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중급과 고급 무기 비축량은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하고 질적으로 매우 우수합니다. 우리는 사실상 무제한의 무기를 보유하고 있죠. 이러한 무기만으로도 전쟁은 ‘영원히’, 그리고 매우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
3일(현지시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SNS 글을 통해 이렇게 밝혔죠. 이어 댄 케인 합참의장도 이렇게 장담했어요. “우리는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주어진 임무에 필요한 정밀 무기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충분한 무기를 갖고 있다”고 거듭 강조하지만, 전문가들은 전쟁이 길어지면 무기 고갈에 시달릴 수 있다고 본다. AP 뉴시스 다른 나라도 아니고 미국이 무기가 충분한 건 당연하지 않냐고요? 미국의 재래식 무기 비축량이 단연 세계 1위인 건 틀림없는데요. 지금 문제는 공격용 무기가 아닌 공중 방어용 시스템입니다. 이란이 날리는 미사일과 드론을 격추하는 데 필요한 요격 미사일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기 때문이죠.
미국 육군의 지상 방공망은 대표적으로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패트리엇(PAC-3)이 있죠. 해군 이지스함에 탑재된 SM-3(Standard Missile-3)도 있고요.
미군의 무기별 재고량은 기밀이라 공개되진 않는데요. 전략국제연구센터(CSIS)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사드 미사일 약 380발, SM-3 미사일은 414발 남아있을 걸로 추정됩니다. 패트리엇 미사일의 경우 재고량은 알 수 없지만, 2025년 한 해 동안 록히드마틴이 새로 납품한 물량이 620대였다고 하죠. 그나마 역대 최대로 생산량을 늘려서 이 정도입니다.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이란은 주변국 미군 기지와 에너지 생산 시설을 타격했어요. 개전 후 나흘 동안 이란이 날린 탄도미사일이 약 500기, 자폭드론은 약 2000대에 달하는데요.
록히드 마틴이 생산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의 모습.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도 사드를 도입했다. 록히드 마틴 제공 이를 방어하기 위해 중동 국가들은 패트리엇 같은 요격 미사일 수천 발을 발사해야 했죠. 미사일이나 드론 하나를 격추하려면 요격용 미사일도 하나 이상 필요한 법이니까요. 이런 물량 공세 덕분에 이란의 공격을 상당 부분 막아낼 수 있었는데요.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 걸프 국가 모두 요격용 미사일 재고량엔 한계가 있습니다. 무한정 이런 수준의 방어를 계속할 순 없는 노릇이죠. 스팀스센터의 켈리 그리코 연구원은 이 전쟁이 공중전에 막대한 물자를 쏟아붓는 “소모전”이 되어버렸다며 이렇게 설명합니다. “문제는 누가 먼저 미사일이 바닥나느냐는 겁니다. 방어 측(미국과 동맹국) 요격 미사일이 부족해질까요? 아니면 이란의 미사일 또는 미사일 발사 능력이 부족해질까요?”
‘미사일 수학’을 해보자
결국 이란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변수는 ‘미사일 수학’입니다. 그리고 장기전이 될수록 상황은 미국에 불리하게 돌아갈 수 있습니다. 미국은 강력한 성능의 요격용 미사일을 보유했지만, 이걸 빨리 제때 생산할 수가 없거든요.
이는 마크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도 인정한 사실입니다. “일부 추산에 따르면 이란은 한 달에 100발 이상의 미사일을 생산합니다. 반면 미국이 생산할 수 있는 요격 미사일은 6~7발에 불과합니다.”
이란은 전국 산악 지대 수십 곳에 있는 지하 기지에서 무기를 마구 찍어내고 있어요. 월 100대의 미사일만이 아니라, 샤헤드(Shahed) 드론을 하루에도 수백 대씩 대량생산한다는데요.
2024년 9월 연례 군사퍼레이드에서 이란 혁명수비대가 자폭드론인 샤헤드-136을 과시하고 있다. AP 뉴시스 미국은? 일단 사드(THAAD)는 수년 전에 미국 정부가 주문한 걸 2027년 4월에나 받을 수 있고요. 지난해 620발에 그친 패트리엇 생산량은 2030년에나 연 2000발로 늘어날 계획입니다. SM-3 미사일 납품량은 올해 대폭 늘려서 고작 66대가 될 거고요. 미사일 보충 속도가 턱없이 느립니다.
이란 전쟁 이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무기 납품 속도를 높이라고 재촉했어요. 올 1월엔 납기가 지연된 방산기업엔 배당금 지급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리기도 했죠. 괜히 주주 환원 같은 데 돈 쓰지 말고, 공장 증설해서 무기를 더 많이 만들라고 기업을 압박한 건데요.
하지만 원래 이런 정밀한 첨단 무기는 매우 복잡해서 만드는 데 오래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쥐어짠다고 해서 갑자기 생산량을 몇 배로 늘릴 순 없죠. 또 돈도 큰 문제입니다. 무기 구입을 위한 국방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하니까요.
바로 이 지점에서 또 다른 수학이 작용합니다. 아무리 따져봐도 비용 차이가 너무하거든요. 이란의 자폭드론 샤헤드 제조 비용은 대당 2만~5만 달러(2900만~7300만원). 알리익스프레스에서도 구할 수 있는 저렴한 중국산 전자 부품으로 만들기 때문에 단가가 상당히 낮은데요.
이에 비해 미국의 패트리엇 미사일은 한 발에 300만 달러(약 44억원), 사드는 1500만 달러(219억원), SM-3는 2400만 달러(350억원)에 달합니다(최근 납품 단가 기준). 비용 교환비, 즉 공격무기 대비 방어무기 가격의 비율을 따지면 최소 60대 1 이상인 거죠.
