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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박제균 칼럼]尹 대통령과 ‘뺄셈 인사’

입력 2022-10-03 03:00업데이트 2022-10-03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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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속어보다 아마추어 외교가 큰일… 실력 부족, 정실 인사 그림자인가
인사로 고립돼간 朴 돌아보라… “니들끼리 다 해먹나” 경계해야
박제균 논설주간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은 민망하지만, 큰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참에 윤 대통령의 말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 방송으로 접하는 대통령의 어투, 말이 짧을 때가 적지 않다. 그런 반말 투가 사적으로 들으면 친근감의 표시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공식행사에서 대통령의 언어로는 부적절하다. 이런 언어 습관이 결국 이번 사달을 부르지 않았나, 돌아보기 바란다.

거듭 밝히지만 비속어 논란 자체가 큰일은 아니다. 이번 순방에서 드러난 외교 아마추어리즘이 큰일이다. 윤 대통령은 당초 영국에 도착한 지난달 18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관이 안치된 웨스트민스터홀에서 조문하려 했다. 이 조문이 불발된 건 명백한 외교 실패다.

사전에 런던 현지 상황을 숙지해 미리 가거나, 대통령을 위한 ‘패스트 트랙(Fast track)’을 깔았어야 했다. 둘 다 어려웠다면 성사가 불투명한 행사 일정은 공지하지 말았어야 한다. 대한민국 정도 되는 나라의 정상이 미리 알린 조문을 못 하고 현지 교통 상황이 어쩌니, 하고 변명을 하는 게 말이 되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48초 환담은 더 심각하다. 바이든 대통령과 만나는 일정이 그 정도로 설익은 상황이었다면 유엔 총회라는 다자 외교의 장(場)에서 정상 외교의 유동성, 미국 대통령의 국내 정치 일정의 불확실성 등 사전에 충분한 ‘밑밥’을 깔고, 바이든과의 만남을 ‘기대 밖의 성과’처럼 포장했어야 옳다. 그런데도 한미 정상회담을 열어 ‘통화 스와프’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미국의 협조를 얻어낼 것처럼 분위기를 띄워 국민의 기대감만 높였으니….

이 모든 게 치열하고도 미묘한 외교 현장을 잘 모르는 아마추어들이 지휘봉을 쥐고 흔들어서 그런 건 아닌가. 그렇다고 박진 외교부 장관의 해임건의안까지 강행하는 건 거야(巨野)의 폭주지만, 박 장관이 ‘자기 정치’에 신경 쓰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외교부 안팎에서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경제는 먹고사는 문제지만, 외교는 죽고 사는 문제’라는 말이 있다. 윤 대통령이 이번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외교 라인의 재조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취임 5개월이 다 돼 간다. 전임 문재인 대통령 때는 국정을 국익과는 반대 방향으로 끌고 가 숨이 턱 막히게 하더니, 윤석열 정부는 국정 방향은 맞는데 실력이 모자라 그쪽으로 못 가는 것 같아 답답하다. 그 중심에 정실 인사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건 아닌가.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측은 물론이고 이번 정권에서 신(新)실세로 등장한 인물들과 이런저런 연(緣)을 통해 이루어지는 인사 말이다. 실력보다 정실이 출세의 코드가 되는 조직이나 나라의 미래는 어둡다.

역대 어느 정권에나 정실 인사는 있었다. 하지만 운동권 좌파 코드에 맞추기 위해 무능한 3류를 대거 중용했던 문 정권 뒤에 등장한 윤 정권에서, 그것도 ‘공정과 상식’을 표방한 대통령 아래서 벌어지는 정실 인사는 실망스럽다. 특히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인사 뒤에 대통령과 이러저러한 검찰의 연이 있다거나, 김 여사 측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들리면 씁쓸하다. 권력의 핵심에서 이러면 그 주변도 준동하게 마련이다. ‘검(檢)핵관’ ‘용(龍)핵관’ ‘권(權)핵관’ ‘장(張)핵관’ 소리가 달리 나온 게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을 돌아보라. 첫 당선인 수석대변인을 필두로 “어, 이 사람이 왜…” 하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인사가 적잖게 이어졌다. 오죽하면 ‘수첩인사’라는 신조어가 나왔겠는가. 수첩인사는 결국 친박→진박(眞朴) 감별이라는 황당한 논란으로 비화돼 총선 참패를 부르고, 결국 탄핵의 불씨가 됐다고 본다. 비상식적인 인사가 내부의 적을 키우고, 보수의 방관을 조장했다. 그렇게 박 대통령은 인사로 고립돼 갔다.

5개월도 안 된 대통령에게 박근혜의 인사 실패를 갖다대는 게 무리라는 걸 잘 안다. 그만큼 대통령의 성패는 인사 성패에 달려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달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거에서 비주류 이용호 의원이 40%의 득표율을 가져간 건 심상치 않다. 대통령 임기 초 여당에서 그 정도의 ‘반란표’가 나온 건 희한하다. 혹시 “니들끼리 다 해먹는 거냐”란 불만의 표시는 아니었을까. 인사를 할수록 우군을 키우기는커녕 아군과 지지층까지 떨어져 나가는 ‘뺄셈 인사’. 윤 대통령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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