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 사태 틈을 타 일부 주유소가 가격을 인상한 가운데 6일 오후 서울의 한 정유회사 직영 주유소에서 한국석유관리원 직원들이 정량 검사를 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중동 사태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6일 서울 주유소의 휘발유 L(리터)당 평균 판매가가 3년 7개월 만에 1900원대로 올라섰다. 국제유가 상승분 반영 전에 국내 주유소 기름값이 먼저 뛰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기름값 바가지”를 경고하고 정부가 단속에 나섰지만 중동발 가격 불안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국내 휘발유값에 대해 “아침 점심 저녁 가격이 다 다르고, L당 200원 가까이 올린 곳도 있다고 들었다”며 ‘최고 가격 지정제’를 언급했다. 대외 위기를 틈타 사재기하거나 시세를 조종해 ‘바가지’를 씌우는 행위는 엄단해야 하지만, 전국 1만 곳이 넘는 주유소에 대한 가격 통제는 시장 왜곡과 공급 교란 등의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 가격 통제는 비상시 예외적 조치이기 때문에 공급과 수요를 안정시켜 시장의 불안 심리를 진정시키는 안정 대책을 우선해야 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이란은 세계 원유와 천연가스의 20% 이상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막고 공격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페르시아만에 정박 중인 대형 유조선이 이란의 공격을 받자,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1년 8개월 만의 최고치인 배럴당 81달러로 상승했다. 유조선 용선료는 하루 약 6억 원으로 평소의 갑절 이상으로 뛰었다고 한다. 위기 장기화에 대비해 원유와 천연가스 대체 공급처를 확보하는 한편 해상 운임과 보험료 지원 등을 통해 비용 충격을 상쇄하는 공급망 안정 조치도 준비해야 한다.
한국은 원유의 70%를 중동에서 수입하는 데도 경제 규모 대비 석유 소비량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너지 과소비 국가’다. 정부가 6일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총 600만 배럴 이상의 원유를 긴급 도입한다고 밝혔지만, 이는 국내 2, 3일 치 소비량에 그친다. 고유가가 지속되면 단계별 수요 관리 대책을 병행해야 한다. 자가용 운행 대신 대중교통 이용을 유도하고 상황이 더 나빠지면 재택근무 확대 등을 통해 에너지 소비를 줄여 나갈 필요가 있다.
산유국인 미국도 국내 휘발유값이 급등했다. 2, 3주 후엔 국제유가 급등과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 요인이 국내 주유소 가격에 본격적으로 반영될 것이다. 필요하면 저소득층 대상 에너지 바우처(이용권)나 유류세 환급 등을 통해 서민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중동발 에너지 위기는 국내에서 통제할 수 없는 대외 변수가 많다. 엄포와 단속보다 정부, 가계, 기업이 합심해야 위기를 넘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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