지 그러지 못할 거란 불안한 예감이 든다.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 202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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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尹, 검찰인사 말고 ‘통치인사’를 하라

    ‘뭘 상상해도 그 이상.’ 문재인 정권 5년간 이 말을 되뇌고 살았지만, 수명이 한 달도 안 남은 터에 이런 일까지 벌일 줄은 몰랐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밀어붙이기. 12일 기어이 이를 당론으로 채택하는 더불어민주당을 보면서 느낀 건 정치적 호불호가 아니었다. 인간에 대한 회의(懷疑)였다.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으면, 즉 수치를 모르면 인간이 아니라고 했다. 한 사람도 아니고 172석이나 되는 거대정당이 한국 의회사에 수치로 남을 만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을 의식해 취임 전에 법을 공포하겠다는, 낯 뜨거운 말도 당당하게 한다. 다시 인간에 대한 비애를 느낀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전 민주당 대선후보 보호를 위해서? 172명의 의원들이 모두 떠나는 대통령과 패배한 대선후보에 그만큼 충성심이 강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국회 의석 과반을 훌쩍 넘는 거대 당이 제대로 된 토론도, 표결도 없이 만장일치로 위헌 소지까지 있는 막장 법안을 채택한다는 건 이들이 권력에 취해 있다는 거다. 권력에 취해 정상 사고의 틀을 벗어난 것이다. 취한 권력은 남용된다. 민주당은 이미 선거법 일방 처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 5·18역사왜곡처벌법과 대북전단금지법의 입법 등에서 의회 권력을 남용한 바 있다. 한 번 선을 넘으면 두 번, 세 번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누구도, 심지어 대선 패배도 브레이크를 걸 수 없는 이 당의 시스템이다. 이제 구심점마저 없으니, 어디로 폭주할지 모른다. 이런 폭주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오히려 기회다. 그런데 윤 당선인도 바로 다음 날, 호기(好機)를 차버렸다. 13일 2차 조각(組閣) 발표 직후 한 모임에 나갔다. 대선 전에는 ‘이재명이 되면 나라가 큰일 난다. 그래도 윤석열이 돼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였던 모임이다. 그랬던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번 조각에 우려를 표시했다. 대통령의 인사는 일반 기업이나 조직의 인사와는 달라야 한다. 일반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조직의 장(長)은 얼마든지 능력 있고, 가까운 사람을 데려다 써도 된다. 대체로 우수한 엘리트의 집단인 검찰에선 능력 위주 인사가 답일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의 인사는 정(政)·관(官)·재(財)계를 비롯한 한국 사회 전반, 무엇보다 국민에 던지는 메시지다. 능력 있다고, 가깝다고 함부로 썼다간 뒤탈이 나기 십상이다. 단적으로 최측근인 한동훈을 법무부 장관 후보에 지명한 건 패착이다. 대통령직인수위 보도자료는 한 후보 지명 이유에 대해 “정치권력, 경제권력 등 사회적 강자를 상대로 한 부정부패 범죄 수사에서 역대 비교 대상이 없을 만큼 발군의 성과를 거두었고, 진영을 가리지 않는 ‘권력 비리 수사의 상징’이 되었다”고 했다. 다른 후보자들과 비교해도 극찬이다. 검찰 수사를 잘 아는 윤 당선인의 의중이 반영된 문구로 볼 수밖에 없다. 과연 그런가. 한 후보자의 수사는 목적 달성을 위해 거칠게 밀어붙인다는 논란도 적지 않았다. ‘역대 비교 대상이 없을 만큼 발군의 성과’라는 대목에 그래도 절제하며 칼을 쓰려 했던 선배 검사들이 동의할지 모르겠다. ‘발군의 성과’의 이면에 인권 침해라는 그늘이 드리운 건 아닌가. 더구나 검수완박으로 폭주하던 민주당에는 울고 싶은 데 뺨 때려준 인사다. 또 이번에 기용된 국무총리와 장관 후보 19명 가운데 박진 외교부, 권영세 통일부, 원희룡 국토교통부, 이상민 행정안전부, 한동훈 법무부 등 5명의 장관 후보가 서울법대 출신이다. 아무리 ‘능력 위주’라도 특정 학과 출신이 4분의 1을 넘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40년 지기’라는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는 어떤가. 한마디로 창피한 인사다. 많은 국민은 내 편이라면 능력이나 도덕성, 언론의 비판 따위엔 신경 안 쓰고 중용한 문재인식 인사에 질릴 대로 질렸다. 그런 사람들에게 윤석열의 인사도 별반 다르지 않겠구나, 하는 실망감을 준 게 이번 조각의 가장 큰 잘못이다. 하루라도 빨리 잘못된 인사, 무엇보다 정호영 후보부터 철회하라. 그래서 새 대통령은 전임과는 다르다는 메시지를 한국 사회에 발신해야 한다. 그것이 평생을 검찰에 몸담아 통치자로선 다소 결격임을 알면서도 밀어준 국민에 대한 예의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 2022-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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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비호감 대통령 성공의 길

