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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박제균 칼럼]대한민국 정상화 D―2

입력 2022-03-07 03:00업데이트 2022-03-07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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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언론, 건강한 긴장관계 정립 실패
‘불통 성격’ 탓 크나 언론도 책임
뒤집힌 진실 일상화한 ‘文의 시대’
李·尹 누가 되든 권력은 비판 받아야
박제균 논설주간
모레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이 탄생하므로 문재인 대통령의 실질적 임기도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작금의 청와대 풍경은 역대 대통령의 이맘때와는 사뭇 다르다. 명실상부(名實相符) ‘첫 민주정부’였던 김영삼 정부 이후 청와대의 임기 말은 스산하기 짝이 없었다. 지지율이 반 토막 난 대통령의 레임덕 탓이 컸지만,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이나 가족의 문제가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웠기 때문이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 중 아들들이 구속되는 비운(悲運)을 겪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2년 차에 이미 형 건평 씨가 알선수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지지율이 20% 전후로 떨어진 임기 말에 가족들이 거액의 금품을 수수했음이 뒷날 드러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내곡동 사저 문제를 수사할 특별검사를 스스로 임명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직계가족이 없는 박근혜 대통령은 본인 문제로 탄핵까지 당했다.

지금도 40%를 넘나드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본인과 가족 문제로 내상(內傷)을 입지 않은 것과도 관련 깊다. 그러면 문 대통령은 그 문제가 없을까. 아직은 알 수 없다. 돌이켜보면 문 대통령은 촛불 정국의 와중에 후보 검증 때부터 사실상 ‘특별대우’를 받았다.

대통령 취임 1년여 만에 딸이 태국으로 이주했다가 돌아와 청와대에 장기 거주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왜 갔는지, 가서 어떻게 살았는지, 왜 돌아와 청와대에 살게 됐는지 아무도 모른다. 딸의 태국 이주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이상직 의원이 구속됐음에도 이 문제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대통령의 아들은 ‘세계적인 예술가’라는데 국내에서만, 그것도 아버지 재임 시에 억대가 넘는 지원금을 받았다. 선정 과정 또한 궁금하다.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인 남정호는 2019년 ‘김정숙 여사의 버킷리스트?’란 칼럼을 썼다가 청와대로부터 소송을 당해 2년간 법정싸움을 벌여야 했다. 남 칼럼니스트는 그 과정을 책으로 엮은 ‘김정숙 버킷리스트의 진실’을 최근 펴냈다. 과연 진실은 뭘까. 무엇보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같은 대통령 자신의 문제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이 구속돼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가 반복되는 건 반대한다. 그래도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 어쩌면 이는 대통령 주변에 높다란 가림막을 세우고, 그 안을 들여다보려는 사람들에게 때론 거짓 해명으로, 때론 겁박으로 진실을 호도하려 한 청와대의 자업자득일지 모른다.

돌아보면 문재인의 시대는 시종(始終) 대통령과 언론이 건강한 긴장관계를 정립하는 데 실패했다. 이는 언론 앞에 나서는 게 편치 않은 성격임에도 취임사에서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다’는 허황된 약속을 한 최고 권력자 탓이 가장 크다. 하지만 취임 초기 촛불 대통령의 위세에 눌렸든, 이후 징글징글한 문빠의 공격에 질렸든, 편이 갈라진 언론의 지형 탓이든 권력자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언론의 책임도 무겁다.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 할 말이 없다.

이틀 뒤 이재명이나 윤석열 누가 당선되든, 권력자와 언론이 건강한 긴장관계를 재정립하는 것부터 첫 단추를 끼워야 한다. 권력자, 특히 대통령이 다소 부당하다고 느낄 정도의 비판도 들을 줄 알아야 그런 관계가 성립된다. 30년 넘게 정치권력의 속성을 봐 온 기자의 눈으로 볼 때 결론은 하나다. 선한 권력은 없다.

문 정권 5년은 상식과 양식을 지닌 많은 국민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안겼다. 잘못이 드러나면 반성하고 사과하거나, 그렇게는 못해도 부끄러워하거나, 아니면 변명으로 책임을 조금이나마 덜어 보려는 게 우리가 아는 정상적인 세상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정치보복을 ‘적폐청산’으로, 검찰장악을 ‘검찰개혁’으로, 심지어 증거인멸을 ‘증거보존’으로 진실을 180도 뒤집는 건 민주화 이후 어떤 정권에서도 없던 방식이었다. 더욱 고통스러운 건 입법 행정 사법 권력을 줄 세우고, 심판기관을 내편으로 만들어 그런 도착(倒錯)된 진실이 아무렇지 않게 일상화되는 세상이었다.

9일 밤 이런 세상이 정상화하기를 소망한다. 누굴 뽑아야 대한민국이 정상화의 길로 들어설까. 비호감 대선이라 누굴 뽑기 싫다면, 누가 안 뽑혀야 이 비정상 대한민국을 끝낼지 판단하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자.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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