날아가는 패트리엇 미사일. 록히드 마틴 제공 3000만원짜리 드론 잡자고 수십억원 짜리 미사일을 쏜다? 이런 비효율적인 상황을 가리켜, 영국 더 타임스는 이렇게 표현했어요. “플라스틱 표적에 금으로 만든 총알을 발사하는 셈.”
미국이 값비싼 무기를 이렇게 허비하는 건 경제적 낭비일 뿐 아니라, 군사 전략 면에서도 치명적입니다. 중동에서 미사일을 소모하는 만큼 미래에 다른 지역, 특히 중국의 대만 침공 같은 충돌이 발생했을 때 쓸 수 있는 자원이 줄어들기 때문이죠. 미국이 고가의 첨단 무기를 이란에 많이 퍼부어댈수록 중국이 웃게 되는 겁니다.
우크라이나의 아이러니
그래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제 이란 지상에 있는 미사일 발사대를 파괴하는 데 집중합니다.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기보다는 아예 미사일을 날리지 못하도록 선제 타격하는 거죠. 그럼 요격용 미사일도 아끼고, 이란의 공격 능력도 약화할 수 있으니까요. 댄 케인 합참의장은 실제 이란의 탄도 미사일 발사 빈도가 개전 초기보다 86%나 줄어드는 효과를 거뒀다고 밝혔어요. “이란은 미사일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발사대가 부족한 것”(오슬로대 파비안 호프만 연구원)이란 해석이 나오죠.
하지만 미사일과 달리 자폭 드론은 거대한 발사대 없이 어디서나 띄울 수 있거든요. 크기도 작아서 평범한 창고나 민간 가옥, 트럭 같은 데 숨길 수도 있고요. 선제적으로 타격할 곳이 보이지 않으니, 결국 날아오는 걸 맞춰 떨어뜨리는 방법밖에 없는데요.
이 골칫거리를 막기 위해선 새로운 접근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란제 자폭 드론을 막는 기술에 통달한 전 세계 유일한 나라가 있으니, 바로 우크라이나입니다.
우크라이나군이 추락한 이란제 샤헤드-136 드론 잔해를 옮기고 있다. 이란의 대표적인 장거리 공격용 자폭드론인 샤헤드-136은 러시아에선 ‘게란-2’라는 이름으로 생산해 전쟁에 투입하고 있다. osmp.ngo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드론전쟁 시대가 열렸다는 이야기는 이미 전해드린 적 있는데요. 이 전쟁 초기부터 러시아의 주력 공격용 무기 중 하나가 이란제 샤헤드-136 자폭드론이었습니다.
2022년 개전 이후 샤헤드 드론은 우크라이나를 아주 지긋지긋하게 괴롭혔는데요. 하지만 전쟁이 만 4년 넘게 이어지면서 우크라이나의 방산 기술력은 놀랍도록 향상됐고요. 이제 샤헤드를 잡는 요격용 드론을 생산하는 기업만 열 곳이 넘습니다.
우크라이나가 개발한 고속 요격기로는 ‘스팅(Sting)’이 대표적인데요. 스팅은 샤헤드보다 더 빠른 속도(최고 시속 280㎞)로 날아가 적 드론에 충돌합니다. 조종사가 표적을 지정만 하면 AI 자율주행으로 끝까지 추격할 수 있죠. 요격 성공률은 70~80%에 달하고요. 가격은 단돈 2000달러(294만원)로 샤헤드의 10분의 1 수준이죠. “요격기 가격이 목표물보다 비싸다면 드론을 100% 격추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우크라이나 제25공수여단 소속 파블로 베르호보드 중령).
적의 자폭 드론을 가장 싼 값에 막을 수 있는 똑똑한 요격 드론의 탄생. 이 혁신은 유럽 국가들을 고무시켰고요. 지난 2월 19일 유럽 5개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폴란드)이 우크라이나와 손잡고 ‘저비용 타격체 및 자율 플랫폼(LEAP)’ 프로젝트를 공식 출범했죠. 우크라이나 같은 가성비 방공망을 유럽도 구축하려고 나선 겁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5년 12월 28일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트럼프의 마라라고 클럽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AP 뉴시스 유럽도 탐내는 고효율의 방어체계라면, 이란과 싸우는 미국에도 유용하지 않을까요. 3일 기자회견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이렇게 제안했어요. “그들(미국과 중동 국가)이 패트리엇 미사일을 준다면, 우리는 드론 요격기를 제공하겠습니다. 공평한 교환이죠.”
당장 이란의 드론 공세를 막아내야만 하는 미국이나 걸프만 국가 입장에선 상당히 솔깃한 제안입니다. 실제 파이낸셜타임스는 5일 “미국 국방부와 최소 한 곳의 걸프만 국가 정부가 우크라이나산 요격용 드론 구매를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죠.
참 아이러니합니다. 그동안 우크라이나는 미국에 무기 지원을 간절히 요청하는 입장이었어요. 지난해 2월 젤렌스키 대통령은 백악관 회담 중 트럼프 대통령과 언쟁을 벌이다가 쫓겨나는 굴욕을 당했고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없으면 당신은 아무런 카드도 없다”고 젤렌스키를 쏘아붙였는데요. 불과 1년 만에 이렇게 바뀔 줄이야.
이것이 바로 새로운 전쟁의 시대입니다. 값싼 드론 앞에선 전통적인 무기체계가 힘을 잃고, 모두 평등해지는 거죠. 과연 우크라이나산 요격용 드론이 이란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지는 좀더 두고봐야 겠지만요. 적어도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제 카드 한 장을 쥐게 된 건 분명해 보입니다. By.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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