    김정숙 여사의 옷값 논란이 편치 않다. SNS에 떠도는, 화려한 옷차림에 장신구를 두른 ‘유쾌한 정숙 씨’ 편집 사진을 보는 건 더욱 불편하다. 정권교체의 대의(大義)가 실현된 지 25일째, 대한민국을 정상화해야 할 새 정부 출범이 불과 36일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이 이럴 때인가. 그러나 어쩌랴. 이 모든 건 문재인 대통령과 그 주변을 곤룡포로 꽁꽁 싸맨 청와대의 자승자박(自繩自縛)이다. 김 여사의 옷값 논란은 물론 ‘버킷리스트’ 외유, 최근 다시 불거진 경남 양산 사저 문제, 딸의 태국 이주와 청와대 거주, 아들의 거액 예술 지원금 수령, 대통령 자신이 연루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중 어느 하나 새롭게 제기된 게 없다. 이런 문제가 나올 때마다 문재인 청와대는 구체적인 해명은커녕 ‘감히 알려고 들지 마라’는 식의 제왕적 태도로 일관했다. 때론 대통령 본인이 ‘좀스럽고 민망하다’며 발끈하기도 했고, 청와대 관계자라는 사람들이 거짓 해명을 버무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특별감찰관법상 임명해야 할 대통령 주변의 감시자를 5년 내내 공석으로 두었다. 간이 크다고 할 수밖에 없다. 권력의 시간은 짧고, 진실의 시간은 길다. 원하든, 원치 않든 문 대통령 임기 중 털고 갔어야 할 문제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오는 불편한 시간이 찾아왔다. 대통령 주변에 높다란 가림막을 세우는 자들. 임기 중엔 충신일지 몰라도, 길게 보면 대통령의 실패를 부르는 간신이다. 의외였다. 급진 운동권 정권에서 이토록 대통령을 제왕으로 떠받들 줄 몰랐다. 같은 학생들끼리 전대협 한총련 의장을 ‘의장님’으로 부르며 옹위하던, 기이한 운동권 권위주의의 잔재인가. 문 대통령을 성군(聖君)에 비유하는 시대착오는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제왕적 대통령의 고질병이 어디 문 대통령만의 문제인가. 박근혜를 비롯해 많은 전직들이 곤룡포를 입고 대통령 실패의 무덤으로 향했다. 누가 대통령을 제왕으로 만드는가. 대통령 주변의 간신들보다 더 큰 문제는 은연중에 ‘대통령=제왕’으로 동일시하는 우리 안의, 내 안의 ‘제왕적 대통령관(觀)’이 아닐까. 자신이 ‘×××대 경기도관찰사’라는 경기지사를, 자기를 판서에 비유하는 장관 출신을 만난 적이 있다. 그렇게라도 격(格)을 올리고 싶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선후보 선대(先代)의 묏자리를 살펴보고, 청와대와 대통령 집무실 이전 터의 풍수를 따지는 우리의 의식이 대통령을 제왕으로 만드는 건 아닌가.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없애려면 우리의 제왕적 대통령관부터 혁파해야 한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졸속으로 진행된 것 맞지만, 그렇다고 무슨 왕궁이라도 옮긴다는 듯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다. 설사 윤석열 당선인이 통의동 집무실에서 대통령직을 시작한다 해도 건물을 방탄으로 둘러싸야 하나. 대통령과 시민의 거리를 멀게 하는 과도한 경호와 의전은 시대의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기대치가 역대 어느 정권보다 낮은 편인 것도 제왕적 대통령관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역대 최악의 비호감, 역대 최저 득표율 차 대선을 치른 지금, 윤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는 그를 자신의 ‘치자(治者)’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팽배해 있다. 심한 경우 윤석열 정부는 실패해야 마땅하고,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는 확증편향에 빠지기도 한다. 역대 최악의 출발선에 설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당선인은 이런 현실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이를 타개할 방법은 하나, 대통령 권위의 문턱을 확 낮추고 소통 또 소통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문 대통령이 지키지 못한 취임사의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 ‘퇴근길에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과 격의 없는 대화’ 같은 약속을 윤 대통령이 지키면 된다. 특히 전임자의 ‘편 가르기’ 정치를 반면교사 삼아 야당과 반대자와 적극 소통해야 한다. 출발은 나쁘지 않다. 대통령 당선인이 지시봉을 들고 직접 브리핑을 하거나, 격의 없는 ‘식사 정치’를 하는 건 과거 당선인 중에 못 보던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반작용으로 탄생했다. 대통령들을 실패로 내몬 제왕적 대통령의 사슬을 끊는 것이야말로 윤석열의 소명이자 성공의 길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 2022-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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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실패한 대통령의 권력 내려놓기

