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尹의 공정, 公私 구분 흐릿하면 ‘말짱 도루文’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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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하며 “해방됐다‘는 문 전 대통령, ‘文의 나라’ 해방된 사람들 하고픈 말
‘공정’ 표방 尹의 첫 인사 기대 이하… 동창·檢친목회 연상, 변호인단 중용
尹, 대통령 자리 쉽게 본 건 아닌가

박제균 논설주간
박제균 논설주간
“저는 이제 해방됐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10일 경남 양산 사저로 가는 길에 ‘해방’이란 단어를 세 번이나 말했다. 그 말을 접하며 역시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분이란 생각을 다시 확인했다. 문재인 시대의 대한민국은 공정 정의 상식은 물론 안보까지 흔들린 ‘아무나 흔들 수 있는 나라’였다. 그런 나라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하고픈 말을 본인이 앞세운다.

대통령 퇴임 후 ‘잊히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대통령 문재인’을 잊고 싶은 국민이 오히려 많은데, 잊히고 싶다면서 퇴임 직전의 언행은 정반대였다. 이제 양산에서라도 ‘잊힌 삶’을 살아주시길 바란다.

그래도 그를 추앙하는 국민이 아직도 적지 않으니 본인으로선 행복한 은퇴 이후일 수도 있겠다. 대통령이 돼서도 철저히 우리 편만 든 데 따른 보너스가 무비판적인 팬덤 구축이다. 하지만 그 보너스엔 대가가 따랐다. 반쪽만의 대통령인 ‘반(半)통령’으로 남은 것이다. 그는 최고지도자도 철저히 우리 편만 들면 자신은 손해 보지 않는다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 자신은 손해 보더라도 국가와 국민을 통합해야 할 분이 가서는 안 될 길이다.

양식 있는 국민들은 까놓고 우리 편만 챙긴 문재인 나라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살았다. 그래서 공정과 상식을 표방한 윤석열 나라는 확연히 다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조각(組閣)과 대통령실 인사는 기대 이하다. 대통령의 인사는 대(對)국민 메시지인 만큼 어느 정도의 안배는 반드시 필요하다. 윤 대통령의 첫 인사는 지역 직역 학교 성별 세대별 안배에 실패했다.

백보를 양보해 윤 대통령의 지론인 ‘능력 위주’ 인사를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치자. 동창회나 검찰친목회를 연상시킬 정도로 학연 직연(職緣)에 치우치고, 자신과 가족의 변호인단을 다수 요직에 중용한 건 공사(公私) 구분을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더구나 김건희 여사를 ‘남편을 빛나게 할 평강공주’에 빗댄 낯 뜨거운 글을 쓰고 문제 발언이 숱한 사람을 대통령비서관으로 발탁했던 건 그야말로 낯 뜨거운 일이었다. 그의 사퇴로 정리됐지만, 이 인사의 기용에 김 여사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항간에 돌았다. 그 진위를 떠나서,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부터 이런 우려가 제기된 만큼 앞으로도 윤 대통령이 각별히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 대통령의 인사가 대통령과 직간접으로 통하는 인물을 기용하는 ‘연고(緣故) 인사’의 색채가 짙어진 건 박근혜 대통령 때부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좌파·운동권 세력에서 ‘형’ ‘아우’ ‘누나’ ‘동생’으로 통할 만한 이너서클에서 주로 사람을 골랐다. 코드만 맞으면 구체적인 연고는 따지지 않았던 노무현 대통령과 다른 점이었다. 연고 인사는 대통령의 권력의 사유화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윤 대통령의 첫 인사에서 권력 사유화의 그림자가 비친 건 우려할 만하다. 공정과 상식을 중시하고 누구보다 권력 사유화의 폐해를 잘 아는 그가 왜 그랬을까. 아직은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의 마력에 빠졌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정치를, 대통령이란 자리를, 대통령의 인사가 한국사회에서 갖는 함의(含意)를 너무 쉽게 본 건 아닌가.

정권이 교체됐다지만, 윤석열을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듯한 거대 야당과 좌파 기득권의 발호가 상상 이상으로 거세다. 국회 질서와 합의를 뒤집고, 꼼수에 꼼수 범벅을 하고도 되레 당당한 기괴한 집단이 된 것 같다. 여기에 실질적인 권력의 이동 여부를 가늠할 6·1지방선거가 코앞이라 윤 대통령의 첫 인사 실패가 다소 상쇄되는 감이 있다. 그러니 윤 대통령은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과거 한국 정치의 어른들은 ‘나보다는 당(黨), 당보다는 나라’를 앞세운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을 말하곤 했다. 선공후사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공과 사를 구분해 이해(利害) 충돌 소지가 있는 일을 삼가는 게 대통령 인사의 기본이 돼야 한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공과 사를 버무리다간 ‘문재인 때와 달라진 게 뭐냐’는 소리가 나올 것이다. 공보다 사를 앞세웠던 운동권 좌파 권력의 대못을 뽑으려면 윤 대통령부터 정신 차려야 한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문재인#해방#잊힌 삶#윤석열#첫 인사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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