    대한민국호(號)의 선장이 바뀌었다. 그런데 전·후임 선장의 만남 자체가 무산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역대 전임 대통령들이라고 승리의 기쁨에 ‘오버’하는 당선인 측에 기분 상하는 일이 없었을까. 그래도 별 잡음 없이 만남이 성사된 건 떠나는 분이 들어오는 분에게 한수 접어주었기 때문이다. 잘잘못을 가리는 것 자체가 민망한 일이지만, 이런 사달이 난 데 전·후임 중 누구 잘못이 더 큰지는 말 안 해도 다 안다. 전임 선장은 ‘한 번도 못 가본’ 항로로 배를 몰았다. 자칫 한국호가 난파(難破)할 뻔했다. 그럼에도 후임 선장이 항로를 바꾸지 못하도록 배의 키를 묶어둘 태세다. 그것도 모자라 봉급은 많고 할 일은 많지 않은, 꿀 빠는 자리에 자기 사람을 듬뿍 ‘알박기’ 하고 있다. 그러면서 ‘떠나는 날까지 인사권은 내게 있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의 권력 내려놓기 과정에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높다고는 하나 어차피 떠나는 권력이다. 문 대통령보다 퇴임 지지율이 한참 높았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나 메르켈 독일 총리도 후임자를 배려해 길을 비켜주는 아름다운 퇴장을 하지 않았나. 웬만해선 떠나는 권력을 비판하지 않는 것이 정치 담당 기자의 상도의(商道義)라면 상도의다. 비판의 대상은 권력이지,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웬만하지 않은 것 같다.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흘러내리는 권력을 최후의 순간까지 거머쥐려는 모습은 안타깝다. 대통령부터 이러니 ‘문재인 사람들’의 낯 두꺼운 알박기는 보너스다. 김오수 검찰총장의 처신은 두고 볼 여지가 있지만,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어떤가. 그래도 한국 민주주의를 이만큼 지켜온 선거관리위원회의 전통에 오물을 끼얹으면서도 수치를 모른다. 중앙과 지방의 선관위를 움직이는 상임위원이 모두 20명이다. 이들 중 15명이 물러나라고 했으면 선관위 수장으로선 이미 끝난 거다. 다 끝났는데 본인만 모른다. ‘앞으로 잘할 것’이라고 했다는데, 앞으로 잘할 사람을 위해 비켜줘라. 그것이 또 다른 오욕(汚辱)을 더는 길이다. 5년 전 이맘때, 촛불의 겨울을 지낸 많은 국민은 새로 출범하는 문재인 정권에 대한 기대로 가슴 뛰었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기대와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의 결과는 ‘한 번도 경험 못한 나라’ ‘두 번 경험해선 안 될 대통령’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본인이나 주변의 흠결은 있더라도 안보를 튼튼히 하고 국부(國富)를 늘리는 ‘국익의 대열’에서 벗어난 분은 없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외교 안보 경제 재정 에너지 노동 교육 시민사회 정책은 물론 법치와 국민화합 등 국정 전 분야에서 국익을 자해(自害)하는 통치를 해왔다. 국정의 구석구석에서 그렇게 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만큼 했으면 이제 내려놓을 때도 되지 않았나. 마지막에라도 문 대통령이 내 편의 지지율보다 역사의 평가를 중시하는 대통령다움을 보였으면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이명박(MB) 전 대통령 사면 문제를 정리하고 갈 필요가 있다. MB는 문 대통령 임기 전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달리 임기 중 구속됐다. 아무리 반대 여론이 있더라도 떠나는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중 묶은 불행한 역사의 매듭을 풀고 가는 게 순리 아닐까.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나 민정수석 폐지 같은 당선인 공약에 청와대가 왈가왈부하는 것도 가당찮다. 그런 점에서 ‘여기 안 쓸 거면 우리가 그냥 쓰면 안 되나’라며 윤 당선인을 조롱한 비서의 경박한 언동에 대통령이 경고한 건 당연하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선언이 졸속으로 이뤄진 감이 있지만, 그 책임은 어디까지나 윤석열의 몫이다. 다만 식언(食言)으로 얼룩져 신뢰 잃은 한국 정치에서 잊혀진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법언(法諺)을 새삼 일깨워준 건 평가할 만하다. 문 대통령 퇴임까지 49일. 당선인 측과 청와대가 기싸움을 벌이는 듯한 풍경 자체가 생뚱맞다. 이제 주연 자리를 윤 당선인에게 물려주고 커튼 뒤로 물러서야 할 시간이다. 통 크게 당선인에게 권한을 이양하라. 마지막 날까지 인사권을 내세워 알박기 하려 든다면 경남 양산 사저로 떠나는 뒷모습도 어쩐지 초라해 보일 것 같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 202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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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대한민국 정상화 D―2

    모레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이 탄생하므로 문재인 대통령의 실질적 임기도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작금의 청와대 풍경은 역대 대통령의 이맘때와는 사뭇 다르다. 명실상부(名實相符) ‘첫 민주정부’였던 김영삼 정부 이후 청와대의 임기 말은 스산하기 짝이 없었다. 지지율이 반 토막 난 대통령의 레임덕 탓이 컸지만,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이나 가족의 문제가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웠기 때문이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 중 아들들이 구속되는 비운(悲運)을 겪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2년 차에 이미 형 건평 씨가 알선수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지지율이 20% 전후로 떨어진 임기 말에 가족들이 거액의 금품을 수수했음이 뒷날 드러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내곡동 사저 문제를 수사할 특별검사를 스스로 임명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직계가족이 없는 박근혜 대통령은 본인 문제로 탄핵까지 당했다. 지금도 40%를 넘나드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본인과 가족 문제로 내상(內傷)을 입지 않은 것과도 관련 깊다. 그러면 문 대통령은 그 문제가 없을까. 아직은 알 수 없다. 돌이켜보면 문 대통령은 촛불 정국의 와중에 후보 검증 때부터 사실상 ‘특별대우’를 받았다. 대통령 취임 1년여 만에 딸이 태국으로 이주했다가 돌아와 청와대에 장기 거주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왜 갔는지, 가서 어떻게 살았는지, 왜 돌아와 청와대에 살게 됐는지 아무도 모른다. 딸의 태국 이주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이상직 의원이 구속됐음에도 이 문제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대통령의 아들은 ‘세계적인 예술가’라는데 국내에서만, 그것도 아버지 재임 시에 억대가 넘는 지원금을 받았다. 선정 과정 또한 궁금하다.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인 남정호는 2019년 ‘김정숙 여사의 버킷리스트?’란 칼럼을 썼다가 청와대로부터 소송을 당해 2년간 법정싸움을 벌여야 했다. 남 칼럼니스트는 그 과정을 책으로 엮은 ‘김정숙 버킷리스트의 진실’을 최근 펴냈다. 과연 진실은 뭘까. 무엇보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같은 대통령 자신의 문제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이 구속돼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가 반복되는 건 반대한다. 그래도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 어쩌면 이는 대통령 주변에 높다란 가림막을 세우고, 그 안을 들여다보려는 사람들에게 때론 거짓 해명으로, 때론 겁박으로 진실을 호도하려 한 청와대의 자업자득일지 모른다. 돌아보면 문재인의 시대는 시종(始終) 대통령과 언론이 건강한 긴장관계를 정립하는 데 실패했다. 이는 언론 앞에 나서는 게 편치 않은 성격임에도 취임사에서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다’는 허황된 약속을 한 최고 권력자 탓이 가장 크다. 하지만 취임 초기 촛불 대통령의 위세에 눌렸든, 이후 징글징글한 문빠의 공격에 질렸든, 편이 갈라진 언론의 지형 탓이든 권력자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언론의 책임도 무겁다.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 할 말이 없다. 이틀 뒤 이재명이나 윤석열 누가 당선되든, 권력자와 언론이 건강한 긴장관계를 재정립하는 것부터 첫 단추를 끼워야 한다. 권력자, 특히 대통령이 다소 부당하다고 느낄 정도의 비판도 들을 줄 알아야 그런 관계가 성립된다. 30년 넘게 정치권력의 속성을 봐 온 기자의 눈으로 볼 때 결론은 하나다. 선한 권력은 없다. 문 정권 5년은 상식과 양식을 지닌 많은 국민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안겼다. 잘못이 드러나면 반성하고 사과하거나, 그렇게는 못해도 부끄러워하거나, 아니면 변명으로 책임을 조금이나마 덜어 보려는 게 우리가 아는 정상적인 세상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정치보복을 ‘적폐청산’으로, 검찰장악을 ‘검찰개혁’으로, 심지어 증거인멸을 ‘증거보존’으로 진실을 180도 뒤집는 건 민주화 이후 어떤 정권에서도 없던 방식이었다. 더욱 고통스러운 건 입법 행정 사법 권력을 줄 세우고, 심판기관을 내편으로 만들어 그런 도착(倒錯)된 진실이 아무렇지 않게 일상화되는 세상이었다. 9일 밤 이런 세상이 정상화하기를 소망한다. 누굴 뽑아야 대한민국이 정상화의 길로 들어설까. 비호감 대선이라 누굴 뽑기 싫다면, 누가 안 뽑혀야 이 비정상 대한민국을 끝낼지 판단하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자.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 2022-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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